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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 모여있는 빌딩의 숲속이었지만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적당한 조도의 햇빛이 내리쬐니 오히려 아름다운 크리스탈 처럼 보였다.
마음이 느긋해질 정도로 넓다랗고 깨끗한 거리위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등 여러분류의 사람들로 체워져 있었다.
그런 거리를 활보하는 무협인(武俠人) 예태화의 손에는 거리 아이스크림카에서 구매한 과일맛 파르페가 들려져 있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만끽하는 그 청년을 설명하는데 쓰인 단어인 무협인이란 무엇인가.
현대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단어일지도 모르니 정의부터 설명을 해주자면 무술이 뛰어난 협객이란 뜻으로 기개가 있으며 타인의 어려움을 돕거나 남을 위해 희생할줄 아는 이를 말한다.
대자연을 뛰어넘은 초능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굳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는 못할수도 있겠지만 기록조차 별로 남지않은 먼 과거의 무협들은 단순히 무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주만물과 모든곳에 존재하는 기(氣)를 다스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토납(吐納) 함으로써 몸과 단전에 갈무리하여 내공(內功)을 쌓아 무공(武功)을 사용했으며 경지에 이를수록 그 몸이 자연과 가까워 짐으로써 능히 물위를 달리고 여린 풀잎위에 서있음에도 풀이 다치지 않았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그 신체 자체가 무기가 되었고 검과창, 활,비수,부채, 심지어 독(毒)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각종 무술에 능통하게된 자들이었다.
개중에는 초월한 깨달음에 도달하여 신선(神仙)이 되어 도원향(桃園鄕), 즉 무릉도원에 도달한 이들도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인가.
금방 말했듯이 현재 전세계 어느나라의 역사서에도 그들에대한 이야기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세속을 떠나 한수 뒤에서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면서 도(道)를 닦으며 자신의 의기로움을 행하는 세외기인(世外奇人)들은 어느시대에나 존재했다.
실제로 그들의 후예중 한명인 예태화(叡颱花). 나이 17세의 짙은 흑발이 돋보이는 소년은 오랜세월부터 전해져 내려온 가문의 내공을 이어받아 자신의 몸에 그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으으 머리땡겨. 게다가 이거 죽이되버려서 무슨맛인지 모르게 되버렸어."
현실은 파르페조차 제대로 먹지못하는 안타까운 세외인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너무도 발전해 왔기에때문에 먼 과거때부터 존재해왔지만 결코 옛것이라 할수 없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지난번 이아와 같이 전자상가에 가서 산것과는 어쩐지 형태가 달랐다.
폴딩디스플레이라는 최첨단 물건은 역시 태화가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너무도 많았다.
태화는 쓰디쓴 마음으로 자존심을 구기며 반품사항으로 '사용하기 어려움'을 적어내고서 가장 사용하기 쉬운 형태인 폴더폰으로 교환을 해 온것이다.
폴더폰이라도 가격이 10만원 정도밖에 싸지 않을정도로- 최신기술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사용하는것은 태화로썬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간에 통화와 문자, 촬영만 된다면 만사OK인 태화였다.
지금의 그는 아무에게도 연락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주 용도는 시간보기.
태화는 PM2:00이라고 적여이는 휴대폰의 디스플레이를 고개숙여 보고선 폰을 덮었다.
그리고선 가던 걸음을 멈추고선 고개를 들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허리를 뒤로 제쳐서 100도이상돌려야지 전체가 보이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거대한 크리스탈 빌딩.
태화는 모양도 신비하게 생긴 그 건물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리곤 자신이 드디어 서울에 왔다는것을 실감했다.
실로 그렇게 느낄만할 정도인 눈앞의 건축물은 2050년인 지금의 건축기술로도 짓는것이 불가능해서 초능력을 사용하여 자재의 무게와 성징을 조율하고 창조하였으며 결합부분을 분자단위로 융합시켜 만들었다는 대단한 건물이었다.
단순히 높고 멎진형태의 건물이 아니라 BAS(building automation system). 빌딩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되어 인력투입이 거의 제로인 상태로 관리되며 그 덕분에 당연하지만, 최대의 융합에너지(전기력+초능력) 효율로 운영되는 빌딩으로써 슈퍼네추럴 디펜스(SD)가 적용되어 내구성 또한 상당히 좋다고 건물소갯돌에 적혀있었다.
