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민정음
-1446년(세종28년)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해설한 해설서 -훈민정음 원본 혹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한다. |
나랏말싸미(나라의 말이) 듕귁(中國)에달아(중국과 달라) 문자(文字)와로서르(한문과 서로) 사맛디아니할새 (통하지 않으므로) 이런젼챠로(이런 까닭으로) 어린백셩이(어리석은 백성이) 니르고져할배이셔도(말하고자 할 것이 있어도) 마참내제뜨들(마침내 제 뜻을) 시러펴디(표현하지) 몯하노미하니라.(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이를위(爲)하야(내가 이것을 위하여) 어엿비너겨(가엽겨 여겨) 새로스믈여듧자를(새로 스물 여덟자를) 맹그노니(만드노니) 사람마다해여(사람들마다 하여금) 수비니겨(쉽게 익혀) 날로쓰메(날마다 쓰는데) 뼌안(便安)킈하고져할(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르미니라.(따름이니라.) |
요즘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인기리에 방영 중인 모양이다.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이야기의 전개가 어떠한지, 우리나라 역사(正史)와 얼마나 부합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용비어천가’가 생각나서 이야기의 이해를 돕고자 조금 해설조의 글을 써 보기로 한다.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우리의 글인 ‘한글’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현존하는 인류의 모든 문자 중에서 최고의 문자로 꼽는 완벽한 문자란다.
영어나 라틴어, 중국의 한자나 기타 다른 나라들의 문자는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해 온 문자로 그 문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문자의 기능과 원리를 설명한 예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한글은 왜 이런 문자를 만들었는지(훈민정음 해례) 모음(母音)과 자음(子音), 그리고 초성, 중성, 종성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매우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문자인 것이다.
특히 중국의 한자처럼 몇 몇 나라들의 뜻글자는 현대 컴퓨터 시대에 활용하기가 매우 어렵고 소리글자가 훨씬 용이한데 영어를 비롯한 많은 소리글자 중에서도 우리의 한글이 가장 편리하다고 하니 세종대왕의 예지가 놀랍다.
그 뿐이랴, 세종대왕은 새로 만든 문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 새로운 문자를 사용하여 책을 엮어 내어 그 활용법을 보였으니 더욱 놀랍다.
훈민정음을 만들고 가장 먼저 한글로 엮어낸 책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인데 조선조 선왕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또 신격화 한 책이다.
조선은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새로 세웠으니 일종의 쿠데타이고 혁명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혁명(?)의 정당성을 여러 가지로 내세웠지만 고려 말의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의 충신들처럼 목숨을 내걸고 항거하였던 세력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조선 제4대 왕인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훈민정음의 첫 용례로 용비어천가를 짓게 했는데 그 내용이 태조 이성계의 조선개국의 타당성과 선왕들의 위대함 등을 내용으로 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합리화 하고자 했던 것이다.
용비어천가는 모두 12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 장이 ‘육룡(六龍)이 나르샤~’ 인 것이고, 그 육룡은 곧 이성계의 고조부(穆祖), 증조부(翼祖), 조부(度祖), 아버지(桓祖)와 이성계(太祖), 그리고 태종(太宗)을 일컫는데 드라마에서는 조금 다르게 꼽는 모양이다.
그 1장과 2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1장> 해동(海東)육룡(六龍)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
- 해동(海東/우리나라)의 여섯 용이 날아서 하시는 일마다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옛 성인이 하신 일들과 부절을 합친 것처럼 꼭 같으시니
*부절(符節): 돌이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물건에 글자를 새겨 다른 사람과 나눠 가졌다가 나중에 다시 맞추어 증거로 삼는 물건.
<제2장> 불휘 기픈 남근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새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니
샘이 깊은 물은 가물이 들어도 마르지 않고 솟아나 냇물을 이루어 바다에 이르니
또 1446년, 세종은 사랑하는 부인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죽자 그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한글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 내용을 편찬하게 하니 이것이 최초의 불교서적 석보상절(釋譜詳節)이다.
석보상절(釋譜詳節)
녯 아승지급(阿僧祗劫) 시절(時節)에 한보살(菩薩)이 왕(王) 다외야 겨샤 나라를 아오맛디시고 도리(道理)배호라 나아가샤 구담(瞿曇)바라문(婆羅門)을 맛나샤 쟈걋 오사란 밧고 구담(瞿曇)에 오샬 니브샤....
(아득한 옛날에 한 보살이 왕이 되어 계시다가 나라를 아우에게 맡기시고 도리(學問)를 배우러 나가셔서 바라문교의 구담을 만나서 자기의 옷을 벗고 구담의 옷을 입으시고....)
또, 이듬해인 1447년(세종 29), 세종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진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한 노래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하여 ‘월인석보(月印釋譜)’라고도 한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其1) 巍巍 釋迦佛 無量無邊 功德을 劫劫에 어느 다 살바리
世尊ㅅ 일 살바리니 萬里外ㅅ 일이시나 눈에 보논가 너기사바쇼셔
높고도 큰 석가부처님의 한없고 가이없는 공덕을 여러 겁이 지나도 어찌 다 여쭈리
세존의 일을 말씀해 올리겠으니, 만리 밖의 일이시지만 눈에 보는 듯이 여기십시오.
(其2) 世尊ㅅ 말 살바리니 千載上ㅅ 말이시나 귀예 듣논가 너기사바쇼셔
阿僧祗1) 前世劫에 님금 位ㄹ 바리샤 精舍애 안잿더시니
세존의 말씀을 말씀해 올리겠으니, 천년 전의 말이시지만, 귀에 듣는 듯이 여기십시오
아승기 전세 겁에 임금의 자리를 버리시어 정사에 앉아 계시더니
*아승기(阿僧祇) -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큰 수
(其3) 五百前世 怨讎ㅣ 나랏 쳔 일버사 精舍를 디나아가니
兄님을 모를새 발자쵤 바다 남게꿰여 性命을 마차시니
오백 전세의 나라의 재물을 훔쳐 정사를 지나가니
형님을 모르매, (도둑의) 발자취를 따라, (형을)나무에 꿰어, (형이)목숨을 마치시니
(其4) 子息 업스실새 몸앳 필 뫼화 그르세 담아 男女를 내사바니
어엿브신 命終에 甘蔗氏 니사샤믈 大瞿曇이 일우니이다
자식이 없으신 까닭에,(대구담이) 몸의 피를 모아 그릇에 담아 남녀를 내니
가련하신 죽음에, 감자씨 이으심을 대구담이 이루어 내셨습니다.
|
첫댓글 말은 있되 글이 없던 시대,
훈민정음을 생각하면 우리말의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요즘 육룡이 나르샤~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 사는 세상은 똑같다는 결론
못된 놈들이 역사를 만들고 착한 사람들이 역사를 뒷치닥거리 한다는 생각이...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