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그라나다 왕으로 독립한 나사이레 가의 알 아마르는
알바이신에 있던 왕궁을 ‘붉은 언덕’ 을 바라보는 곳으로 옮길 것을 결심하고,
다음해부터 건축에 착수했다.
알람브라 궁전(붉은 궁전)은
현재 ‘알카사바’라고 하는 부분부터 건축하여 대를 이어 확장하였다.
특히 14세기 유스프 1세와 그 아들 모하트 5세 시대의 증축은 뛰어나
현재 궁전의 심장부라고 전해지는 고마레스의 궁전, 라이온 궁전 등을 남겼다.
또 이곳에 많은 자취를 남긴 왕은
16세기 스페인 황금 시대의 정점을 이룩한 카를로스 5세로서,
사라센 양식 궁전에다 르네상스 양식 궁전과 포르투갈에서 맞이한 왕비를 위해,
산타 마리아 예배실을 건축했다.
이렇게 건축된 알람브라 궁전은
18세기에 들어와 도적이나 불량배들의 소굴로 사용되면서 황폐되었다가
1870년 이후에야 관리되기 시작했다.
집시 구두닦이들이 모여 있는 궁전으로
누에바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고메레스 비탈길이 알람브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길 양쪽에 늘어선 선물점 중에서
기타를 손으로 만들고 있는 상점도 있다.
이 길을 3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작은 돌 문에 도착한다.
문 위에는 도시 이름인 그라나다 나무가 새겨져 그 이름도 그라나다 문이라고 한다.
카를로스 5세 궁을 건축한 페드로 마추카의 작품이다.
문을 지나 들어가면 알람브라 숲이다.
울창한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에서 작은 새소리와 함께 들리는
길 양쪽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경쾌하여 쉽게 궁전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세 갈래 길 중 궁전으로 가는 길은 왼쪽 비탈길인데,
그곳에서 5분 걸으면
왼쪽에 긴 직사각형의 물 마시는 곳이 보인다.
피라르 데 카를로스 5세(마추카의 작품)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돌면
알람브라 최초의 문인 재판문이다.
외관은 특별히 설명할 게 없지만 내부의 아라베스크 모양에 시선이 간다.
문 위에는 인간의 손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다섯 손가락은
각기 코란의 ‘신의 통일’, ‘기도’, ‘포교’, ‘메카 순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또 안쪽 문 위에 있는 쇠사슬이 붙은 열쇠가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로 아랍 왕의 문장이라고 한다.
또 그 위에 있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은 당연히 레콘키스타 후에 제작된 것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다음 넷으로 구분된다.
첫째 왕궁인데,
심장부로서 건축 연대별로 메스아르의 궁전, 코마레스의 궁전, 라이온 궁전이다.
두 번째는
파르다르의 정원과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이고,
세 번째는
알카사바, 마지막으로 헤네라립페이다.
왕궁 입구, 시작되는 곳이 메스아르의 궁전인데
레콘키스타 이후 16세기에 대부분 개수되었다.
안벽 허리의 세라믹은 아랍 양식이지만
기독교도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나자이레 가와 스페인 왕가의 문장이 보인다.
이 방 안에 일곱 아치가 늘어선 기도실이 있는데,
햇빛처럼 눈부시게 반사하는 알바이신의 흰벽 집들이 시야 가득히 넓게 보인다.
오른쪽 끝 팔각형 웅덩이는 미라브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파티오가 있고,
세비야의 알카사바를 생각하게 하는 코마레스 궁전의 정면 조각이 금빛으로 찬란하게 보인다.
코마레스 궁전 왼쪽 입구에서 아라야네스의 파티오로 나가는데,
이 통로는 공간을 넓게 보이도록 하는 회교도 건축 기술이 반영되어 있다.
회교 건축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공간의 이용, 곧 자연과의 조화인데
특히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는 물과 그림자의 조화는 놀랍다.
