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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영적 학대(spiritual abuse)
차 례
서문 1. 자유를 찾아서 2. 터널이 끝나면 빛이 보일까요? 3.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4.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5. 얘들아, 돌아오는 성탄절에는 |
6. 부러졌다가 회복된 뼈가 더 단단한 법입니다 7. 주님은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8. 은혜와 비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9. 윌로우크릭 교회의 폭발적 영향력 부록 : 회복 과정에서의 이슈들 |
지은이 소개
로날드 인로스 : 캘리포니아 웨스트몬트 대학 사회학 교수이며, 종교와 이단 연구 전문가이다. 「이단과 신종교의 미혹」「젊음, 세뇌, 그리고 극단적 이단」「학대하는 교회들」등의 저서가 있다.
저자 서문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독자 여러분은 카를로스, 세실리, 스티브, 브리지트, 피터, 그리고 앨런이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적 학대(spiritual abuse)를 경험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회복을 보인 사람들입니다. 저는 사회학자이지만 설문지 혹은 조사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통계적 수치나 백분율 등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적, 정서적 학대의 전형적인 사례들을 소개하려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방법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러한 사례들이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음을 밝혀 둡니다. 이 책을 쓰는 중요한 목적은 영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회복 과정과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 그리고 만족스러운 회복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요인들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영적 학대의 경험을 가진 침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 자유를 찾아서
“어느 누구도 저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랑받지 못한 채 들판에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고아처럼 말입니다. 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요즘에도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버림받고 학대받은 한 여인의 고백이다. 그녀는 남자 친구나 남편에게 학대를 받은 것이 아니다. 교회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그녀의 영적, 정서적 상처는 통제가 심하고 율법적이고 죄책감을 조장하고 고도로 조작적인 교회 환경에 몇 년 동안 몸담고 있으면서 생긴 것이다. 그 상처는 아직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저는 요즘에도 제가 과거에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았었다고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저는 그러한 상처를 단지 과거의 일로 묻어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쉽게 잊혀지지 않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송 매체 등의 뉴스를 통해 어린이 학대와 배우자 학대라는 비극적인 사회 문제들은 많이 접해 보았을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제 육체적, 성적 학대는 별로 새로운 뉴스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영적 학대에 대해서만큼은 최근까지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영적 학대는 해로운 면이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장소인 교회와 종교 조직 내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교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만 상처를 입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만일 영적 배려자요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라는 특수한 역할로 인해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신뢰에 금이 가게 행한다면, 이로 인한 고통과 상처와 환멸의 정도는 파괴적인 수준까지 치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니타와 데일 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영적으로는 좌절감을 느끼고, 정서적으로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 학대는 영적인 지도와 양육을 담당하는 지도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와 지위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조작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데서 발생한다. 데이비드 존슨과 제프 반본더런은 영적 학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영적 학대는 도움과 지원 혹은 영적 강건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영적 힘의 약화나 손상 혹은 저하로 나타난다.”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은 하나님을 좀더 알고 섬기려는 마음에서든 혹은 절실한 문제를 해결받으려는 욕구에서든,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그 시절에 왜 그러한 일이 내게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는 방관하고 계셨단 말인가?” “나에게 상처와 혼란을 안겨 준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기만당했다는 사실로 인해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적 학대를 가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고자 했던 것일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한 행동이 어떠한 것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통제 행위라고 보는 행위를 하면서도 정작 본인 자신은 양 떼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은 영적 학대로 인한 희생자들의 회복 과정에 관한 책이다.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역기능적인 교회와 기독교 조직을 벗어나는 험난한 여정을 걸어온 여러 실제 인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영적 학대로부터의 회복이 가능한 일임을 보여 주고 있다.
적응하기 위한 노력
카를로스 가르시아의 경험은 대학 시절 동안, 소위 ‘높은 강도의 제자 훈련’을 하는 기독교 조직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진 청년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카를로스는 보스톤 운동, 혹은 보스톤 그리스도의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국제 교회라고 알려진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타임」지는 이 단체를 가리켜 “개신교파 중에서 가장 열정적인 교회”라고 평하는 한편, “실로 위험한 집단”, “권위주의적인 교파”, “독재 조직”이라는 비판을 한 바 있다. 이 단체는 1979년 보스톤에서 킵 맥키엔(Kip Mckean)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 운동은 전 미국에 걸쳐 급속하게 파급되었으며 주로 주요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많은 대학생들이 이 운동에 참가하였다.
카를로스는 남미의 어느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를로스 가족은 외국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살다가 그가 열네 살 되던 해 로스엔젤레스에 정착하였다. “저는 성장 과정에서 여러 문화에 적응하느라 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가 사춘기 시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저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를로스는 의학부 예과 과정 중에 있는 동안 기독교에 대해 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서양 의학 시스템이 유대주의적인 기독교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스톤 운동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서 침례가 필요하다는 견해이다. 카를로스는 이후 2주일 내에 침례를 받았다. 그는 침례를 받을 때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보스톤 운동의 가르침이나 신학에 대한 의혹을 거의 가지지 않았다. 카를로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훈련자가 자신의 거의 모든 사생활을 통제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개인의 생활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타락한 곳이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은 사탄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거죠. 저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과는 아예 대화도 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보스톤 운동 내에서의 충성스러운 회원들은, 만일 가족 가운데 누군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비난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가족들과도 대화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카를로스가 고향에 내려갈 때 그의 훈련자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하였다. 카를로스는 그의 말을 따라 그렇게 하였다. 훈련자는 그때마다 그날 가족들과 함께 보내었는지, 가족 이외의 누군가와 만난 적이 있는지 등을 묻곤 하였다.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에는 자신의 훈련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 훈련자는 또 그의 훈련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교회의 일원이 아닌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타인과 진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것 때문이죠. 결혼은 교회 안의 주요 일원들 내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고무하는 한편, 교회가 부적절하다고 간주하는 감정을 표현할 경우에는 아주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카를로스는 그 집단에 의혹을 품기 시작하였다. 1학년을 마친 후, 카를로스는 낙제 학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좌절감을 느낀 그는 교회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학교 공부가 너와 하나님의 관계 유지를 방해하고 있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그렇게 할 의향이 없었다. 결국 그들의 충고는 카를로스로 하여금 그 교회와의 관계를 끝맺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를로스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떠나자 교회 일원들은 그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물론 그가 이전에 사귀던 비기독교 친구들도 옆에 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는 깊은 좌절감에 빠졌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수업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그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수영장 근처를 자주 걷곤 했다. 결국, 이전에 탁월한 성적을 받던 카를로스는 세 번의 학사 경고를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는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각성제를 구하게 되었고 이후 6개월 동안 매일 각성제를 사용하였다. 그는 보스톤 운동에 대해 분노, 당황함, 비통함, 고립감 등을 느꼈는데, 특히 고립감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현재 그는 알콜 중독자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형성된 ‘단주 친목 연합 단체’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이해해 주었고 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교회나 종교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슷한 과정을 겪는 사람들
카를로스의 경우는 학대적이고 조작적인 종교 체계가 사람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카를로스는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에 가정과 가족들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했고, 더욱이 다문화적인 성장 배경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자아 존중감이 확립되어 있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상처받기 쉬운 바로 그 시점에서 그에게 접근했다. 불안정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영적 학대를 받기 쉬운데, 영적 학대를 하는 집단의 지도자들에게는 양들의 목자라는 말보다 약한 자들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많은 다른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카를로스는 자신이 그 집단에 소속했었다는 사실에 대해 당혹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그 집단에 있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라고 말한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서 위와 같은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앞으로 이 책에서 소개될 여러 사례들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보스톤 운동과 같은 기독교 집단들은 대학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집단의 일원인 학생의 부모라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자녀의 성격 변화와 가족 관계의 분열이다. 한 학생의 어머니가 나에게 보스톤 운동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왔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아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이로 인해 우리 가족간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이런 글을 적어 보냈다. “제 아들은 그 운동에 참가한 뒤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성경 이외의 어떤 것에도 오래 집중하지 못하며, 집단 내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어떤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학대를 하는 집단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건전치 못하고 학대하는 교회(선교회)와 진정으로 성경적이고 건전하고 함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교회(선교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라본 네프는 그러한 집단들이 그 일원들에게 미친 영향이 무엇인가를 검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결과가 옳지 못한 교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하나의 경고 조짐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교리가 아무리 건전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1. 전반적으로 볼 때, 그 집단과 관계를 맺은 후 더욱 강건하고 행복하며 확신 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가?