명칭은 온누리 빌딩. 3년전에 완공이 된 최신식 건물로 우주 터미널 다음으로 현재 한국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201층의 복합빌딩이었다.
단순히 높이로 보자면 세계적으로 볼때 높은것은 아니었지만 주거시설,쇼핑,영화,음식,수영장,헬스,스파,버츄얼 룸(VR.가상현실공간),포토존,체험형 과학시설등 이 모든것이 들어갈정도로 어마어마한 내부 평수를 지녔으므로 돌아다니는 보람이 느껴질 만할것이다.
태화는 입을 벌려 그저 감탄했다.
"우와아아...."
어릴적 세외의 절산에서 무공을 수련할때에 우연히 용(龍)과의 연이 닿아 그것들의 거대한 둥지에서 온갖 희한한것들을 본 경험이있는 그였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이루어낸 기술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조물을 본다는것은 또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었다.
일층에서 오층까지는 외부에서 보이는 유리로 되어있어 내부의 모습이 바깥에서도 보이도록 되어있었는데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인지라서 그런지 꽤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덤으로, 비춰지는 내부의 화려함은 얼른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와아아....외국인 인가..이거, 처음부터 이렇게 임팩트있는곳에 와도 되는건지. 이러면 나머지 시설들이 시시해질수도 있겠는데."
태화는 따스한 태양광선 속에서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거대 빌딩을 다시금 올려다 보았다.
손을 내리고, 그것을 앞뒤로 휘저으며 부풀어 오른 기대감에 이끌려 복합빌딩으로 가는 블록 계단으로 향했다.
그의 현장감 넘치는 설명은 눈앞에 있는 타워를 충분히 설명해 주었지만 정밀하게 따지자면, 태화가 있는 곳은 온누리 타워의 입구부근은 아니었다.
눈앞이긴 했지만 바로앞-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10보 앞에서 건물을 바라본것이 아닌것이다. 그렇게 가까이서라면 빌딩전체가 보일리도 없고 말이다.
빌딩은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언덕위에 있었고, 태화는 그 언덕 아래의 인도에 있었다.
양옆끝에 세련된 모양의 가로등을 두고서 서른명정도는 한번에 다닐만한 폭으로 되어 있는 20계단 정도의 적갈색블록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넓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방금전까지 태화가 있었던 도로변거리와는 또다른 색다른 느낌으로 뻥뚫린 시원함이 느껴지는 잘꾸며진 광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었음에도 그리 느껴지는 것은 그많큼 광장이 넓었으며 불필요한 조형물따위가 없는 광장 구성때문일것이다.
이제야 도달한 빌딩의 정면에는 '온누리 타워' 라고 적혀있는 간판을 달고있는 명백히 거대한 석조재질의 입구가 있었다.
문짝하나에서 위압감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적응하려면 최소 3개월은 왔다갔다 해야 할 정도였다.
"으음.. 정문이 쓸데없이 큰거같은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곳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정도 규모의 건물이 매일매일 장사가 잘된다는것은 주변 상권을 완전히 헤쳐버리는것을 뜻하기도 하니 태화는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했다.
서울시장 정도의 설계력을 볼때 그런것을 고려하지 않고서 이런 건물을 지었을 리도 없겠고 상가는 빌딩의 20층까지니 태화가 걱정하는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지만 말이다.
태화 본인도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것이라는걸 알았는지 피식 웃었다.
"자, 감상다했으니 이제 들어가 볼까."
태화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빌딩내부로 들어갔다.
최근 뉴월드 같은 대형시설에만 들어와서 인지, 태화는 서울의 건물들은 내부로 들어오면 다른세상에 있는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끝이보이지 않는 넓이에 걸맞게 많은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고 환한 조명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빌딩의 내부.
저멀리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층별공간을 가로지르면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투명한 재질의 기둥 안에서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분주히 이동했다.
사람이 많은것은 물론이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산골마을에서 아무거나 걸치고 살아왔던 태화는 옷을 구매하기 위해서 옷상점이 가득 모여있는 5층 패션잡화 매장으로 올라왔다.
"흐음..옷이 정말 많구나."
유명브랜드 같은것을 태화가 제대로 알고있을리는 없지만, 그도 오늘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있다.
무려 인터넷에서 '고등학생 남자 패션'을 검색해서 여러가지를 알아보고 온것이다.
지난번 사태로인해 받은 포상금도 있으니, 지갑의 사정도 여유로웠다.
