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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목사/영웅의 기초! (삿 13:2-4)
수천 년 전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영웅’을 추앙하고 기다립니다.
특히 나라와 사회가 혼란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또는 ‘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고들 합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처럼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가득하고,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각종 정치와 사회 문제들로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영웅’을 찾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영웅’이라고 부르는 거물급 정치인, 세계적인 기업의 CEO나 전쟁영웅이 우리에게 진정 밝은 미래와 소망을 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상처와 절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세계금융을 주도하는 영국 금융기관들이 세계 기준금리인 리보(LIBOR) 금리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이 금융스캔들에 세계적인 주요 은행들이 연루되었고, 영국의 중앙은행까지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은행들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직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한다는 금융기관들입니다.
이 세상이 진정 필요로 하는 영웅은 이런 위선적인 껍데기 ‘영웅’들이 아닙니다.
진정한 영웅은 다른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맬 때, ‘갈 길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영웅은 다른 사람들이 절망하여 살 소망을 잃었을 때, ‘살 길을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혼란과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이라도 구해내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영웅이요, 위대한 영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낼 진정한 영웅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영웅이 바로 여러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그런 영웅의 모델을 찾았는데, 그 영웅이 바로 구약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4주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극심한 혼란의 시대에서 구해낸 삼손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삼손은 구약의 ‘사사(士師) 시대’에 태어나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직 왕이 없던 시대입니다.
따라서 나라의 조직과 체제가 워낙 부실하다 보니,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통제불능 상태였습니다.
비록 당시에도 ‘모세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도통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 자신들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6).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자, 이스라엘 민족의 도덕과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온갖 사악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넘쳐났습니다.
물론 우상숭배는 단골 메뉴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을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웃 민족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강하게 내리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다른 민족의 압제에서 구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사가 다스리는 동안은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사가 죽기만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과거의 범죄로 되돌아가고,
결국 ‘사사 시대’ 내내, 이 ‘범죄-심판-부르짖음-구원’의 사이클(cycle)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삼손’은 구약성경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12번째 사사이며, 마지막 사사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삼손’이 태어나기 전, 최소한 11번이나 ‘범죄-심판-부르짖음-구원’의 사이클을 돌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마침내 12번째 죄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전과 12범의 닳고 닳은 ‘상습범’이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민족에게 무려 40년이나 가혹한 압제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그 정도로 죄악 때문에 굳어지고 사악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사이가 더할 나위 없이 악화되었을 때 등장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바로 ‘삼손’입니다.
즉 그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영웅이었습니다.
과연 삼손은 어떻게 그 시대의 영웅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특별히 삼손이라는 영웅을 키워낸 그의 가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이 세상의 위대한 영웅과 지도자들을 길러내는 ‘소망의 요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부모는 자녀의 인생교과서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단’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부모는 그 지역의 평범한 서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도무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노아’의 아내 앞에 범상치 않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사사기 13:3-4).
얼핏 듣기에는, 그녀가 임산부가 될 것이니 먹고 마시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 정도로 들립니다.
하지만 곧 이은 천사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사사기 13:5).
즉, ‘마노아’의 아내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영웅을 잉태할 것이니, 영웅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삶을 단정히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천사는 장차 태어날 아이가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실인은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사람’을 뜻하는데, 구약성경의 <민수기> 6장은 그들의 의무를 3가지로 소개합니다.
1) 음주금지, 특히 포도 관련 제품은 전면 금지
2) 이발금지
3) 시체접근 금지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사는 ‘나실인’으로 태어날 ‘마노아’의 아들에게는 ‘이발금지’ 지시만 내린 반면,
오히려 그의 어머니에게 음주금지령과 (율법이 지정한) 부정한 음식 금지령까지 내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천사는 태어날 아이보다 어머니에게 더 많은 의무를 지웠습니다.
너무나도 놀란 ‘마노아’의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특이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마노아’는 자신의 아내가 만났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천사를 ‘마노아’ 부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천사를 만난 ‘마노아’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사사기 13:12).
