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호의 작품세계에 일관되게 흐르는 메시지는 원대한 기상과 웅지를 갖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자긍심이다.
1959년 미국의 슈퍼맨이 있듯이 한국에는 한국적 영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리기 시작한 라이파이는 강력한 파워를 지녔지만 외계인(슈퍼맨)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그의 작품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자긍심은 그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만화작가로 활동할 때에도, 새로운 장르인 회화극본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3기로 분류해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제1기 (1957~1964년)
제2기 (1965~1980년)
제3기 (1981년~ )
제1기 라이파이와 만나다(1957~1964년)
작가 김산호는 어릴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웠고, 부산 피난시절 ‘만홍씨’라는 부산일보 시사만화를 그리던 만화가에게서 처음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
그 후 서울에 올라와 서라벌 예대에 입학해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하였고 그 해(1957년)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황혼에 빛난 별’이란 제목의 만화를 세상에 선보이며 만화작가로 데뷔하였다.
일본의 한반도 점령이라는 암흑기에 모든 민족이 숨죽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끝내 민족의 기상을 잃지 않고 독립을 위해 저항한 독립투사들의 생명력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빛난 것은 1959년부터 발표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시리즈이다.
라디오조차도 쉽게 갖기 힘들었던 폐허의 시기에 라이파이는 최고의 과학무기로 무장하고 악의 무리와 맞서는 한국의 영웅이었다.
가슴에 ‘ㄹ’자를 달고 태백산을 근거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라이파이의 영웅담을 통해 김산호는 지금은 비록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지만 반드시 웅비할 한민족의 기상을 한편의 만화에 담고자 노력하였다.
만화가 ‘저질’시비에 휘말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때, 사회의 질시를 당당히 맞서 22세기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국을 상징하는 영웅의 이야기를 풀어낸 라이파이 시리즈는 청소년들에게 내일을 꿈꾸게 하는 마음의 양식이었다.
제2기 보다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다(1965년~1980년)
만화에 대한 심의가 시작되고, 라이파이 시리즈내에 삽입되었던 붉은별이 인공기 시비에 휘말려 정보부에서 고초를 겪은 1966년, 김산호는 더 넓은 세상에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미국만화의 90%이상을 제작하고 있던 찰튼코믹스의 전속작가로 활동하면서 <샤이언 키드(Cheyene Kid)>, <하우스 오브 양(House of Yang)> 등 300여편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뉴욕의 주간 연예신문인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와 ’빌리지 타임즈(Village Times)'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했으며 ‘아이언 호스(Iron Hores)' 출판사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김산호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주로 한국과 중국을 소재로 한 동양적인 만화를 그렸으며, 동양풍의 만화 속에서 한국적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미국의 독자들은 구한말 상해를 거쳐 미국에 망명 온 풍운아, 상투를 틀고 삿갓을 눌러쓴 한국인이 정의를 위해 악당들을 태권도로 응징하는 내용을 담은 <플로토>를 통해 동양 액션의 미학을 만났으며, 연속 기획물 <유령이야기>의 시리즈로 제작된 <약속>을 통해 임진왜란(1592년) 당시 조선의 풍습과 정서를,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 유령의 한을 접하였다.
특히 <약속>은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여 말풍선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기획을 선보인 작품이기도 하였다.
제3기 웅비하라! 배달민족의 기상- 회화극본(1981년~ )
미국에서 인기 만화작가로 활동하면서 한편으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사업가로서도 활동하던 김산호의 작가적 상상력은 1981년 중국방문 중 북경대학의 역사학도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약 6천년전 현 중국의 동부인 화북 산동반도를 포함해 만주 전역과 한반도에 걸친 거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배달민족. 한국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순식간에 김산호를 매료시켰고, 7년여간의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1993년 동아출판사에서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를 출판하면서 27년만에 다시 국내팬들에게 돌아왔다.
<대쥬신제국사>는 만화양식에 정통회화기법을 도입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회화극본(繪?劇本)양식이며, 스토리 상에서도 동아시아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독특한 기획이었다.
라이파이에서 대쥬신제국사까지 그 양식과 스토리의 차이는 있지만, 그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테마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자긍심과 기상이다.
이제 21세기 김산호는 또 무엇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 속에는 반드시 무한한 아이디어와 자랑스러운 한반도의 역사가 있어, 우리를 매혹시킬 것이라는 점만은 확신할 수 있다.
<김산호선생의 약력>
■1939년 만주에서 출생 인헌초등학교 졸업
■ 1952년 부산 피난 당시 부산일보 시사만화를 보고 만화를 처음 접함
■ 1957년 서라벌예대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
■ 1957년 잡지<만화세계>에 독립군 이야기를 다룬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
■ 1958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화
■ 1959~1962년 한국최초의 SF만화 <라이파이>를 발표
제1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제2부 피너3세와 라이파이
제3부 녹의 여왕과 라이파이/ 제4부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 1960년 <십자가에 핀 꽃>, <검은 나비>, <모비딕>, <유리천사>, <차돌장군>,
<청동마왕>, <흑검무>, <광풍도시>, <피터링> 등 많은 작품 연재
■ 1966년~1978년 미국으로 이주, 미국만화계에 동양풍의 만화를 처음 선보임
뉴욕 찰튼 코믹스의 전속작가로 <샤이안 키드(Cheyenne Kid)> , <하우스 오브 양(House of yang)> 등 단행본 600여권 발표
뉴욕 주간연예신문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빌리 타임스(Village times)] 아트 디렉터로 근무
[아이언 호스(Iron Horse)] 출판사 발행인 역임
워렌(Warren)출판사의 괴기담 만화집 <뱀파렐라(Vampirella)>에
실린 <용녀(Dragon Woman)> 등은 영어, 불어, 에스파냐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세계 17개국에서 출판
<약속(The promise)>은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사와 설명을
한글로 쓰고, 영어번역을 달아서 출판
■ 1974년 [Sanho Group] CEO로 취임. 해상 해저 유람기지
산호 시토피아(Seatopia) 설계
티니언섬에 엔젤-브이호 설계 및 취항,
제주도 해저 관광잠수정 취항.
■ 1993년 동아출판사에서 한민족 역사다큐만화
<대쥬신제국사> 1~3권 발행
■ 1995년 <대쥬신제국사> 4~5권 발행
■ 1996년 회화극본 <두만강>, <하얀손수건> 발행
■ 1996년 <대불전> 발행
■ 2002년 <한국 105대 천황존영집>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