"흐흥. 좋았어."
그는 보고있던 휴대폰을 닫고서 자신만만한 얼굴로 영어로 쓰여져 있는 간판들로 걸어갔다.
털썩.
"아아~ 그나저나.. 여긴 정~말 넓구나. 안파는게 없는것도 좋지만 말이야..과도하게 넓은거 아냐?"
태화는 어딘가에서 잔뜩 구입한 옷가방 들을 다리옆에 던져두고서 넓다란 보트모양의 쉼터에 자리잡았다.
한시간 정도 쇼핑을 하였을 뿐인데도 벌써 살것이 없어진 태화의 맘속에는 슬금슬금 쓸쓸과 심심함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곳에서는 어쩐지 주변의 활기찬 풍경들을 보면 더욱 피로가 쌓이게 된다.
몸을 의자 등받이에 뉘인체 넋놓고 앉아있다가 태화는 자신의 머리를 탁 하고 쳤다.
"뭐. 이렇게 즐거운 도시생활을 보내는데 불평이라니. 당치도않지 하하하.. 재밌는 놀이기구라도 체험해 볼까."
지난번 이아와 함께 놀러온것과는 달리. 혼자 쇼핑하는것은 생각보다 쓸쓸한것이라고 생각한 태화였다.
'무토녀석과 함께 올까..아니. 일반적인 학생은 이런곳을 자주다니진 않겠지.. 나야 관광기분으로 돌아다는것일 뿐이니까. 좀더 익숙해지고 나서 얘들과 놀아야지.'
사실 태화는 여러명의 사람들과 함께 몰려다니기 보다는 혼자 다니거나, 많아야 둘셋정도와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소수정예 파다.
새로운것은 항상 흥미로워하는 태화였지만 식어가는것도 빠른 그였는데, 이것은 어쩔수없이 수련을 통해 키워진 통찰력 때문이었다.
태화는 어떠한 공간에 들어가면, 그 공간에대한 모든 정보들을 습득하고 인지하게 된다.
5층에 있는 태화였지만, 사실 온누리 타워에대한 모든 구조들은 타워밖에서 외관을 구경할때 모두 파악해버린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뒤라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면 벽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과 공간의 사이에 놓여져 있는 물체로 전락하게 된다.
어느순간부터 태화에게 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어 버린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화는 통찰하기 어려운힘.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신이 만든 규율을 무시하는 힘. 초능력에대해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흐음..이곳에는 이제 볼일이 없네. 이만 가볼까나."
어린아이도 아니고, 또한 만물의 화려함에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있으며 직접 경험해본 태화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놀이기구같은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만 발길을 돌리려 했다.
우주체험관이라니, 그런것이야 굳이 가상으로 체험할것이 아니라 온몸에 강기를 두르고 허공을 밟으며 용처럼 솟아서 직접 우주로 올라가면 그만인 것이다.
실제로 태화는 그렇게 성층권까지 올라가 누운자세로 우주의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온적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그 별천지의 광경이 뇌속으로 전해졌을때, 온몸에 느껴지는 감동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해온 태화라는 인물에게 자연적인,인위적인 건축물이 주는 흥미란 오래가지 못하는것이었다.
지상 500km의 높이에 떠있는 현대과학의 플레그쉽이라 불리는 우주터미널(우주 교통망)과 우주도시 정도라면 태화역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용과 현실적인 문제-그곳은 스스로 날아서 간다면 불법인 지역이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뤄둔 상태였다.
"사실 서울에 온것은 이렇게 관광따위나 하기 위해서가 아닌데 말이야.."
그는 한쪽다리를 다른한쪽에 올리고 뒤로 몸을 숙이고선 팔짱을 끼며 천장의 램프를 보았다.
'초능력..9등급이라니. 한심하군.'
태화는입술을 삐쭉했다. 태생적으로 재능이 없는것이야 어쩔수없다 치더라도, 노력해서 이룰수 있는 가능성역시 희박하다는 뜻으니, 자책할만한 검사결과인 것이다.
그렇다고 오래 주눅들것이야 없다. 아무튼 이곳은 참으로 관광하기에 좋은 장소였으므로 자신은 지역의 특색을 잘 이용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소리와 곤충들의 지저귐,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 하늘을 올려다보면 당연하듯이 그곳엔 별들과 구름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순수한 자연들로 가득한것은 좋은것이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홀로 마루에 누워서 뒹구는것밖에 할수없게 되는것은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초능력 자체보다도 놀라운 초능력자들이 모여 사는 곳. 서울은 세외(世外)가 되버린 남현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다양하고 이색적인 장소다.
