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ㄱ.ㄹ래기오름과의 악연(?)
ㄱ.ㄹ래기오름은 안덕면 상창리에 위치한 두 개의 오름을 일컫는 말이다. 오름의 모양이 닮은꼴이라 쌍둥이의 제주어인 ㄱ.ㄹ래기라고 하고 큰오름, ㅈ.ㄱ은오름, 한자로는 대병악 소병악이라고 부르는 오름이다. 이 오름들은 우리가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 2005년부터 매년 한 번씩 올라 오늘이 세 번째이다. 작년과 재작년은 9월 중순에 올랐으나 금년에는 8월 첫 주로 잡은 것이 다르다. 여름철에 알맞은 오름을 물색 중 굼부리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생각나 채택해 보았다.
그런데 이 오름과는 처음부터 우리와는 궁합이 안 맞는지 즐거운 추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앞선다. 관수가 처음으로 오름에 나온 날, 오름의 진입로를 찾지 못하여 가시자왈을 뚫고 임시로 만든 터널 속을 기다시피 하여 게릴라 훈련을 받는 것처럼 우리를 고생 시켰다. 나중에 알고 보니 2~30m 전방에 멀쩡한 진입로가 있었는데도 헛고생을 한 셈이다. 작년에는 첫 해의 경험을 거울삼아 별로 고생을 안 하고 즐거운 산행을 할 수가 있었다. 산행보고를 읽으며 작년과 재작년의 같은 오름에 대한 산행보고도 한 번 찾아 읽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카페의 게시판 목록에는 검색창이 있어서 금방 찾아 읽어 볼 수가 있다. 참고로 글 번호와 제목을 소개하면 183번 여진머리에서 게릴라 훈련받다(2005.9.15) 491번 노랫소리 구성지다, 골른오름 기슭에서(2006.9.14)이다. ‘여진머리’나 ‘골른오름’이라고 검색 창에 쓰면 된다.
오늘도 그 악연(?)은 계속되었다. 작년까지 우리가 출입을 했던 농장을 거치는 길이 노루 방지용 그물로 막히는 바람에 우리는 할 수 없이 더 동쪽으로 돌아서 밭을 건너서 진입로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길은 찾았으나 워낙 사람이 안 다녀서인지 가시덤불이 우거져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오늘따라 우리의 앞장이 반바지로 멋을 내고 오는 바람에 일이 상당히 난처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운공과 관수가 앞장서서 지팡이로 가시를 쳐 보지만 역부족이다. 손과 팔이 가시에 긁혀 피가 난다. 햇살이 전정가위를 가지고 있어서 약간 도움이 되었다. 그리 긴 거리가 아니어서 금방 너른 길이 나서기는 했으나 고생이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ㅈ.ㄱ은 오름에 들렸다가 새로운 길을 알아두려고 마을 쪽으로 내리는 길로 내려왔는데 차를 세워 둔 곳까지 지름길을 찾는 다는 것이 다시 가시자왈 속에 들어가 생고생을 했다. 이번에는 반바지를 입은 앞장이 앞장을 서는 바람에 다리가 만신창이가 다 되었다. 더구나 따라가던 햇살 일행이 앞장을 믿지 못하고 되돌아서서 철조망을 넘는 바람에 이래저래 앞장의 권위까지 손상을 입었다. 그래도 우리의 앞장은 꿋꿋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꼴찌는 아주머니 두 분과 가장 먼 길을 가장 편하게 돌아 왔다.
▲ 굼부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상당히 더운 날이다. 해안지대가 낮 최고 32도를 웃도는 날씨다. 경사가 급한 오름을 땀을 흘리며 오른다. 자연림이 울창하여 하늘을 볼 수 없으나 바람이 없기에 숲 속이지만 덥기는 덥다. 나무 그늘에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겠지만 오름에 왔으니 정상은 밟아보아야 한다. 이따금 비자나무가 보인다. 비자나무 자생지인 모양이다.
땀으로 흠뻑 젖어 정상에 닿았다. 산방산과 앞 바다가 보인다. 경치보다 너무 덥다. 정상이지만 바람이 없고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 완산이 여름에 맞는 오름이 아니라고 투정이다. 내년에는 고려해 보아야겠다. 단체 사진을 찍고 얼른 굼부리 쪽 나무 그늘로 들어섰다. 한결 시원하다. 비탈이 심하여 겨우겨우 나무를 의지하여 띄엄띄엄 앉았지만 굼부리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에어컨을 연상케 한다. 바로 발밑에는 거의 수직인 벼랑이다. 불편한 자리이지만 삶은 계란과 과일을 나누어 먹고 술도 한 잔씩 마셨다. 요즘 화재인 탈레반 인질 이야기와 한나라 경선 이야기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로 아래쪽에 목장이 있는지 매캐한 분뇨 냄새가 바람에 섞여 올라온다.
큰오름에서 내려온 우리는 내친 김에 ㅈ.ㄱ은오름을 오르고 작년에 보아두었던 시원한 장소를 찾기로 했다. 관목 숲을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자 북사면의 자연림 지대에 들어선다. 여기가 바로 신형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여기는 냄새도 없고 한결 더 시원하다. 누가 여기는 새로 산 에어컨이라고 명명한다.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가득한 자연 에어컨이다. 몸을 식힌 우리는 좀 너른 곳을 찾아 이동한다는 것이 ㅈ.ㄱ은 오름 정상까지 갔고 그 위에 있는 산화경방초소의 지붕에 올라 바람을 쏘였다. 날림으로 지어진 초소 지붕 위에 열다섯 명이 올라 쿵쾅 거렸으니 초소 지붕이 내려앉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관수는 지붕이 내려앉을 까봐 안절부절못한다. 산 아래 상창리 마을에서 수박장수의 스피커 소리도 우리를 내려오라는 소리로 들린다.
ㅈ.ㄱ은 오름을 내려오다가 계획이 조금 빗나가고 말았다. 당초는 시원하고 너른 곳을 찾아 한참을 쉬고 내려 올 것을 마을 쪽으로 난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단숨에 내려와 버리고 말았다. 기슭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자리를 깔고 남은 음식을 나누었다. 오름 위에 있었으면 느긋하게 쉬고 놀 것을 다시 오를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점심을 먹으러 서광 쪽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 차를 세워 둔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고생한 이야기는 서두에 언급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차를 세워 둔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풀 속에 묻어둔 수박을 꺼내 나누어 먹었다. 풀 속에 있어서 시원하고 땀 흘린 만큼 맛이 있었다. 수박을 먹으니 어느 정도 허기도 달래졌고 바쁜 친구도 있어서 점심은 생략하기로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시간은 오후 세시를 넘기고 있었다.
두 번씩이나 우리를 골탕 먹인 ㄱ.ㄹ래기 오름,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것이 두 오름이 주는 정겨움과 굼부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07. 8.2.
첫댓글 연일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아랑곳 않고약속된 시간 장소에 어김없이 밝은 표정만으로모여드는 c 오동 오름 마니아(?)들!! 30도c 넘는기온도 저래가라 (?) 다. 오늘도 아침 부터불볕더위. 대체,즐겁게모여드는 그유인가는 무엇일까?그 동안에 대단한 오름등정 마니아로 변신 해 버렸다.! 물영아리,대병악의 땀 목욕은 잊을수 없는 추억 거리.! 초소지붕이 안무너진 것은 그동안 선행을 실천 해온 삶과 산행을 젊잖게 해 온 덕이 작용했다면 나혼자의 억측 일까!? 안전 불감증이결여라고하면 소심증이라고 웃겠지요? 천만의 말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