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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일 놀라움
탤런트 최재성님이 쌀을 몇 포를 번쩍 들고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깜짝 놀랐고 신이 났습니다.
배우 강지환님이 "차형사" 시사회에서 화환 대신 받은 쌀을 보내주셨습니다.
배우 유아인님이 쌀을 2.14톤이나 보내주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부천에서 오신 고마운 분께서 20킬로 쌀을 15포나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동안 쌀이 떨어질까 아슬아슬해서 주변의 어려운 분들에게 나눠드리지 못한 쌀을 오늘 나눠드릴 수 있어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민들레 진료소를 여는 날입니다! 지난 번 진료 때 엑스레이 검사를 한 분 중에 세 분이나 결핵 치료가 필요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국수집에 나타나질 않습니다. 빨리 만날 수 있어야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는데... 걱정입니다.
어제 오후에는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갈비탕 끓일 준비를 했습니다. 갈비를 살짝 데쳐내서 기름기를 제거하는 작업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비탕은 참 먹을 만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노숙 손님들보다 어르신들이 국수집을 더 많이 찾아오십니다.
5/13일 할아버지 할머니
올해초부터 민들레국수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눈에 띄게 많이 찾아오시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는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경로식당이 몇 군데 있습니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젊은 손님들이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 경로식당에 들렀다가는 핀잔을 듣기가 일쑤라고 했습니다. 젊은 놈이 밥 먹으러 온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어르신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배가고파도 밥 먹을 곳이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하시고 어르신은 오늘만 여기서 드시고 다음에는 경로식당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러면 대부분의 착하신 어르신은 그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끝도없이 밀려옵니다. 국수집의 쌀이 달랑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밖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경우가 자주 생겼습니다. 온종일 밥하고 그릇 닦아도 손님들이 끝없이 오십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을 위한 식당을 별도로 열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경로식당에 갔다가 어르신들께 핀잔받은 경험이 있는 젊은 손님들이 어르신들에게 앙가픔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님들이 드시는 음식과 어르신들이 드실 음식은 조금은 달라야 하는데 그것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에 도대체 어떤 분들이 찾아오시는지 성함과 연세와 거주하는 곳을 확인해 봤습니다.
세상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천 몇 백 명이 넝어갑니다. 노숙하시는 분들은 인천분도 있지만 서울과 수원 의정부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인천의 다른 구에서 오시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남구와 중구 그리고 부평구와 계양구 또 연수구와 남동구에서 오시는 분들입니다. 서울에서 오시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다시시던 경로식당에서 주민등록 검사를 하고선 경로식당이 속해있는 구가 아닌 곳에서 오시는 분들을 오시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구에서 식사하러 오시는 분은 경로식당이 문을 열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많이 찾아오십니다.
어르신들이 대략 5,6백 여명이 찾아오십니다. 어느 한 분에게도 오시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계속 더 많이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실텐데... 있는 것 모두를 털어서 손님들을 대접하면 하느님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에 쌀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거의 두세 달 정도 쌀이 달랑거렸습니다. 그래서 우선 주변의 어려운 분들에게 나눠드리던 쌀을 줄였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분명 오늘은 쌀을 사러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쌀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쌀이 한두 포 남아 있을 때 할머니께서 집에 쌀이 떨어지셨다고 찾아오셨습니다. 갈등을 하다가 할머니께 쌀을 드리면 참 희한하게도 두세 배의 쌀을 고마운 분들이 가져오십니다. 어떻게 이런 희한한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신기했습니다.
그러다가 탈렌트 최재성님이 찾아오시고, 강지환님과 유아인님이 화환 대신 들어온 쌀을 보내주시면서 걱정거리가 없어졌습니다. 희한합니다. 그동안 나눠드리지 못했던 쌀을 동네 어려운 분들에게 나눠드렸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그릇 가득 밥 담아 드시는 모습도 보기가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찾아오신 할아버지가 몇 분 계십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물었습니다. 남구 숭의동에서 오신 일흔 여섯의 할아버지입니다. 또 한 분은 남구 주안동에서 오신 여든 넷의 할아버지입니다. 당신이 식사하러 다니던 복지관에서 남구 사람이시니까 다음부터는 오시지 말라고 했답니다.
