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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월24일
포항 북구 환호공원에 들어선 ‘스페이스 워크’. 포스코가 공공미술사업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명성의 독일 부부 작가에게 설계를 의뢰해 제작한 조형물이다.
■ 바다사진 찍기좋은 ‘포항’
바다·기암 양옆에 끼고 걷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2코스
투박한 마을 곳곳 멋진 카페… 지중해 느낌에 ‘낭만 포토존’
롤러코스터·고래꼬리·뱃머리… 각양각색 전망대 오르는 재미도
곤륜산 여성·커플에게 인기절정… 나무 없어 270도 ‘탁 트인 시야’
포항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거친 바다가 있는 드라이브 코스
포항 바다는, 다른 동해안의 바다와 풍경이 사뭇 다르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바다는 온통 뜨겁게 끓어 넘치고 해안은 힘찬 파도의 거친 갈기가 남긴 포말로 가득하다. 속초며 강릉 일대의 바다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라면, 포항의 바다는 근육질의 서사적 분위기에 가깝다.
포항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포항 북쪽에, 또 하나는 포항 남쪽에. 북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월포해수욕장에서 칠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이고, 남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임곡항에서 호미곶과 구룡포를 지나서 장기면 양포항까지 이어진다. 포항의 해안도로 풍경은, 일찌감치 관광지로 다듬어진 속초나 강릉과는 다르다. 강원도 해안도로는 바다와 마을 틈을 비집고 길이 이어지지만, 포항에서는 길이 마을 뒤쪽으로 나 있는 게 보통이다. 바다와 마을 사이에도 길이 있긴 한데, 그건 이동을 위한 도로라기보다는 생활도로나 골목길에 가깝다. 포항 해안을 드라이브하는 매력은 바로 이런 길을 찾아가는 데 있다.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코스’ 중 입암리에서 마산리로 이어지는 구간.
속초나 강릉을 비롯한 이름난 강원 동해안 도시의 해안도로가 마을 안을 헤집고 바닷가에 딱 붙어 지나가게 된 건 외지인, 그러니까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곳일수록 횟집이 즐비하고, 특산물 상점이 넘쳐난다. 그런데 손바닥보다 더 작은 생선을 말리고 해초를 따거나 더러는 보리밭을 경작하며 사는 포항 바닷가 작은 마을은, 외지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마을 안쪽을 길로 내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바다에 기대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진짜 어촌마을의 풍경이 거기 남아 있는 건 그래서다.
드라이브 코스뿐만 아니다. 포항에는 걷기에 좋은 해안 길도 있다. 동해안 걷기 길인 해파랑길의 포항구간 하이라이트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2코스’다. 그중에서도 입암리에서 마산리까지 이어지는 1㎞ 남짓은 ‘바다를 끼고 걷는 최고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한쪽으로는 거센 파도의 바다를, 다른 쪽으로는 기기묘묘한 기암을 끼고서 바다 위로 해상 덱 구간이 이어진다. 발밑으로 포말을 일으키며 들고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 길을 걷노라면 온몸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다. 해파랑길의 거의 모든 구간이 동해안을 끼고 이어지고, 그중에서 바다를 따라 걷는 운치 있는 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입암리에서 마산리까지의 이 구간은 전체 해파랑길 구간 중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이 길은 왕복해서 느릿느릿 걸어도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러니 이 길을 빼놓을 이유도, 핑계도 없다.
