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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 법구경 이야기]-368~376 - 무념 · 응진 역주
2564.9.7.
일곱 번째 이야기
소나 꾸띠깐나 비구와 강도였다가 출가한 비구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에 계실 때 강도였다가 출가한 비구들과 관련해서 게송 368, 369, 370, 371, 372, 373, 374,
375, 376번을 설하셨다.
어느 때 마하깟짜나 장로는 아완띠 국의 꾸라라가라 성 근처의 빠왓따산에 살고 있었다. 마하깟짜나 장로의 재가제자인 소나 꾸띠깐나는 장로의
법문을 듣고 신심을 일으켜 장로 아래로 출가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 요청했다.
“마하깟짜나 스승이시여, 저의 출가를 허락해주소서.”
“소나여, 일생동안 하루에 한 끼만 먹고 홀로 머물고 청정범행을 닦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재가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하루 한 끼 식사와
청정행을 닦고 수행하여라.”
소나는 출가를 단념하고 홀로 삼매에 잠겨 있다가 또 출가하고픈 생각이 일어나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집에서 청정범행을 닦기가 쉽지 않습니다.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장로는 두 번째 거절했다. 며칠 지나서 소나는 세 번째로 비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스승에게 말하자 장로가 그에게 사미계를 주었다. 그 무렵
남쪽 나라인 아완띠에는 비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소나가 비구계를 받기까지는 삼 년이 걸렸다. 장로는 여기저기서 열 명의 비구를 겨우 모아
승단을 구성하여 비구계를 줄 수 있었다. 소나 비구가 안거를 마치고 홀로 정진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부처님을 만나 뵙지 못했다. 부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라고 전해 들었을 뿐이다. 스승께서 허락하시면 존귀하고 스스로 올바로
깨달으신 부처님을 뵈러가야겠다.’
그는 마하깟짜나 장로에게 가서 삼배하고 부처님을 뵙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장로가 흔쾌히 승낙하며 말했다.
“소나여, 참으로 훌륭하다. 존귀하신 분이시며 스스로 올바로 깨달으신 부처님을 뵈러 가거라. 소나여,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면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면서 나의 이름으로 ‘부처님이시여, 저의 은사인 마하깟짜나 장로가 부처님의 발에 절을 올립니다.’라고 전하면서 삼배를 올려라. 그리고
다음의 다섯 가지 계율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하라.
① 남쪽 지방인 아완띠에는 비구가 거의 없으니 더 적은 수로도 비구계를 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율장 대품 1편 6항 : 열 명
이상의 비구가 없으면 구족계를 줄 수 없다.)
② 아완띠국의 남쪽 지방은 토양이 검고 소의 발굽으로 다져지고 거칠어서 얇은 신발로는 다니기가 힘드니 여러 겹의 바닥을 댄 신발을 신게
해주십시오.(율장 대품 5편 3항 : 바닥이 한 겹 이상인 신발은 신어서는 안 된다.)
③ 안완띠국의 남쪽 지방 사람들은 목욕을 중히 여기고 물로써 깨끗해진다고 여기고 있으니 수시로 목욕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빠찟띠야 57조
: 울력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름마다 목욕해야 한다.)
④ 아완띠국의 남쪽 사람들은 양가죽, 산양가죽, 사슴가죽을 깔개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양가죽, 산양가죽, 사슴가죽을 깔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율장 대품 5편 10항 : 어떤 가죽도 지녀서는 안 된다.)
⑤ 비구들이 교구 밖에 있을 때 신도들이 ‘이 가사를 어느 스님에게 올립니다.’라고 맡겼는데 그 비구가 돌아와서 알려주면 그 비구는
‘니삭기야 빠찟띠야’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받지 못합니다. 이 계율을 완화해주십시오.(니삭기야 빠찟띠야(니살기) 제 1조 : 여분의
가사는 십 일 이상 보관해서는 안 된다.)
소나여, 이와 같이 말씀드리도록 해라."
소나는 순조롭게 유행하여 제따와나에 도착했다. 그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스승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스승이신 마하깟짜야나 장로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며 ‘어려움이 없고 언제나 평안하십니까? 언제나 쾌적하고 잘
지내십니까?’라고 인사를 올립니다.”
부처님께서도 그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비구여, 몸은 건강하고 편안한가? 불편한 일은 없는가? 오는데 피로하지 않았는가? 탁발하느라 힘들지 않았는가?”