할아버지들 중에서 예순 다섯에서 일흔 다섯 정도의 할아버지는 젊은 축에 들어가십니다. 여든. 아흔이 넘으신 할아버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잘 하시다가도 한 번 앓으시면 기력이 금새 없어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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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주인장 서영남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식사하셨어요?'는 우리나라에서 '안녕하세요?'보다 더 통상적으로 쓰이는 인사말이었다. 모두가 가난한 시기였기에 끼니를 때우는 것의 여부가 큰 관심사였고 그만큼 식사는 거르지 않았는지 서로 물어보며 안부를 전하곤 했다. 그렇지만 2011년 모두가 그나마 먹고 살만해진 오늘날에도 '식사하셨어요? 식사하셔야죠!'라고 하루에 수 십, 수 백 번이고 말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가 그렇게 물으니 골목에서 주춤거리던 노숙인 한 분이 배시시 웃으며 그제서야 국수 집으로 들어가 소중한 한 끼를 식판 한 가득 담는다.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민들레 국수집’을 9년째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립을 돕는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민들레 가게’ 어린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공부방’,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등 항상 온전한 이웃사랑을 꿈꾸고 있는 전 가톨릭 수사, ‘민들레 국수집’ 아저씨 서영남(57) 씨를 만났다.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제 삶에 대한 원칙은 간단해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하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일관된 마음가짐으로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멍청하게 돈을 우선순위로 정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에서 크게 실수하는 것이 되겠죠.
-젊은 시절 가장 열중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지난 4월 1일로 민들레 국수집이 8주년을 맞이했어요. 이렇게 재미나게 해오고 있지만 어찌 보면 국수집은 나의 부업이고 본업은 수도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는 교정사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도 사형수 출신이세요. 또한 한국 천주교 성인들이 다들 교도소 출신들이죠. 그리고 제가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출신이다 보니 한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 때문에 순교자들을 모범으로 두었고 선배님들도 힘쓰시던 사업이기에 교도소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일이 너무나도 재미있어 젊은 시절에는 학업을 빠지고 교도소에 가기도 했어요.
15년 전쯤에는 100만원 생겨서 전국에 있는 교도소를 순례하여 그 곳에 있는 재소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몇 푼 안되지만 영치금을 넣어주곤 했죠. 재소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보는데도 저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참으로 반가워해 줘요. 처음에는 온갖 시름에 쌓인 구름 낀 얼굴이었는데 자꾸 가서 말 걸어주고 하면 얼굴 빛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주눅들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살아난 것을 보면 정말 기적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한 달에 두 번씩 그리고 매년 여름 휴가 때마다 베로니카, 모니카와 함께 교도소로 찾아가요. 기역, 니은을 몰라도 한글 다 깨우치게 하여 편지도 하고 말동무가 되죠. 고아나 다름없는 사람들과 가족 사랑으로 함께 가고 있습니다.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경쟁상대도 없어 보통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젊은 날에 지녔던 초심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랬다면 오늘날까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혹은 젊은 날과 지금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20대 때 수도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제 삶의 중심이 되었어요. 젊을 때는 막연히 예수처럼 살면 멋있겠다고 생각해서 수도원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환속한 이후에는 가난한 이웃과 같이 살아가면서 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 왜 실천해야 하는지 왜 세상에 남이란 없는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어요. 왜냐고요? 그것은 바로 노숙자 분들이든 실업자 분들이든 간에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시는 것과 똑같이 이분들도 사랑해주시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귀한 분들이고 그만큼 대접해드리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젊은 날의 초심과 지금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면 달라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 물 좋은 수도원에서 지낼 때, 지상에서 천국처럼 사는 것처럼 내 것 네 것 없이 무소유로 살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민들레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것 역시 수도원 생활을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아요. 무상으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서로 돕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딱히 저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느꼈던 순간은 없어요. 제 중심은 제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에요. 제가 얼마나 쓸모 없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제가 아는데도 하느님이 저를 항상 보아주시고 도와주시는 것 자체가 참으로 경이롭고 자랑스러워요. 2000년에 수도원에서 나오는 것에 대한 퇴회 여부가 고민이었는데 내가 어떤 처지에 놓이든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드니까 수도원이라는 울타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겁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 후에는 환속했지만 오히려 ‘나’때문에 고민할 게 없어지면서 마음이 평안해졌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느님 말씀이 체험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모든 일을 이끌어주시는 것이 경이로울 뿐 자랑할 것은 없어요. 그리고 그것이 중요치도 않습니다.