# 이국적 감성의 초대형 카페
해안 마을은 투박하지만 포항의 해안에는 그야말로 근사한 카페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근래 붐처럼 들어선 고급 풀 빌라도 많다. 대도시 포항의 자본과 소비에 힘입은 곳들이다. 북쪽 드라이브 코스의 대표 카페는 ‘어레인지먼트’, 남쪽 드라이브 코스를 대표하는 건 ‘어스피스 커피’다. 포항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두 곳 카페 모두 주인공은, 당연히 바다다. 어레인지먼트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규모와 낭만적인 포토존으로, 어스피스 커피는 가슴이 탁 트이는 개방감과 지중해풍의 느낌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이 두 곳뿐만 아니다. 북쪽 드라이브 코스의 흥해 오도항 부근의 ‘블랑도도’나 ‘카페 검디’, 오도1리의 ‘린도카페’, 칠포항의 ‘두낫디스터브’도 모두 내로라하는 전망을 가진 카페다. 남쪽 드라이브 코스에서는 호미곶 인근의 ‘헤리엇커피’와 강사리의 ‘네스트 코퍼레이션’이 손꼽힌다. 사실 정말 추천하고 싶었던 곳은 따로 있었다. 구룡포읍 삼정리 앞에는 자그마한 다리를 딛고 들어가야 하는, 손바닥만 한 섬이 있는데 거기에 카페 ‘포인트’가 있었다. 작은 섬을 독차지한 카페라니…. 지중해 혹은 남태평양 어디쯤에서 가져다 놓은 듯한 이국적 풍경의 카페였다. 아쉽게도 작년에 태풍으로 바다가 넘치는 바람에 쑥대밭이 돼서 폐업하고 말았다. 재개업은 기약이 없고, 카페는 폐허가 돼 흔적만 벽체로 남았다.
아 참! 이쯤에서 팁 하나. 동해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게 맞다. 칠포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월포해수욕장으로, 그리고 양포항에서 임곡항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왜냐고? 그렇게 가야 바로 길옆으로 바다를 가까이 끼고 달릴 수 있어서다. 이렇게 달리면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바다가 닿을 듯하다.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면, 바다와의 사이를 반대편 차로가 막아선다. 바다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반대편 차로 차량까지 시야를 막는다.
# 다채로운 표정의 전망대
곤륜산 정상에 올라 칠포2리 바닷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모습.
포항시 청하면 이가리 해변에는 ‘이가리 닻 전망대’가 있다. 언뜻 보면 ‘아가리’처럼 잘못 읽게 되는데, 자세히 보면 ‘이가리(二加里)’다. 이가리는 마을 이름. 김(金)씨와 도(都)씨, 두 성씨가 합쳐서 이룬 마을이라 해서 이런 지명이 붙었다. 바다로 밀고 나간 전망대는 위에서 보면 닻 모양이다.
이가리 닻 전망대는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안에다 우후죽순 세우고 있는 해안전망대 ‘스카이워크’와 사실 다를 게 없다. 요즘은 출렁다리만큼 흔해진 게 스카이워크다. 그럼에도 이가리 닻 전망대가 참신하게 느껴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닻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것, 닻 끝의 화살표가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카이워크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것. 비슷비슷한 시설이라 해도 의미와 메시지를 더해 조금만 다르게 만든다면 주목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가리 닻 전망대 주변 해안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거북바위는 ‘뭐 그렇다니 그렇다고 해두자’고 넘겨야 하는 정도. 저게 거북이라면 해안의 바위 하나하나에 다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하다. 거북바위 위쪽에는 ‘조경대(釣鯨臺)’란 바위벼랑이 있다. 조선 인조 때 여기로 귀양 왔다는 선비가 이름을 붙였고,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현감으로 부임해 머무는 동안 자주 찾아가 그림을 그렸다는 ‘족보 있는 명승’이지만, 지형이 변했는지 지금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다.
이가리 남쪽 오도리에도 바다 전망대가 있다. 해안 벼랑 사이에 숨겨 놓은 범선의 뱃머리 형상의 ‘해오름 전망대’다. ‘해오름’이란 지난 2016년 포항~울산 고속도로 완전개통을 계기로 포항, 울산, 경주 3개 도시가 맺은 동맹의 이름. 이 이름을 따서 전망대를 지었다. 범선을 닮은 형태 때문인지 전망대에 오르면 마치 항해를 하는 느낌이다. 해오름 전망대는 목제 덱 길을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길옆에 차 한 대 겨우 댈 수 있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주차금지 구역이다. 칠포1리에서 오도1리 사이에 900m 남짓 길이의 목제 덱이 있다. 동해안 전체를 잇는 해파랑길의 한 구간이자, 포항의 영일만 북파랑길이기도 하다.