2.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가족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노력하는가?
3. 구성원들에게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격려하며 분별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가?
4. 그 집단은 구성원들의 믿음과 행동, 특히 이차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이슈들에 대해서 구성원간의 개별적인 차이점을 인정하는가?
5. 그 집단은 집단 구성원간에, 그리고 집단 구성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높은 도덕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장려하고 있는가?
6. 그 집단의 지도자들은 다른 조직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평가를 수용하는가?
7. 신학적 믿음을 개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허용되고 있는가?
8. 그 집단의 지도자는 구성원들이 어떠한 종류의 어려운 질문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를 격려하는가?
9.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집단 이외에서도 진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가?
10. 그 집단은 외부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하는가? 특히 그들을 조직 구성원으로 영입하려고 노력할 때 그러한가?
11. 그 집단은 자신들을 위해서만 행동하지 않고 더 큰 사회 조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
건전하지 않은 종교 집단을 떠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온전히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카를로스의 경우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카를로스와 같이 영적, 정서적 상처를 받고 분노와 혼란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회복게 하시는 은혜를 이해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2. 터널이 끝나면 빛이 보일까요?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문득 지난 3년 동안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게 가장 암울했던 경험 가운데 하나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창밖으로 바나나 껍질 버리듯 교회가 성도들을 아무런 보살핌 없이 내버려두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조직을 떠나면서 아주 많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살하려고 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만약 이 교회를 떠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4년 동안의 학원 선교 활동 후에 깨달은 것은 그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개별성(individuality)을 빼앗긴 채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를 황폐화시킨 바로 그 사람을 사랑했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죠. 저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미워했고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조직을 떠난 후, 어느 정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데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3주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파문당했습니다. 너무 많은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다시 대화를 나눌 날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위의 글들은 한때 영적 학대를 하는 교회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영적 혼란, 정서적 고통, 타인과의 관계 파괴를 경험한 바 있으며, 그러한 경험으로부터의 회복 정도는 현재 각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문제를 초래한 교회들을 복음적, 근본주의적 전통에 따라 살펴보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조직은 전통적인 기독교회와 비교해 볼 때 상당히 극단적인 조직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하는 동안 알게 된 건전치 않은 교회 가운데 대부분은 흥미롭게도 주류(主流) 복음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다. 나는 많은 교파 모임, 준교회 조직, 조직화된 사역 단체의 일원들로부터 받은 영적 학대에 대한 자료를 통해 이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희망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세실리는 필라델피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 살고 있으며 근본주의적인 교회에서 성장했다. 그 교회는 규모가 작지만 매우 율법적이고 통제적인 교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 교회에서는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과 화장하는 것, 학교에서 춤추는 것 등을 금기하고 있다. 세실리는 그녀의 가족들 가운데서도 영적, 정서적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았으며,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그러했다. 현재 세실리는 결혼을 했으며 과거 일을 잊어버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교회에서의 경험이 결혼 생활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가령, 서로 다투는 도중에 남편이 제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그 말이 제 신경을 예민하게 합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제가 통제되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저를 비난하였습니다. 저는 솔직한 성격이어서 그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자주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는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고, 특히 지도층에 대해 의혹을 품는 일은 더더욱 금기되었습니다. 그 교회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의심을 품지 않으며 소위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궁금한 게 많았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지도자가 소리치며 정죄하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우리들은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그 교회를 나온 지금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여하튼 그들은 저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했습니다.‧‧‧.”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거나 수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수치심은 한 인격체에 치명적인 것입니다.‧‧‧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을 때조차 수치심을 느낍니다.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열등하다고 느끼며, 하나님의 복과 인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삼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억압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싫어하게까지 만드는 교회와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앞날을 위해 제가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다른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교회나 부모님으로부터 지시받는 것을 원하진 않았지만 제 인생에서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실리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를 억압하고 모든 사생활을 규제했던 교회의 숨막히고 통제적인 환경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최근 몇 개월 전부터 밑바닥을 향해 가는 듯한 생활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게 일어났던 일들과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존감의 결핍이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대부분의 원인이 그 교회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회복되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터널이 끝나면 빛이 보일까요?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영적 학대의 악순환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은 대개 불안한 꿈과 악몽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처럼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떠오르거나 악몽을 통하여 그때의 고통을 다시 겪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증상을 보인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세실리에게 영적 학대가 미친 또 다른 영향은 신뢰의 결핍이다.
“그 교회에 있었을 때에는 제가 신뢰한 모든 사람들이 제게서 돌아섰고 신뢰를 배신했습니다. 저는 몇 사람들과 제가 가진 십대로서의 관심과 문제들을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교회 전체에 알려졌더군요.”
신뢰에 대한 배반, 상처와 분노, 공포감 등은 영적 학대를 하는 집단에 한때 몸담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누구를 신뢰해야 할지, 또 어느 정도로 신뢰해야 할지 알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회복 과정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
“저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교회는 저에게서 자아 존중감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마저 앗아갔습니다. 그 교회에 있는 동안 저는 목사님의 고함과 욕설을 통해 보여진 하나님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등을 돌렸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그분은 여전히 저를 기다리시며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저는 지금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고, 또한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다시 자리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제가 그러한 도움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도움을 너무 늦게 받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상담은 필요합니다
“ ‘나는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상담을 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 결혼 생활에까지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잠자리에 들기 전 수면제를 복용합니다.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아니 최소한 꿈 내용이 기억나지 않게 하려고 말입니다.”
세실리가 전문 상담인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슬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마도 주류적인 사회에서 재사회화(resocialization)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혼란과 무질서의 결과일 것이다. 마틴 박사는 종교적 신념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정신 건강 상담 전문인들은 그들에게 적합한 상담자가 아님을 지적한다. 그러한 상담인들은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종교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말라고 권유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미친 영향
세실리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 교회를 떠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뒤였죠. 마치 전쟁터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석방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렇게 차단된 환경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 보면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지요.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저희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이 마치 ‘공중에 있는 듯한 느낌’, ‘지반이 없는 듯한 느낌’,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며 저기에 있는 것도 아닌 듯한 느낌’,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 등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보면 그러한 경험은 ‘진공 상태’라고 묘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즉 그 사람이 자신이 있었던 장소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게 여겨질지라도 진정한 미래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그들이 ‘정상적’인 기독 교회를 찾아서 우정을 쌓아 가고 지도자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해 갈 무렵,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들의 영적 안정성 혹은 정신 건강 상태, 아니면 두 가지 측면 모두를 의심하고, 사람들은 그들을 미심쩍어 하기 십상이다. 영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의 문제에 민감해야 할뿐더러, 판단하는 자세를 버리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믿기 힘든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말이다.