“부처님이시여, 저는 건강하고 편안합니다. 여행은 힘들지 않았고 탁발하는데 힘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 장로에게 비구의 침대와 의자를 간다꾸띠 안에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아난다 장로는 소나의 침대와 의자를 간다꾸띠 안에
마련했다. 그래서 소나는 간다꾸띠에서 부처님과 함께 밤을 지내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밤이 늦도록 밖에서 지내시다가 이윽고 발을 씻고 간다꾸띠에 들어가 누우셨다. 소나도 밤이 깊도록 밖에서 명상하다가 발을 씻고
간다꾸띠에 들어가 잠을 잤다. 부처님께서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소나를 깨워 말씀하셨다.
“소나여, 그대가 아는 경이 있으면 한 번 외워보아라.”
소나는 앗타까왁가(여덟 게송의 품)에 나오는 열여섯 개의 경을 모두 낭랑하게 가락을 붙여 암송했다. 소나가 경을 모두 완벽하게 암송하자
부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셨다.
“사두! 사두! 사두!(선재!) 비구여, 앗타까왁가에 나오는 열여섯 개의 경을 잘 이해하고 깊이 관찰하고 있구나. 그대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명료하고 틀린 곳이 없구나.”
부처님께서는 칭찬하시는 소리를 듣고 용들과 가루다 등 땅의 신들부터 범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신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였다.
제따와나에서 백이십 요자나 떨어져 있는 꾸라라가라에는 소나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이때 그 집에 살고 있던 천신이 박수를 치며 찬탄하였다.
소나의 어머니인 깔리 꾸라라가리까가 물었다.
“누가 박수를 치고 찬탄하는가?”
“자매여, 접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 집에 사는 천신입니다.”
“당신은 전에는 한 번도 나에게 박수갈채를 보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로 박수를 치고 칭찬하는가요?”
“저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에게 박수를 보내는 건가요?”
“당신의 아들 소나 꾸띠깐나 스님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내 아들이 무슨 칭찬받을 일을 했나요?”
“오늘 간다꾸띠에서 부처님과 함께 머물면서 경을 암송했고 부처님께서 그가 정확하게 암송하는 것을 보고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또한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지신부터 범천의 천신까지 모든 천신들도 부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박수를 치고 크게
환호하였습니다.”
“내 아들이 부처님께 경을 암송했다는 말이 정말인가요? 부처님께서 나의 아들에게 경을 암송한 것이 아니고요?”
“당신의 아들이 부처님께 경을 암송했습니다.”
천신이 그렇게 말하자 소나의 어머니는 다섯 가지 희열이 온몸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들이 간다꾸띠에서 부처님과 함께 지내면서 경을 암송하였다면 나에게도 경을 암송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이 돌아오면 법석(法席)을 마련하고
그의 법문을 들어야겠다.”
부처님께서 그를 칭찬할 때 소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이 은사스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릴 기회이다.’
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은사스님이신 마하깟짜나 장로가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다섯 가지 계율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모이게 하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아완띠의 남쪽 지방에는 비구들이 적다. 변방에서는 한 명의 계율에 정통한 자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모이면 비구계를 줄 수
있다. 변방에서는 여러 겹의 바닥을 댄 신발을 신어도 된다. 변방에서는 수시로 목욕해도 된다. 변방에서는 양 가죽, 산양 가죽, 사슴 가죽으로
깔개를 만들어 사용해도 된다. 교구 밖에 있을 때 신도들이 ‘이 가사를 어느 비구에게 올립니다.’라고 하며 맡긴 가사는 그 비구가 돌아와 손이
닿기 전까지의 날짜는 계산할 필요가 없다.”
그는 부처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제따와나를 떠나 순조롭게 유행한 끝에 스승이 거처하는 사원에 도착했다.
다음날 마하깟짜나 장로는 소나 비구를 데리고 탁발을 나가서 소나의 어머니 집 앞으로 갔다. 소나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온몸에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장로와 아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아들에게 물었다.
“스님이 간다꾸띠에서 부처님과 함께 지내며 부처님께 경을 암송했다는 말이 사실이오?”
“신도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집에 사는 천신이 크게 박수를 치고 찬탄하기에 ‘누가 박수를 치는가?’라고 물었더니 자초지종 다 말해주었지요. 천신이 하는 말을 듣고
아들이 부처님께 경을 암송했다면 나에게도 경을 암송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스님, 부처님께 경을 암송했었는데 나에게도 경을
암송해줄 수 있겠지요? 내가 다음에 법석을 마련해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싶소.”
소나는 어머니의 요청에 동의했다.
어느 날 소나의 어머니는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들의 법문을 들어야겠다.’