딱히 초능력자 되지 않아도,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며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태화가 바라는 재밌는 일상이라는 목적은 이룰수 있는 것이다.
"끙차."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태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렇게 하지못하고 순간 어정쩡한 자세가 되버리고 만것은 날카로운 기운이 자신에게 향하는것을 느꼇기 때문이다.
"혹시.. 예태화씨?"
"에? 아.예.."
바로선 신경을 추스르며 태화는 곧바로 자세를 바라잡고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당신, 화천(花川)파지? 그리고 정문대인(正門大人)의 본신지기를 이어받은 직계제자."
태화는 매우 놀라서 저도모르게 신법(身法)을 사용해 의문의 남자와 거리를 벌렸다.
"후후..맞나보군."
"뭡니까? 속세를 떠난지 오래인 제 스승을 아시다니.."
"아아, 드높으신 경지에 도달한 당신의 직심(直心)이 스승.. 아니 아버지의 별호하나 들었다고 그리 놀랄 정도인가?"
"네놈..뭐하는 놈이냐."
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어릴적 쓰던 화법이 튀어나왔다.
"워워, 설마 이곳에서 싸울생각인가? 그건 좋지않다고 보는데.."
태화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숨을 한번 내쉬어 진정하며 끓어올리던 내력을 가라앉혔다.
저자는 어디선가에서 접근해온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않았던거 같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듯이 그 목소리는가까이에서 들렸다.
암행술(暗行法). 느닷없이 암습이라도 당했으면 어쩔뻔 했는가.
악의를 품은 사람이 공격했다면 지금쯤 자신의 옆구리에 독이 발린 칼이 박혀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정도로 둔해지다니.' 태화는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자책했다.
"무림의 사람인가?"
"무림이라니. 그런 어느 산골의 깡패선비 같은.. 요즘시대에 전혀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는 용어로군."
"그렇다면?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야!"
아버지의 별호를 알고 있다는점에서 무림과 연관된 사람이 아닐수는 없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데도 태화정도 되는 경지에 오른사람도 전혀 눈치체지 못했다는것은 초능력자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큰소리로 상대를 추궁했는데 만약 태화의 예상이 틀렸다면 상당히 높은 경지에 이르른 은밀한 내력을 운용하는 상대를 자극하기만 하는 꼴이 될수도 있었다.
들어서 알고있기로 이정도라면 옛 무림의 '초'일류 암살자 수준쯤은 되었으므로 호통치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남자는 그렇게 어중간하게 씩씩거리는 태화에게 두손을 휘저어 달래가며 설명했다.
"워워 진정하세요. 뭐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예태화. 당신은 우리들의 소개부터 들을 필요가 있지."
허름한 정장의 남자는 몰래 접촉한 주제에 이제와서 매너좋은 신사라도 되는양 태화에게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보이지 않는 능력은 살수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능력이지만 살의가 없어보이고 능숙한 화법과 태도로 볼때에 암살자보다는 전달자에 더 적합하며 익숙한 사람 같았다.
아니-그자는 어떤 조직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 보낸 사람이 확실하다고 태화는 생각했다.
상대가 한명뿐일것이라고는 확신할수 없었지만 어쨋든 의도가 그렇다면야 태화역시도 필요이상으로 경계할 필요는 없어진다.
"...들어보죠."
"우리들은 세계(世界)와 이세계(異世界)에서의 정의와 질서를 확립하며 또한 특이력으로부터 세계를 보호하는 집단인..아니죠. 당신에게 이런 표면적인 이야기를 할 필욘 없겠지요. 에.. 그런 명분을 내세우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의 힘을 규율하는 정의통총회(正義榼統會)라는 단체입니다. 세간엔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죠?"
보란듯이 태화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정의통총회 라는 단어를 되씹고 있었다.
아마도 그리 알려지지않은게 아니라 아예알려지지 않은 집단일것이다.
"정의통총..정의통총회..라면 설마 수백년전에 존재했다는 무림 유일의 재판기관인가? 물론 당시 시대적으로 그런 기관이 인정받을리야 없었기에 강자들이 모인 권력집단정도로 여겨졌다는.. 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중원에서 기원된 집단 아닌가? 왜 여기에 있는것이지?"