미래를 향하여
세실리는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와 코카인을 끊도록 도와준 부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을 통해 정체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가 제게 와서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른 남자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면 때문에 당신을 사랑할지 몰라도, 저는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 줄 필요가 있었던 그 시점에 남편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상황을 알고 계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남편은 제가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합니다.”
3.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삶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정말 슬픈 편지였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증오해요. 제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만일 평안과 예수님을 찾지 못하면 나중엔 결국 자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콜린 로버트(가명)는 교회 생활과 대인 관계에서 심한 고통을 겪었고 그러한 경험은 그녀로부터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 그녀는 편지를 통해 내가 쓴 책 「학대하는 교회들」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글을 적어 보냈다. 콜린은 높다란 마음의 장벽을 쌓아 두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 상담인, 특히 목사 - 그 장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도 저의 요새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두터운 성벽 밖에는 아주 작은 우편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우편물이 있지만, 저는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믿음조차 잃어버린 채 외로움에 젖어 성벽에 갇혀 있습니다. 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다시 회복될 것 같지 않아 죽고 싶지만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도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게 마지막 희망 한 조각이 남아 있는 동안 하루 속히 데려가 달라고 기도합니다.” 콜린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저 작은 우편함에 도달할 수 있었고, 영적이고 인격적인 온전함을 향한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가정을 잃은 아이
그녀의 부모는 콜린을 구제 불능의 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녀가 십대였을 때 양육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콜린은 부모님과 달랐다. 그녀는 가족에 관한 소재를 다루는 많은 텔레비전 쇼를 보아 왔고, 부모 형제 자매들이 ‘진짜 가족’이 되어 함께 살 수 있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저는 엄마와 아빠가 저희들을 돌보아 주시길 바랐습니다. 부모님은 부자이긴 했지만 저희를 돌보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차 자주 여행을 가셨고, 어머니는 거의 집에 계시질 않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남동생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그 아이를 플레이펜(울타리로 둘러싸인 어린이 놀이터)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건 저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고립되어 있었고 외로웠습니다.
제 여동생은 그러한 상황들을 생각지 않으려고 과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점점 비만해졌죠. 저는 부모님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고함을 치곤 했습니다. 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님의 관심을 끌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가출도 해보았고 저를 배려해 준다고 생각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콜린이 1973년, ‘그의 집’ 에 대해 받은 첫인상은 아주 호의적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쏟아 주는 관심과 그 곳에서의 생활이 즐겁기만 했다. 사랑 많은 ‘아버지’ 와 그 단체 사람들은 자신들이 콜린을 얼마나 배려해 주고 있는지를 말해 주곤 했다. 그 곳의 생활은 콜린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것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콜린은 그러한 생각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탠은 예전에 군대에 있었던 경험 때문에 저희들을 군대식으로 대했습니다. 그 집에서 고기를 먹어 본 것은 누군가 거북이를 잡아 왔을 때뿐이었습니다. 수면 시간과 식사량은 너무 적었고, 저는 세탁을 하느라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시 해야 했습니다. 저희들은 요리뿐 아니라 20명이 식사를 하고 난 후의 뒷정리까지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스탠은 우리에게 그러한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콜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스탠과 성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저는 ‘그의 집’ 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처음 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굳게 신뢰했고 그들에게 사랑받고자 했습니다. 스탠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는 어쩐지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다지 염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스탠은 아침이 되면 저를 깨우러 제 침실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아버지란 어떠해야 한다는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단지 아버지가 곁에 있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스탠을 통해 아버지는 저러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순진했던 거죠.
‘그의 집’ 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언제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에 순종했습니다. 스탠과 성 관계를 가진 후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도망가라는 그의 말에도 고분고분 따랐습니다. ‘그의 집’ 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스탠은 중심 인물이었고 우리는 그가 말하는 것을 모두 행했습니다. 그 곳에는 스탠 이외에 두 명의 여자 상담원이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제가 받은 상담은 전문적인 상담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담원들과 만나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중요한 결정은 스탠이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아빠’ 가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리스도와 권위와 성에 대해 가르쳐 준 한 기독교인 가정으로 갔습니다. 저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두 번 강간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명의 낯선 사람들로부터 강제적인 강간을 당했지만, 이제는 ‘아버지’ 인 스탠과 성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그 당시 제가 알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스탠은 저를 완전히 거부해 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주었고 그렇기에 저는 스탠을 아버지로 사랑했습니다. 저의 불행했던 가정을 스탠과 그의 가족들로 대신해 보려 했던 겁니다. 그러나 저는 가정을 가진다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습니다. 스탠은 2년 반 동안 저와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의 성 관계를 가졌습니다. 제가 그의 아이를 가졌을 때 그는 제가 도망간 것처럼 상황을 조작했습니다.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은 스탠이 제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를 배신한, 행실이 나쁜 딸이며 원래 그런 아이라는 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스탠은 ‘그의 집’ 근처에 저와 딸을 위해 아파트를 장만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이의 아버지임을 시인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저는 복지 기관을 찾아갔습니다. 스탠은 제 아파트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딸이 같은 방에 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 저를 안던 스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탠이 저의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만일 제가 그의 곁을 떠난다면 아무도 제 곁에 없다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스물한살 되던 해, 저는 메릴랜드 주로부터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저를 얽매고 있던 사슬이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멀리 달아난다 해도 뒤쫓아와서 붙잡아 가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저는 메릴랜드로 되돌아가서 그 공동체에 참여했습니다. 공동체의 명칭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동일한 지역에서 살고는 있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그 집단을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콜린은 미혼모라는 자신의 위치와 사랑을 갈급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이 상처 입기 쉬운 입장이 되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도자들은 콜린에게 육체적, 성적 학대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콜린의 여동생은 콜린의 몸 여러 군데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염려했다. “저는 그 공동체에 오도록 소개한 제 여동생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원에서 어떤 사람이 밀어 넘어뜨려서 생긴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지도자에게 무언가 이상하다는 말을 전했다. 콜린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종말을 향한 출발점’ 이 되었다. 지도자들은 콜린의 여동생 말을 믿지 않았지만, 콜린은 자신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여러 가지로 학대받고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종교
콜린은 꽂꽂이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미혼모들은 지도자의 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통상적인 경우였지만, 콜린은 꽂꽂이에 대한 남다른 재능으로 인해 마침내 꽃가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직장에 근무하면서 딸을 보살폈고, 동시에 지도자들의 자녀까지 돌보고 그들의 가사 일 절반을 맡아 해야 했다. 콜린은 그 집단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일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다.
“저는 너무나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낸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도자의 눈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저보고 반항하는 배신자라는 거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저의 제자 훈련을 담당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이런 태도로 나온다면 너를 내보낼 생각이다. 여기에 계속 머물고 싶다면 다른 후원자를 찾아 보도록 해’ 라고 말입니다.”
그 무렵, 이전에 그 집단에 있다가 나간 콜린의 한 친구가 그녀를 만나러 꽃가게에 들렀다. “그때 저는 그 친구에게 제 몸에 있는 멍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겁에 질리더군요.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매일 저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서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국민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할 수 있는 한 공동체와 많이 동떨어진 교회에 다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의 끈질긴 설득으로 국민장로교회에서 상담을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콜린은 상담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공동체의 지도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기 시작했고 그녀의 지도자는 공동체를 나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콜린은 또 한 번, 무자비한 종교로부터 상처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터번과 펠톤은 이에 대해 이렇게 평론한다.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체제 내에서 개인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그때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반항하는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 체제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규율을 따르지 않으려는 미미한 조짐만 보여도 그러한 조직에서는 조직 자체가 손상받지 않도록 재빠른 조치를 취한다.”
