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1. 금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용서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인가?" 시편 86편
나는 매일 묵상에 올리는 "소재"가 다양하다고 하겠다.
"묵상 소재"가 다양한 만큼 묵상을 읽으시는 분들의 "반응"도 다양한 것 같다.
내가 이전에 택시 타고 전도할 때는 택시 기사님에게 5만 원씩 팁을 드리면서 전도를 한다고 했다. 사실 5만 원 모두가 팁인 것은 아니기도 하다. 5만 원에서 택시 요금을 빼면 3만 원에서 3만 5천 원가량이 팁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그렇게 "금액"을 묵상에 올리지 말라고 하셨다. 이유는 이 세상에 살면서 5만 원이 없어서 힘든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내 묵상에 내가 택시 기사님에게 5만 원이나 되는 돈을 팁으로 드린다는 말에 마음에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런데 내가 또 이와 비슷한 말을 어제 들었다. 평소에 내 묵상 글을 읽으면서 택시기사님들에게 주는 팁의 액수 때문에 언제인가 나에게 조언(?)해 주고 싶으셨다고 한다.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 헌금을 보내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아껴서 귀한 헌금을 보냈는데 그 헌금을 그렇게 쉽게(?) 기사님들에게 팁으로 준다면 마음이 상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전도하려면 그 사람들은 직접 못 하겠냐는 것이다. 그래도 헌금으로 보냈으면 그렇게 택시 기사님들 팁으로 풍성하게 주는 것을 자랑(?)은 하지 않는 것이 헌금 내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냐는 그런 맥락의 조언이었다.
아!! 내가 묵상에 기사님들 드리는 큰 팁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면서 내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올렸을 때는 "5만 원"이라는 돈이 내 돈이 아니고 내가 헌금 받은 것이기에 쉽게 쓸 수 있는 돈이라서가 아니라 한 영혼을 구하는데 "5만 원"이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러한 나의 동기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묵상을 쓸 때 내 묵상에 올라가는 개인적인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원하고 읽는 사람들에게는 "덕"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글을 올리기 때문에 일단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동기"를 잘 아시니까 말이다.
그러나 읽는 이들에게 "덕"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구나 하는 것은 이렇게 묵상에 대한 조언의 글을 전해 들을 때라고 하겠다.
그래도 묵상을 읽는 분들의 "다양한 이해"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의 택시기사님들에게 드리는 "커다란 팁"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은 기사님들에게 5만 원은 못 드려도 이전에는 드리지 않던 팁을 드리면서 전도를 하게 되었다고 감사하다는 간증도 나에게 많이 전해졌고 어떤 분은 자신은 그렇게 전도할 기회가 없다고 "지정 헌금"으로 택시기사님들 전도할 때 써달라고 헌금을 보내온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5,000원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역후원금"을 받는데 내가 택시 기사님들에게 주는 팁은 이렇게 받은 헌금에서 나가지 않는다.
택시 기사님들 팁 같은 것은 나의 개인 전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라 내가 받는 강사비라던가 내 월급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힘들게 벌고 아껴서 선교헌금 보내주신 헌금이 이런 용도로 쓰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벌고 수고한 나 개인의 재정을 전도의 목적으로 사용한 방법의 한가지로 소개(?)를 한 것이라고 하겠다.
오늘 이글을 올리는 것은 혹시라도 내가 묵상에 올린 택시 기사님들 팁 또는 식당에서 내가 과하게(?) 전도를 목적으로 드리는 모든 팁은 "오병이어" 헌금 보내시는 분들의 헌금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드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올려 드린다.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이유에서라도 마음 상한 분들이 있었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도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사람에게 덕"이 되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끝 날에는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직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일을 직고"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때 하나님이 칭찬하실 일들만 내가 이 땅에서 행하였기를 기도드린다.
개역개정 시편 86편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You, Lord, are forgiving and good,
abounding in love to all who call to you.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이 지은 각종의 죄들을 용서해 주기를 즐거워하시는 이유가 그분의 "선하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닮고 싶어요!"라고 고백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선하심을 닮는" 모습 중 하나는 우리도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에게 하는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을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운동할 때 즐거울 수 있는 운동은 우리가 운동하면서 "잘하는 운동"일 것이다.
잘하는 운동을 하면 일단 재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종목의 운동을 잘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그 운동 종목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니 말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요?
얼마나 자주 하면 그 일이 "즐거운 일"로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익숙한 태도가 될 수 있을까요?
"용서에 인색한 사람"은 "용서를 즐거이 하기"가 너무나 힘이 들겠지요?
"용서"가 즐거우려면 "용서할 기회"가 아주 많이 있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묵상 구절이네요. 주님!
저는 용서를 쉽게 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꽁하니... 용서는 안 하고 용서해야 할 일들을 마음에 두고두고 새기면서 마음이 불편한 사람인가요?
죄에서도 자유하기 원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도 자유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에서 설교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제가 신학교 졸업하고 처음 전임사역자로 사역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제가 케냐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제 사역의 "첫사랑인 교회"에 와서 설교하는 것인데 나의 이전 제자들도 오늘 오는 것 같습니다. ^^
제가 선교사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믿음의 진보와 성숙의 보고"를 설교시간을 통해 잘 전해 드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개역개정 시편 86편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10. 11.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용서한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은 용서
이 말과 하나님의 선하심
이 말씀이 잘 연결되는
그러한 묵상 구절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사랑하는 내 딸
용서하여라.
용서하여라.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너의 이웃을 용서할지니라.
네가 용서하게 되면
너에게 하나님으로부터
평강이 내릴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이 임할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너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만나게 되는
축복이 임할 것이니라.
용서할지니라.
용서할지니라.
네가 할 수 있음이라.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니라.
그래서 나는 너로 하여금
자유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함이라.”
사랑하는 그대여
용서할 사람이 떠올랐습니까?
더 많이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입술로 먼저
고백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누구를 오늘 용서한다.
나는 누구누구를 오늘 용서한다.
내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의 의지를 사용하여서
이렇게 선포하는 이러한
말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선포하고 나면
너무나 신기한 것은
감정은 조금 있다가
아니면 내일, 아니면 모레
아니면 한 달 뒤에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말로
선포하는 것은
우선순위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용서해야 할 사람을
과감하게 용서하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