# 산에서 보는 바다 풍경
이가리 남쪽 오도항 주변에 또 다른 전망대가 있다. 오도리 마을 뒷산 ‘묵은봉’이다. 해발 126.4m. 내륙에 있었다면 ‘언덕’ 수준이지만, 바닷가라 존재감이 뚜렷하다. 묵은봉은 그냥 산이 아니다. 묵은봉 아래에 ‘사방기념공원’이 있다. ‘사방(沙防)’이란 산이나 강, 바닷가에서 토사가 비나 바람에 씻겨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을 말한다.
오도리 묵은봉을 중심으로 한 오도리 일대의 산지는 본래 부스러지는 토질로 나무 한 그루 없는, 온통 헐벗은 황토지대였다. 오도리 일대는 국제선 항로상에 있어 비행기에서 바로 내려다보였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황무지 같은 모습을 보고는 대규모 사방사업 시행을 지시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진행된 사방사업은 규모도 그렇지만, 거기에 바친 어마어마한 노동력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연인원 360만 명이 묵은봉 일대에 2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것도 그냥 심은 게 아니라 광주리에다 흙을 담아 산 위에다 뿌린 뒤에 심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방사업이 뭐 이처럼 대단하게 기념할 만한 일일까 싶어 사방기념공원이 좀 뜬금없다 느꼈는데, 전시실에서 흙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산을 오르는 아낙네의 행렬 동영상을 보고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때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노동을 바쳐서 푸른 숲을 일궈냈던 마을 사람들이라면, 어찌 그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송도해수욕장에 세워진 포항의 두 번째 워터폴리.
사실 요즘 묵은봉을 찾는 관광객들은 열에 열 모두 TV 드라마의 자취에 끌려서 찾아온 이들이다. 묵은봉 정상에는 난데없는 2.5t짜리 어선이 한 척 덜렁 놓여 있는데, 이게 인기 TV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등장했던 공간이란다. 사람들이 임도나 계단을 걸어 헉헉거리며 묵은봉 정상까지 오르는 이유다.
묵은봉 정상의 어선 옆에 서면 뒤로는 첩첩한 능선의 겨울 숲이 펼쳐지고 앞으로는 청진리 항구에서 조사리 너머의 곶까지 포말로 가득한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저 멀리 희미하지만 호미곶까지 바라다보인다. 사방기념공원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TV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해도, 묵은봉에는 올라가 보길 권한다. 너른 바다의 수평선과 바닷가 마을의 풍경만으로도, 거기까지 올라가 볼 가치는 충분하니까.
# 바다와 어깨동무하는 곳
산 얘기가 나왔으니 포항의 곤륜산(崑崙山)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해발 177m. 묵은봉보다야 높지만, 그래 봐야 ‘뒷동산’ 정도의 수준. 그런데 이름 한번 거창하다. 곤륜산이라면 도교의 여신 서왕모가 사는, 영생불사의 물이 흐른다는 산이 아닌가. 산세나 규모는 턱없지만,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요즘 포항 곤륜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곤륜산 정상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고, 거기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놓였지만 정상까지는 두 발로 걸어서 올라야 한다. 산 아래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1㎞ 남짓.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지만 포장도로의 경사가 여간 가파른 게 아니다. 그런데도 등산 한번 안 가봤을 젊은이들이 기를 쓰고 여길 오른다. 곤륜산을 오르는 이들은 커플과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젊은이들이 곤륜산 정상을 오르는 이유의 9할쯤은 ‘사진’이다. 곤륜산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는 칠포해수욕장의 바다와 백사장이, 북쪽으로는 칠포2리의 바닷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사장이나 어촌 풍경을 볼 수 있는 조망 좋은 곳이야 많지만, 곤륜산 정상처럼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자리는 흔치 않다. 게다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만들면서 산정에 있는 나무를 모두 베어내 270도의 시야가 확보된다.