"뭐, 수백년전의 기원이야 어찌됐든 상관없지만 말이다. 세계단위로 비즈니스하는 시대에 걸맞게..우리도 활동무대를 옮기고 있는중이지. 현재 세계의 힘의 중심지는 초능력의 근원인 한국에 있으니 말이야. 이곳이 블루오션이 되어버렸다. 이런얘기지."
말투가 좋을대로 변하는 남자는 그렇게 선언했다.
"아직까지 그러한 조직이 남아있다니 믿을수가 없군."
"난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네. 당신 역시 공멸의 시대를 견뎌낸 가문이지 않은가. 간단히 생각해서 당신네 가문보다 숫자가 많은 우리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지."
쌓아왔던것이 망하다(功滅). 함께 망하다(共滅). 둘중 어떤 뜻으로 불려도 맞는 말인 공멸의 시대란. 그 옛날 그토록 강대했던 무술인들이 어째서 현시대에 별로 남아있지 않은가를 알려주는 시대명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영원할것 같았던 그 시대의 모든 무술인과 그에 관한 역사서,무공의 비급 등이 한명의 미쳐버린 초월자에의해 학살,소멸되어버린 시대이다.
그것은 정확히 사건이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사건자체가 새로운 역사를 쓰이게 만들었으니, 시대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무예인의 후예들은 누구도 찾을수 없는 장소로 숨어버린 자들과 미쳐버린 초월자를 살해한 가문의 후손들 뿐이다.
태화는 감은눈으로 당시대를 회상하며 잠시 그들을 추모했다.
태화역시 살아남았으니, 할수있는 말이지만. '그런것'이야 지나간 일일 뿐이었다.
"흥. 말도안되. 정파 사파 마교 할것없이 모두다 멸망당했다고 들었다. 너희같이 인정도 받지못한 잡조직이 남아있을리가 없다구."
당시는 초월자가 탄생한 중원뿐 아니라 동서양과 오대양의 모든 무공과 마술들이 초월자에의해 소멸당하였기 때문에 따진다면 태화의 가문역시 멸망당했어야 정상이지만 초월자를 살해한 가문들의 후손중 한명이 태화의 할아버지였기에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류의 것에서 벋어난 조직이 살아남았다는 기록은 없었기에 태화의 지적은 결코 오만함에서 비롯된것이 아니었다.
"이거야원. 지금 세력자랑하자는 건가? 솔직히 나는 심부름꾼에 불과해서 잘 알지못하지만.. 순수히 운이라고 들었다네. 덕분에 우리는 보는바와같이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
세상은 넓고도 넓으니, 아무리 초월자라도 개미 한두마리 쯤이야 놓칠수 있었다는 건가.
태화는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뭐, 됐다. 그거야 알겠고. 이제 나에게온 이유나좀 말해줘요."
지금의 태도는 자신감이자 얕보이지 않으려함 이다. 그럴것이. 스스로를 심부름꾼이라 불렀으니 말이다.
"아아 맞다.맞다~사실 저희 조직의 높은분중에서 당신이 말한 옛 무림의 후손분들이 있어서 말이죠. 당신이 서울에 입성한 그날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답니다."
"뭐? 보나마나 세간의 눈을피해 이리저리 살다온 영감탱이들이겠구만. 그런 녀석들의 관심을 받다니. 이거 곤란한데."
태화는 빈정거렸다.
"위에서의 메시지는 이거다.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지 마라. 그리고 마음대로 무공을 펼치지도 마라."
그런 빈정거림이 거슬렸는지 의문의 남자는 다시 반말투로 태화에게 전언을 전했다.
'역시 이런류의 이야기였나. 보수라는것은 이럴때 참 귀찮단 말이지.'
"응?!"
태화는 못알아듣는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더 설명해보라는 뜻이 담긴 제스처였다.
"높은분들께서는 네가 무공을 네 마음 편한대로 펼치는것을 언짢아 하신다. 그리고 이곳 관계자와의 관계도 말이다."
"뭐야? 내가왜 무공을 맘대로 쓰면 안돼는데?"
태화는 상대가 무슨말을 하는지 다파악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댔다.
약간의 장난끼 섞인 투였는데 남자는 답답해하여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쏘아붙였다.
"네 문파의 무공은 신라 삼국통일 때부터 전해져 중원무림까지 뻗어나와 중원의 12대 비공(祕功)중 하나로 인정받은 것으로 그 초식하나하나가 무림인에게도 사용이 비밀스러웠으며 일반인에게 보여서도 알려져서는 안되는 무공인것을 모르는가?"
