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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수업
이 사건이 있고 난 후 도치씨는 생각을 바꾸었다.
도둑놈 제 발 저린 다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이번 경험으로 여실히 깨달았다. 도치씨는 일상에서 준법정신이 투철하지만 여성관계에 대해서만은 아내로부터 자유스럽고 싶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싱글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 재산을 털어주고라도 회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치씨의 전 재산이래야 다 낡은 구형 자동차 하나, 구두 몇 켤레 양복 몇 벌과 캐주얼 몇 벌이 전부지만 말이다. 아 아니지. 진짜가 있구나.
낚시장비는 웬간한 낚시점 뺨친다.
각설하고 그럼 도치씨의 재산은 전혀 없는 것일까?
숨겨 놓은 비자금은 아니지만 퇴직금이 있다. 모든 명의가 아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퇴직금은 도치씨의 저축성재산이 분명하다. 물론 장인의 최종재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장인의 결재를 받아야 할 처지라도, 노동법이 근로자 위주로 된 대한민국실정으로 봤을 때 퇴직금 날릴 염려는 없다.
안되면 노동청에 고발해서라도 퇴직금 수령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가족인데 노동청에 고발까지 해야 하느냐고 비아냥거린다고? 천만에. 사람 사는 관계를 깊이 생각해보라.
아내란 돌아서면 남이다.
아무리 살을 섞고 사랑한다 니 없으면 못산다. 파뿌리 뭐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자. 그래봤자 뭔 소용 있냐? 살은 섞었지만 피가 섞였냐? 뼈가 섞였냐? 안 그래?
하물며 장인장모야 더 남이지.
그건 그렇고.
장인이 물려주고 실권은 아내가 쥔 회사대표인 도치씨는 재산만 없다 뿐이지 사는 재원은 충분한 편이다. 그러니까 자금에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액수가 다소 유동적이긴 하지만 대표이사의 체력단련비가 매주 자동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재산은 없어도 재벌 부럽지 않게 낚시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평생 변하지 않을 현금보너스다.
어쨌거나 처가살이도 이 정도 되면 끝내주는 거 아니겠어? 도치씨 주위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도치씨가 불법연애하다 들통 나면 성희롱으로 신세 조지는 정계거물이나 교수들 보다 더 혹독한 파멸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도치씨는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일어나는 모든 불법행위를 도덕적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마련했다. 혼외 연애는 인생의 과외수업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그러대.
그렇게 불안하고 무서우면 뭐하려고 바람 피냐?
도치씨가 그때 뭐랬는줄 알아?
“야이, 인간아. 인간이 밥만 먹고 사냐? 스릴 있고 위험할수록 대박치는 거 몰라? 고스톱 말이야! 고스톱 크게 판 안 벌려봤어? 맨날 3점만 나면 죽냐? 기회가 왔을 때 흔들고 피박에 스리고 광박해봐. 따따블 한판으로 끝나는 거야. 인생이란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한방에 인생역전. 연애도 통 큰 한방. 그러니까 아내는 기본 3점이고 과외는 대박인겨라. 과외가 뭐냐고? 이런 우라질. 못 배운 인간이 바람핀다. 외도한다 그러는 거여. 혼외연애. 공부도 정교육 외 밖에서 받는 걸 보충수업. 과외라 잖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생보충수업이야. 과외수업! 인제 알았냐?”
허지만, 순풍에 모터보트 같이 순조롭게 과외하는 도치씨에게 아내의 공간으로 입장하는 현관문 통과는 항상 난제였다. 폭풍의 눈 같았다.
과외수업 중 일어났던 모든 부산물이 흔적으로 남지나 않았을까? 자신의 몸 검색을 아무리 철저히 하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해도 이 현관문 불안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꼭 어딘가 남겨진 증거나 흔적이 있을 것 같았다.
도치씨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자신의 바디였다. 왜냐? 남자는 씻으면 언제나 신품이니까.
그러나 자신의 영혼은 아무리 씻어내도 말끔히 클리닉 되지 않고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과외수업을 마치고 샤워하지 않아도 미세먼지만한 흔적도 남지 않는 바디처럼, 현관문 불안을 말끔히 해결할 방법을 찾다 마침내 소울크리너soulcleanor 인 나를 찾아 온 것이었다.
사소한 정신적 분열기미가 보이는 상담의뢰자라 해도 나는 어떠한 경우라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 나를 도치씨는 잘 찾아 온 것이다.
도치씨가 나의 랩 트레이닝 교정요법을 처방받고 돌아간 일주일 후, 거의 완벽한 스페이스타임 맨이 되었으니 의기충천함은 물론 그 기쁨이 오죽했을까?
스페이스타임 맨이 된 후.
두 여자 중.