즉 ‘마노아’는 ‘영웅을 기르는 육아법’, 요즘으로 말로 바꾸자면 ‘영재교육법’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오히려 뜻밖의 대답을 하였습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사사기 13:13-14).
이 구절에서 많은 분들에 오해하는 부분이 13절의 ‘그가 다 삼가서’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마노아’의 아내가 낳을 아들을 가리키는 말씀 같지만, 본문이 말하는 ‘그’는 다름 아닌 ‘마노아’의 아내입니다.
14절의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에 등장하는 ‘그’ 역시 ‘마노아’의 아내입니다.
즉, ‘영재교육법’을 묻는 ‘마노아’에게, 천사는 오히려 또 다시 ‘어머니의 음식물 주의사항’만을 강조하였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마노아’의 아내가 지시 받은 음주금지와 (율법이 정한) 부정한 음식 금지는 오히려 장차 태어날 아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과 의무를 오히려 어머니에게 지우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웅이 크려면 그 아이 자체보다, 부모의 건전한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녀들의 인생의 진정한 교과서는 바로 부모의 인격과 삶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지식은 학교나 학원 그리고 책을 통하여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인생만큼은 부모에게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삶이 이중적이지 않고 진실하고 건전하면, 그것을 보고 자라는 자녀의 삶 역시 올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남편의 미래를 보려거든 시아버지를 보고, 아내의 미래를 보려거든 친정어머니를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최근 출간되는 서적들의 상당수는 자녀교육 관련 책자들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자녀교육에 관련된 책들은 많았지만, 최근의 책들은 과거의 책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과거의 책들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최근의 책들은 ‘부모들이 자녀를 위하여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즉 현대 교육학은 교육문제의 핵심이 자녀가 아니라, 그 자녀의 환경, 특히 부모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SBS에서 방영 중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입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잘 보십시오.
온갖 정서 및 행동의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놀랍도록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 프로그램을 통하여 ‘부모’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아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부모’가 달라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 역시 ‘가정교육의 부재(不在)’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민들 간의 기본적인 예의가 지켜지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서라면 남들이 흘려야 할 피눈물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회 현상은,
소위 가정 내의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졌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입니다.
이 말은 부모가 식탁에서 잔소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이라는 가장 친밀한 식탁 공동체에서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각 가정의 부모는 자녀들의 훌륭한 인생교과서가 되어야 합니다.
잔소리와 회초리로 인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서당의 훈장이 ‘바담 풍’해도 학생들은 ‘바람 풍’으로 읽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우격다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는 한, 자녀들은 결코 부모들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부모답지 않으면, 잘못된 인생교과서를 들여다 보는 자녀들 역시 올바른 인격체로 상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깨우침 아래 등장한 것이 바로 ‘아버지학교’나 ‘어머니학교’ 같은 부모교육 프로그램들입니다.
부모들도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2009년 암세포를 죽이는 백신을 개발하여,
미국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래리 곽’ 박사(53)는 전통적인 감리교 집안의 후손입니다.
그의 친할아버지는 ‘살아있는 성자’라는 별명이 붙은 <정동제일교회> ‘곽만영’ 장로님입니다.
그는 현재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교수이며,
얼마 전에는 부인 ‘루스 곽’ 여사와 함께 <아이의 잠재력을 깨워라>(2012.6.)라는 책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3남1녀 모두를 미국의 명문대학교에 진학시킨 것으로도 유명한 곽 박사 부부는 자녀교육의 비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믿고 있는 것을 실천함으로써 좋은 본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자녀’들이 있습니까?
우리 부모들부터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우시는 영웅으로 자라려면, 무엇보다도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은 예배하는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마노아’는 자녀가 없어 고민하던 자신의 가정에 아들을 생길 것이라는 덕담까지 해준 낯선 손님에게 무엇이든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노아’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천사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푸짐하고 특별한 염소고기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는 단번에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사사기 13:16).
즉 천사는 이런 놀라운 득남(得男)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마노아’는 그래도 천사의 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노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의 이름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 가정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신 선생님의 은혜는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천사의 말뜻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마노아’의 이 개념 없는 질문에 대하여, 천사는 결국 짜증스럽게 대답합니다.
