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즈음. 그러니까 부엌이라는 공간에 대해 처음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다. 배가 고파질 때면 슬그머니 일어나 쪽문 밖으로 사라졌던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상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보글보글 끓여낸 구수한 된장찌개와 장아찌 두어 종류, 들기름 향기 진한 김구이가 전부였지만 수라상과 견줄 만한 풍성함이 있었다. 어머니의 부엌은 일종의 마술 상자 같았다. 아침 댓바람, 생선 장수에게 산 꽁꽁 얼린 동태 한 마리는 칼칼한 국물과 부드러운 속살로 재탄생해 고단한 아버지의 속을 풀어주었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는 두부 장수가 건네준 두부는 이내 고소한 부침이나 김치찌개가 되었다. 춥다거나 불이 있어 위험하다는 여러 이유로 들락거리지 못하게 했던 어머니의 부엌은 예상보다 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타일을 붙여낸 나지막한 부뚜막과 연탄 아궁이 위에 걸린 커다란 솥, 석유 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빨간 곤로(풍로) 하나와 찬장이 전부였다. 국자와 뒤집개는 냄비 몇 개와 함께 벽에 걸려 있었고, 수도 아래에는 붉은 고무 함지 하나 가득 물이 담겨 있었다. 미닫이문이 달린 찬장 안에 든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과 유기로 만든 간장 종지의 병렬식. 어머니의 작은 부엌은 소박하고 단정하며 말갛게 빛이 났다.
부엌의 역사, 한국의 역사를 닮다
장작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짓던 아궁이로 대변되는 전통 부엌이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신여성들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주택이 건축되면서 우리의 전통 가옥도 서서히 변화를 맞이했고, 서양이나 일본의 생활양식과 비교하며 한국 부엌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되기 시작했던 것. 신여성들은 부엌의 질적 향상이 있어야 여자들이 노동에서 벗어나 공부와 자기계발을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엌 환경은 생각처럼 쉽게 변화하지 못했다. 부엌의 개량이란 의식이나 의지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생활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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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정갈했던 한국의 전통 부엌 풍경 |
장을 담그는 일은 주부들의 가장 큰 연례 행사였다. |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은 채반들. |
6·25 전쟁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공급하기 시작한 ‘국민주택’은 신식 부엌의 초기 모형이 반영된 주거 공간이자 서민의 희망이었다. 산업은행에서 집을 사기 위한 융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기 위해 아버지들은 새벽잠을 설쳤고 어머니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국민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서구식 주택처럼 부부 침실을 따로 두고, 입식 부엌과 욕실, 화장실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족계획과는 거리가 먼 시대였기 때문에 비좁은 주택 안에서 많은 식구가 부대끼며 살아야 했고, 이들의 음식을 장만하기에 부엌은 너무 불편했다. 장마철이면 부엌으로 물이 들어왔고, 겨울이 되면 상하수도관이 쉽게 터져 애를 태우게 했다. 당시 주부들이 가장 살고 싶어했던 집은 부엌 안에 수도가 설치되어 있는 최신식 주택이었다. 연탄 한 장의 추억, 그리고 간장 1950년대 후반, 연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인데 이후 연탄은 가장 대중적인 취사, 난방의 재료가 되었다. 나무를 때는 부엌의 아궁이 구조를 바꾼 주인공도 바로 연탄이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불을 때는 풍경이 점점 사라졌고, 대신 구멍이 숭숭 뚫린 연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연탄은 값싸고 편리한 재료였지만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은 지속적으로 일산화탄소에 노출되어야 했다. 놋그릇이 사라진 것도 연탄을 사용하면서부터다.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연탄가스는 놋그릇의 색을 변하게 했고, 주기적으로 짚과 양잿물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닦아주어야 하는 놋그릇은 먹고살기 바쁜 시절, 금세 애물단지가 되었다. 관리하기 힘든 놋그릇이 고물상에게 싼값으로 넘겨지는 대신 가볍고 사용하기 쉬운 양은그릇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쉽게 찌그러지고 품위도 없었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이나 생활상은 품격보다는 편리함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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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그릇과 서양 커트러리와의 만남. 1970년에 조우한 동서양의 오브제들은 다른 듯 닮아 있다. |
앞쪽은 모두 1970년대 생산된 샘표 간장. 유리병으로 되어 있어 묵직하다. 뒤쪽은 현재 모델중 하나. |
난로 위에 두어 따끈하게 데워 먹던 겨울의 양은 도시락은 작은 축복이었다. |
놋그릇과 양은그릇에 이어 탄생한 것은 바로 스테인리스 그릇이다. 놋그릇보다는 사용이 쉽고, 양은그릇보다는 견고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기에는 가격이 아주 비쌌기 때문에 주부들은 스테인리스 그릇 세트와 곰국을 끓이기 위한 솥 등을 소위 월부(지금의 할부)로 들여놓거나 동네 주부들끼리 계를 부어 구입하기도 했다. 아무개의 어머니가 이렇게 장만한 스테인리스 그릇 세트는 부엌과 마루에 전리품처럼 장식되었다. 콩을 불리고 삶아 갈아서 메주를 쑤어 담그는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하는 간장도 점차 사라졌다. 조리대 위에 대량생산 과정을 거친 간장이 놓이기 시작했다. 화학조미료도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고기나 멸치 등의 국물 내기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값이 싸면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화학조미료는 주부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주부들의 허리를 펴게 해준 입식 부엌의 탄생
