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궁 슈터 vs. 악바리 농구
많이들 지적하고 있듯이, 국민을 상대하는 신한의 약점은 3점 슈터 부재가 아니다. (물론 있으면 좋지만)
김연주의 3점이 폭발하면 신한이 경기를 쉽게 주도하는 건 맞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는 유승희와 김아름의 활동량이 더 도움이 된다.
마치 다이어트약과 꾸준한 유산소 운동과 같은 관계.. 제대로만 약빨이 든다면 약만한 게 없지만, 확률이 낮은 선택이다.
1쿼터에서도 유승희 김아름 투입과 함께 신한의 움직임, 특히 수비 로테이션이 정말 많이 개선되었다.
박지수는 그저께와 같은 박지수가 아니었다. 국민도 나름 시즌 막판 페이스를 조절했지만 시즌 전체로 볼 때 박지수의 출장시간이
많이 누적되어 있었고, 하루 휴식 후 원정길에 나선 터라 스텝이 느려졌고, 공격할 때 보드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신한 라인업의 높이가 전체적으로 높아지자 박지수는 단타스에게 공격 롤을 많이 맡기고 1쿼터는 수비에 전념하는 모습.
그래도 박지수의 진가는 파리채 수비력에 있기 때문에.. 분위기는 신한이 갖고 있지만 점수를 앞서지는 못했다.
어쨌든 신한으로서는 1차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단지타워를 상대로
"아 이렇게 하는 거였네"라는 걸 느낀 것만으로도 이미 큰 소득이 있었다.
# 단비야, 최연장자는 나야.
김단비는 최연장자인 김연주의 슛이 터져줘야 한다고 발언해서, 친한 연주언니를 신나게 놀려주었다.
평소에 연주언니가 미모가 예전만 못하다고 질투 농담을 던지고, 86년생이 식스우먼상 받는다고 장난칠 만큼 친해서
마침 신기성 감독이 준비한 전술의 키포인트기도 해서 김연주를 지못지목했던 것 같다.
신한 경기를 볼 때면 자주 생각하는 건데, 신한에서 제일 중요한 슈터는 김연주가 아니라 곽주영이다.
아무래도 체력이라든가 점프력 같은 한계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미들슛이 터지는 날의 곽주영은
스트레치형 빅맨의 장점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보급형 단타스?
게다가 곽주영의 페이보릿 각도는 탑에서 몇 발 들어온 정면이나 엘보우도 아니고, 사이드라는 점도 장점.
엔드라인이 또 한 명의 수비수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은 드리블 치는 선수한테 그런 거고,
패스를 받아 바로 올라가는 슛의 경우에는 좌 우 중 한 쪽에만 수비수가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시야 확보가 된다.
게다가 가드나 포워드들은 아무래도 엔드라인에 대한 부담 때문에 코너보다는 탑이나 윙에서부터 돌파를 하기 때문에
인사이드 수비수는 기본적인 수비 시선이 옆보다는 앞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사이드 슛의 단점은 백보드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과 백코트해야 하는 이동 거리에 대한 부담인데
곽주영은 거리감이 문제지 좌우는 참 잘 잡힌 슛을 던진다는 점에서 백보드는 큰 제약이 되지 않고
백코트는.. 국민 팬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곽주영이 백코트가 좀 늦게 이루어져도 국민의 속공이 별로 터질 일은 없다.
오늘 곽주영은 원래 잘 하던 것도 잘 했고, 정말 이 악물고 뛴다는 생각이 들 만큼 움직임과 집중력이 좋았다.
곽주영이 10년만 젊었어도 10분만 더 그 정도 폼으로 뛸 수 있다면 오늘 경기는 신한이 더 쉽게 잡았을 것이다.
원래도 신한은 몸싸움은 좋은 팀이다. 거기에 최연장자 주장이 저렇게까지 여기저기서 비벼주는 게 시너지가 되었다.
# 5반칙으로 퇴장 당한 건 누구?
물론. 박지수의 5반칙은 정말 경험 부족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곽주영과 팔이 꼬인 장면은 심판 콜이 좀 아쉬웠지만,
사실 슛 동작 마무리에 손을 두 번 친 장면들은, 따라가는 발이 반 발 늦었음에도 의욕적으로 막아 보려다가 나온 것이다.
