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 주현절 셋째 주일
예배 시편 / 시편 62편 1-12절
찬송 / 278장 · 사랑하는 주님 앞에
성서 / 호세아 11장 1-11절, 마태복음 2장 13-15절
말씀 / 우리를 부르시는 길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호세아 11장 1절)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말씀하신 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마태복음 2장 15절)
김윤식 목사
Ⅰ
우리가 성서를 이해할 때, 때로 잘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이 큰 도움을 주거나 영감을 줄 때가 있습니다. 비록, 성서 본문은 짤막하지만 화가들은 그 본문에 있지 않은 일들을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해주곤 하지요. 하나의 성서 본문과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여러 화가가 다양하게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그림 가운데 헤롯 왕의 위협으로부터 이집트로 피난을 가던 예수님의 가족을 그린 그림이 유명합니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 곤히 잠든 아기 예수의 곁에서 아기 예수에게 물을 건내고 그를 바라보며 곁을 지키는 아기 천사들의 그림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고 편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어떤 화가는 이 주제를 피난길 가운데 장대로 포도나무를 치는 요셉과 그 열매를 먼저 맛보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사랑스럽게 그리기도 하고, 다른 어떤 화가는 피난의 여정 가운데 아기 예수에게 수유를 하는 현실적인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화가는 고단한 피난길에 잠든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 한편에 악보를 들고 있는 아버지 요셉과 바이올린을 켜는 천사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피난길 가운데 밤이 깊은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든 요셉과 한 켠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들과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난 중 휴식이라는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그림들과 다르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고 평화롭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출산한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머나먼 땅 애굽을 향해 무작정, 그 멀고 험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손에 지도라도 들려있었을까요? 그래서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는 다른 화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쉼과 휴식이 아니라 이 ‘고난의 여정’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어두운 배경을 지니고 있지요. 한 치 앞에도 뒤편에도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림입니다. 그림 안에는 지친 나귀 위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어두운 얼굴로 어둠을 바라보는 아버지 요셉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밝게 빛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빛나는 아기 예수님의 얼굴,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맞닿는 요셉의 한쪽 어깨, 그리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요셉의 맨발과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입니다. 비록 요셉의 시선은 막막한 어둠을 향해 있고, 그의 얼굴에는 어둠이 가득하지만,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그의 어깨를 사랑의 빛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의 발걸음은 그의 앞을 비추는 빛과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에게 있는 것은 지친 나귀와 지팡이뿐이지만, 그의 발은 그의 앞을 비추는 빛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쪽의 어깨에는 그늘이 가득하지만, 아내가 그를 바라보는 그의 어깨는 사랑의 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한 손으로는 예수님을 태운 나귀를 이끌고 가면서, 다른 한 손에는 그가 지치지 않도록 돕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 그 맨발은 투박한 발이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발입니다. 비록 모든 상황은 그의 얼굴처럼 막막한 고난의 여정이지만, 그 길은 빛을 향한 길입니다. 주님께서 요셉의 가정을 사랑하시기에 지키시는 길이요, 힘을 주시며, 도우시고, 빛으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오늘은 2023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설 주일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의 여정이 이 그림과 같이 때로 막막하고 지치고 힘들지라도,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빛이 되시며, 우리의 길을 밝히시는 주님을 모시며 살아갈 때, 서로의 어깨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서로 위로하고 용서하며 함께 길을 걸어갈 때, 어려움 중에도 우리의 인생이 빛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새해의 모든 날을 주님 안에서 더 밝게 빛나는 새날로 열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Ⅱ
오늘 우리가 받아 읽은 마태복음서의 말씀은 아기 예수님의 애굽 피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 여정이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2:15). 이 예언의 말씀은 바로 오늘 우리가 구약의 말씀으로 받아 읽은 호세아서 11장의 말씀입니다.
호세아서 11장은 호세아서에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부르셔서’ 건져내시고 그들을 사랑하던 때를 돌아봅니다(호 11:1). 애굽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고난과 속박과 가난의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곳에서 그들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와 같이 사랑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걸음마를 가르치신 분, 품에 안아 기르신 분, 죽을 고비에서 살리신 분, 인정과 사랑의 끈으로 묶어서 업고 다니신 분,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려 먹이신 분입니다(호 11:3-4).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탐욕에 눈이 멀어 그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했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와 악행에도 그들을 버리실 수 없으셨습니다. 버리려고 하여도 차마 그럴 수 없었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불길처럼 강하게 솟아 오르셨습니다(호 11:8).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그 마음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1장 9절입니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그렇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그 자녀를 포기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포효하는 사자처럼 그들의 막힌 길을 열어주시고, 그 당당한 걸음에 하나님의 백성이 뒤따라 가도록 부르십니다. 오래전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때처럼,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주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따라 나아가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마태는 왜 이집트를 향해 가는 예수님의 가족에게 호세아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 여정은 과거의 속박과 해방을 직접 경험하시고 보여주심으로,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속박과 해방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이 일어날 것을 몸소 미리 보여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것처럼, 호세아가 예언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다시 새로운 광야를 지나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처럼, 아기 예수께서 애굽에 가셨다가 돌아오신 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출애굽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은총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자녀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로 부르십니다. 그 길은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애굽으로 가셔서 돌아오는 길, 고난을 몸소 겪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길, 자기의 몸에 죽음을 짊어지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의 길을 몸소 예비하시며, 우리 앞을 빛나게 밝히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어쩌면 아기예수를 모시고 애굽으로 향하는 긴 여정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뒤편도 한 치 앞도 막막한 어둠 속에 있는 것만 같을지도 모르지요. 우리의 나귀는 지쳐 있고, 우리의 발은 상처 투성이 맨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효하는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다시 건져내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몸소 애굽에서 고난을 겪으시고 다시 애굽으로부터 나온 예수님의 가족처럼, 우리가 빛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우리와 함께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를 생명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걸음과 그 앞을 주님의 밝은 사랑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빛을 따라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치솟는 사랑과 사랑하는 이들의 따듯한 시선과 지팡이와 같은 지지와 도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빛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어둠 속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어 우리를 생명과 평화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2023년, 새해를 지내는 동안 때로 우리가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을지라도, 새해의 모든 우리의 날이 주님을 모시고 빛을 향해 걸어가는 새날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