그때 그때 환경설정에 적합한 과목을 선택해서 짜릿한 마음, 편한 마음으로 깨알같이 인생을 즐기는 과외수업과. 따분하고 고루한 아내와 함께하는 기본수업을 마치,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려 방송을 바꾸듯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에 도치씨는 스스로 놀랐다. 꿈만 같았다. 그리고 내게 죽도록 고마워했다.
또 며칠이 지나서.
도치씨는 현관문 통과할 때 자유자재로 시공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인 요소들도 머릿속의 기억에서 이동시키는 법을 터득했다. 신기술이었다.
이 기술로 그동안 도치씨를 괴롭혔던, 강박관념과 도덕적불안의 원인이 됐던 과외수업의 요상한 기억과 양심을 뒤집었다 놨다 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마치 순간이동하는 마법사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두 여자를 번갈아 만날 때.
우아영에겐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오빠이고, 혜림의 앞에서는 착한 동생이었다. 물론 과외수업이 끝나 집에만 들어가면 현관 앞에서 두 사람의 기억은 말끔히 털어내고 아내의 믿음직한 남편이 되었음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도치씨의 과외수업을 정밀분석해 보면.
말이 오빠 동생이지.
우아영을 만나면 꼬리치는 늙은 여우였고, 혜림의 앞에서는 잔인한 폭군의 충성스러운 노예였으며, 현관문을 통과해 아내와 마주하면 그때부터 체통을 중하게 여기는 점잖은 젠틀맨이 되었다. 수업시간에만 그렇다.
도치씨의 현관문 랩 트레이닝임상효과는 어마어마해서, 시시각각 효능이 나타나, 일주일 쯤 지났을 때는 두 개의 독립적인 사고능력을 가지게 되어 완전한 이중인격체로 환골재생換骨再生했다.
랩 트레이닝의 놀라운 효과는 그뿐만 아니었다.
자신감을 충전해서 현관문만 열고 들어가면 우아영이나 혜림의 이미지는 고사하고 이름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일단 현관문만 열고 나오면 아내의 얼굴조차 송두리 까먹어버리는 대단한 위력이었다.
.
또 일주일 후.
“어디 가는 거야?”
보조카운슬러 겸 여직원 둘이 동시에 핸드백을 어깨에 걸치는 모습을 보고 퉁명스럽게 내가 물었다.
“데이트하러 가요.”
“뭐야? 데이트? 자네들은 시도 때도 없이 데이트 하냐?”
눈이 동그란 여직원이 송곳처럼 말했다.
“데이트도 마음대로 못해요?”
“아직 퇴근시간 아니잖아?”
팔목을 들어 시계를 보며 내가 말했다.
“삼십분이나 남았다.”
“원장님은 세월 가는 줄도 모르세요? 강태공 인줄 아시나봐!”
키가 옆으로 커버린 여직원이 동료를 거들었다.
“값만 비싸면 뭐해요? 시간 안 맞으면 똥 시계지. 그 시계 제발 좀 버리세요.”
얼른 손목시계를 다시 보니 퇴근시간을 20분이나 넘어 있었다. 아차! 오늘 아침 또 시계 밥을 안줬구나. 자네들은 수동시계의 멋을 몰라. 수동과 전자시계는 인스턴트와 자연식품의 차이야. 혼자 중얼거렸지만 여직원은 이미 상담실을 나가버린 후였다.
그때였다.
“띠리리 리리링.”
스마트폰 문자 알림이 왔다.
비닐 뚜껑을 열었다.
오늘 밤 시간 어떠세요?
첫댓글 도치씨의 혼외 생활 ~멋지게 사는 것 같슴니다.
오늘도 재미나고 행운이 가득한 날되세요
도치씨의 이중생활이 어떻게보면 제미있슴니다.
제일 무서운게 마누라 맞슴니다.
인생 살면서 스릴감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여자 즉 아내란 30대/친구, 40대/파출부, 50대/공주, 60대/왕비 70대/테후마마
아셨죠?
학과 수업외에 과외수업
어떻게 생각해보니 가장 적절한 표현 입니다.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과외 받으셨죠?....ㅋㅋㅋㅋ
오늘도 김일수님의 시간에 항상 축복이 더해지길 바랄께요
보충수업 한번 받아 봤으면 좋겠슴니다.
과외수업은 더욱 좋겠구요..ㅎㅎ
제미있게 잘보앗슴니다.
수강료무료인 곳 알려드릴까요?...ㅋㅋㅋ
오늘도 즐겁고 신나는날되십시오
도치의 생활 철학이 캐쎌라주의네요.
어찌고보면 그렇게 사는것 이상 즐거움도 없을것 같슴니다.
제미있게 즐감 했슴니다.
갯벌님 오랜만에 뵙네요
오늘도 멋진 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