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族譜)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족보(族譜)는 관향(貫鄕)을 단위로 하여 같은 씨족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책으로,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한 씨족의 계통도와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이다.
족보(族譜)는 다른 말로 보첩(譜牒)이라고도 하며, 그 효시는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북송의 대문장가인 삼소(三蘇; 蘇軾과 그 아들 蘇洵 蘇轍 형제를 함께 일컬음) 집안에서 우수한 족보가 만들어져 이것이 족보의 전래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의종(毅宗)때 김관의(金寬毅)가 작성한 왕대종록(王代宗錄)과 임경숙(任景肅)이 작성한 선원록(璿源錄)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사가(私家)의 족보로 체계적인 형태를 갖춘 최초의 것은, 조선 세종 5년(1423) 양도공(良度公) 류영(柳潁)이 편찬한 문화류씨 영락보(文化柳氏永樂譜)인데, 영락보는 현전하지 않고 그 서문만이, 142년 뒤에 류희잠(柳希潛)이 편찬한 문화류씨 가정보(嘉靖譜)에 실려 전해 온다. 그런데 이 영락보가 간행본인지 필사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족보는 그 53년 뒤인 성종7년(1476년)에 편찬된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인데, 지금 서울대학교 도서관인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후 명종17년(1565년)에 문화류씨 두번째 족보인 가정보(嘉靖譜)가 간행되었는데, 그 원본 10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 조선 초기에 발간된 족보는 남양홍씨(1454), 전의이씨(1476), 여흥민씨(1478), 창녕성씨(1493) 등이다.
요약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문화류씨 영락보이며, 현존하는 최초의 족보는 성종(成宗) 때(1476) 발간된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다. 그리고 혈족(血族) 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明宗)때 편찬된 문화류씨 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다.
족보의 대강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와 관련된 용어들을 살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始祖)아래 중시조마다 각각 다른 본관(本貫)을 가지고 있는 씨족 간에 종합 편찬된 족보이다. 다시 말해서 본관은 서로 다르지만, 시조가 같은 여러 종족이 함께 통합해서 편찬한 보첩을 말한다. 대동보는 대종보, 대동세보, 대동종보, 대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는 파보를 의미하기도 한다. 김해김씨 대동보, 전주최씨 문영공 대동보 등이 그 예이다.
세보(世譜)
두 개 파 이상의 종파가 합하여 합보로 편찬한 보첩이다.
파보(派譜)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한 파(派)만의 계보와 사적(事蹟)을 기록하여 편찬한 보첩
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直系尊屬)과, 비속(卑屬)에 이르기까지 이름자와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으로 보첩 편찬의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을 계통적으로 나타내는 도표로서, 한 씨족 전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이 수록된 것이다.
가첩(家牒)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보첩을 말한다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 내어 집성(集成)한 책으로, 족보의 사전(辭典) 구실을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자기 족보뿐만 아니라, 남의 족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만 했다. 조선시대에는 가문배경에 관한 요건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였으며, 양반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족보에 대한 지식을 통 털어 보학(譜學)이라 하였는데, 이는 양반의 필수 교양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보학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시조(始祖)
제일 처음의 선조로서 첫 번째 조상
비조(鼻祖)
비조는 시조 이전의 선계조상(先系祖上) 중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한다. 대개 고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비조라는 말은, 사람이 처음 배태될 때는 코[鼻]가 제일 먼저 생긴다고 옛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중시조(中始祖)
시조 이하에서,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조상으로서, 모든 종중(宗中)의 공론에 따라 추대된 조상
파조(派祖)
후손의 계통을 분명하게 밝히고 촌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가까운 자손끼리 별도로 분파조를 만들어 확인 단합하는데 추존된 조상
현조(顯祖)
학행, 공신, 절신(節臣), 청백리 등의 훌륭한 공적을 남긴 조상
세(世)와 대(代)
세와 대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조를 1세(世)로 하여 아래로 내려갈 경우에는 세(世)라 하고, 자신을 빼고 아버지를 1대(代)로 하여 올라가거나, 아들을 1대로 하여 아래로 내려가며 계산하는 것을 대(代)라 한다. 대를 셀 때는 대불급신(代不及身)이라 하여, 자신을 거기에 넣어 계산하지 않는다.
즉 세를 셀 때에는 시조를 넣어 세지만, 자기를 기준으로 한, 대를 말할 때는 자기를 넣어 세지 않는다. 즉 조상에서 30세 되는 사람의 조상은 29대조가 된다. 그래서 대는 세에서 1을 뺀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자(字)와 호(號)
지금은 이름을 하나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여러 가지로 불렀는데,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을 아명(兒名)이라 하고, 16세가 되어 관례를 행하면 성인으로 대우하여, 윗사람이 다시 자(字)를 지어 주었다. 호(號)는 낮은 사람이나 또는 허물없이 부르기 위하여 별도로 지어 불렀는데, 자신이 짓거나 남이 지어 준다.
호에는 존칭을 붙일 수 있지만 자에는 존칭은 쓰지 않는다. 또 호는 누구나 부를 수 있지만, 자는 동료지간이나 아랫사람에게만 쓴다.
함(銜)과 휘(諱)
살아 계신 분의 이름을 높여서 부를 때 함자(銜字) 라고 하며, 극존칭으로서 존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는 휘(諱)라고 하며, 여기에는 이름자 사이에 글자를 뜻하는 ‘자(字)’를 넣어서 부른다. 곧 돌아가신 아버지의 함자가 홍길동(洪吉童)이면, ‘홍(洪) 길(吉)자 동(童)자입니다.’ 라고 말한다.