곤륜산이 사진 명소로 떠오른 이유는 바다와 어촌 풍경을 걸개그림처럼 자유자재로 배경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정상의 통제선 너머가 바로 바다고 어촌이니, 능선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인물과 배경의 공간적 거리가 압축된다. 첩첩이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나, 안온한 분위기의 어촌 마을을 마치 화면 가득 배경처럼 뒤로 두고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SNS가 만들어 낸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 타지 않고 걷는 롤러코스터
닻 모양으로 만든 ‘이가리 닻 전망대’. 닻의 화살표 모양이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
요즘 포항에서 곤륜산의 인기를 넘어서는 곳이 환호공원의 ‘스페이스 워크’다. 스페이스 워크는 언뜻 보기에 롤러코스터 레일처럼 아찔해 보이는 철 구조물 트랙이다. 이 구조물 트랙을 열차가 아니라 걸어서 돌아보도록 돼 있다. 말하자면 거대한 곡선형 철 구조물로 허공을 걷게 만든 산책로인 셈이다.
스페이스 워크는 포스코가 공공미술사업의 일환으로 포항시에 기부한 작품이다. 100억 원 상당의 철강재를 이용해 세계적인 작가가 제작했다. 포스코는 조형, 건축, 미술 분야 전문가들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논의한 끝에 독일의 부부 작가 하이커 무터와 울리히 겐츠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철로 만들어낸 우아한 곡선을 통해 철의 도시 포항을 상징하는 스페이스 워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스페이스 워크는 감상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직접 걸을 수 있는 트랙이기도 하다. 최고 25m 높이 트랙의 길이가 332m다. 트랙에 오르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특히 롤러코스터 레일처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는 공포심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럿이 한 계단을 걷거나 바람이 불 때면 트랙이 흔들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규모 6.5의 지진에도 안전하도록 내진 설계를 했고 초당 80m의 풍속에도 견딜 수 있다. 최대 수용인원도 250명으로 정해져 이를 초과하면 더 이상 입장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가 작동하는데, 지금은 코로나19로 150명까지 줄였다.
스페이스 워크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관광객이나 포항시민을 가리지 않고 평일에도 하루 3000명 넘게 찾는다. 주말에 트랙에 오르려면 한두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관광객을 불러들인답시고 출렁다리나 스카이워크, 모노레일 등 비슷비슷한 관광시설물을 들이는 지자체들이 참고해볼 만하다.
# 폴리가 무엇인고 하니
포항에는 ‘워터폴리’가 있다. ‘폴리’란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부르는 이름이다. 기능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장식과 조형을 목적으로 한 ‘모양내기’식 구조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 대저택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 건축물들이다. 우리로 치면 전원주택의 정자나 궁궐의 꽃담쯤이나 될까. 기능이 없는 건물이라니 불필요한 낭비처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도심 공간에 쉼표를 찍거나 의표를 찌르며 예술적 미감이나 ‘장소성’을 드러내는 폴리는, 잘만 만든다면 이른바 ‘공간 마케팅’의 훌륭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폴리라 이름 붙인 공간이 탄생한 건 광주광역시가 처음이다. 2011년 열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부대 행사 격으로 ‘광주 폴리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됐다. 나름 성과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2013년부터 폴리는 독립된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지금까지 네 번에 걸친 프로젝트로 광주 시내에는 모두 서른한 개의 폴리가 세워졌다. 그걸 좌표 삼아 광주 도심을 여행하는 얘기는 작년 초겨울(2021년 11월 18일자)에 ‘광주 동구, 역사와 문화를 따라가다’란 제목으로 썼다.
폴리가 뜻밖에 포항에 있다. 이름하여 워터폴리다. 도심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세웠다고 해서 폴리 앞에 ‘워터(Water)’란 단어가 붙었다. 포항의 워터폴리는 모두 3개다. 하나는 영일대해수욕장에, 나머지 두 개는 송도해수욕장과 형산강 하구에 있다. 지난 2017년에 세운 것인데, 포항시는 앞으로 더 많은 워터폴리를 도시 곳곳의 해안가에다 세울 계획이란다.
