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화상(懶翁和尙)의 어머니 천도.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고려의 유명한 스님 나옹 화상(1320∼1376)은
춘설(春雪)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시자(侍者)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양주 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 기슭을 오르는
스님의 발길은 찌뿌듯한 날씨처럼 무겁기만 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搖鈴) 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울렸습니다.
“허, 또 누가 이생을 하직한 게로군.”
자신의 출가 당시 화두였던 사람이 오고 가는 생사의 도리를 되뇌면서
막 산모퉁이를 돌아서려던 나옹 스님은 초라한 장의 행렬과 마주쳤습니다.
상여는 물론 상주도 없이 늙수그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엿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습니다.
바로 뒤엔 두 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랐습니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허리를 굽혔습니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예, 아랫마을 돌이 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거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 어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평소 마을을 지나다 몇 번인가 본 돌이 어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 충격을 받아 남의 집 물건을 예사로 훔치고
자주 마을 사람들과 싸우는 등 포악해졌습니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가두어야 한다고 하여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그만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문득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습니다.
스님이 스무 살 때였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습니다.
비통에 잠긴 나옹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을
어른들께 수없이 되풀이했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 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 요연(了然)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이 말에 요연(了然)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경지가 아님을 알았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나옹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났습니다.
연경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指空) 화상을 만나 계오(契悟)했습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平山) 처림(處林) 선사에게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 사문(沙門)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왕생극락을 기원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니 생각을 모두 떨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니의 행적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옹 스님의 어머니 정 씨는 뜻밖에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어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습니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기에 구천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 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은 아닐까?’
스님은 지옥 고에 허덕이는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천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磨崖) 지장보살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 되던 날, 나옹 스님은 철야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새벽녘 아직 동이 트기 전,
나옹 스님은 지장보살의 전신(全身)에서 발(發)하는 환한 금빛 광채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습니다.
스님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지장보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지장보살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습니다.
고통받는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장보살이 어머니를 천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 지장보살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나옹 스님은 기도가 성취되어 기뻤습니다.
“어머니, 이제 아들에 대한 섭섭하신 마음을 거두시고 편히 극락에 드십시오.”
기도를 마친 나옹 스님은 선실에 입정하여 이미 천도 왕생하신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 앞에는 선망 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안거를 성만 하면서 후학을 제접(提接)하고 신도들을 교화했습니다.
<이천·영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