시호
시호는 죽은 뒤에 그 생전의 공덕을 기리어 임금이 추증하던 이름이다. 시호를 내릴 때는 아무렇게나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호로 쓸 수 있는 글자와 각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규정해 놓은 시법(諡法)에 따라 엄정히 행하였다.
조선시대에 시호로 사용하던 글자는 처음에는 사기(史記)에서 추출한 194자였는데, 이후 추가로 107자를 확대하여 301자까지 늘어났다. 그 중 활용 빈도가 높았던 글자는 약 120자 정도였는데, 文, 忠, 貞, 恭, 襄, 靖, 良, 孝, 壯, 安, 景, 武…등이 그것이다. 시호 중에 문충이나 충무 등을 익히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글자에도 여러 가지 덕목을 두었는바, 몇 가지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문(文)
經天緯地(경천위지) :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린다
道德博聞(도덕박문) : 도덕이 있고 널리 들은 것이 많다
道德博文(도덕박문) : 도덕이 있고 글을 널리 읽는다
博學好文(박학호문) : 널리 배운 것이 많고 글 읽기를 좋아한다
博學多聞(박학다문) : 널리 배운 것이 많고 남에게 들은 것이 많다
충(忠)
危身奉上(위신봉상) : 자기 몸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든다
事君盡節(사군진절) : 임금을 섬김에 충절을 다한다
盛衰純固(성쇠순고) : 번성하거나 쇠퇴함에 상관없이 충절을 지킨다
慮國忘家(여국망가) : 나라를 걱정하여 집안일을 잊는다
推賢盡忠(추현진충) : 어진 사람을 추대하고 충성을 다한다
정(貞)
淸白守節(청백수절) : 맑고 곧으며 절개를 지킨다
淸白自守(청백자수) : 맑고 곧으며 자기를 지킨다
直道不撓(직도불요) : 곧게 도를 지키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不隱無屈(불은무굴) : 숨은 생각이 없고 비굴함이 없다
大慮克就(대려극취) : 크게 헤아려 능히 이룬다
공(恭)
敬事供上(경사공상) : 일을 공경스럽게 하고 임금에게 이바지한다
敬事奉上(경사봉상) : 일을 공경스럽게 하고 임금을 받든다
敬順事上(경순사상) : 일을 공손하게 하고 임금을 섬긴다
尊賢貴義(존현귀의) :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의리를 귀하게 여긴다
執心堅固(집심견고) : 마음가짐이 굳고 단단하다
이들 중 시법에서 누구나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시호가 바로 '文'이었다. 그래서 시호 중에서는 文이 가장 으뜸인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文'을 풀이하는 구절에는 경천위지(經天緯地)과 도덕박문(道德博聞) 등이 있다. 전자는 공자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고, 동방의 현자들에게는 주로 후자인 '道德博聞'을 썼다. 그 뜻은 도덕이 깊고 견문이 넓다는 뜻이다. 그런데 道德博聞의 聞은 問으로 쓴 예도 있어서, 견문으로 풀이하지 않고, 학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晦軒先生實紀나 軒安先生名行記 등 대부분이 도덕박문(道德博聞)과 같이 '들을聞'자로 되어 있으나, 紹修書院 文成公廟에서는 도덕박문(道德博問)과 같이 '물을問'자로 되어 있다. 그러니 바른 도덕의 길을 가고 학문이 넓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충은 주로 '危身奉上'이란 덕목을 썼는데, 몸이 위태함을 무릅쓰고 임금을 잘 받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충이란 시호를 받은 사람은, 도덕의 길을 가고 학문이 넓으며, 몸이 위태함에 처해서도 임금을 잘 받들어 모신 인품이 있기 때문이란 뜻이다.
항렬(行列)
항렬이란 같은 혈족사이에 세계(世系)의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한 문중의 법이며, 항렬자란 이름자 중에 한 글자를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혈족 같은 세대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돌림자라고도 한다. 항렬자를 붙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오행 상생법(五行相生法)으로 쓰는 방법
오행에는 상생법(相生法)과 상극법(相剋法)이라는 것이 있다. 서로 살리는 법과 서로 충돌하는 법이다. 상생법은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의 다섯인데, 이 차례인, 목․화․토․금․수가 포함된 글자로 순서를 삼아 항렬자를 정하는 방법이다.
항렬자의 배치는 이름이 두 자일 경우, 세世에 따라 앞엣자와 뒤엣자에 각각 번갈아 둔다. 만약 1세의 항렬자를 이름의 첫 글자에 두었다면, 2세의 항렬자는 이름의 끝 글자에 둔다.
보통 이 오행 상생법에 의한 항렬자 배치법을 가장 많이 쓴다.
참고로 창녕 장씨(昌寧張氏)의 오행 상생법에 의한 항렬자의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항렬자 | 錫○ 鎭○ 金 | ○洙 ○淳 水 | 榮○ 相○ 木 | ○烈 ○熙 火=灬 | 圭○ 在○ 土 |
② 십간(十干)순으로 쓰는 방법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순차적으로 쓴다.
③ 십이지(十二支)순으로 쓰는 방법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순차적으로 쓴다.
④ 숫자를 포함시키는 방법
이름자에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가 포함된 글자를 순차적으로 쓴다.
一이 포함된 글자의 예:大 在,
二가 포함된 글자의 예:元 崇,
三이 포함된 글자의 예:生 全,
四가 포함된 글자의 예:羅 益
-石山-
[출처] 족보(族譜)는 언제부터 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