이 아라야네스의 파티오에는 큰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고,
그 녹색 수면에 비치는 대리석기둥에 받쳐진 일곱 개의 아치,
붉은 코마레스의 탑,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맑고 푸른 하늘의 조화는 수백 년 후의 방문객에게도 놀라움을 준다.
코마레스의 탑 내부를 메우고 있는 것은 대사의 방인데,
공식 응접실로 사용되었다.
정사각형 방은 벽에서 천정까지 얼마만큼의 노력과 비용이 들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한 아라베스크 양식의 조각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에 사크로몬테, 정면에 알바이신,
왼편에 알람브라의 성벽에 보이는 베란다에 새겨진 아라비아 문자는 코란의 한 구절인데,
‘알라만이 승리자’라고 반복되어 있다.
아라야네스의 파티오에서 왼쪽으로 가면,
알람브라 궁전 중 특히 유명한 라이온 궁전이 된다.
별명 ‘하레므’ 표시는,
왕 이외의 남자는 서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던 궁전인데,
2층은 여성이 사용했던 방이 줄지어 있다.
안뜰은 124개의 대리석 기둥에 둘러싸여 있는 ‘라이온의 파티오’ 라고 부르게 한
12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다.
네 모서리에 두 그루씩 서 있는 오렌지 나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흰 모래자갈의 파티오는 회교왕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파티오 남쪽 방은 아벤세라헤스의 방인데
이 이름은 왕가의 일족 아벤세라헤스 가의 여덟 명이 할렘 여성과 가까이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애석하게 단두된 데서 기인한다.
그 여덟 개의 머리가 중앙의 작은 분수 팔각형의 천정 가운데에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여덟 개의 머리에서 흐른 피는 파티오의 라이온 분수까지 붉게 물들였다고 한다.
동쪽은 ‘왕의 방’인데,
안쪽 작은 방에 묘사된 회교 예술에는
진귀한 세 개의 천정화 중 중앙 천정화의 모티브가 된 10명의 왕 때문에
방 이름이 왕의 방이라고 되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회교도인지 기독교도인지 이탈리아인인지 정설이 없다.
북쪽 방은 두 자매의 방이라고 불리는데,
허리부터 둥근 천정까지 알람 브라 유일의 균형미를 과시한다.
라이온 궁전의 각 방에는 당시의 대표적시인 도이붕 사라마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 방 천정을 가리켜
“하늘의 대천정보다 더 아름답다”라고 조각되어 있다.
두 자매의 방에 이어져 있는 것은 ‘린다라하’라고 하는데,
카를로스 5세가 왕비를 위해 건물을 건축하기 전에는
‘린다하라 정원’ 건너편의 넓은 알바이신 조망을 즐겼던 곳이다.
두 자매의 방에서 왼쪽으로 가면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이
유명한 『알람브라 전설』를 썼다는 방이 있다.
1829년 그라나다에 온 미국인 어빙은
전설보다 당시의 알람브라 그라나다의 모습을 잘 전하고 있다.
내용 중에는
“매일 일 없이 빈둥거리는 가난한 가족이
축제일이 되면 반드시 깨끗하게 차려입고 마을에 나간다”는 등의 기록은,
안달루시아의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계단을 내려와 작은 파티오를 횡단하면
어두운 입구를 지나 목욕장이 있다.
후세들이 다시 선명하게 칠을 한 최초의 방은 왕의 휴게실인데
세라믹 침대에 옆으로 누운 왕은 향불이 지펴진 중앙 분수 주위에서
춤추는 미녀들을 보면서 쉬었다고 한다.
2층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묘한 음악이 경쾌하게 흐르는데,
그 악사들은 맹인들로서 미녀들의 춤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안쪽에는 맛사지실, 증기탕에 이어 두 개의 욕조가 있다.