물론 그런 투쟁심과 수비 의욕, 몸싸움에 대한 용기 등은 작년 대비 정말 많이 성장한 부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오늘 박지수의 발은 1차전에 비하면 무거웠고, 그래서 자기가 머리로 생각한 타임보다 조금씩 늦게 움직였다.
정말 좋은 선수는 매 경기 풀타임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정규리그 MVP: ???)
그보다는 그 경기 컨디션에 맞춰 그 안에서 베스트 무브를 해낸다. 그게 쌓이면 늘 기본 이상은 하는 선수가 된다.
플레이오프, 쉬면서 기다리는 우리은행, 박빙의 점수차, 여러 가지가 박지수의 머리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3쿼터에 4반칙이 된 박지수는, 4쿼터 초반에는 잠시 휴식을 취한 단지타워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가 했지만,
결국 7분 3초를 남기고 이번에도. 이미 제자리에서 안정적인 리바운드를 잡는 중인 곽주영 옆에서 무리하게 뛰다 루즈볼 파울.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5반칙으로 박지수가 퇴장 당했지만, 막상 오늘도 단타스는 대책 없이 강했고
커리의 승부사 기질도 여전했으며 김민정은 기대치의 120%를 보여주었다.
올해의 발 상태로는 노마크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거의 안 들어가게 됐지만, 어쨌든 노마크에선 위력적인 강아정도 있었다.
그리고 신한도 세 쿼터 동안 정말 다리가 풀리도록 뛰었기에 4쿼터에도 풀 전력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왠만하면 농알못 주제에 농구 도사들인 감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다. (국민 팬이 아니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그렇지만 박지수의 5번째 파울이 불렸을 때, 박지수와 안덕수 감독의 멘탈이 같이 나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이렇게까지 대책 마련이 안 되어 있었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이긴 신한에게 재 뿌리는 소리일지 몰라도, 신한은 마지막 몇 번의 공격과 수비에서 이른바 "삽질"이 꽤 있었다.
김아름은 헬드볼을 하나 낭비할 때까지만 해도 이번 헬드볼은 신한 볼이고, 1분 남았는데 또 헬드볼이 나오겠냐 했겠지만,
헬드볼은 나왔고 심성영의 슛과 유승희의 슛이 서로 엇갈렸다면 승부는 바뀌었을 수 있었다.
그레이와 쏜튼도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실수를 몇 번이나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국민의 벤치 파워로 경기를 뒤집는 모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결국에는. 멘탈갑 강아정의 자유투 2구에, 맞불로, 김단비가 혼신의 자유투 2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 클러치 승희
클러치 승희 하면 쇼트트랙의 박승희인데. 오늘만큼은 유승희였다.
선수 외모는 솔직히 난 열심히 뛰는 모습은 다 똑같이 예쁜데.
미녀가 많은 (특히 검은 정장 동안 미녀 심쿵..) 신한에서, 유승희가 똑같은 실력에 조금 더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였다면
지금보다 더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겼지만 누구랑 누구는 솔직히 잘한 건 아니라던 신기성 감독도,
유승희 얘기에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활약이었다.
신한이 올해 농구를 청주에서 끝낼 지, 아산에서 끝낼 지, 인천에서 끝낼 지 아직 모르겠지만,
작년에 최은실 김단비(하)가 그러했듯이 유승희도 올해 플레이오프 2차전 이 한 경기가 정말 성장판을 활짝 열어줄 것 같다.
(진짜로 키가 자라면 더 좋고)
# 단비는 단비. 가뭄에 단비.
신한 외국인 콤비는 대략 이랬던 기억이다.
초반: 그레이가 아직 롱디일 때 각성하기 전에 쏜튼의 상종가.
중반: 그레이는 이제 막 남친트레이닝 시작하는 와중에 쏜튼이 불의에 유파울탄에 맞는 등 순식간에 7연패.
후반: 그레이 각성 완료. 7연승. 일찌감치 3위 확보하고 쏜튼 부활에 안간힘.