1960년대 이후에는 서울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즈음에 탄생한 신흥 주택에는 요리하는 동안만큼은 서서 할 수 있도록 입식 조리대가 설치되었고, 찬장이 등장했다. 부뚜막 선반에 그릇을 진열해두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찬장이 등장하면서 부엌은 깨끗하게 정돈되기 시작했다. 더욱 위생적으로 보이기를 바라는 주부들은 시멘트나 타일로 부엌을 마감했다. 기름기가 많은 그릇을 씻기에 편리한 주방용 세제, 겨울철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 집의 주부들을 위해 방한용 고무장갑도 출시되었다. 입식 부엌이 속속 설치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부엌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느낌이 구식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현대적인 이미지를 가진 ‘주방’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입식 부엌의 비약적인 발전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중산층 주부들의 노동을 도왔던 식모가 사라지면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잘사는 주부들이 직접 일을 하게 되면서 현대식 부엌을 더욱 절실하게 원했던 것. 이런 욕구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싱크대. 싱크대와 수납장 등이 설치된 주방을 배경으로 주부가 해먹에 누워 환하게 웃고 있는 광고는 현대식 부엌 시대가 주부들의 삶을 얼마나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싱크대는 외국의 것을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큰 냄비나 깊은 그릇을 사용하는 한국의 주부들에게는 선반의 높이가 맞지 않고 크기가 작아 불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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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시계 모양의 후드로 독특한 재미를 준 시스템 키친.
- 2 빌트인 가전은 주방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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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다. 초기에는 사치품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부들은 점점 더 냉장고를 원했다. 냉장고는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다. 주로 여름에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겨울이면 전원을 껐다. 전기료가 비쌌기 때문이다. 신선한 채소나 생선을 즐겨 먹는 한국인의 식생활과는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 이후 전기밥솥, 믹서, 전기 프라이팬, 커피포트 등 현대식 주방에 어울리는 가전제품을 하나하나 갖추는 것이 주부들의 낙이 되었다. 아이들의 입맛을 돋우는 소시지나 햄, 카레라이스 등이 등장해 식탁에 자주 오르기 시작했고, 덕분에 도시락 반찬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시골에서도 불을 때는 아궁이를 들어내고, 입식 부엌을 설치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그러나 ‘연탄불에 밥을 지으면 맛이 없다’는 이유로 마당 한쪽에 따로 아궁이를 만들어 장작을 때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스템 키친의 시대가 왔다
입식 부엌이 본격화된 이후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주방은 진화를 거듭했다. 이제는 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를 하며, 세척을 하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첨단 시설과 기술력이 집약된 하나의 문화 공간이라 불러도 좋을 장소가 된 것이다. 디지털냉장고, 가스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김치냉장고 등 주부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품격 있는 가전들이 주방을 채운 시스템 키친이 대중화되었다. 주방의 필수 요소인 불과 물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디자인 감각이 더해진 주방 가구의 디자인은 이미 아트 수준으로 진화했다. 국내 아티스트는 물론 필립 스탁, 멘디니와 같은 세계적인 해외 디자이너들도 주방 가구나 가전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해 환경과 가족의 건강까지 고려한 가구로 탄생하고 있는 중. 50년 전의 주부들이 과연 손가락이나 무릎으로 살짝 밀면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감춰졌던 싱크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식탁으로 변하는 시스템을 상상이나 했을까. 음악을 듣거나 TV를 시청하는 주방을 지나 아일랜드 테이블 곁에 좌식 평상이 놓이고, 책장이 들어선 주방 풍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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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전통적인 마루 형태의 좌식 문화를 적용한 다이닝 룸.
- 2 서양의 문화에서 온 식기세척기. 주부의 시간을 조금 더 벌어주는 똑똑한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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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화학조미료 대신 순수 재료들을 가공한 조미료가 등장했다.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화학 세제 대신 천연 세정제가 사용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전용 처리기와 농약 성분 등을 없애주는 세정 기기도 등장했다. 주방의 변화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중요시하는 현대의 주부들, 가공식품과 인스턴트식품이 등장하면서 변화된 우리의 식생활,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용해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해야 하는 시대상이 공간 안에 담겨 있다. 우리의 주방은 지금까지 그랬듯 시간을 따라 세상을 반영하며 천천히 진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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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류진영 포토그래퍼 박형주, 이재석(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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