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能以禮讓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능히 예의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능히 예의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예를 알아서 무엇하겠는가?”라고 하셨다.
讓者, 禮之實也. 何有, 言不難也. 言有禮之實以爲國, 則何難之有, 不然, 則其禮文雖具, 亦且無如之何矣, 而況於爲國乎? 讓이라는 것은 예의 실질이다. 何有란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예의 실질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곧 무슨 어려움이 있느냐고 말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 그 예와 문식이 비록 갖추어졌다 할지라도, 이 역시 또한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니, 하물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랴!
王氏曰 讓以心言 故曰禮之實 왕씨가 말하길, “讓은 마음으로써 말한 것이다. 그래서 禮의 실질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讓者禮之實也 莫是辭讓之端 發於本心之誠然 故曰讓是禮之實 朱子曰 是若玉帛交錯 固是禮之文 而擎拳曲跽升降俯仰也 只是禮之文 皆可以僞爲 惟是辭讓方是禮之實 這却僞不得 旣有是實 自然是感動得人心 若以好爭之心 而徒欲行禮文之末以動人 如何感化得他 누군가 묻기를, “讓이라는 것은 禮의 실질입니다. 어쩌면 辭讓의 단서는 본심의 진실로 그러함에서 발현된 것일 터이니, 그래서 讓은 예의 실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그렇다. 만약 옥과 비단 같은 예물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면, 본래부터 禮의 꾸밈이지만, 손을 받들어 올리고 몸을 굽히며 오르고 내리며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것도 그저 禮의 文일 따름이니, 이 모든 것은 거짓으로 할 수 있다. 오직 辭讓만이 바야흐로 禮의 실질인데, 이것은 오히려 가짜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실질이 있다면, 자연히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만약 다투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헛되이 禮文의 말단을 행함으로써, 남을 움직이고자 한다면, 어떻게 그를 감화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先王之爲禮讓 正要朴實頭用 若不能以此爲國 則是禮爲虛文爾 其如禮何 선왕께서 禮讓을 행하실 적에 바로 소박하고 진실하게 쓰고자 하셨다. 만약 이로써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이 禮는 헛된 꾸밈이 될 뿐이니, 禮를 어쩌란 말인가? |
2 | 問禮者自吾心恭敬至於事爲之節文兼本末而言也 讓者禮之實 所謂恭敬辭讓之心 是也 君子欲治其國亦須是自家盡得恭 方能以禮爲國 所謂一家讓一國興讓 則爲國何難之有 不能盡恭敬辭讓之心 則是無實矣 雖有禮之節文 亦不能行 況爲國乎 曰 且不奈禮之節文何 何以爲國 누군가 묻기를, “禮라는 것은 내 마음의 공경으로부터 일과 사업의 節文에 이르기까지 근본과 말단을 겸하여 말한 것입니다. 讓이라는 것은 禮의 실질이니, 이른바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군자가 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할 적에도, 역시 반드시 스스로 공경을 다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능히 禮로써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한 家에서 辭讓을 행하면, 한 나라 전체에서 辭讓이 흥한다는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을 능히 다할 수 없다면, 이는 실질이 없는 것이니, 비록 예의 節文이 있다고 한들, 또한 이를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또한 禮의 節文도 어떻게 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孟子告梁王謂上下交征利而國危 又謂後義先利不奪不厭 此正是不讓處 如何爲國 夫子是以春秋之時禮文雖在 然陪臣僭大夫大夫僭諸侯諸侯僭天子 故有爲而言 쌍봉요씨가 말하길, “맹자가 양혜왕에게 고하여 말하길, ‘상하가 서로 이끗을 탐하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하였고, 또 말하길, ‘義를 뒤로 하고 이끗을 앞세우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사양하지 않는 부분이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는 이 때문에 춘추시대에도 예문이 비록 존재하고 있었지만, 가신이 대부를 참월하고 대부가 제후를 참월하며 제후가 천자를 참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까닭이 있어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能字亦緊要 行禮非難 能讓爲難 常人雖欲讓 私欲害之 有欲讓而不能者 故書首稱 堯爲克讓 讓者禮之實 能則實於讓 운봉호씨가 말하길, “能자가 역시 긴요하다. 禮를 행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능히 사양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것이 된다. 보통 사람은 비록 사양하고 싶어도, 사욕이 이를 해치기 때문에, 사양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의 첫머리에 ‘요임금은 능히 사양을 행하셨다.’고 칭송했던 것이다. 讓이라는 것은 禮의 실질이니,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은 讓에서 실현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世人於辭受之際 始或虛讓而卒也實受 非讓也 必以辭讓之實心 行辭讓之實事 始可以言讓 有禮之實 則爲國而有餘 無禮之實 則爲禮且不足 其不能爲國意 蓋在言外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세상 사람들은 사양하거나 받는 즈음에, 처음에는 간혹 헛되이 사양하다가 결국에는 실제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사양함이 아니다. 반드시 사양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양하는 실제의 일을 행해야만, 비로소 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禮의 실질이 있다면, 나라를 다스림에도 남음이 있지만, 禮의 실질이 없다면, 예를 행함에도 또한 부족할 것이니, 그것에 능히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뜻도 대체로 말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