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인사이드&인사이트] SVB發 신종 은행위기… “부실 없어도 고금리 대응못해 파산”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입력 2023-03-28 03:00업데이트 2023-03-28 09:08
은행위기, 2008년과 비교해보니
SVB, 안전하다는 미 국채 투자
금리인상 따른 평가손이 위기로
2008년 리먼 사태와는 달라
학습효과로 당국 대처도 신속
시스템 위기 가능성 낮지만
고금리 상황에선 불안 지속
수습은 금리인상 중단에 달려
미 연준의 행보 주목
실리콘밸리은행(SVB)와 파산 충격은 은행들의 줄도산 우려를 확산시키며 최근 일련의 은행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하고, 유럽의 대형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UBS에 인수되는 등 위기에 처한 은행이 속출하며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크게 높아져 있다. 당면한 은행 위기에 대한 평가도 분분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를 자극할 수 있어 오히려 호재라는 입장에서부터 과거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연을 주장하는 이들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그만큼 현 국면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고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져 있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최근 이어지고 있는 문제가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을 알렸던 리먼 사태와는 다르다고 본다. 또 비슷한 시기 발생한 두 은행, SVB와 CS 사태에도 큰 차이가 있는 만큼 아직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투자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 2008년 금융위기 vs 최근의 은행위기
먼저 최근 발생한 은행 파산 문제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 및 금융환경이 악화된 국면에 은행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지불 여력이 축소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부실이 불안감을 크게 자극함으로써, 급속한 예금인출 사태가 번지고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상황에 빠지게 됐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도 단순화하면 이 흐름을 따라갔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보면 SVB와 CS 그리고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서로 다른 속성을 갖는다. 각각 은행들의 문제에 대해 한 축은 △문제가 되는 투자자산의 가치 또는 신용도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또 다른 축은 △그 은행 또는 금융시스템이 유동성을 동원해 대응 가능한 규모인지를 기준으로 나누어 보고 분류해 볼 수 있다.
SVB의 경우는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60%가 가장 신용도가 높은 미국 국채로 구성돼 있었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보유하고 있던 국채의 가치가 급락해 평가손이 크게 확대됐지만 매몰되거나 없어지는 자산은 아니었다. 다만 이 대규모 평가손이 갑작스러운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야기했고, 이 규모가 이 은행이 관리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섬으로써 빠른 파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CS에는 2021년 3월 영국 그린실캐피털 파산과 같은 해 4월 미국 아케고스캐피털 파산이라는 명백한 투자 실패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불안이 커졌다. 레버리지 규모가 크고 매우 공격적이었던 투자회사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 회사들에 투자한 자금은 회수하기 어려운 매몰 비용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CS는 SVB와는 달리 상당한 규모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손실은 대응 가능한 규모라고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때문에 CS는 스위스 정부 지원하에 전격적으로 UBS로 인수될 수 있었다.
2008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경우는 이 두 은행 사례의 ‘부정적인 부분’들이 중첩된다. 금융상품의 기초가 되는 부동산 부문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투자가 매우 높은 레버리지를 통해 이루어져왔던 까닭에 문제가 된 투자자산 대부분이 부실자산으로 처리되며 매몰됐다.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파생상품을 통해 모기지 기관과 여러 글로벌 금융기관이 서로 얽힘에 따라 자산 규모 최상위에 있는 은행들마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최근 두 은행의 위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 금융위기 학습효과… 각국 금융당국의 기민한 대응
위기의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대응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준다. 우선 정부의 대처가 매우 빠르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SVB 파산이 본격화된 후 예금자 보호와 여러 유동성 대책이 일주일 안에 마련되고 발표됐다. 특히 CS의 경우, 파산설이 불거진 후 4일만에 스위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는 UBS에 인수된 것이 인상적이다. 지난 금융위기 때 독일의 도이치모건그렌펠은행과 도이체방크 간의 밀고 당기는 인수 협상이나 아예 인수자를 구하지도 못했던 리먼 사태 때 모습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미 연준도 다른 은행으로의 전염을 막기 위해 새로운 유동성 지원책인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를 제공했다. 국채나 모기지채권(MBS)을 담보로 1년간 액면가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은행 유동성 위기가 보유자산 평가 손실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에 평가손실이 큰 국채 등을 팔지 않고도 예금 반환이 가능하게 길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런 대책들이 빠르게 마련된 것은 지난 금융위기의 학습효과로 볼 수 있다.
은행권의 대응능력이 개선된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미국 은행권을 보면,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정책당국의 금융기관 건전성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대형 은행들의 기본자본(Tier1 자본) 비율은 금융위기 당시 7%대 중반에서 지난해 말 기준 14.9%로 크게 높아져 있다. 현금이나 지급준비금처럼 은행이 인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 자산 비중도 2008년 6% 선에서 현재는 19% 수준에 이른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인 미 연준에 예치한 돈인 역레포 규모는 2조2000억 달러에 이른다. 금융위기 때는 한 푼도 없던 돈이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의 흐름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은행 간 자금 흐름과 유동성 여건을 보여주는 리보-OIS 스프레드나 테드 스프레드(Ted Spread) 등은 금융위기 때 수준은커녕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발발 때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안정적인 은행 간 자금 지표는 은행권 자금 흐름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결국 ‘키’를 쥐고 있는 것은 美 연준의 금리 행보
그러면 이번 은행 사태는 지금 수준에서 빠르게 봉합되고 마무리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큰 위기 국면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은행 파산과 관련한 불안은 금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추가적인 파산 은행이 나올 가능성이 있고 지난 주말 주가가 크게 하락한 도이체방크처럼 위기설에 휩쓸리는 은행들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고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불안은 지속되고 변동성도 높은 상태를 당분간 지속할 수 있다. 금융시장 내 파산 위험이 잔존하고 불안한 투자심리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상승시키고, 이는 기업이나 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번 SVB나 CS 사태가 미국이나 유럽 경제를 침체로 더 옮겨 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 국면이 당분간 잔존하는 것은 금리 때문이다. 최근 금융시장 지표들 중에서 아주 특이한 것은 은행권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금융위기 때와 비교할 때 비교적 안정적으로 움직이는데, 유독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MOVE 지표는 금융위기 수준까지 크게 높아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MOVE 지수가 상승한 것은 꼭 은행 파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을 보면 미 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번 미국 은행 파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번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투자 상품의 부실에 의한 신용위기가 아니라, 가장 안전성이 높은 미국 국채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대규모 평가손이 발생하면서 찾아온 유동성 위기였기 때문이다.
2022년 말 기준 미국 은행 부문의 미실현 채권평가손실 규모는 자기자본 대비 28.1% 수준이다. 각종 유동성 지원책으로 시스템 위기로 가는 길은 막겠지만 금리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미실현 채권평가손실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져 은행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일부 은행은 유동성 압박에 계속 놓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금리가 하락 국면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고, 이는 향후 미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에 달려 있다. 최근 불거진 은행 문제들이 연준의 금리 인상을 제한하는 요인들로 작용하겠지만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연준의 역할도 생각해 보면 빠른 시일 내에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분간 불안하고 조심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