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근 목사
간밤에 하얗게 눈이 내렸습니다. 불편하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성탄절의 분위기는 역시 하얀 눈 속에서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화이트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 이 성탄의 기쁨을 옆 사람과 함께 나누어보기를 원합니다. "기쁜 성탄절입니다. 행복하십시오" 할렐루야!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의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그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모든 세상의 종교들은 인간이 신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인간 편에서 신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임하신 것,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같이 되신 것,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더럽고 냄새나는 인생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인가? 그래서 신비입니다. 자! 그러면 임마누엘의 신비를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734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아하스가 유다의 왕이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람의 "르신"과 북쪽 이스라엘의 "베가"가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아하스가 왕이 되기 전 아버지 "요담"때에 일어났던 전쟁에서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을 아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은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이웃나라인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겠으니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가 "이웃의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라, 지금 쳐들어온 적들은 부지깽이나 다름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실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징조를 보여주시겠다는 것도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유다 왕국과 함께 한다는 징조를 보여주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수많은 탄생 중에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는 누구인가?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탄생해보지 못한 유일한 방법인 처녀 탄생, 성령의 잉태되심을 통해서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르신과 베가의 군대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징조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징조, 즉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 9장에 보면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셨고, 또 11장에서는 "이새의 뿌리에서 날 것이라"고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증거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임마누엘'의 신비로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매시야, 즉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시는 그 분의 이름은 "임마누엘"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며 동시에 살아계신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또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주님께서는 확인이라도 하실 듯이 제자들을 향해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습니다. 주님이 물으신 것은 바로 '너'의 생각, 바로 '나'의 생각입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남들에게서 주어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로 네가 만난 하나님, 바로 네가 고백하는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의 고백을 듣고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축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고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을 오해하고 시기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틈에서 예수님의 실체를 깨달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시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나쁜 상태를 좋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십니다.
나와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그런데 그 하나님이 지금 누구의 하나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나의 하나님 바로 당신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엄청난 역사를 이루시는 전능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 개입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을 다 체험하셨습니다. 우리의 외로움도 아시고, 슬픔도 눈물도 아십니다. 가난한 자의 신음도 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배신의 아픔도 아십니다. 노한 풍랑과 싸워야 하는 격정적인 인생의 파고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목마름과 갈증도 십자가에서 체험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의 고비마다 먼저 지나가신 주님의 흔적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임마누엘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부르는 그 이름 예수님,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걸어가려는 그 길에 동행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고 지키시는 주님의 따뜻한 숨결을 늘 호흡하면서 늘 강건함으로 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구하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함이 인간을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실수를 했어도, 범죄를 했어도, 부끄럽지만 아버지의 집에 돌아올 때, 용서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탕자가 돌아왔듯이, 언제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 다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영국 런던에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캠벨 몰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의 삶에서 커다란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매일 오후 저녁 무렵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날 갑자기 딸이 어버지하고 공원 산책을 며칠간 못하겠다는 얘길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유는 묻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이 아버지가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몰겐 박사는 그 이유를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아버지에게 드릴 성탄 선물로 아버지가 신으실 슬리퍼를 만드느라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탄절 날 아침 이 선물을 받으면서 몰겐 박사는 사랑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무 고맙다. 이걸 만드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그런데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아빠는 슬리퍼 선물보다도 네가 나와 더불어 같이 손잡고 산책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단다"
하나님도 같은 마음을 가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좀 같이 있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