콜린은 함께 생활했던 지도자로부터 육체적인 학대를 받았다고 지도자들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들 중 한 사람만 그녀의 말을 믿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도 콜린에게 등을 돌렸다. 이렇게 되자 콜린은 그 단체를 나가려는 결심을 굳혔다. “그 지도자는 제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제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구실로 삼았습니다. 제가 도덕도 없는 방종한 사람이기 때문에 지도자를 유혹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단체를 떠났습니다.”
콜린은 자신을 학대했던 지도자와의 마지막 만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저는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한 저의 기념품 수집 상자를 찾아 오려고 제가 있던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에 들렀을 때 지도자가 집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 상자를 집어서 계단 밑으로 내던졌습니다. 상자 속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성전’과의 만남, 그리고 영적 학대가 없는 곳으로 ‧‧‧
“저는 빌이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이전에 ‘공동체’ 의 일원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지도자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 있었을 때 서로를 좋아했지만 데이트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꽃가게에서 일하고 있을 때 저는 그에게 화초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제가 기거하고 있던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만 그에게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데이트를 하거나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 사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빌과 저는 ‘성전(the Temple)’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곳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한편, 우리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빌이 저를 학대했기 때문에 아들을 임신한 동안 저는 거의 유산할 뻔했습니다. 빌은 알콜 중독자인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저 또한 매우 미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단체에 수년 동안 있었음에도, 저희들은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둘 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공동체’ 에 있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곳을 나온 이후에는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콜린과 빌은 마침내 이혼했다. 콜린은 또다시 부서진 삶의 파편들을 정리해야만 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콜린은 ‘성전’에 다시 참석하면서부터 또 통제를 받고 소외당했다. “저는 다시 한 번 수치를 당했습니다. 저는 이혼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교회 규율에 따라 데이트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절대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전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저와 어린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에 따라서 다시 한 번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해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성전’ 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저는 그와 재결합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혼하도록 종용해서 그대로 했지만, 실제로 그들 말을 듣고 이혼했을 때에는 제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전’ 의 지도자들은 콜린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영적 위협을 가했다. “어느 날, 저는 모임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날따라 몸 상태가 좋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기 때문에 모임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의 상담자가 오더니 저를 요한 목사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이렇게 묻더군요. ‘너, 요한 목사님께 매맞고 싶은가 보구나?’ 그러자 요한 목사는 ‘매맞는 것이 네가 원하는 바라면 그렇게 해주겠다’ 라고 말하더니, 저를 정말로 때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너무 당황했습니다. ‘성전’에서는 방언을 하지 못하면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소위 ‘성령 안에서의 죽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면 악령이 몸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귀신의 활동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제 안에 많은 귀신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반항적이라면서 저를 위해 몇 번이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귀신들을 내쫓지 않는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을 내쫓아야 하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마침내 콜린은 어머니 가까이에서 살고자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부모님은 이혼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 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성전’ 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제게 계속해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는 그때 자살하려는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저는 학대적인 교회에서 일생을 보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교회를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통제를 받아 오다가 이제는 돈 한푼 없이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제 일생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콜린은 캘리포니아에 돌아온 이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회복을 위한 첫 번째 조처는 ‘그의 집’ 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 본 것이다. 그녀는 딸의 아버지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말을 꺼내야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 왔습니다.” 스탠은 그녀를 잠잠케 하려고 위협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스탠은 자신이 콜린 아이의 친아버지라는 사실과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며, 콜린과 딸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아직도 스탠 파머가 관리하는 ‘그의 집’ 은 고도로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음식과 상담 훈련에 관한 생활 조건은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개선되었으며, 그 곳의 재활 프로그램은 수많은 청년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은혜를 배우다
콜린은 자신이 영적 학대의 희생자이며 그 때문에 심리적, 정서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을까?
콜린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추천과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오하이오 주 콜롬보스 근처에 있는 웰스프링 치유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웰스프링 치유 센터는, 그 곳 간부인 래리 파일이 말한 것처럼, 소위 문제가 많은 기독교 단체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을 돕는 데 헌신된 기관이다. 기독교인 심리학자이면서 그 단체의 이사인 폴 마틴 박사는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학대적인 교회의 일원이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콜린의 말을 들어 보자.
“저는 제 일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에 저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도덕한 학대적 교회들 안에 있는 동안에는 제가 더 악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타락한 사람으로 생각하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저를 학대하는 사람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좌우되곤 했습니다. 그들이 제게 화가 나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제게 화가 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틴 박사에게 ‘정말로 당신은 저를 배려하고 계신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저는 마틴 박사가 그 말대로 저를 대해 주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저를 단순히 또 한 명의 학대적 교회의 전 구성원,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콜린은 회복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마틴의 말에 따르면, 웰스프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단이나 권위주의적인 교회를 떠난 이후, 보통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 상담과 과거 부인
회복의 첫 단계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데 필요한 상담을 하는 것과 과거의 경험을 부인하는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학대적인 교회의 교리에 대해서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비정통적인 가르침은 어떠한 것이라도 주의 깊게 반박하고 검토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정통적인 교회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특정한 면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여 가르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피터 섬머의 견해를 들어 보자.
“이러한 집단들은 이론 면에서 보면 이단적인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타교회들이나 타집단과 자신들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중요시합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헌신, 순종, 예언과 같은 주제들이 주된 가르침입니다.”
나는 영적 학대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해 갈 것을 권유하고 싶다. 왜냐하면 시편에서는 개인적인 영적 삶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폴 마틴은 희생자들에게 과거 몸담았던 단체에서 사용했던 성경 말고 다른 해석본의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했다.
두 번째 단계, 새로운 목적 의식
웰스프링의 견지에서 볼 때 회복의 두 번째 단계는 지난날의 경험을 가슴 아파하는 한편, 새로운 목적 의식을 가지게 되는 시기이다. 낭비한 세월과 놓쳐 버린 기회들, 단절된 우정에 대한 슬픔 등으로 복받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에는 과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콜린이나 레이첼 같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풍성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다. 섬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왜곡된 하나님 형상에 대한 믿음에서 돌아서서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는 첫 번째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그러한 집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세 번째 단계, 재사회화
웰스프링에서는,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이 과거에 대해 말하는 횟수가 줄고 대신 미래를 위해 경력을 쌓으려 하고 새로운 교제를 하며 가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 회복의 세 번째 단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 시기는 영적 학대를 경험하기 이전의 삶에서 다시 찾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복구하는 시기이다.
비극적인 것은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안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적다는 사실이다. 영적 학대의 희생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웰스프링같이 전문적으로 구비된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통제 지향적인 집단을 나온 사람들은 재정적인 여유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있어도 참석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살아 남기보다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콜린이 학대적인 집단에서 또 다른 학대적인 집단으로 옮겨 다닌 것은 그 희생자들이 가지는 딜레마를 잘 나타내 준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내가 면담한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역기능적인 가정 출신들이다. 그들은 학대를 감내했으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고, 매우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콜린은 자신이 소극적이고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유형의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절박한 결핍 상태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수용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의존하는 대상을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학대에 순응하며 권위적인 인물을 존경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허함을 느끼며 집중도 잘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제한시키고 있는 겁니다. 고통받는 상황 가운데서도 좋은 점을 애써 찾아내려 합니다. 과거에 제가 있던 교회에서는 바로 그러한 유형의 사람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4.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미리암은 1960년대의 마약과 히피 문화에 심취했던 히피족이었다. 그녀는 마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1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에 존을 만났고, 그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동양 종교와 뉴에이지 운동에도 심취하기 시작했다.
