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나이팅게일 (외 3편)
리 산
나는 내 꿈의 세계에서 살았네
내 꿈이 더 간절해지기를
내 꿈이 더 그리워지기를 바라며
그러나 지금 창가엔
텅 빈 새장 하나
그것은 중국풍 새장
내가 간절히 꿈꾸던
그러나 그리운
중국 나이팅게일은 없네
울창하고 아름다운
모퉁이를 돌면 말해다오 은밀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가령 저 먼 곳에서 하얗게 감자꽃 피우는 바람이 왔을 때 바람이 데려온 구름의 생애가 너무 무거워 빗방울 후드득후드득 이마에 떨어질 때 비밀처럼 간직하고픈 생이 있다고
처마 끝에 서면 겨울이 몰고 온 북국의 생애가 풍경처럼 흔들리고 푸르게 번지는 풍경 소리 찬바람과 통증의 절기를 지나면 따뜻한 국물 펄펄 끓어오르는 저녁이 있어 저녁의 이마를 짚으며 가늠해보는 무정한 생의 비밀들
석탄 몇 조각 당근 하나 노란 스카프 밀짚모자 아직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은밀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다 알려지지 않은 무엇이 여기 있다고
사월
외로워서 축구를 하고 외로워서 기차를 타지
외로워서 순록의 발자국을 찾아 미술관에 가고
외로워서 목화밭 너머 봄날의 묘비명을 적었네
어딘가 외로운 짐승이 외로운 짐승 옆에 앉아
오래된 기침을 하고 있을 때
함께 흔들 흔들거리는
느낌표와 물음표가 거꾸로 된 문장들
한 방울의 피가 필요해
잠의 변경을 서성이던 한 마리 짐승이
숫잠에서 깨어나
흥건해진 눈으로 바라다보는 눈
붉은 꽃잎 다 젖도록
안녕, 나는 이사 간다
말을 타고 천천히 숲을 통과한다
계절은 도처에 잠복해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의 리베르 탱고
여기를 통과하면 푸른 바다에 당도할 것이다
바다는 아주 멀리 있어
오, 말을 타고 천천히 숲을 통과한다
도처에 잠복해 있는 계절
여름의 숲에서 가을을 보고 가을의 숲에서 봄을 본다
계절은 도처에 잠복해 있으므로
후암동은 남지나해의 일몰로
장작불의 푸른 연기 속으로 범람하는 롬바르디 대평원으로 갈 것이다
나는 나에게 걸맞은 계절들을 호명하며
고독의 말을 타고 천천히 숲을 통과한다
고독의 말이 아주 먼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 시집『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2017. 1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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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산 / 1966년 서울 출생(송영미). 2006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