그녀는 집 지키는 하녀 한 명만 남겨두고 집안의 모든 하인들과 식구들을 데리고 법문을 들으러갔다. 성 안에는 법석을 마련하기 위해 대형천막이
세워지고 장엄하게 장식된 법상(法床)이 놓여졌다. 소나는 법상에 올라 법문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구백 명의 강도들이 소나 어머니 집에 들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강도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비책으로 그녀의 집은 일곱 겹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곱 개의 문은 망루가 달린 성문처럼 세워져 있었고, 벽둘레에는 좁은 간격으로 맹견이 끈에 매어져 있었다. 안으로는
해자(垓字)가 파여져 있고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모여 가득 차있었다. 물속에는 납 성분의 액체가 있어서 낮에는 햇빛을 받고 녹아서 끈적거리고
밤에는 표면이 굳으면서 매끄러워서 건너갈 수 없었다. 해자를 지나면 굵은 쇠기둥을 땅 속 깊이까지 박아놓아서 땅을 뚫고 들어오는 침입을 막고
있었다. 이것이 강도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비책으로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를 방불케 했다.
완벽한 방어시설과 집주인이 항상 집안에 있는 까닭에 강도들은 침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 특별한 날에 강도들은 집주인이 온
집안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들은 해자와 쇠기둥 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집안으로 침입하는데 성공했다. 집안으로
들어간 강도들은 두목을 법회가 열리는 곳으로 보내어 여주인을 감시하게 하였다.
“혹시 집안에 강도가 들었다는 전달을 받고 그녀가 자기 집으로 출발하면 죽여 버리시오.”
두목은 법회가 열리는 곳으로 가서 그녀 곁에 서있었다. 집안에 들어간 강도들은 불을 밝히고 동전이 있는 창고의 문을 열었다. 집을 지키고
있던 하녀가 강도들을 보고 소나의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마님, 강도들이 집안에 침입해서 동전 창고의 문을 열었어요.”
“강도들이 동전을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는 지금 아들의 법문을 듣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고 집에 가 있어라.”
그녀는 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강도들이 동전 창고를 다 털고 은전 창고의 문을 열었다. 하녀는 다시 그녀에게 와서 은전 창고가 털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강도들이 무얼 가져가든지 내버려 두고 법문을 듣고 있는 나를 방해하지 마라.”
그녀는 다시 하녀를 돌려보냈다. 강도들이 이제 은전 창고를 다 털고 금전 창고의 문을 열었다. 하녀는 안절부절못하고 또다시 그녀에게 달려와서
금전창고가 털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소나의 어머니가 말했다.
“여인아, 네가 두 번이나 왔을 때 ‘도둑들이 무엇을 가져가든지 내버려두라.’고 말했지 않았느냐? 나는 지금 아들의 법문을 듣고 있으니
귀찮게 하지 마라. 이렇게 세 번이나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오면 응분의 벌을 내리겠다. 즉시 집으로 되돌아가거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하녀를 돌려보냈다.
강도의 두목은 여주인의 신심을 보고 자신의 악행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런 바른 법을 지키는 여인의 재산을 털었다가는 인드라(번개의 신)의 벼락이 우리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버릴 것이다.”
그는 강도들에게 가서 말했다.
“서둘러서 훔친 재산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아라.”
강도들은 동전과 은전과 금전을 창고에 되돌려놓았다. 바른 법을 따르는 사람은 바른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말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법은 법을 닦는 자를 보호하고
법을 잘 닦으면 행복이 찾아온다.
법을 닦는 사람은 괴로움을 겪지 않으니
이것이 법을 닦는 이익이다.
강도들은 법회가 열리는 곳으로 와서 법문을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소나 비구는 법문을 끝내고 법상에서 내려왔다. 그때 강도의 두목은 소나의
어머니 발아래 엎드려 말했다.
“마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제가 당신 재산을 훔치려다 들키면 당신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곁에 있었습니다.”
“좋아요, 용서해드리겠어요.”
나머지 강도들도 모두 용서를 빌었다.
“좋아요, 모두 용서해드리겠어요.”
강도들이 여주인에게 말했다.
“마님, 용서해주신다면 우리를 당신의 아들 아래로 출가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소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삼배를 올리고 말했다.
“스님, 이들이 설법을 듣고 스님의 덕을 흠모하여 출가하고 싶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나는 강도들이 입고 있는 옷을 잘라 황토로 염색하여 가사를 만들어 입히고, 머리와 수염을 깎게 하고, 계를 주어 출가시켰다. 소나는 그들을
출가시킨 후 수행주제를 주었다. 구백 명의 비구들은 각자 받은 수행주제를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수행에 전념했다.
