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212]운곡(雲谷)송한필(宋翰弼) 우음시(偶吟詩)
우음(偶吟)
운곡(雲谷)송한필(宋翰弼)
花開昨日雨 [화개작일우] 어제 빗속에 꽃 피더니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오늘아침 바람에 지는구나
可憐一春事 [가련일춘사] 가련하다 봄날의 일이여
往來風雨中 [왕래풍우중] 비바람 속에 피고 또 지는구나
성소부부고 제26권 / 부록 1 ○ 학산초담 학산초담(鶴山樵談)
한필(翰弼)의 우음시(偶吟詩)는 다음과 같다.
어제 비엔 꽃이 피더니 / 花開昨日雨
오늘 아침 바람에 그 꽃 지는구나 / 花落今朝風
애닯다 한철 봄이 / 可憐一春事
비바람 속에 오고 가누나 / 往來風雨中
송한필은 조선 중종 때의 문인이자 성리학자로 율곡 이이가 크게 인정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복잡한 가정사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다. 송한필의 부친 송사련이 양반집 서얼(庶孽)의 자손이어서 송한필은 신분상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친 송사련이 안처겸(安處謙)과 어울리다가 그가 세상사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을 듣고 이를 당시의 세도가 남곤 심정 등을 간신으로 몰아 척결해야 한다고 모의했다고 조작, 고변하여 그의 가문을 몰락시키고, 그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까지 오르자, 송한필은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인과 서인들의 당파 분쟁 가운데 아버지 송사련의 안처겸의 역모 고변이 조작임이 밝혀지며 일족이 노비로 환속되자 그들은 성명을 바꾸고 도피 생활하기도 하였다. 1589년 기축옥사로 동인들이 제거되자 서인으로 분류되던 송한필도 신분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복잡한 동서 분쟁의 정치 지형 가운데 귀향을 갔다가 사면을 받아 풀려나기도 했다. 이렇듯 아버지의 그릇된 처신의 영향으로 비교적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형 송익필(宋翼弼)의 문집인 <구봉집(龜峯集)>에 부록 문집으로 남아있는
송한필의 <운곡집(雲谷集)>에 시 32수와 몇 편의 글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