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 이는 누가가 기록한 마리아를 향한 수태고지와 거의 흡사한 메시지이다(눅 1:31).
한편 여기서 '낳으리니'(텨세타이 데)란 말 속에 불변사 '데'가 사용되어 '그리고 지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20절의 내
용과 연결되고 있다.
이는 예수의 탄생에 대한 신적 기원을 재삼(again and again) 일컫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요셉은 두려움을 완전히 물리치고 오히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에 자신을 동참케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사랑하는 마리아의 남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날 아들이 다름아닌 "기묘자(奇妙者)요, 모사(謀士)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사 9:6)이신 메시야,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에 대한 명명권(命名權)은 아버지에게 있었다(창 4:25). 본 명령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지시하심으로 친부권(親父權)을 행사하고 계시며, 예수의 법적 아버지 요셉을 그의 양부(養父)로 임
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내지는 짧은 형태의 '예수아'(느 7:7)라는 이름의 헬라어 표기이다.
이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서 그가 오신 목적, 곧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종말론적 구원을 베푸실 분으로 이땅에 오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구약에서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들중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典刑)으로 제시된 사람은
(1) 모세의 후계자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수1-12장)와
(2) 예수의 조상 스룹바벧(스2:2;느7:7)과
(3) 동시대 인물로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자'이며, 그 이름이 '순'(筍)이라 하는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슥 6:11-13)이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이 이들의 이름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천사가 시 130:8을 인용한 뒤의 구절이 '예수'라는 이름의 본질적 의미롤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편 '예수'란 이름은 주로 '그리스도', 곧 메시야와 연결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적어도 예수가 유대인이 대망(待望)하던 바로 그 메시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속량해 주신 분이라는 신앙 고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백성(라온 아우투)- 이 말은 유대인의 통치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권위를 내포한 말로서 본래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나, 유대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세례요한과 예수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제자로 삼았으며(3:9;8:11), 따라서 이방인들도 '자기 백성'
의 범주에 포함 된다. 즉 '자기 백성'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그 통치를 전인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메시야의 백성'을 의미한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 "자기 백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가리키고, 천사가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성질을 처음부터 바로 지적하였다. 예수님은 이 세상 권세로 이 세상 생활이 잘되게 하실 임금이 아니고 신령한 방법으로 사람을 죄악과 및 그 받을 벌에서 구원하시는 구주이시며 , 그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지 않고 오직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보편적구원론과 제한적 구원에 있어서 자기 백성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잇다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교파마다 다른 구원론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교리이나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은 동일하다.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 여기서 '죄'(하마르티아)란 말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의미의 동사 '하마르타네인'에서유래한 말로서 하나님의 뜻(과녁)에 인간의 의지와 행동(화살)이 빗나간 상태를 일컫는다.
즉 인간이 하나님의 뜻보다 지날 칠 때나 모자랄 때 모두를 가리키는데, 예수께서는 바로 인간의 이 같은 연약함을 적극적으로 치유(healing)하고 덮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결국 이 구절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오신 근본목적과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여 메시야적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통치의 참된 본질을 깨닫게 한다(Ridderbos).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그 멍에에서 초래한 모든 악으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야관올 가지고 있었다. 그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할'(20:28)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의 죄 가운데서(in)'-로마의 속박 가운데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죄로부터'(from)-바로 그들의 죄로부터-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구약에서 '구원'(소조)이라는 말은 육체의 위험(8:25), 질병(9:21,22) 또는 죽음(24:22)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할 수 있으나, 이 구절에서의'구원'은 보다 본질적인 구원, 즉 죄악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을 의미한다.
사실 성경적인 입장에서 볼 때 죄악은, 비록 항상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재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신약에서 주로 소개하고 있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시키게 될 포괄적이고도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