영적인 기반을 찾아서
“저희는 진리를 찾기 위해 뉴에이지를 엄격히 따랐습니다. 집에다 매일 아침 명상할 수 있는 제단을 설치했고, 그 제단 위에는 예수님의 초상화와 교주의 초상화를 나란히 놓아 두었습니다. 뉴에이지 운동은 영적인 것들을 모두 혼합해 놓은 것으로서, 저희는 그 다양한 면들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독 교회파의 어느 한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당시는 사실 기독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차 뒤편에는 물고기 문양을 달고 다녔지만 집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으니까요. 저희들은 뉴에이지의 기본적인 신념 체계에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이며 우리 자신의 실체를 스스로 창조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분께서 저희에게 ‘사영리’ 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대학생 선교회에서 주최하는 그리스도인 부부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그때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임재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문제에 있어서 교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지, 또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는커녕 그들을 왜 교회 모임 가운데 있게 하는지 등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부유했기 때문에 그 교회에 참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목사나 그의 측근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무시당하고 부유한 사람은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아첨과 주어진 직위에 눈이 가리워져서 앞으로 일어날 문제들을 미리 감지할 수도 있었던 여러 조짐들을 간과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가족 중심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는 그런 생활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말고, 모든 교회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라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5시 반에 열리는 새벽 기도 모임에 참석해야 했고, 그동안 아이들은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 안에서 자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고 교회 학교 교육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은 교회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후부터 우리 둘의 관계에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침내 그 교회에서는 우리에게 상담을 받도록 했습니다. 상담을 시작할 때 우리는 상담가가 목사와 그 아내와 함께 문제를 논의한다는 증서에 서명했습니다. 우리의 상담 내용이 그 목사의 설교와 그 아내의 험담 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서명을 한 이후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2년 후, 우리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후로 우리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했습니다. 저희 집은 교회에서 반 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막다른 골목에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그 교회를 지나쳐야 하는 것이 곤란한 일이었고, 그 교회에서 저희 아이들에게 ‘너희 부모는 사탄의 말을 듣고 있다’ 고 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그 교회의 건축 기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 교회 목사는 우리가 교회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떠난 후에도 몇 번이나 찾아오곤 했습니다.” 바우어 부부는 마린 교회를 떠난 후, 어느 작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교회는 성도가 모두 5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였는데, 그들은 바우어 부부가 신앙을 회복하고 이전 교회에서 배운 여러 잘못된 가르침들을 바로잡도록 도와주었다. 미리엄의 말을 들어 보자.
“새로 다니기 시작한 교회의 목사님은 사랑 많고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교회로 인도해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과거의 상처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는 이 교회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새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꼭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의 그 건전치 않은 교회에 있는 동안, 하나님과 저의 관계가 많은 침해를 받았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거듭난 후로 하나님과 저와의 관계는 말할 수 없이 가까웠었는데, 그 교회에 다닌 이후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더 이상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와 하나님 사이게 끼여들어서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 멋대로 방해했던 겁니다.
성경 말씀 중에서 마린 기독교 생명 교회가 빠뜨렸던 점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심판에 대한 말씀만 있었습니다. 새 교회에 다니면서 어떤 끔찍한 사고나 질병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으려는 집단에서 빠져 나왔으니 말입니다.”
스스로 책임을 지다
“우선, 저는 그 학대적인 집단에 대해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잘못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그동안 잘못했던 일들을 복수시키며 이전에 제가 상처 준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과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희생자라는 피해 의식과 학대했던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마린 기독교 생명 교회에 머물러 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성격이 그 교회의 목사와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더군요. 사실 저는 희생자라기보다는 압제자에 가까웠던 겁니다. 제가 그 곳에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교회에 끌린 주요 원인은 ‘우리와 저들이라는 사고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비판을 일삼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 가운데 판단하는 마음과 교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성경 구절과, 제 삶에서 실재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성경 구절들, 예를 들면 “네 눈 안에 있는 들보” 와 같은 말씀이 분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그 경험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하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태도를 버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저를 깨끗게 하셔서, 이제는 예전에 비해 사랑이 많고, 다른 사람들을 쉽사리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하기 이전과 현재의 제 모습을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서,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걸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경험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의 제 삶을 사랑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그 곳에 가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멀쩡한 정신으로그 교회에 갔고, 자원해서 헌신적으로 그들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가운데 있는 그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 교회에 참여하고 싶게 만든 것일까요? 제 경우에는 영적 교만이 그 원인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적 교만은 제게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하는 열망을 불어넣었고, 그로 인해 저는 비판을 일삼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애매모호함을 용납지 않으며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추구하는 절대성은 그러한 성격을 가진 저와 잘 맞았던 겁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상황을 바라볼 때, 단체에서 세운 기준에 따라 보고 판단했습니다. 제게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자세가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게으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일을 항상 흑 또는 백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각 상황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그 동안의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임지고 고백하며, 그 교회나 지도자들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가족에게 했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아내와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으니까요.”
완전히 결별하다
존 바우어는 학대적인 상황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곳과 완전히 결별해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신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문제들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존 부부는 그 곳을 나온 이후에도 얼마 동안 아이들을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도록 했었다. “그 결과, 그 교회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존 부부가 그 교회를 떠날 때에도 그 딸은 청년부에 남아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결정으로 그 집단을 떠났다. 우리는 존의 충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면담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소속된 현재의 집단을 떠나야 할지, 아니면 그 집단에 있음으로써 자신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아래 그 곳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그 집단을 떠나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염려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그 곳에 좀더 있음으로써 그 사람들도 머지않아 그 집단을 떠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학대적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믿고 있다.
외견상 그러한 조직과 깨끗이 결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면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다시 말해 영적, 정서적으로도 자유로워져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존슨과 반본더런은 참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네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첫째, 희생자 자신이 영적으로 학대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도움을 구할 수 있어야한다. 그들에게 관련된 정보를 들려줌으로써, 자신들이 경험한 바가 ‘학대’ 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째, 그들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제까지 영적으로 세뇌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이 실제로 어떠한 분이신지, 또한 그들 자신의 가치와 인정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주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섭리해 오셨는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귀한 모습으로 빚으셨는지 새롭게 깨달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그들은 정서적, 심리적, 영적 상처로부터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안전한 관계를 맺어 가고, 이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란, 사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정직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는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넷째, 안전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아 정체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져야 한다.
존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여 보자. “마린 교회를 떠난 지 일 년쯤 후에, 우리는 그 교회 목사와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용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생각 가운데 있던 그들로부터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은 회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십시오. 여러분도 진정한 용서를 하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존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사실 이 책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기본 메시지를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치유되는 과정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일입니다. 치유에 걸리는 시간은 각 사람의 경험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꺼이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겁니다.”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어떤 학대적인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에 했던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저는 알면서도 그 단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속임수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그 곳에 어떤 숨겨진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복음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교제권을 떠나면,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정해져 있는 네 운명을 영원히 잃게 될 것’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건 영적 위협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집단을 나온 이후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30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온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한걸음씩 내딛으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이제까지 제가 속했던 교파의 제자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와 그 목사의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 조직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왜곡해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곳에서의 삶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다. 내가 하고 있는 바를 잘 보고 따르라.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제 삶은 그 교회 중심적인 생활로 변해 갔고, 저와 예수님의 관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못한 자리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저는 어느 날 아침, 집에 있는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강렬히 느꼈습니다. ‘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게 하소서’ 라는 말씀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구원의 기쁨을 누리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온 그 교회에서는 자신들 이외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종교적인 악마’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교회 밖에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회복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하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용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구원’ 이란 단어는 온전한 모습으로 빚어져 간다는 걸 의미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재 대신 화관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아름답게 하실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용서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께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아마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용서하길 원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분노한 적이 있고, 심지어는 격렬한 증오심까지 품었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께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도록 그냥 두셨단 말입니까?’