‘도대체 내 이름은 왜 묻소? 내 이름은 ‘상상초월’이요!’
낯선 손님의 뜻밖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멋쩍어진 ‘마노아’는, 그 손님에게 대접하려던 염소새끼와 함께 곡식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그 제물을 바친 제단에서 불길이 하늘로 솟구치고, 그 천사도 그 불길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그제서야 자신이 본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임을 깨달았습니다.
‘마노아’는 놀라서 울부짖었습니다.
‘으악~, 천사의 얼굴을 보았으니 우리는 이제 죽었소!’
하지만 ‘마노아’의 아내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죽이려고 했다면, 우리에게 아들의 약속을 주시고, 주의사항도 말씀하시고, 제사까지 받으셨겠소?’
하나님의 천사는 영적 이해력이 부족한 ‘마노아’에게 모든 감사와 영광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가르치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즉 예배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영웅이 성장하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특히 부모들 스스로가 자녀들 앞에서 바른 예배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부모,
아무리 고민할 것이 많아도 하나님의 말씀부터 열어 읽는 부모,
아무리 정신 없이 바빠도 기도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 부모,
아무리 어렵고 두려운 일이 생겨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부모,
이런 부모들 밑에서 어떻게 신앙의 낙오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설사 자녀들이 잠시 방황한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 ‘진실하게 예배하는 부모’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들은 반드시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회복된 ‘마노아’의 가정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첫째, ‘마노아’의 가정에 남다른 꿈이 생겼습니다.
영적 지각능력이 남편보다 뛰어났던 ‘마노아’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삼손’, 즉 ‘태양’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민족의 태양’으로 세워주실 것을 바라고 믿었다는 뜻입니다.
별볼일 없는 가문인 ‘단’지파에서, 그것도 대단히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장차 ‘민족의 태양’이 될 인물이 일어날 것을 믿는다는 것이 어찌 평범한 꿈이겠습니까?
더구나 수십 년 동안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해온 터에, 자신의 아들이 ‘민족의 태양’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했다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라, 세상을 뒤집어 엎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가 회복된 가정에는 꿈이 생깁니다.
그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꿈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웃과 지역사회, 자신의 나라,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위대한 인물이 되는 꿈이 생깁니다.
최근 청소년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며칠 전(7.3)에도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한 명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였습니다.
유서로 보이는 메모에는 ‘미안하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다’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것은 단순히 살기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2주전(6.24.) 설교에서 소개해드린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학교청소부’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꿈이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극악한 환경에서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부유하고 평안한 환경에서도 살맛을 잃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는 꿈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예배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에게 위대한 꿈을 주시는 분입니다.
둘째, ‘마노아’의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찾아왔습니다.
특별히 ‘성령충만’의 복이 찾아왔습니다.
사사기 13:24-25절을 읽어봅시다.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님께서 가득하시면’, 즉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가정이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우리 가정에서는 부모의 싸움, 형제자매들의 갈등, 부모자녀 사이의 의견충돌 등, 다양한 대립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관계의 문제’들이 생기면, 임기응변 식으로 대충 문제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꼬여가는 인간관계를 우리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풀려고 하면, 곧 한계점을 만나게 됩니다.
만일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심리 및 상담 전문가들의 가정이 제일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악화된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9가지 열매로 표현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이 모든 열매는 아름답고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하여 필요한 덕목입니다.
즉 ‘성령충만’한 가정은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래예측학자인 ‘존 캐스티’는 <대중의 직관>(2012)이라는 책에서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그 문제의 당사자보다는, 오히려 그 주변 분위기, 특히 ‘집단적 심리’의 영향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지면, 그 안에서 성장하는 자녀의 미래도 밝아집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가정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특히 가정불화로 흔들리는 청소년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을 위해서, 특히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우리 가정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우리 가정을 화평하고 행복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해 봅시다.
오늘 우리는 영웅이 성장할 기초가 되는 가정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부모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 그리고 우리 가정에 예배가 회복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의 가정이 ‘영웅이 성장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