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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저자 유시민
왜 나는 사소한 일에 더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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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을 보고 열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열 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한 저명인사가 나를 두고 끊임 없이 악플을 달았을 때, 한 번쯤은 반격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하지만 이럴 때 바로 반응하면 안 된다. 하루쯤 더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걸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에 매달리면 삶이 소모된다.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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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저자 유시민
왜 나는 사소한 일에 더 분노하는가.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옹졸하기 때문일까. 사회초년생 때 일이다. 신년호 잡지를 만들면서 각계 명사들에게 뜻깊은 메시지를 받기로 했다. 내가 섭외하기로 한 사람은 세 명. 유명세보다는 진심으로 한 마디를 해줄 사람들에게 연락했고 흔쾌히 글을 받았다. 그런데, 이 기획을 총괄했던 동기가 내가 섭외한 명사를 홀대했다. 기분이 나빠 발끈했더니, 그는 “왜 이렇게 과잉 반응하냐?”고 했다. 하기야 엄청나게 큰 일은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오해 받을 때가 있다. 일일이 “당신이 잘못 해석했어요”라고 항변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일일이 반응하면 내가 속 좁은 사람이 되니 참으려고 하지만, 분통이 터진다. 나이가 들면 덜 할 줄 알았더니, 웬걸.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표정관리가 안 된다.
그저 다 좋은 사람이 있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 되도록 이해하라”고 한다. “네,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사정이 있어도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죠. 당신은 이해하시고 저에겐 강요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연장자라 입을 닫았다.
‘빡치다’라는 신조어는 “어이없게 화나다”라는 뜻이다. ‘열 받는다’는 표현보다 마음에 든다. 요즘 정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상시 빡친다. 한 순간도 평안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분노할 일은 마땅히 분노하되, 내 삶을 지키자. 그게 더 소중하다.”
SNS로 맺은 인연이 꽤 있다. 일로 몇 번 연락을 취하다 페이스북 친구가 됐는데, 글이 재밌어서 호감을 가졌다.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가끔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글을 보면 80%가 흥분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할 일이 많은 세상이라지만, 반나절 내내 흥분하는 사람과 연을 이을 생각이 없었다.
친구를 끊으려고 그의 담벼락에 들어갔더니, 악플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억울한 상황은 맞았다. 하나, 한 템포 쉬고 반응하면 어떨까 싶었다. 사실 여부를 분명히 밝히고 억울함을 해소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문제는 흥분 상태에서는 과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논쟁의 중심, 수 년 동안 악플 세례를 받았던 작가 유시민은 “이런 문제에 매달리면 삶이 소모된다.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나는 메일 한 통을 받고서 발끈했다. 곧장 답장을 쓰고 싶었지만 생각했다. ‘내 에너지를 쏟을 만한 일인가? 내가 감정적으로 대처할 상황인가?’ 퇴근하면서 곰곰이 따져봤다. 단숨에 답장을 쓰지 않은 내가 대견했다. 뭣이 중헌디? 바로 내 삶을 지키는 것.
글 | 엄지혜 사진 | 한정구(AM12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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