그때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 가운데 계획하신 궁극적인 목적을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그들이 비록 자신을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셉이 걸어갔던 길은 감옥에 갇히는 것과 중상 모략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려 함이니’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가지신 궁극적인 목적, 즉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대로 빚고자 하시는 목적을 이루시고자 어려운 시간을 허락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신뢰하는 법을 다시 배우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 가운데 파고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주려 하기보다 받으려는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고 도움을 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사랑으로 역사하시도록 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개종자를 얻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복음을 전하러 나갑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하는 일은 일하고 복음 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한 집단에서 가르치는 것은 ‘밖으로 나가서 저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라’ 는 겁니다. 사실 그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밖으로 나가서 십일조 바치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라’ 는 것입니다.
그 집단을 떠났을 때, 제 아내와 저는 극도의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곳에 다닐 때, 친구들뿐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까지도 끊었었기 때문에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저는 신경 쇠약에 걸길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들을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밤낮을 시달렸습니다. 어떤 조직은 조직을 떠난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있던 조직은 그러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외로웠기 때문에 두렵기까지 했던 겁니다. 그 집단에 있었을 때 우리가 무례히 대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들을 찾아가 ‘미안합니다’ 라는 사과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람들은 제게 변했다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의 널 보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예전에는 멍한 눈으로 성경 구절을 외치며 돌아 다니는 좀비 같았거든.’
그 집단을 떠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제 삶에 선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저와 잘 알고 지내던 자매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 함께 기도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제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좌절감과 마음의 상처가 일순간 모두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제게 저를 학대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지 않고 가슴속에 복수심을 품고 있는 것이 처음에는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게 복수심을 마음에 품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지는 못할 겁니다. 저희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권위적인 교회를 나온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분노와 배반의 경험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러한 사역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소위 ‘문제아’ 라는 십대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저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상처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웃는 법을 배웠습니다”
“학대적인 교회에 다니다가 그 곳을 떠난 후, 자신의 삶이 무너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예수님을 찾으라고 격려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게 물려 괴로워하고 있을 때 믿음으로 놋뱀을 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매달리십시오. 여러분의 머리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적들을 이기도록 도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고 완성시키시는 분은 그 교회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자아의 가치를 과거의 교회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찾으십시오. 권위적인 교회를 떠나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
5. 얘들아, 돌아오는 성탄절에는 ‧‧‧
‘성회’ 는 캘리포니아의 풀러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독교 단체이다. 에릭 윌슨은 그 곳에서 거의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며, 멜로디는 18년, 엘리자벳 왈쉬는 14년을 보냈다. 그들은 모두 그 곳에서 보낸 세월을 가슴 아파하며, 그 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성회’ 는 조지 케프타키스가 창설한 단체로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주로 대학가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곳에 있었던 전(前)구성원들과 에릭의 경험을 살펴보면,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다음과 같은 공통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위계 중심의 리더십과 권위적인 행동 양식, 절대적인 충성 요구, 가족 생활과 결혼 통제, 엄격한 훈련, 너무나 빡빡하게 짜여 있는 모임과 성경 공부 및 교회 일정 등이다. 에릭은 그 곳의 성경 공부와 예배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그 단체를 알아 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두고 그 단체에 속한 미혼 형제들이 함께 사는 집의 일을 거들어 주게 될 만큼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그 집에서는 형제들의 삶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설교를 담당한 형제는 교회의 일치와 협동에 관해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사탄이 우리를 미혹해 각자 제 길로 가게 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설교가 끝난 후에,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서 이렇게 묻더군요. ‘그들은 당신이 악마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형제들을 변명해 주었고 그들을 끝까지 보호해 주려 했습니다.”
“복음은 특정한 생활 양식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 ‘성회’ 를 떠났을 때, 저는 너무나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막막했습니다. 마치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개인적인 관심사를 제쳐 두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은 조지 형제의 가르침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라 생각했고, 그에 따르면 제 관심사는 육적이거나 적대시해야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의 가르침에 관한 ‘하나님’ 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 께서 정해 주신 ‘하나님’ 의 종으로부터 ‘하나님’ 의 메시지를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에 대해 감히 의문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성회’를 나오고 나서야 속임수와 두려움의 안개가 걷혔습니다. 그 동안 제가 어떠한 일에 관계하고 있었는지, 그 일들이 제게 정서적, 영적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쳤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회복으로 가는 길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 단체를 벗어난 다른 곳에서는 저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단체에 있는 동안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즐거워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저를 실제로 원하고 있지 않다거나,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다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희생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포기하겠습니다.”
많은 활동, 그러나 공허한 내면
엘리자벳 왈쉬는 ‘성회’ 에 있다가 결국에는 단체로부터 거부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10대 후반에 시카고에 있는 ‘성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헌신을 강조하고 ‘초대 교회’ 와 같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의 열망에 깊은 감동을 받고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나와 자매들의 집에서 생활했다.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었는데, 엄격하게 짜여진 단체의 일정과 해야 할 많은 일들로 인해 학업을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잘못된 규칙과 너무 많은 규칙들이 하나님께 나가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회’ 는 엘리자벳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제한했다. 그녀는 단체 지도자들의 명령에 따라,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지 않는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단체 내에서 인정을 받으며 그 곳 사람들과 우정을 돈독히 하고자 많이 노력했지만, 10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꼈다.
“많은 활동을 했지만, 내면은 공허하기만 했어요. 그 곳 사람들은 제가 주님을 위해 일하고 생활하면, 주님께서 제가 기다리고 있는 완전한 남편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곳 사람들 가운데서 진심으로 저를 배려해 주거나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차츰 저는 제가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무 이유 없이 큰소리로 웃기도 하며 경솔히 행동하곤 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 양식대로 사람들을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현실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미래의 실제 삶이 어떠한 것이든, 그러한 생활을 하게 될 때까지 잠시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서하며 잊어버리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이미 저는 단체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때문에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사람 없이 혼자 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자유로움이 주어지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저와 친구가 되려 하거나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토록 외로웠던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혼자 사는 동안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처음 며칠 동안은 내내 눈물로 보냈지만 말입니다.”
그 후, 엘리자벳은 직장의 한 남자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 제자 훈련을 시켜 달라고 ‘성회’ 에 도움을 구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래도 그녀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와 교제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다른 사람과 데이트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10년 정도 성장한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저는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하였습니다. 저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 많은 그리스도인 남자를 보아 왔지만, 그들의 태도는 비그리스도인인 제 남편보다도 훨씬 더 무례했습니다.”
엘리자벳 부부는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그녀는 자신과 주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위협당하는 사람들
“저는 마치 영적 호르몬이 차단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자신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줄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이길 바랐지만, 당시 저는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죠. ‘성회’ 에서는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곳 생활을 통해 제가 얻은 것은 영적 혼란뿐이었습니다.”
엘릭 윌슨, 멜로디, 그리고 엘리자벳 왈쉬는 그러한 영적인 혼란함으로 인해, 믿음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기까지 오랫동안 힘겹게 지내 왔다.