# 고래 꼬리에 올라서 마주하는 바다
사실 포항에는 워터폴리 말고도 기념 조형물이 차고 넘친다. 도심의 빈터, 아니 빈터 아닌 곳에도 공공 조형물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다. 포항 시내에 조형물이 유독 많은 이유는 올해 11회째 치러지는 포항 스틸아트페스티벌 때문이다. 2012년에 시작된 스틸아트페스티벌은 철강 도시 포항의 이미지를 내세워 철(鐵)을 주제로 만든 예술축제다. 2015년부터는 축제 때마다 지역 철강기업체의 후원으로 작가와 기업 등이 철로 만든 공공 예술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190여 점의 상설 공공 예술작품 중 상당수가 포항 시내에 남아 있다.
이것만 해도 좀 넘친다 싶은데, 이런 조형물에 익숙해져서인지 포항에는 스틸아트페스티벌과 관계없이 세워놓은 기념물이나 조형물이 많다. 그중에는 메시지가 희미한 데다, 조형미도 느껴지지 않고, 균질하지도 않은 공공 조형물이 적잖다. 가장 뜬금없었던 건 영일대해수욕장 해안에 세워놓은 ‘금연 결심의 종(鐘)’이다. 고리 형태의 원형으로 깎은 화강암 안에다 금속으로 하트 형상의 공간을 만들고 종을 매달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금연 지원 기관이 함께 만든 것이라는데 참 궁금하다. 대체 이걸 왜 만들었으며, 왜 여기다 세웠을까. 더 궁금했던 건 이걸 만든 사람들이 진짜 이게 금연운동 확산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을까 하는 것이다.
거기다 대면 포항의 워터폴리는 조형미가 느껴지고 느낌과 메시지도 있다. 영일대해수욕장에 있는 워터폴리는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해수욕장 백사장 위에 고래의 몸체를 만들고 번쩍 들어 올린 고래 꼬리 부분을 전망대로 만들었다. 전망대에서는 파도가 밀려오는 해수욕장의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 조형물은 자연과 환경의 공존을 주제로 만든 것. 고래 등쪽 바닥에 돌을 이용해 ‘안녕’ ‘쿨(Cool)’ ‘웜(Warm)’이란 단어를 모스부호로 적었다. 온난화의 지구를 식히고, 따스한 마음으로 안녕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다. 기분 탓인지 고래 꼬리 전망대에 오르면 요샛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 세워진 워터폴리는 송도해수욕장 한가운데 있다. 동해를 바라보는 갈매기를 형상화한 S자 형상의 3층 옥외 건축물이다. 실내 공간이 없는 개방형 건축물인데 갈매기 머리쯤인 3층 전망대에서는 바다를 마주 볼 수 있다. 낮의 경관도 좋지만, 밤바다와 바다 위로 뜨는 달, 그리고 맞은편 포스코 야경을 바라보는 정취가 좋다.
세 번째 워터폴리는 송도해수욕장과 이어지는 형산강 하구에 있다. 4층 건물 전체가 직경 14m 전구 모양의 투명유리로 만들어진 형산강 워터폴리는 조명이 켜지는 밤에 봐야 제맛이다.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하루 네 번, 이곳에서는 야간 조명 쇼가 펼쳐진다. 워터폴리 내부에 음악이 흐르고, 바다 건너편 포스코를 환하게 밝히는 조명이 음악에 맞춰 점멸한다. 건축과 조형이 드러내는 재미와 미감, 또는 창의와 아이디어. 그게 바로 공업도시의 한계를 지우는 포항의 노력의 일환이다.
■ 포항과 유배지
포항의 호미곶 남쪽의 장기면 일대는 전남 강진, 경남 남해와 함께 조선 시대 주요 유배지였다. 중한 죄를 지을수록 먼 곳으로 유배했는데, 장기는 서울에서 가장 먼 ‘유(流) 3000리(里)’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으니, 중죄인의 유배가 많았다. 조선 시대 장기로 유배 온 이들은 모두 211명. 단일 현(縣)의 유배인 수로는 국내에서 제일 많다.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역적의 죄목을 쓰고 온 경우가 많았지만, 과거시험에서 커닝하다 유배 온 이도 있었다.
박경일 전임기자(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