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있는가.
영화와 함께 국내에 함께 출간된 책 ‘더 라이트’(북돋움)는 악마의 존재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다. 바티칸에서 ‘엑소시즘’을 공부하는 가톨릭 사제를 통해 악마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 많은 사례들을 전한다.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신자라면 책이 전하는 내용을 큰 거부감 없이 따라갈 수 있다.

사실 악마에 관한 논의는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무척 낯선 주제다. 또한 거부감이 드는 주제이기도 하다. 악마에 대한 논의는 자칫 수준 이하의 주장, 미신, 비논리적이고 사이비 종교적인 선입견을 부를 수 있다. 그만큼 민감한 주제다.
하지만 ‘더 라이트’는 일반인은 물론 기존 종교의 세계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더 주목을 끈다. 이 책을 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택도 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저 그런 책쯤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의외로 저자는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며, 그렇지만 집요한 시선으로 이 책의 주인공인 구마사제 게리 신부를 통해 악마의 실체를 쫓는다.
책의 줄거리는 크게 두 개로 갈린다. 미국 출신의 게리 토마스 신부가 엑소시즘을 공부하고 실제로 접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게 한 축이다. 틈틈이 엑소시즘에 대한 설명, 이론적 배경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 또 한 축을 이룬다. 게리 신부가 엑소시즘을 경험해가는 과정은 큰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힌다. 엑소시즘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질 때는 사실 책 읽는 진도가 더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엑소시즘의 이해를 위해, 또한 이 책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놓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악마는 존재한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을 뿐이다. 책에서는 몇 가지 근거를 댄다. 예를 들면 가녀린 여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힘, 인간의 소리로 듣기 힘든 으르렁거리는 소리들, 엑소시즘 과정에서 드러나는 악마의 외침 등이다. 이밖에도 책을 읽다보면 악마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트리며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게 된다.
굳이 이 책에서가 아니라도 악마의 존재는 모든 크리스트교 신자들이 믿는 성경에 수도 없이 등장한다. 높은 곳에 예수를 데리고 가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하는가하면 돼지 떼로 쫓겨 가는 ‘더러운 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악마, 마귀, 사탄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신앙의 세계에서 악마는 중요한 소재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악마를 논하는 것은 자칫 미신이나 주술, 혹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사기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명분을 배반하는 일일 것이다. (책 283쪽)

게리신부를 포함해 가톨릭교회는 엑소시즘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엑소시즘을 행할 수 있다. 엑소시즘을 행하기 전에 정신과 진단을 먼저 받기를 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정신질환, 즉 악마의 장난이 아닌 경우에도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엑소시즘의 객관성, 정당성을 담보하는 과정은 이처럼 까다롭고 철저하다. 악마에게서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고백성사를 해야 하고 기도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등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강조하는데서 보듯, 엑소시즘은 엇나간 종교행위가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종교 생활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또한 게리 신부의 입을 통해 엑소시즘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보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낸다. 책 292쪽에 나오는 게리 신부의 말이다. “악마에 홀렸을 가능성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너무 성급히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그가 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항상 잊지 마십시오. 악마의 모습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악마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책 166쪽에 “엑소시스트들은 실제 악령에 사로잡힌 경우를 보기는 매우 드물다고 말한다”고 분명하게 쓰여 있다. 매우 드물게 악령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고 구마사제들은 이를 구별하고 필요한 경우 구마의식, 책의 설명에 따르면 엑소시즘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변잡기식의 가벼운 주제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악마’ 라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무거운, 어떤 이에게는 ‘무서운’ 주제를 다룬 책이 반갑다.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리한 책이지만 가톨릭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책의 내용을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쉽게도 ‘더 라이트’ 한글판은 번역과정에서 거친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 가톨릭 사제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임에도 사용되는 용어들은 가톨릭 적이지 않다. 성서의 구절들이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의 내용이 아니다. 예배, 예배당, 교구관, 축도 등의 단어는 가톨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들이다. 미사, 성당 혹은 경당, 교구청, 기도 등이 맞는 말이다. 교회의 공식적인 감수가 아니어도 교계 전문가의 감수를 거쳤으면 훨씬 더 사실감 있게 내용이 와 닿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영화 ‘더 라이트’를 공포영화로 알고 이 책 역시 그런류의 괴기 공포소설 쯤으로 인식하는 건 착오다. 영화도 책도 악마에 괴롭힘을 당하는 인간의 영혼과 이를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구마사제들의 일상을 다룬 가장 종교적인 내용이다.
인간의 영혼에 관심 있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출처 : http://blog.yes24.com/document/3966469
- 저자
- 매트 바글리오 지음
- 출판사
- 북돋움(오토북스) | 2011-04-22 출간
- 카테고리
- 역사/문화
- 책소개
-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 비밀 의식이 벌어지고 있다!성지 바티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