...
지금: 그레이는 좀 꺾였는데, 쏜튼은 아직 올라오는 중.
사실 신기성 감독이 미디어데이 인터뷰하기 전에도, 신한은 김단비가 해결해 줘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1차전과 2차전을 보면 그런 신한의 상황은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오늘같이 김단비가 혼자만 빨리감기 수준의 스피드로 돌파해서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쏙쏙 넣어 버리면
세로 수비는 강려크하지만 가로 수비가 그에 못 미치는 국민으로선 참 골치가 아플 것이다.
쏜튼이 오늘같이 하체장사다운 수비와 스크린을 보여준다면 역시나 김단비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국민으로서는 심성영을 안 쓰면 느리고, 쓰자니 낮고, 개인 기량은 국민의 주전들이 신한은 물론 우리조차 앞서는데도
아직도 완전히 1번을 활용하는 베스트 조합을 만들지 못한 느낌이다. 근데 심성영 정도의 장점을 갖춘 다른 1번도 없다.
어쨌든 해결사 가뭄의 신한에는 단비가 내렸고, 오늘 중계 마지막 장면은 (입모양으로 추측)
"어우 언니 나 죽을 거 같어"
라며 곽주영을 안으러 걸어가는 김단비로 장식되었다.
(사진출처: 점프볼)
# 근심어린 3점
승리는 신한이 했지만, 거의 50:50인 경기였다. 유승희가 잘한만큼 강아정도 잘했고.
박지수가 못 채운 부분은 단타스+커리가 쏜튼+그레이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굳이 따지자면 신한이 51:49로 이긴 셈인데, 김단비가 아름답게 성공한 5~6번의 돌파 후 노마크 레이업으로 0.5,
그리고 윤미지가 3쿼터 버저 직전에 터뜨린 근심어린 3점이 0.5를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최종 스코어가 4점 차였던 것도 있지만, 그 3점이 없이 신한이 4쿼터 초반 국민의 득점 폭격을 맞았다면
그 시점쯤에 경기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아무리 버저 때문에 긴가민가 했어도 그 거리 슛을 성공했으면 좀 더 좋아해도 될 것 같은데. 감독님 허락 못 받아서 그랬나
어쨌든 나머지 모든 선수는 저절로 웃음이 터졌고 주로 국민의 독무대였던 3쿼터를 오히려 앞서면서 마무리한 귀중한 득점이었다.
덧.
아래에 센스 있는 멤버 분이 적어 주셨듯이, 오늘의 승자는 위성우 감독일지도 모르지요.
그 얘기 나온 김에, 저는 1) 이 시점에 외국인 교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2) 그러나 우리은행이 꼼수를 부린 거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딱히 우리나 위 감독의 팬도 아니고 안티도 아닙니다만, 외국인 선수들은 다시 오는 경우도 많고
그 바닥도 뻔할 것이기 때문에 정보 공유도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시즌에 함께 고생한 선수를 챔결 직전에
아무 이유도 없이 교체한다면 이번 시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은행 구단과 위 감독에 대한 외국인 선수들의 인식이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인성이나 성품을 논하기 이전에, 그 정도 부작용도 모를 만큼
우둔한 감독은 아닐 거 같습니다.
첫댓글 정은순 해설위원이 경기 초반 박지수 파울 때 한 말이 생각났어요. 박지수는 큰 경기 파울 관리에 소중한 경험을 했을겁니다.
맞습니다. 이제는 흔히 말하는 "서 있기만 해도" 팀에 도움이 되는 존재니까요. 정미란 선수의 의지는 높게 사지만, 앞으로는 박지은 선수나 다른 백업 센터들이 더 성장해서 파울&체력 관리를 해 주면 좋을 거 같아요.
사진속의 김단비선수와 곽주영선수 표정이 어제 경기를 보여주네요.
올 시즌 신한 사진 중에 거의 베스트 샷이 아닐까 하는.. 유승희 선수의 한결같은 표정도 왠지 더 재미있네요 ㅎㅎ
농구 다시 보는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 어제 같은 경기라면 여농팬으로서 또 다시 보고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