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밤안개 VENUS 10인치레코드 VL12. 1962년 발매
길옥윤사단의 첫 가수는 누구일까요? 퍼뜩 떠오르는 여가수를 말하라 하면
당연히 패티김 그리고 혜은이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 여가수중 길옥윤의 창작곡을 최초로 취입한 가수는 패티김도 아니고
혜은이도 아닙니다. '만남'으로 유명한 노사연의 이모인 현미입니다. 1962년의 일이지요.
올려놓은 재킷 그림은 바로 손석우가 운영했던 뷔너스 레이블 VL12번으로 출시된 현미의
데뷔10인치 음반 '밤안개'입니다. 이봉조의 데뷔음반이기도 하지요.
10인치 음반은 대부분 앞뒷면 각각 4곡 해서 8곡 정도가 수록됩니다.
당초 영화 '동경에서 온 사나이'의 주제가인 손석우 곡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등
손석우곡 5곡으로 음반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헌데 앞서 말한대로 8곡이 필요한데
3곡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현미와 연인사이였던 신예 작곡가 이봉조의 곡이 2곡
추가되었지요. 그 중 한 곡이 현미의 대표곡이된 외국번안곡 'IT'S A LONESOME OLD TOWN'에 이봉조와 현미가 가사를 붙인 '밤안개' 였지요. 또 다른 곡은 이봉조작곡 이호로 작사인
'슬픈 거리를'이었구요.
자 손석우곡 5곡과 이봉조곡 2곡을 더하니 7곡이 되어 얼추 10인치 앨범 취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데 여전히 1곡이 모자랐습니다. 때마침 50년 일본으로 밀항을 해
재즈악단 크루 캐츠를 운영하던 길옥윤이 내한공연때문에 서울에 와 있었습니다.
당시 길옥윤은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손석우는 물론 이봉조와도 인사를 나누었겠죠.
작고한 이봉조는 길옥윤을 '형'으로 호칭했을 만큼 절친한 관계였는데 이 음반에서의
인연 때문이라고 봐야합니다. 곡이 모자라 쩔쩔매는 제작자 손석우와 현미와 이봉조를 위해
온순하고 품성이 좋은 길옥윤은 기꺼이 한 곡을 건냅니다.
바로 길옥윤의 자작곡 '내 사랑아'였죠. 10년전 SBS '이별'콘서트때도 현미는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록 '밤안개'의 공전의 히트에 가려 길옥윤의 첫 데뷔곡 '내 사랑아'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오랜기간 일본에서만 음악활동을 해왔던 길옥윤에게는
국내 가요계에 명함을 내미는 교두보가 되었음은 자명했습니다.
그럼 왜 1958년에 동경에서 만났던 패티김이 첫 여가수가 되질 못했을까요^.^
1958년 일본에 공연차 방문했을때 패티김에 대한 길옥윤의 회고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당시의 길옥윤은 다리를 꼬고 악수를 하자며 건방지게 먼저 손을 건내는
패티김을 건방지게 생각했었으니까요. 별로 호감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길옥윤의 첫 음반데뷔는 이렇게 현미 데뷔음반 수록곡을 메워주는 '땜빵'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합니다. 물론 단 한곡에 그쳤지만...
하지만 그 순간이 '현미'가 길옥윤사단의 1호가수로 공식기록되는 모멘트였음을
누가알았겠습니까^.^ 현미는 이봉조의 페르소나였기에 길옥윤과는 더 이상의 음악적 인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잘 알려지지 못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옥윤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운영하던 클럽의 부도로 인해 1966년 무일푼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좌절을 순간은
곧 기회의 순간. 길옥윤은 오히려 귀국과 더불어 활기찬 국내음악활동을 벌이는 반전을 맞이했습니다. 당시는 외국자체가 동경의 대상이었지라 일본에서 활동하던 길옥윤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죠. 서울대 치대출신이라는 학벌프리미엄도 한몫 거들었구요.
66년 그때 길옥윤은 쟈니리에게 '사노라면'의 원곡인 '내일은 해가뜬다'와 '예이 예이 예이'를
취입시켰고 여러가수들에게 노래를 부르게하여 길옥윤 작품집 1호를 발표했었죠. 그 음반의 타이틀 곡인 최희준의 '빛과 그림자'는 히트를
터트리며 그때까지는 길옥윤의 대표곡이 되었죠. 길옥윤의 페르소나 패티김과는
그 해 1966년 결혼을 했으니 길옥윤으로서는 일본에서의 사업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반전을
마련해준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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