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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리온 뮤직 원문보기 글쓴이: 구름밭
대한민국 가요계 사상 최연소 레코드 출반, 출반 앨범만 134장, 2500곡에 달하는 총 취입곡수, 영화와 드라마, 라디오 주제가만 60여 개. 1961년 만 여섯 살이라는 나이로 가요계에 데뷔해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활동을 이어가며 후배 가수들의 귀감이자 우리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고 있는 원로가수 하춘화 씨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1991년에는 개인 발표회 일수가 1260일을 넘기면서 세계 기네스북에도 오른 국내 가수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단순히 가수를 넘어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는데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데뷔 49년째였던 2010년에도 한국가요작가협회로부터 가수 왕중왕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춘화 씨에게 더는 특별한 상은 없을 거라 생각이 되는데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다른 상패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꾸준한 나눔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받은 각종 선행상이 그것인데요.
오랫동안 선행이 이어지며 대스타로서 모범을 보였기에 지난 2010년 가수로는 최초로 국립공원 월출산에 비문(하춘화 노래비)이 건립되기도 했답니다. 가수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선행으로 계속해서 가요계에 신화를 써 내려가는 원로가수 하춘화씨의 이야기입니다.
이름만큼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하춘화 씨의 수상 경력은 일일이 늘어놓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가수로서 받은 상도 모자라 나눔에 대한 보답으로 받은 상만 하더라도 대표적으로 92년 이웃사랑을 실천한 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1년에는 문화예술 발전과 사회봉사에 공헌한 공을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2002년에는 연예담당기자단 투표로 선행스타 대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영암 군민의 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가장 최근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선정한 이달의 나눔인상을 받기도 했고요.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하춘화 씨는 정말 많은 나눔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선행은 그녀의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해요. 데뷔 때만 하더라도 가수와 같은 대중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낮았기에 아버지께서는 항상 “사회봉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데요. 그래서 늘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 40년이 넘는 기부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기부로 시작된 선행은 기부에 그치지 않고, 다문화가정이나 독거노인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공연을 통해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갔습니다.
아버지의 조언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삶의 의미가 된 나눔은 기존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대중예술인에 대한 편견도 바꾸어 놓았고, 연예인의 사회적 책임감도 갖게 만들었습니다.
국내 나눔 1세대 스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오랫동안 펼친 하춘화 씨의 나눔. 그럼 그동안 어떤 나눔을 펼쳐왔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1년 1월 데뷔 50주년 기념 순회 콘서트를 시작하면서 첫 콘서트에서의 수익금 1억 2200만 원 전액을 다문화가정 어린이학교 건립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이어져온 하춘화 씨의 기부가 다시 한 번 관심을 받게 됐고, 지금까지 공연을 통해 기부해온 금 액이 무려 20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도 화제가 됐었는데요.
큰 금액을 기부해왔다는 것도 놀랍지만, 워낙 많은 기부를 40년이 넘도록 해왔기에 정확한 금액과 횟수가 기억나지 않아 어림잡아 200억 원이라는 말에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세 차례 ‘하춘화 리사이틀50’ 공연을 열어 공연의 수익금 전액을 홀몸노인 지원금으로 기부했고,
공연에 직접 홀몸노인 1000여 명을 무료로 초청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공연을 통해 단순히 수익금을 모아 기부를 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공연 주제를 사회적 약자에 맞춰 공연을 진행해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85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면서 많은 직업병도 생겨 고생을 했지만, 소년소녀가장과 결식아동,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힘이 났다는 그녀는 이미 나눔이 삶의 에너지가 되어 있습니다.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큰 금액을 기부하고 있지만, 늘 부족함을 느껴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공연을 해나가는데요. 몇 시간 공연에도 지친 기 색 없이 활기찬 무대를 선보이는 에너지가 바로 이런 나눔 정신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춘화 씨는 노력하는 가수로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무려 50년이 넘는 시간을 활동했기에 모두가 은퇴를 말했지만, 그녀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가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혀 꺼지지 않는 에너지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자선공연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자칫 부실해지지 않을까를 가장 염려한다는 그녀는 어떤 공연에서도 소홀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지키고 있습니다.
제일 싫어하는 게 ‘싼 게 비지떡’이라고 말했듯 무대와 동영상, 특수효과, 조명 모두가 완벽한 공연으로 관객을 맞이하고 또 판에 박힌 공연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종 외국으로 나가 다양한 공연 문화를 경험해 보고 올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철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취득하기도 하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도 보였는데요. 남다른 배움에 대한 열정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춘화의 기부로 세워진 학교인만큼 지역 주민들은 ‘하춘화 고등학교’라고 부르는 21세 때 전남 영암에 세운 낭주고등학교가 바로 그것인데요. 그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학교 를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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