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면서
요즈음은 때때로 밤하늘의 별을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별은 옛날 어릴 때 본 것처럼 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삶이 선명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여러 가지 공해로 인해 대기가 깨끗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인공 빛에 의한 빛공해(light pollution)가 주범인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이 나의 삶을 어지럽히는 정보의 공해와 사고(思考)의 공해도 존재 한다고 봅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집단사고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안 깐 힘을 써봅니다. 사실 나는 집단의 힘과 정의를 믿지 않는 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단체라도 일단 정도 이상으로 비대해지면 거기에는 조악하고 우매하며, 난폭한 동물 정도의 도덕과 지성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 칼 구스타프 융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가 살아오면서 여러 고비를 넘겨 왔지만 요즈음 처럼 혼란에 빠져 아노미 상태가 된 적도 드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곳곳에 부패와 악취가 나는 것이, 최고 권력기관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그 권력을 둘러싸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 수재들인 엘리트 율사(律師)들과 고위관료들이 방조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일부의 영혼 없는 공무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경고했던 ‘숙고하지 않는 삶‘이 나라의 일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압도적인 다수가 생각을 하지 않거나 성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럴 때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말이 섬광처럼 번쩍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흙탕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내공의 힘이 범상치 않음을 느낍니다. 우리 개인은 그가 향하는 시선이 어디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민도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 나아가 국가의 품격이 나타난다고 생각됩니다.
별을 이야기 하니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도 생각납니다. 시인이 살았던 만주는 얼마나 추운 곳이었겠습니까. 그곳은 이육사가 이야기하듯이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별은 선명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이 선명하듯이 ….
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목동의 설레는 밤을 그린 알퐁스 도테의 소설 ‘별’도 생각납니다. 목동에게 밤하늘의 별은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지성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별을 의인화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그 목동에게 앙증맞은 주인 영주(領主)의 소녀가 심부름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하는 영혼을 정화시키는 무구(無垢)의 시간이었습니다.
또 임마누엘 칸트를 숭배했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별도 생각납니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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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행성을 포함하여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알았고, 빛도 중력에 의하여 굴절된다는 물리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우주가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음을 알았던 아인슈타인은 “신(神)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적 사유가 도달한 도덕 체계를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도덕은 종교 신앙과는 별도로 존재한다는 도덕 문법을 찾아낸 사람이죠. 그 도덕 문법은 인간이 아인간(亞人間)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몸에 체득된 원칙이지요.
칸트는 그것을 격률(格率. MAXIM)이라 했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을 말한 것이지요. 그는 격률을 이렇게 지킬 수 있도록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입법(立法)에 타당하도록 하라.”
사실 그 도덕 문법은 평소에는 우리 의식의 레이더 아래를 날고 있어서 잘 간파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때에 맞추어 사용할 수 있는 오래된 연장통 같은 것이지요.
칸트는 그 오래된 연장통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 지상에서는 내 마음 속의 도덕률.”
인간의 지성의 품격이 살아 있다면, 그런 지성은 집단 전환증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흙탕 속에 살고 있어도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각인된 도덕률을 잘 가꾸어 나갔으면 합니다.
2025년 1월 3일 김 정 율 올림
★ 이 글은 2017년도에 시절이 지금의 시국처럼 어수선하여 적어 두었던 글입니다.
지금의 정치와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과 하도 유사하여 그때 올리지 못한 것을 다시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