"에에에? 이봐 아저씨. 당신이야말로 언제적 소리를 하는거야.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이 본다고 따라할수 있을거 같아?"
"혹시 모르지. 지금 서울에는 네가 생각하는것보다 많은 수의 무인들의 후예들이 신분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목격된다면..소문이라는 겉잡을수 없는 바람이 일게된다. 어쩌면 시민들에게도 전해질수도 있겠지. 신분을 숨기고 평범한 일반인이 되라는 소리다."
"참 길게도 말하는군. 근데 여긴 죄다 초능력자들이잖아 일반인은 무슨.."
슈욱!
이제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은 정장남이 기척도없이 내지른 주먹을 태화는 한 손가락만으로 막아내었다.
"큭.."
"이러면 곤란한데, 소리도없이 선수를 치다니. 대화하자고 하지않았나? 두번째. 관계자와의 관계는 뭔데?"
아주 여유가 넘치는 태화였다. 오랜만에 만난 자신과 동류의 족속에대한 환영인사로는 딱 적당한 정도일것일라고 그는 생각했다.
"......"
아쉽게도 눈앞의 정장남은 초능력자인게 틀림없다고 태화는 생각했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한계가 있듯이 무공에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어떠한 현상을 실현해내는것은 그 불가능한 것중의 하나이다.
반박귀진(返撲歸眞)의 경지에 이르러 진기가 겉으로 드러나지않아 기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대라면 모르겠지만 신체의 움직임과 선명히 보이는 기(氣)의 유동을 보았을때 그럴리는 없었다.
태화는 어떤 준비동작도 없이 움직이는 남자의 주먹을 '느꼇'을때 이런것이 가능한것은 초능력뿐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상대는 그저 초능력을 쓸뿐인 겉도속도 물렁물렁한 한명의 사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남은건 역관광(?) 시키는것이려나.
그것이 어떤의미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히죽-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시대불문 사신(使臣)은 건드리는것은 도리에 어긋난 짓이다.
그것도 자신을 감시하는 조직의 사람을 건드린다면 사태는 최악의 스토리로 흘러갈것이다.
하지만 시험해볼 가치는 있었다. 서울에 무림의 후예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두눈으로 직접확인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뭣하면 쓸어버리면 되지. 그런녀석들쯤.'
태화는 오랜만에 몸좀 풀어볼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 입맛을 다시는 중이었다.
정장의 남자는 그런것도 모른체 임무에 정말 충실했는데 아직까지도 떠들고 있었다.
"이곳의.. 서울시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과 친해지지 말라는 얘기다. 너와같이 다니는 그 여자가 해당되지. 특히 그런류의 인간에게 무공의 존재에대해서 알려지면 않되니까 말이다. 그것은 세력간의 전쟁을 유발하는 기폭재가 될수도 있단말이다."
"도가 지나친 참견이다. 거절하지~. 난 너희같은 부류에겐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라고. 뭣하면 몸으로 얘기할까?"
태화는 스트레칭으로 목을 풀며 얼굴이 기울어진 자세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살기(殺氣)를 담아서-
"크흑.."
남자는 온몸을 떨면서 태화와의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해. 난 아무도 두렵지 않다고."
자세그대로. 태화는 흔들림없는 동공의 시선으로 의문의 세력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대사는 그래도 좀 너무..뭐랄까 그대로 전하기는..좀 그렇지않냐?.. 직접 들은걸로도 민망하다만.."
"아, 그런가 그러면..헤헤.."
"이게아니잖아!"
"어쨋든!! 난 거절하겠다. 어떤 전언이라도 잘 전하는게 사신의 일이라구!"
본인생각에도 민망했던지 태화 얼굴을 붉은색 기를 띄우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찌됐건간에 끝까지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보이는 태화를 보며, 남자는 이제서야 더이상 이곳에 있는것은 시간낭비라고 판단했는지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는 자신의 형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도를 넘는 순간. 다시만날 그날에는 결코 이정도로 끝날거라 생각하지 마라."
첫댓글 2050년 4월5일의 고등학생(3)파트까지의 전글이 수정되었습니다. 졸린상태에서 작성하다보니 글이 엉망이군요
앞으론 정상적인 상태일때에만 글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스피드도 빠르게 진행할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