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1부 - 왜 세상에 홍수가 왔는가?
구약의 홍수와 노아의 방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흥미로운 연구거리를 제공합니다. 이 연구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문제 그리고 성경의 역사적인 사실과 고증들을 함께 살펴볼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으며, 노아가 물로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방주를 지었듯이, 불로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방주를 지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홍수와 노아의 방주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함께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현대의 노아 방주는 무엇이며, 이 현대판 노아 방주는 어떻게 짓는 것일까요? 재미있는 연구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 편집실-
홍수를 보내어 이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셨다는 성경의 기록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자비가 많으시며 인간을 구원하기를 즐기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압축되어 표현된 기록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한 절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세상의 상황이 어떠하였기에 세상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까?
1. 홍수를 부른 세상의 죄악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창 6:3)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창조 받은 최초의 인류로부터 수세대가 지났을 뿐이어서 초기의 활력 대부분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수명은 백 년의 단위를 헤아렸고, 현 세대의 인류들과 달리 건장한 체력과 신장, 지력을 가졌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 6:4)는 구절을 보아서 그것을 알 수 있는데, 네피림 은 거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히브리어 원어의 뿌리는 포악함, 잔인함. 이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민수기 13장에 거인으로 표현된 가나안의 아낙 자손들도 네피림의 후예들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들의 활력과 체력 그리고 지력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사용했으면 축복이 되었겠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비로운 하나님의 사랑 법칙으로 운영되어 오던 아름다운 세상은, 그분을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심을 한탄하게 만들만큼 악하고 비참한 죄악 세상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긴 수명과 건장함으로 인하여 짓는 죄악이 점점 더 대담하고 악해졌다. 그리하여 죄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그다음 세대로 한없이 지속되었다. 그 당시는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지식과 지혜를 나누며 살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러 시대에 걸쳐 발전한 죄악이 다음 세대로 물려졌으며,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고 도전하는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건강과 재능과 정신적 능력에 비례하여 더하여졌다. 이제 성령께서 더는 사람들과 함께 거하실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성령님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심판이 오기 전 이 세상에는 120년 동안이라는 은혜의 기간이 주어졌다.
2. 무법 시대와 일부다처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 6:2) 이 구절은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로서, 그 당시 사회 도덕의 타락상을 압축하여 반영해 주고 있다. 혹자는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을 천사로 해석하지만, 정확한 성서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아들들 이란, 그 당시 하나님의 뜻을 펴고 진리를 이행하기 위해 택함을 받았던 신실했던 셋의 자손들을 가리킨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이 곧 하나님의 아들 (롬 8:14 참조)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무튼, 여기서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 행위는 도덕적인 엄청난 타락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그 당시의 성행하던 죄악 중의 하나였던 일부다처제를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창세기 4장 23절에 일부다처제의 조상이 된 라멕 에 대한 언급을 보아 그렇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 제도의 규칙에 반하여 성행되던 일부다처제는 타락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적인 욕망을 따라 마음대로 사는 생활의 극치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범죄와 비참하고 불행한 일이 신속하게 증가하였다. 그 당시는 결혼 관계나 재산의 소유권이 존중되지 않았던 무법천지였다. 이웃의 아내나 소유물이 탐이 나면 누구든지 폭력으로 빼앗았으며, 라멕처럼 사람들은 그들의 난폭한 행위를 자랑했다. 그들은 동물을 죽이는 일을 낙으로 삼았으며, 육식과 폭식으로 인하여 더욱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리게 된 그들은 마침내 인간의 생명을 놀랍도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세계는 그 초기에 있었으나, 죄악은 매우 깊고 널리 퍼져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 죄악들을 참으실 수 없을 만큼 편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마침내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 (창 6:7)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이 땅에 홍수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와 그 가족과 생물들을 보호하셔서 그분의 뜻을 새롭게 펴시려는 소망을 가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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