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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물소·사향(麝香), 반도 경상도 땅의 토산물?
역사(歷史)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의 실례(實例) - 신라(新羅)편 -
○ 우리 카페(Cafe)의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 는 :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땅에 세워진 적이 없었으며, 모두가 대륙(大陸)에서 자생(自生), 소멸(消滅)되었던 왕조(王朝)로, ‘천자국(天子國)=황제국(皇帝國)’으로 많은 제후국(諸侯國)을 거느렸던 천조(天朝)였다.」는 것이다.
㉯「왜(倭)는, 근세기(近世期)에 서남(西南)아세아(亞細亞)로부터 이주(移住), 필리핀(Philippines)과 대만(臺灣)을 거쳐, 열도(列島)에 정착(定着)하였다.」라고 주장(主張)한다.
㉰「반도(半島) 땅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였으나, 왕조(王朝)가 교체(交替)될 때 마다, 그 영향(影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동(東)쪽의 작은 변방(邊方)이었다.」하는 것이다.
○ 역사통설(歷史通說)인 ‘식민사학(植民史學)과 반도사학(半島史學)’은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왕조(半島王朝)이며, 제후국(諸侯國)으로, 수천(數千)년 중국(中國)에 사대(事大)했고, 왜(倭)는 열도(列島)의 천손(天孫)의 후예(後裔)로, 본래(本來)부터 열도(列島)에 있었다.」는 것이다.
◇ 우리 카페(cafe)에서는 이러한 역사통설(歷史通說 : 植民史觀=半島史觀)에 대해,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하여 만들어 낸 거짓된 조선사(朝鮮史)’라고 신랄(辛辣)한 비판(批判)과 비난(非難)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통설(歷史通說 : 식민사관植民史觀=반도사관半島史觀) 논자(論者)들은, 무엇 때문에 조선사(朝鮮史)를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하는가? 당연(當然)히 그들이 노리는 목적(目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조선(朝鮮)을 해체(解體)하고, 다시는 이 행성(行星)에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부활(復活)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거다.
그리고는「허수아비 왕조(王朝)를 만들어 놓고, 공교육(公敎育)을 통해, 조선(朝鮮)은 제후국(諸侯國)으로써, 상국(上國)에 사대(事大)하며 수천(數千)년을 이어온 2등국 백성(百姓)으로, 외침(外侵)을 당할 때마다 스스로 격퇴(擊退)시킬 생각은 않고, 비굴(卑屈)하게 상국(上國)에 걸사표(乞師表) 만을 올리는 제후(諸侯)의 나라(國)」라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刻印)시켰다.
「왜 신라(新羅)는 반도(半島)에 없었다고 하는가. 왜 ‘식민사관(植民史觀)=반도사관(半島史觀)’ 논자(論者)들을 비난(非難)하는가?」 이것은,
조선(朝鮮) 또는 대륙(大陸)의 고전(古典)에 기록(記錄)된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땅에 없었다.」는 것은,
『지형지세(地形地勢)나 기후(氣候), 토산물(土産物)등의 자연환경(自然環境)적 요인(要因)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환경(自然環境)적 요인(要因)은 인간(人間)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重要)한 일차적(一次的) 조건(條件)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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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모(某)’ 언론(言論)의 기사(記事)중에서. 「'청와대 불상'에 절하는 데라우치(寺內)총독 사진이 나왔다」고 하는 기사(記事)가 있었다.
《1,913년 2월 경주서 옮긴 불상 개안식 사진 발견…데라우치 총독의 불상 앞 배례 장면 생생하게 포착…불법반출 불상 사유화 문화재밀반출 면죄부 줘》등등의 내용(內容)인데, 주(主)된 내용(內容)은,
〈반도(半島) 경주(慶州) 땅에서 신라(新羅)시대의 불상(佛象)을, 당시 식민지(植民地) 총독(總督)이었던 “데라우치”가 경성(境城)으로 옮겨와, 지금의 ‘청와대’자리에 안치(安置)하고 개안식을 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重要)한 것은, 「‘조선총독부 신라석불 개안식’이라고 쓰여진 불상사진 보존지(커버). 데라우치 총독이 예배했다는 문구도 적혀있다.」고 한 것이다.
위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 「신라(新羅)라는 옛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반도(半島) 땅의 경상도(慶尙道) 경주(慶州)에 도읍지(都邑地)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確認)시켜준다. 왜냐하면 이 불상(弗像)은, 신라(新羅)시대(時代)의 것으로, 경주(慶州)에서 한성(漢城 : 현 서울)으로 옮겨왔다고 하니, 당연(當然)한 이야기가 된다.