부처님께서는 백이십 요자나 떨어진 제따와나의 간다꾸띠에 앉아있으면서 비구들의 수행 진척을 자세히 살피시고 광명의 모습을 나투시어 마치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이 앉아서 각각의 기질과 성향에 맞게 게송을 읊으셨다.
자비관은 닦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비구는
평화로움, 상카라(行)의 소멸인 행복을 성취한다.(368)
오, 비구여!
배안에 고인 물을 퍼내면①
빠르게 건너편에 닿으리니
탐욕과 성냄을 잘라버리고 닙바나를 성취하라.(369)
다섯 가지를 잘라버리고
다섯 가지를 없애고
다섯 가지를 키워나가라.
다섯 가지 얽매임을 벗어난 비구를
거센 물결을 건넌 자라고 한다.(370)②
오, 비구여!
방일하지 말고 힘써 수행하며
마음을 욕망에 빠지지 않게 하라.
방일하여 벌겋게 달구어진 쇠구슬을 삼키고서
불타는 뜨거움을 맛 본 뒤에야
“아, 괴로워!”하며 울부짖지 말라.(371)
지혜가 없는 이에게 삼매도 없고
삼매가 없는 이이게 지혜도 없다.
삼매와 지혜를 함께 갖추어야만
닙바나에 가까워지리라.(372)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바르게 법을 관찰하는 이에게
범부를 뛰어넘는 기쁨이 솟아나리라.(373)
오취온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볼 때마다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깨달은 이에게 이것이 불사(不死)의 닙바나이다.(374)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고
얻은 것에 만족하고
빠띠목카(계목)를 잘 지키는 것,
지혜로운 비구에게 여기가 수행의 시작이다.(375)
생계가 청정하고
게으르지 않은 도반을 가까이 하라.
조화롭게 살며
해야 할 바를 힘써 하면
기쁨이 넘치고 괴로움의 끝에 이르리라.(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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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여기서 배란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물은 삿된 견해를 말한다.
② 여기서 잘라버려야 할 다섯 가지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五下分結 ; 유신견, 계금취견, 의심, 감각적 욕망, 악의)를 말하고, 없애야 할
다섯 가지는 다섯 가지 높은 족쇄(五上分結 ; 색계에 대한 집착, 무색계에 대한 집착, 자만, 들뜸, 후회)를 말한다. 키워야 할 다섯 가지는
다섯 가지 기능(五根 ; 믿음, 정진, 마음챙김, 집중, 지혜)을 말하고, 벗어나야 할 다섯 가지는 다섯 가지 얽매임(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사견을 말한다.
--- 석 소원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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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 법구경 풀이,시조단상]368~376 - 2564.9.7. 풀이
아홉 개의 게송이 함께 설해진 이 게송들은 불교의 법수를 먼저 공부하고 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먼저 용어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오하분결 : 탐, 진, 신견, 계금취, 의
오상분결 : 색애, 무색애, 도거, 만, 무명
오종선근 : 신, 진, 염, 정, 혜
오종번뇌 : 탐, 진, 치, 만,견
오상분결은 욕계의 수행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오하분결은 색계와 무색계의 수행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상분결과 오하분결을 모두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진정한 해탈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항상 오종번뇌가 괴롭히는데 그것을 모두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오종선근이며 오종선근이 성숙하면 오종힘이 생기는데 그것을 오력이라 한다.
따라서 오근과 오력은 한 쌍이 된다.
이러한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현상과 경계들은 결국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지관의 수행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는데 모든 수행 과정의 핵심이
여기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자세하게는 37보리분법의 정확한 이해를 통해 전체적인 수행의 과정과 결과가 분명해지는데 이 결과로 4향 4과가 나온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복잡한 법수를 무엇하러 배우느냐고 하지만 선근과 지혜 등의 인연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수행을 할 경우 수행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이러한 수행의 전체를 보는 안목이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첫 게송에서는 자비심을 가지고 불법의 진리에서 기쁨에 머무는 비구는 고요하고 편안한 경지를 맛보며 해탈의 맛을 보면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게송은 비구의 수행을 배를 저어 물을 가르며 경쾌하고 유연하게 해탈의 세계로 전진하는 것에 비유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음이 없어야만 괴로움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면서 배를 저어 방향키를 잡고 진정한 해탈의 세계로 가는 수행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세 번째 게송에서는 바다를 건너려면 파도도 만나고 험난한 물살도 만나는데 그러한 위험을 극복하려면 오종번뇌인 장애물을 알고 오하분결과
오상분결이 어떠한 상태에서 정리되며 항해를 하는가와 그러기 위해서는 오종선근이 필수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다른 부분이 과정과 장애라면 오종선근은 극복의 무기와 도구 같은 것이므로 배는 튼튼하게 만들어진 배여야 하고 방향키가 있어야 하고 충분한
연료가 있어야 하고 항해 기술을 알아야 하고 나침반과 먹거리를 준비하고 망망한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 저 열반의 언덕으로 가는 진정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수행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다섯 번째 게송은 게으름 없이 부단히 선정을 닦아 마음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하니 미혹에 빠지면 마치 지옥에
떨어져 빨갛게 달구어진 철구슬을 삼키며 괴로워 죽겠다고 소리소리 치지만 그것은 이미 안되는 일이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며 그 어떠한 미혹에도
빠지지 말라는 말이다.