6. 부러졌다가 회복된 뼈가 더 단단한 법입니다
학대적인 종교 집단을 떠나는 경우를 살펴보면, 그 대부분이 결정적인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정적인 계기가 주어지면 회의하고 있는 상태를 벗어나서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베티 도날드라는 자매도 COBU(Church of Bible Understanding)의 단기 선교사로서 아이티에 있는 동안 그러한 계기를 맞았다. COBU는 미국 동북부 가정들을 근거지로 하는 공동체 집단이다.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지도자인 스튜어트 트레일은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티가 아이티에 있는 고아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 곳에 있던 일곱 살바기 한 소년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 수술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만일 수술을 받지 못하면 소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COBU의 긴축 재정으로 인해 베티를 제외한 모든 선교사들이 미국으로 송환된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비가 없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마냥 그 상태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베티는 뉴욕에 있는 본부에 긴급한 상황을 알리고 수술에 필요한 돈을 급히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본부로부터의 대답은 이러했다. “주님께서 이제까지 자매님께 어떻게 해오셨는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분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하지만 베티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제 예상대로 돈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약과 음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용유를 팔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동안, 한 성경 말씀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계속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빵을 구걸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나는 왜 지금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저는 어려운 재정적 상황에 대해 계속 불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은 스튜어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단체가 운영되는 것에 신물이 나 있었습니다.”
결국 베티는 모든 수술 비용을 COBU가 지불한다는 증서에 서명하고 소년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 일로 뉴욕 본부에 다시 한 번 찾아갔지만, 결과는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COBU로부터 돈을 받아 내지 못한 베티는 혼자 힘으로 2,000달러를 모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소년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고열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죽은 뒤, 2주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이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진실을 외면하고 타협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의 결과는 어린 소년의 죽음이었습니다.”
삶을 누리는 법을 배우다
마가렛 그리핀의 회복 과정은 베티 도날드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COBU에 10년 동안 있었으며, 그 단체를 나온 지 7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 의식에 타격을 받은 후에 정상으로 회복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7년 전까지만 해도 저 자신이 주님 안에서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제 마음 가운데는 많은 상처로 인한 흔적들이 있습니다.”
마가렛은 십대에 양아버지마저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10년 전 친부모로부터 버림당한 경험 때문에 낮은 자존감과 많은 슬픔을 안고 있었다.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연령에 비해 영적인 면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곳에 있는 경고적인 조짐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조짐을 눈치채기까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저의 영적 삶은 희미하게 타오르는 심지처럼 쇠약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단체는 외관상으로는 모든 것이 건전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본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그 급진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던 겁니다.
그 단체에서의 생활 조건은 매우 열악하며,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은 공개석상에서 모욕을 당합니다. 전 그 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냈지만, 결국 수중에 10달러만 남은 채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주님께서는 여러 그리스도인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저를 사랑해 주었고, 이상한 아이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저와 같은 경험을 겪어 보지 않은 보통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지혜로우며, 더 강하고 더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보통 그리스도인들에 비해 율법주의를 훨씬 더 빨리 감지해 낼 수 있습니다. ‘한 번도 부러지지 않은 뼈보다는 한 번 부러졌다가 온전해진 뼈가 더 강해지는 법’ 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역할 탈출의 네 단계
에바우 박사는 역할 탈출 과정에 따르는 주요한 네 가지 단계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첫 단계는 자신의 헌신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된다. 이러한 회의는 대개 점진적으로 생겨나며,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주로 조직의 변화, 관계에서의 실망감, 극도의 피로, 또는 특정한 계기를 불러일으킬만한 사건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회의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에 대한 친구들이나 다른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회의하는 초기 단계에 긍정적인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 2단계로 넘어가는데, 그렇게 되면 대체안을 찾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베티와 낸시의 만남이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집단을 떠나는 것이 ‘정신나간’ 행동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으면 그러한 과정은 더욱 가속화된다. 현재의 역할에 영원히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들은 안도감을 느낄 뿐 아니라 ‘새로운 역할에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에바우 박사가 ‘전환점’ 이라고 부르는 3단계에 이르는데, 이는 떠나겠다는 확정적이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단계이다. 이러한 결정은 대개 특정한 사건과 관련되어 나타나며, 이를 통해 그동안 회의하고 있던 바들이 명료해진다.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릴 수 있다” 는 속담처럼,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한도를 넘으면 파국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결정을 내리면 다른 사람에게 그 결정을 알리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은 탈출을 서두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안도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 학대적인 집단에 있는 동안에도 직장 동료나 가족 혹은 외부의 친구 등, 이전 역할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 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수월하게 적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해해 주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서
마가렛은 요즘, 자신이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지난 여름, COBU에서 나온 사람들끼리 모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임을 통해서 저희들은 그 동안 저희들 사이에 있었던 좋은 추억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영적 학대에 대해 함께 대처해 가기로 했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면서 마음의 상처들도 많이 치유되었습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지요. 제 생각으로는, 저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영적인 학대를 하는 단체에 있었던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인 것 같습니다.”
7. 주님은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제가 쓴 JP이야기는 선한 의도를 악용한 비극적인 일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JPUSA(Jesus People USA)에 있었던 성도가 쓴 글이다.
JPUSA라는 이 단체는 1972년에 창설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며 시카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이 단체는 가난한 사람과 노인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으며, 시카고 북부에 ‘임산부를 위한 응급 센터’ 를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는 복음주의 세계에 두 가지 사역으로, 즉 「모퉁잇돌(Cornerstone)」이라는 잡지와 ‘REZ’ 라는 크리스천 록 밴드로 잘 알려져 있다. JPUSA에서 매년 주최하는 모퉁잇돌 페스티발은 크리스천 록 음악과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세미나, 그리고 수천 명의 젊은이가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JPUSA는 아홉 명의 장로와 목사로 구성된 협의회가 약 500여 명의 공동체를 주관하는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공동체를 찾아서
앨런 카프만(가명)은 1971년에 JPUSA에 가입했다. 그때만 해도 그 단체는 시카고에 정착하기 전이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사역하던 상태였다. 당시 앨런과 남동생은 그리스도인이 된 지 얼마 안된 십대 소년이었는데, 그 단체에 소속된 리저렉션 밴드가 좋아서 그 곳에 들어갔다. 현재 앨런은 상담 사역을 하고 있는데, JPUSA에서의 경험이 내담자들을 깊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저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이겨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저 자신과 하나님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내면적으로도 강건해질 수 있었습니다.”
“결코 집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앨런의 남동생은 장로 중의 한 명인 글렌 카이저와 대화를 나누다가, 음악에 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가 한 말로 인해 상처받는 일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 느낀 좌절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숨이 막히는 듯했지요. 저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하다가, 결국에는 장로들을 찾아가 단체를 떠나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앉혀 놓고는 심문하다시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돌연 비난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나중에는 경멸조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JP를 떠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될 것이며, 결국에는 죄로 인해 타락해서 지옥에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말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던 헤린은 저를 자기 옆으로 데려가서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만일 네가 이곳을 떠난다면, 넌 언제까지나 어린아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넌 결코 성장하지 못할 거야. 또한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넌 여기를 떠날 수 없어. 이곳은 네 삶이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그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죽어 있는 곳이다’ 라고 말입니다.”
실패를 만회하다
“저는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피하려고 자주 이사 다녔습니다. 정착해서 안정할 때쯤 되면 지도자들이 예전에 제게 한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넌 결코 아무런 존재도 될 수 없을 거다. 넌 결코 성장하지 못할 거야. 넌 언제나 실패자가 될 거야. 결국 죄로 타락해서 지옥에 갈 것이다.’ JPUSA는 성에 대해서, 혹은 분개나 분노의 감정 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가르쳐 준 적이 없습니다. 그 조직에서는 감정을 은폐하거나 억제하는 일이 많았고, 개인적인 일과 실패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이고, 그리스도인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실패를 똑같이 경험한다 해도, 그 실패를 적절히 대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삶의 향방이 서로 달라집니다.