반도(半島) 땅 동남(東南) 모퉁이에 “신라(新羅)”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후대(後代)의 사람들은「서력(西曆) 1,913년 2월 경주(慶州)에서 옮긴 불상 개안식 사진 발견」했다면, 「신라(新羅)라는 옛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반도(半島) 땅의 경주(慶州)라는 곳에 서울(京)을 두고 있었구나.」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며,
「서력(西曆) 1,913년 2월 경주(慶州)에서 옮긴 불상 개안식 사진 발견」이라는 말은, 『신라(新羅)는, 반도(半島) 땅 경주(慶州)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確認)해 주는 내용(內容)이다.
○ 서력(西曆) 1,913년 불상(佛像)의 개안식(開眼式)【새로 만든 불상(佛像)에 눈을 열어 주는 의식】을 했다는 것은, 「이 불상(佛像)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것을 말해 준다. 불교(佛敎)에서는 :「개안식(開眼式)은 새로 만든 불상(佛像)에 눈을 열어 주는 의식이며, 점안식(點眼式)은 부처님의 형상(形象)을 그림으로 그린 후, 마지막에 부처님의 얼굴에 눈동자를 그려 넣을 때 행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의 내용(內容)은, 신라(新羅)불상(佛像)을 ‘서울’로 옮겨와 개안식(開眼式)을 했다고 하니…불교(佛敎)용어(用語) 설명(說明)으로 보면 :〈경주(慶州)에서 새로 만든 불상(佛象)을 서울로 가지고 와 안치(安置)하면서 개안식(開眼式)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 신라(新羅) 때의 모양을 본 뜬 불상을 새로 만들어 모시고, 개안식(開眼式)을 했다는 말일까? 아니면
㉯ 일천(一千)수백(數百)년 전(前), 신라(新羅)때 만들어진 불상(佛像)을, 신라(新羅)의 서울(京)인 경주(慶州)에서 발견(發見), 탐이 난 총독 데라우치가, 총독부(總督府)로 옮겨 놓고, 또 개안식(開眼式)을 했다는 말일까?
…「朝鮮總督府新羅石佛開眼式 寺內總督禮拜」라고 쓰여 있다. 출처 : 다음뉴스
○ 이러한 것들을 보면 :〈반도(半島) 동남(東南) 모퉁이에 있는 경주(慶州)는, 신라(新羅)의 왕성(王城)이었으며, 옛 봉건왕조(封建王朝) 신라(新羅)는, 반도(半島) 경상도(慶尙道) 땅에 있었다.〉는 것을 후대(後代) 사람들에게 확인(確認)시켜주는 역할(役割)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왜곡(歪曲)이요, 조작(造作)이라고 확실(確實)하게 말할 수 있다.」 아래의 2백여(百餘)년 전(前)인 서력(西曆) 1,739년, 황명(皇命)에 의해 편찬(編纂)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편을 보면서,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였다는 신라(新羅)의 땅 안(內)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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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例)로써 보면 :
「땅(地)에 대한 지세(地勢)는 반도조선(半島朝鮮)을 불가능(不可能)하게 만들고, ‘기후(氣候)·방위(方位)·토착산물(土着産物)’은, 반도조선(半島朝鮮)을 불가능(不可能)하게 만든다. 더불어 조선왕조(朝鮮王朝)와 인접(隣接)했던, 종족(種族)과 부족(部族)과 나라(國)등을 살펴보면, 반도조선(半島朝鮮)은 없었다.」고 이야기 해 준다.
아래의 특이(特異) 토산물(土産物)을 보자. 이러한 특이(特異) 동물(動物)들이 살아가던 땅이 과연(果然) 반도(半島) 땅(地)일 수 있을까? 자생(自生)하고 있는 동물(動物)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地)! 그곳이 본시(本是)의 신라(新羅) 땅(地)일 수밖에 없다. 곧
○ 땅(地)에는 지형지세(地形地勢)가 있고, 그 땅(地)이 어느 곳에 위치(位置)해 있느냐에 따라 백성(百姓)들의 생활(生活)습관(習慣)과 습속(習俗)도 다르고, 그 땅(地)에서 자생(自生)하는 모든 동식물(動植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곳에서 자생(自生)하는 동식물(動植物)을 총칭(總稱)하여 특산물(特産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산물(特産物) : 어느 한 지방(地方)에서 특별(特別)하게 생산(生産)되는 모든 물건을 특산물(特産物)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연환경(自然環境)과 밀접(密接)한 관계(關係)를 가진다.