여섯 번째 게송은 지혜가 없는 사람은 선정을 닦지 않고 선정을 닦지 않는 사람은 지혜가 없다는 표현을 통하여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며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하는 수행자는 진정으로 해탈 열반에 접근하는 인연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함의 지관겸수, 대승의 지관병운, 선의 정혜균등 정혜쌍수나 성성적적등이 그러한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일곱 번째 게송은 비구는 한가한 곳에서 수행처를 정하여 수행하되 마음이 고요하고 선정력이 생기면 정확하게 사성제 팔정도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가 열리기 때문에 일반 범부들이 느낄 수 없는 해탈 열반의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덟번째 게송은 정념을 갖춘 비구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변화 즉,오온의 변화무상을 참으로 비춰볼 때 그 과정에서 희열과 안락의 체험을
하게 되며 그러한 비구는 죽음이 없는 진정한 열반 해탈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아홉 번째 게송은 내면으로는 진실하고 성실히 수행하고 외면으로는 품행이 단정하면 당연히 마음이 은근한 기쁨이 가득하여 진정으로 모든 괴로움을
다 없애고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표현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경전을 보다 보면 단순한 문자의 조합이 아니라 문자마다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수행의 과정과 방법론으로써의 의미를 나타내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여정을 마치 여행을 하면서 전체의 과정을 묘사하듯이 나타낸다.
논서는 그러한 부분의 상세한 분석과 해설이며 율장은 수행 생활의 수행 규칙이며 혼자 살 때와 대중 생활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므로 경장 논장 율장 등의 삼장은 수행하는 사람이 볼 때는 단순한 문자의 나열이나 책이 아니라 수행 방법과 수행 과정과 수행 문제의
해결과 결과에 도달하는 모든 길이 다 들어있어 모든 사람들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문자의 이해에 대한 어려움이나 모르는 불교용에 막히면 난감하고 재미가 없어 놓아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있듯이 각자의 인연과 수준에 따라서 차분하게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연과 선근이 다르므로 어떤 이는 책을 보지 않고 수행의 세계에 진입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문자의 이해와 선지식의 인도가
필요하고 어떤 이는 단박에 수행으로 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고생 고생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이비에 빠져 외도짓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인연을 따른다는 말 안에는 어떠한 수행과 과정을 거치더라도 바르게 인연을 보며 게으르지 않고 노력한다면 분명하게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정진여일 하시고 청정안락 하소서.
----2564.9.7. 법주도서관 심적 대견 합장
자림 시조 단상 368-376
368
자애심 가득하고 붓다 진리 기쁨 속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수행자는
날마다 적정 안락의 경계와 함께 하나니
369
잘못된 마음 없음 순항하는 배 처럼
탐냄과 성냄 어리석음 모두 끊어
빠르게 열반의 세계 도달할 수 있나니
370
오하분결 끊고 오상분결 버리고
오종선근 닦고 오종번뇌 해탈해
열반에 도달한 비구 폭류를 건넌 이라 한다
371
비구여 선정닦고 게으르지 말며
마음을 애욕의 미혹에 뺏기지 말라
지옥에 뜨거운 구슬 먹고서 괴롭다 말고
372
지혜 없는 이 선정 닦지 않고 선정 닦지
않는 이 지혜 없네 선정 지혜 갖춘 이
진실한 열반의 세계 가까이 도달한 것이네
373
비구가 고요한 수행처에 들어가서
마음은 적정하고 진리를 비춰 보면
범부가 경험 못하는 즐거움 얻을 것 이니
374
바른 생각 가진 이 오온의 생멸 보아
희열과 안락의 진정한 맛 체험해
죽음이 없는 열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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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비구 모든 감관 잘 제어해
만족을 알며 계율을 잘 지키고
정진한 선우들 함께 청정 화합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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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성실하며 행위는 단정하고
마음 속에 늘 기쁨이 가득한 수행자
온갖고 없애버려서 해탈을 얻으리라
-----자림 대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