서영남 씨는 2000년도, 당시 46세까지 천주교 수사였다.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건방을 떨 때 가장 부끄럽죠. 저에게는 부끄럽다는 것이 어떤 정적인 순간을 의미하진 않아요. 내가 손님들에게 도와준다고 티 내진 않는지, 생색을 내고 있진 않는지 항상 자기를 돌아보고 그것에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사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속적으로 나를 점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어머니란 어떤 의미입니까?
어머니께는 쌍둥이 언니가 한 분 있으신데 서로 싸운 적이 없다고 하세요. 누룽지 하나가 있어도 항상 조금 작은 것은 당신들이 가지려고 하고 큰 것을 서로에게 주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크게도 아니고 고작 1% 남보다 더 가지려고, 먹으려고 서로 목숨 걸고 싸우죠. 어머님은 그런 적이 없으신 분이에요. 항상 당신이 덜 먹고 남에게 나눠주시곤 했죠.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 저희 칠 남매도 ‘나눔’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삯바느질 해가면서 저희를 키우셨는데 우리 집이 식구가 제일 많아도 가장 조용했습니다. 입버릇처럼 ‘착하게 살라’는 어머니의 말씀 덕분에 싸울 게 없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수도원에서 나와 환속했다는 사실에 섭섭해 하셨지만 이제는 좋은 일 한다고 많이 자랑스러워하세요. 초기에는 민들레 국수집에서 설거지도 도와주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멋진 분이시죠.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젊었을 때에도 힘든 적은 없었어요. 20대 초반에 시작한 수도원 생활은 꿈과 같았죠.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서럽지는 않았어요. 가난에 부끄러운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가난하다고 아등바등 살면 전 그게 오히려 더 안타까워요. 영원히 살 것처럼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물질에 기대어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내일 일도 모르는데 꼭 가진 게 많아야 잘 사는 것일까요? 오히려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가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남에게 베푸는 힘은, 그 마음은 오직 ‘사랑’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젊은 날, 돈이 가졌던 의미와 지금의 돈이 갖는 의미는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적절한 돈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죠. 돈은 그 자체가 방법이지 절대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돼요. 개인적으로 저는 22살에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수도원 생활 자체가 소유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해요. 젊었을 때부터 재물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것이고 우리는 관리인으로서의 역할만 다하면 되기 때문에 주인 노릇을 해선 안 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죠.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돈을 하도 벌지 못해서 담뱃값이나 술 값만 있으면 만족하던 시절이었어요. 사실 내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 백 억이 있어도 모자라요. 이기심이라는 그 마음을 포기하면 돈이 조금만 있어도 든든한 마음이 들어요. 실제로 2003년 국수집을 시작할 때도 내가 가진 돈 전부였던 300만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어요.
-첫사랑이란?