당신이 어떤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당신 주위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당신이 그 실패를 올바로 직시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감정을 위장하고 덮어 버리거나 숨기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대하는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과정을 겪습니다. 단체를 떠난 직후에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듯한 증상을 보입니다. 한때 받았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품성을 고치려고 노력하다
피터와 트레이시 바운은 JPUSA를 떠난 후, 앨런과 마찬가지로 내면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했다. 피터는 그 곳에서 12년 동안 있었으며, 나와 면담한 무렵은 이미 그 곳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그들은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는 이제 주님과의 관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JP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까지 수년이 걸렸습니다. JP는 미성숙하고 자아 통제를 잘 못하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통제해 주는 겁니다. 그 곳에 머무르면서 그 곳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다면,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발전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실한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성장해서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자아 파괴적인 면들을 스스로 고쳐 나가도록 도울 겁니다.
하지만 JP는 성숙하도록 혹은 자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격려한다든지 돕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책임을 결코 부여하는 법이 없습니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라. 앞으로도 우리가 네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주면 그대로 해라. 그러면 나머지 모든 일은 우리가 알아서 돌보아주겠다’ 는 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체를 떠나면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떠나는 것을 주저합니다. 마치 그들은 너무 많은 선택의 길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고 있는 요즘의 러시아 사람들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선택
“저희 모두는 언젠가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저희는 성장해야만 합니다. 그러나‧‧‧건전하지 않은 단체들은 이러한 시점에서 그리스도께 가도록 돕기보다는 단체나 지도자들에게 가게 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의 거래에 불과합니다. 만나는 사람이나 장소, 활동, 언어들은 모두 새롭고 자극적인 것들이긴 하지만,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존적인 아이들은 책임있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의존해왔던 대상을 새로운 권위를 가진 인물로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동안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자살하려고 한 적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 결혼도, 아이들도 - 너무 빨리 일어났습니다. 전 이런 제 삶이 싫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서도 모두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때도 많습니다. 어디론가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전 빼앗긴 것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문제를 주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제 부모님이나 그 단체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겁니까? 저는 지금 누구를 탓하고 있는 거죠? 주님께서 제 삶의 어디에 계셨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신앙은 너무나 불안정합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기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주님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지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스티브는 브리지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난 정상적인 사람이 못 될 거야. 당신도 마찬가지고. 우린 둘 다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들은 못 될 거야.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시절과 당신이랑 데이트하던 시절이 참 좋았던 것 같아. 그때 난 스스로 결정 내리는 걸 좋아했지. 그런 결정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든, 옳은 결정이었든 별로 상관할만한 것이 못 되었어‧‧‧. ”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저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알고 있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아이들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또한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JPUSA에서는 이렇게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8. 은혜와 비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학대하는 교회나 종교 단체를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정서적, 영적 고통을 경험하며 방황하는지 생생히 전달하고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독자들은 아마도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격렬한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들은 나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는 너무나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타인들과 나누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조용히 흐느끼기도 했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도중에 말을 멈추기도 했다. 만일 독자 여러분이 그러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훨씬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독자들은 ‘학대’ 라는 용어가 문제의 교회들과 기독교 조직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과 또 다른 곳에서 확인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특성들, 즉 개인의 자율을 포기하고 권위주의적인 단체 혹은 목사와 지도자에게 굴복하는 일, 그러한 굴복에 뒤따르는 자기 정체성 및 자기 가치 상실, 때로는 지속적인 영적 마비 상태, 반복되는 악몽과 수시로 기억 나는 과거의 기억, 깨어진 인간 관계, 성과 기준의 신앙에서 초래된 두려움과 혼란 등을 고려해 본다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치유는 가능합니다”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정리해 보았다. 간단하지만 회복으로 향한 길이 좀더 평탄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 더 이상의 영적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학대받았다는 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회복을 방해할 뿐입니다.
‧ 치유되고 회복되기 원하는 당신의 바람을 격려해 주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찾으십시오.
‧ 당신의 경험, 의심, 감정, 소망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십시오.
‧ 당신은 아마도 시간, 친구, 가족 그리고 순수함 등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비탄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
‧ 죄 의식, 두려움, 부끄러움 등을 느낄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을 확신시켜주고 격려하며, 마음의 어려움을 토로하도록 도와줄 사람을 찾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 자신이 어리석다고 느끼며 회의에 빠지는 시기가 있으리라는 점을 예상하십시오. 스스로에게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었지?” 라는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내린 결정에 대해 어리석었다고 느끼며 후회하는 것은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한 감정은 곧 없어질 것입니다.
‧ 신뢰를 단계적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신뢰하는 법을 다시 배워 나가십시오. 주님과의 동행을 새롭게 하고,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교회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 안식을 취하십시오! 새롭게 주어진 자유를 즐기십시오. 오락, 예술, 음악 등을 포함한, 그저 평범한 재미 거리를 위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즐기라고 하신 모든 선한 것들로 인해 감사하십시오(딤전 4:1-5).
‧ 치유하는 데는 용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용서로 인한 유익은 용서받는 사람이 아닌 용서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다
루이스 스메데스는 이러한 글을 썼다. “은혜는 치료의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용납받을 만한 자인가 아닌가에 상관없이 용납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납받을 만한 자가 되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용납해 주는 선물이지요.”
주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에베소서 1:7-8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 은혜의 부요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부어진’ 바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에 의해, 상처투성이던 그리스도인의 삶이 회복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빚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 가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스메데스는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은혜와 비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회복된다는 것은 무한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요엘 2:25의 약속을 기억해 본다.
“메뚜기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부록 : 회복하는 과정에서의 이슈들
학대하는 교회에서 받은 상처로부터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많은 논제들과 이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겉으로 분명히 드러나기보다는 내재적인 경우가 더 많다. 다음의 기록을 통해 이러한 이슈들을 생각해 본다면, 학대당한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유익을 줄 것이다.
학대적인 단체에 들어가게 되는 이유들
‧ 정서적 결핍
‧ 권위적인 요소에 대한 호의적 태도
‧ 그릇된 기대
‧ 거짓으로 긍정적 인상을 심어 주는 단체와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
‧ 건전한 기독교 신앙과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취약성
‧ 의존해야 할 필요성
학대적인 집단을 떠나 회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
‧ 의존 상태를 조성하는 체제
‧ 구성원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분위기
‧ 개개인을 강조하기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함
‧ 전체성과 순종에 대한 강조
‧ 사회적 능력이 개발되지 못함
‧ ‘무엇을 하더라도’ 실패하리라는 생각 : 자아 성취적 예언
‧ ‘고아처럼’ 혼자가 되고 거부당할 것이라는 느낌
‧ 문화 충격
‧ 다른 교회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가르침으로 인해 갈 곳이 없음
‧ 대인 관계에 대한 잘못된 자세
‧ 사회로부터의 고립
‧ 소원한 가족 관계
‧ 인생에 대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목적 의식의 상실
‧ 수치심과 죄책감
‧ ‘희생당한’ 신드롬 (Victimization syndrome)
‧ 권위에 대한 불신, 혹은 친밀감에 대한 불신
‧ 부족한 자원 (재정, 정서, 관계)
‧ 용서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분노와 원통함
‧ 집단 내에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요소들
‧ 자아 존중감
‧ 경제적 불안정
‧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나 교회에 참석하는 것을 경계함
‧ 의존성
‧ 재사회화의 필요성
‧ 결혼과 가정 환경
‧ 전문적 상담을 받아야 할 필요성
‧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불신이나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여짐
‧ 자아 훈련(self-discipline)의 결핍
‧ 영적인 마비 상태
해결해야 할 감정들
‧ 거부당함으로 인한 감정
‧ 낮은 자아 존중감
‧ 수치심과 죄책감
‧ 연약함
‧ 고립감
‧ 부적합하다는 느낌
‧ 슬픔
‧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후회
‧ 정체성 상실
‧ 두려움과 혼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