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한국 주식 저평가, 정부 때문이라는 소리 좀 그만 듣자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입력 2023.03.28. 00:00업데이트 2023.03.2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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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민연금 손실 대부분은 국내 주식투자에서 나와
이전 정부의 전기료 동결로 한전 적자 32조, 시총도 30조 증발
가장 중요한 일은 해서는 안될 일 안하는 것
통신·금융 등 정부 개입은 기업 주가 올리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이 작년 기금운용에서 79.6조원의 손실과 -8.22% 라는 최악의 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2년 치 연금 지급액을 날렸고, 국민연금의 재정계산 시에 전제로 하는 수익률이 연평균 4.5%라는 것을 감안하면 12.7%의 수익률 차질을 낸 것이며, 기금고갈 연도가 3년 정도 앞당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불가피한 연금개혁이 더 화급하게 되었다.
27일 오후 서울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5.74포인트(0.24%) 내린 2,409.22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코스닥은 전 거래일 보다 3.58포인트(0.43%) 오른 827.69에 장을 마쳤고, 원달러환율도 7.2원 오른 1,301.5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2023.3.27/뉴스1
연금개혁은 보험료를 더 올리거나,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거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등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을 평균 1%만 높이면 매년 1조원 정도의 수입을 늘릴 수 있고 5년 이상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만이 아닐 것이다.
일차적인 반응은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적어도 기금운용본부는 서울로 되돌려야 한다든가, 6개 관계부처 차관, 근로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대표 12인과 관계전문가 2명 등 ‘정치적’ 구성으로 되어 있어 운용 수익률을 올릴 의사도 능력도 미약한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을 갈아엎어야 한다든가, 운용 인력의 양적, 질적 확충, 과감한 처우 개선 등인 듯하다. 모두 당연한 일들인데 막상 해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한 정치인들이 그대로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벌써 연금공단이 전주로 이전한 후의 수익률이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높다는 등 반대의 주장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어려운 일들도 결국은 해야 하겠지만 우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년 손실이 대부분 국내 주식투자에서 발생했는데 정부가 주가를 떨어뜨리는 일을 안 하기만 해도 손실은 훨씬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전이다. 2018년 6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이후 무분별한 탈원전으로 발전 원가가 상승한 데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전기요금을 동결한 결과 한전 적자가 작년 32.6조원에 이르렀고 주가는 16년 5월 6만3000원에서 작년 10월경 1만6750원까지 떨어져 시가총액이 30조원이나 증발했다. 한전의 주식은 정부, 기재부, 국민연금이 32.9, 18,2, 6.4% 합계 57.5%나 가지고 있으니 공공부문이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다. 한전이 정상적인 이익을 냈을 경우 거둘 수 있었을 법인세 손실도 15조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일을 한 번 저질러 놓으면 다음 정부도 바로잡기가 어렵다. 전기요금 안정(?)은 공짜가 아니고 결국은 국민연금 손실과 정부의 세입 감소 등으로 그 대가를 치렀고 그 혜택은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누렸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을 어렵게 해서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은 역대 모든 정부가 서민생활 보호를 내세워 상습적으로 해 왔는데 지난 정부는 이를 이론화, 체계화까지 했다. 마차에 말을 끌라고 하는 일로 끝나버린 지난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바로 알기’(국민이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책자를 보면 최저임금의 파격적 인상 다음가는 정책 수단이 의료, 보육, 주거, 교육, 통신, 교통의 가격을 억제하여 서민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 업종에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역대 정권이 더 돈을 버는 꼴을 못 봐주는 업종이 금융 업종들이다. 통신요금과 함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로 인하 압력을 받는 카드 수수료는 이제 더 깎을 게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년 초 은행들의 과도한 이익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 4대 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이 14조원 가까이 날아갔다.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는 외국계 은행이 있는 것만으로는 은행업이 한국에서 “과도한” 이익을 내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로 불충분한 모양이다.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것도 주가를 많이 떨어뜨리고 있는 성싶다. 좋은 경영 성과를 올리지도 못하는 CEO와 사외이사가, 그것도 전 정권에서 선임된 사람들이, 서로 뽑아 주면서 연임을 계속하는 것은 문제라는 데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지배구조 개선을 주가를 떨어뜨리는 서투른 방법으로 추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발휘는 주가가 올라가게 행사해야 한다.
한국 주식의 저평가는 일정 부분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제일 쉬운 개혁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안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