이렇게 왕궁 내부를 걸으면
『아라비안 나이트』 그대로의 왕의 호화로운 생활을 상상하게 되는데,
왕은 대부분 독살되거나,
동생이나 아들 등 혈육에게 왕위를 찬탈당했고
행복한 생애를 마친 왕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파탈의 정원에서 서쪽으로 가면
카를로스 5세가 회교 건축물에 견주기 위해 건축한 정사각형의 건물에
‘원형 파티오’라고 하는 독특한 궁전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건축가이자 화가인 페드로 마추카가
1525년에 설계 착공하고 1550년 건축을 끝내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루이스, 그리고 에레라 등에 의해 건축된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로,
도리아식 기둥이 늘어선 파티오에서는 투우나 기사의 결투가 열렸다고 한다.
현재는 매년 6월 말에서 7월에 걸쳐 국제음악제가 개최된다.
밤 하늘에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라 음악은 그라나다다운 분위기를 낸다.
또 궁전 내부에는 알람브라에 관한 미술관이 있다.
알람브라 궁전 서쪽 끝에 있는 알카사바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벨라탑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오른쪽 사크로몬테에서 왼쪽 멀리 보이는 시에라네바다까지의 아름다운 경치는,
탑 입구에 써 있는 프랑시스코 이카사의 다음 시가 전해준다.
“금전으로 은혜를 베풀어 준다 해도,
여자의 인생은 어딘가 슬픔이,
그라나다의 맹인보다 더 가련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알람브라 궁전 서북쪽에 따로 떨어져 있는 헤네라리페는
왕의 별장으로, 14세기 건축 당시보다 많이 축소되어 남은 것은 현재의 모습뿐이다.
건축 면으로는 본궁인 알람브라에 비해 떨어지지만,
이 정원은 멜리 시에라네바다의 눈이 녹은 물을 이용하여
넓은 정원 어디에서나 물소리가 들리는 많은 분수와 연못을 모티브로 하여
깨끗이 다듬어진 삼나무의 녹색 벽과, 색깔이 다른 화초가 아름다움을 경쟁하고 있다.
특히 길이 48.70미터의 아세키아 파티오는 가운데에
마치 운하처럼 가늘게 뻗은 연못에 매혹될 뿐 아니라,
프란시스코 탈레가(Francisco Tarrega, 1852~1909)의 기타 소곡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의 트레몰로처럼 물 소리에 귀까지 빼앗기게 된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북쪽 다로 내 건너편 조금 높은 언덕에,
흰벽에 밤색 지붕으로 이어진 마을이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알바이신이다.
7세기에 이곳으로 온 무어인은 1492년 알람브라 궁전이 기독교도에게 넘어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이 지역에 건물을 신축할 경우 외관은 옛 건물과 같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세라믹이나 꽃으로 장식된 파티오 집은
아라비아어로 ‘Carm’이 어원인데, 과수원이란 뜻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름 〈카르멘 〉은 여기서 유래한다.
이런 집들 사이에 미로처럼 뚫려 있는 길은 걸을만한 산책길이다.
해가 질 때쯤의 이곳은 묘한 기분을 갖게 하는데,
알보스가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널리 알려진,
알베니스가 안달루시아 지방의 경치와 풍속을 인상주의적으로 묘사한
〈이베리아〉 제3집 7번 〈엘 알바이신〉은 이곳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산 니콜라스 광장에서 바라보는 알람브라의 경치는 뛰어나다
.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젊은날 가까운 백부모 집 카르멘에서 살면서,
이 광장에서 기타를 연습했다.
알바이신 오른쪽에 이어지는 ‘거룩한 산’이란 뜻의 사크로몬트 산은
집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사크로몬테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은 다로 강이 흐르고 왼쪽은 산을 파고 들어간 바나 타브라오가 줄지어 있다.
플라멩코는
테크닉보다는 정열로 춘다고 하는데,
생활이 안정된 이곳 집시에게는
정열도 테크닉도 별로 없고,
어린 아이에서부터 비대해진 노인까지 춤을 춘다.
- 황영관, 유럽음악도시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