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회원 여러분!!!
이 시간은 항상 쉬어가는 코너.....오늘도 재미있는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 할 시간이 돌아왔군요
오늘도 전편에 이어 마지막 3부로 바로 기술토록 하겠습니다
진린은 용맹스럽기는 하나 왜군의 정세와 지리에 어두웠기 때문에 번번이 싸움에서 패할 뻔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린이나 명의 수군이 도리어 우리편 군사들에게 거추장스런 존재이기도 하였다. 아뭏든 이순신의 인격에 감화된 진린은 배를 타거나 기거할 때도 노상 순신을 따랐고, 순신의 지시를 즐겨 받았다. 그리하여 항상 순신을 부르기를, "이 통제사" 혹은 "노야(老爺)라고 존칭을 쓰며,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말하기를, "공이 만일 중국과 같은 큰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실로 천하 상장군이 될 뻔한 장략(將略;장수로서의 지략) 이외다." 하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난리가 끝나거든 우리 같이 중국에 들어가서 벼슬하도록 하십시다. 내 천자께 상주하여 공을 높은 직위에 천거하오리다." 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명군이 나오자, 그들은 이른바 상국의 군사입네 하고 조선 군사들과 백성들을 함부로 치고 때리고 욕보이며 약탈하기를 능사로 알았다. 이리하여 죄없이 피해당한 무수한 사람들이 연달아 들어와서, 순신에게,"장군님 ! 어찌해야 좋사옵니까 ? 이 억울한 청원을 들어 주옵소서." 하고, 호소하였다. 이에 순신은 한 꾀를 생각해 내어 백성들에게 처자 권속과 세간을 싸 짊어지고 모두들 어디로 떠나는 척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자신도 진영을 뜯어 옮기려는 기색을 보였다. 진린은 뜻박의 일에 놀라며, 곡절을 물었다. 순신은 얼굴빛을 고치고 대답하였다." 이 섬에 있는 우리 군민들이 모두 귀국 군졸들의 천대를 이기지 못하여 떠나가려 하니, 낸들 따라갈 수밖에 더 있습니까 ?"
그러자 진린은 크게 놀라, 순신의 군복자락을 붙들고 간곡히 만류하는 것이었다. 순신은 못 이기는 체하며, "그러면 귀국 군졸들의 감독권을 내겨 주십시오." 하고, 요청하였다. 진린은 즉석에서 쾌히 승낙하고 자기도 명군을 엄중히 단속하여, 그 후부터는 행패를 부리지 않았으며, 또한 순신의 명에 기꺼이 복종하였다.
인간 이순신 ! 그는 참으로 더할 수 없는 애국자요, 효자인 동시에 시름많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남아있는 그의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시편 등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물나라에 가을 빛이 저무니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 높도다
근심하는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 쇠잔한 달이 활과 칼을 비추누나. 라든가, 또 그의 유명한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 것이라든지, 또 그의 난중일기 속에 자주 쓰여 있다시피, 아산 고을에 홀로 계신 노모를 생각하고 눈물겨워했다는 점, 그리고 특히 그가 출옥한 지 얼마 안되어 모친이 하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인군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죄를 받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했더니, 어버이 또한 가셨도다." 하였다 하니, 그 때의 그의 심정, 그의 비감이 어떠하였겠는가. 우리는 영웅 이순신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을 또한 그저 보아 넘길 수없을 것이다.
아뭏든 그는 마지막 한 순간까지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싸우다 쓰러졌거니와, 그의 위대한 공덕은 그의 이름과 함께, 길이 천추만세에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