첫사랑은 하느님이죠. 두 번째 사랑은 아내인 베로니카입니다. 인생의 우선순위도 이와 같고요. 20대 때 수도원에서 제가 베로니카를 만났더라면 그저 좋은 인연으로 끝나고 이렇게 지금처럼 같은 가정에서 살 순 없었겠죠. 사람의 삶이란 것이 참으로 기적 같기도 하고 우연 같기도 해요. 50대에 서로 만나서 제가 평생 꿈도 꾼 적이 없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 지금도 너무나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수도원에서 만난 분 중 이일훈 건축가에게는 참 많이 배웠어요. 아니, 오히려 그 분을 만나고 나서 삶이 조금 불편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수도원에 있으면서 화성시 가재리에 침묵 수도원을 세울 당시 이일훈 소장을 만났어요. 수도 생활을 꿈꾸는 학생 수사들이 머물 곳이기에 편리보다는 불편을 위한 설계에 주안점을 두셨죠. 이제 어언 20년 지기네요. 감사한 일이에요. 불편하게 살기,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것, 작을수록 나누기와 같은 그 분에게는 많은 것을 배웠어요. 불편하게 산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멋져지려면 약간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사이와 사이에 여유를 가지는 것도 그 분에게 배운 것 중 하나죠.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 ‘간(間’)’이 들어가있어요. 시간, 공간, 인간처럼. 때와 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잘 관리해야 이것이 자발적 가난, 이웃과의 나눔, 사랑의 실천과도 연결된다고 하셨죠.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과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추천해 주십시오.
도로시 데이의 ‘잣대는 사랑’은 제 인생뿐만 아니라 민들레 국수집을 열려고 마음 먹었을 때도 큰 영향을 준 책이에요. 그녀는 1930년대 가톨릭 노동운동자인데 미국 경제가 한창 어렵던 대공황 때 ‘환대의 집’을 열면서 노숙인이나 실업자가 24시간 언제든 들러서 밥을 먹고 옷을 빨고 책을 읽고 잠잘 수 있는 곳을 제공했죠. 물론 지금도 운영되고 있고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민들레 국수집’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셈이죠. ‘환대의 집’을 롤모델로 삼고 흉내를 내기 시작했어요.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도 이 분에 대한 책들이에요. 이번에 신간으로 나왔는데 도로시 데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낸 ‘환대하는 삶’이라는 책이 있어요. 나누고 베푸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끔 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젊을 때는 몇 권만 읽는 것이 아니라 밤을 새워가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딸 모니카도 처음에는 책을 참 안 읽어서 책을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쓰면 만 원을 주겠다고 하니까 독서를 시작해서 나중엔 밤을 새워 읽더라고요. 그만큼 청춘이라면 읽고 또 읽어야 해요. 그래야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약간 불편하게 살면 됩니다. 개인의 이기심에 그리고 욕심에 조금씩만 가지치기를 할 줄 알면 아주 멋지게 살 수 있어요. 저는 이런 교훈을 매일 노숙자 분들에게 배웁니다. 자신이 더 급박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남에게 베풀고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많이 봐요. 자기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자기만 살기에 아등바등 하지 않고 남도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알면 되요. 그래도 젊은이들은 희망이 많아요. 실패해도 아직 남은 시간이 더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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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재성(맨 오른쪽)이 지난 8일 인천 동구 화수동 소재 노숙자 무료급식소 '민들레국수집'을 찾아 쌀 등 선물을 전달하고 운영자 서영남씨 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출처=민들레국수집 페이스북 |
배우 유아인씨가 12일 인천 동구 화수동 소재 노숙자 무료 급식소 '민들레국수집'에 보낸 쌀 210여포대. 사진출처=민들레국수집 페이스북 |
배우 강지환씨가 지난 9일 인천 동구 화수동 소재 노숙자 무료급식소 민들레국수집에 쌀 20포대를 보냈다. /사진출처= 민들레국수집 페이스북 |
첫댓글 쩌네잉 ㅇㅇ 어떤 노부부는 카이스트에 350억 기부한거 보고도 감동 받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