○ 조선왕조(朝鮮王朝)는 광범위(廣範圍)한 지역(地域)을 영토(領土)로 했다는 것에 비춰보면 : 다양(多樣)한 특산물(特産物)이 많다. 그러나 반도조선왕조(半島朝鮮王朝)로 보면, 모든 것이 제한적(制限的)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반도(半島)라는 특수(特殊)한 환경(環境)인 자연환경(自然環境)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반도(半島) 땅은,「낙타(駱駝)니 물소(水牛)니 또는 원숭이(獼猴), 또는 사향(麝香)」등과 같은 동물(動物)등이 있었다는 문헌(文獻)사료(史料)나 또는 그 징후(徵候)가 전혀 없고, 자연환경(自然環境) 역시 이러한 동물(動物)이 자생(自生)할 수 없는 환경(環境)을 가졌다. 그러나…
…인용(引用)하는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는 : 「중국 청나라 때의 만주 풍속 지리지로써, 아계(阿桂) 등이 황제(皇帝)의 명에 따라 부족, 강역(疆域), 산천, 나라의 풍속 따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상세히 기록하였다. 1,739년에 간행되었으며, 20권으로 되어있다.」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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欽定四庫全書. 欽定滿洲源流考 卷 19 / 國俗(四) / 物産
(1)《隋書新羅田甚良沃水陸兼種物産輿華同 : 수서(隋書) : 신라(新羅), 밭(田)은 매우 좋고 기름지다. 물과 뭍(水陸)에 씨를 뿌린다. 물산(物産)은 화(華)와 같다.》고 하였는데, 「신라(新羅) 땅(地)에서 생산(生産)되는 물건(物件)이 화(華)와 같다.」는 말은 화(華)와 가까운 곳에 있었을 때만이 가능(可能)한 이야기다. 반도(半島) 동남(東南) 모퉁이 땅의 물산(物産)이 ‘화(華)와 같을 수는 없다.’
※ 우리가 지금(只今) 인터넷에서 보고 있는 수서(隋書) 신라(新羅)편과는 원문(原文)이 다르다. [田甚良沃,水陸兼種,其五谷,果菜,鳥獸物產,略與華同 : 밭은 매우 좋고 기름지다. 물과 뭍에 씨를 뿌린다. 그곳에서는 오곡(五穀)과 괴일과 야채가 있고, 재와 짐승(鳥獸)는 대략 화(華)와 같다.]라고 하였다.
(2)《通志新羅土地肥美宜植五榖多桑麻果菜鳥獸物産畧與華同. : 통지(通志) : 신라(新羅)의 토지는 기름지고 좋아 마땅히 5곡을 심고, 뽕나무와 삼, 과일, 채소등이 많으며, 새와 짐승(鳥獸), 물산(物産)은 대략 화(華)와 같다.》고 하였다. 여기서 반도(半島) 동남(東南)쪽 모퉁이 땅에서 나는「새와 짐승(鳥獸), 물산(物産)은 대략 화(華)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화(華)와 같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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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宋㑹要新羅地宜槖駞水牛出人參水銀麝香松子榛子石決明松塔子防風白附子茯苓大小布毛施布草席䑕毛筆. : 송회요(宋會要) : 신라(新羅) 땅에서는 마땅히 탁타(橐駝 : 駱駝). 물소(水牛). 사향(麝香). 송자(松子). 진자(榛子). 석결명(石決明). 송탑자(松塔子). 방풍(防風). 백부자(白附子). 복령(茯苓), 크고 작은 포(布)와 모시포(毛施布), 초석(草席), 쥐 털로 만든 붓이 나온다.》고 하였다.
… 송회요[宋會要]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저자 : 송(宋)의 송수(宋綏) 등 : 17편 200책. 북송 ·남송 시대를 통하여 전후 10회 편찬되었다. 제계(帝系) ·후비(后妃) ·예(禮) ·악(樂) ·직관(職官) ·선거(選擧) ·도석(道釋) ·식화(食貨) ·형법(刑法) 등으로 되어 있다. 연대에 따라 연혁적으로 집성한 문헌으로 송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史料)이다.
(4)《諸蕃志新羅地宜槖駞水牛不用錢以米博易民家器皿悉以銅為之地出人參水銀麝香松子榛子石決明松塔子防風白附子茯苓大小布毛施布銅磬瓷器草席䑕毛筆等商舶用五色纈絹及建本文字博易. : 제번지(諸蕃志) : 신라(新羅), 땅은 마땅히 낙타(駱駝)와 물소(水牛)가 난다. 돈은 사용치 않으며, 교역은 쌀로써 한다. 민가(民家)의 그릇(器皿)은 모두 구리(銅)로 만들어져 있으며, 땅에서는 인삼(人參)·수은(水銀)·사향(麝香)·송자(松子)·개암(榛子)·석결명(石決明)·송탑자(松塔子)·방풍(防風)·백부자(白附子)·복령(茯苓)·크고 작은 포(大小布)·모시포(毛施布)·동경(銅磬)·자기(瓷器)·초석(草席)·쥐털로 만든 붓(䑕毛筆)등이 난다. 상인들은 선박을 이용하여 오색(五色)힐견(纈絹)과 건본(建本)문자(文字)?를 거래한다.》 ※ 필자(筆者) 주(注) : 建本文字는?
… 제번지(諸蕃志) :〈1,225년 남송(南宋)의 조 여괄(趙汝适)이 지은 지리서(地理書) 상권은 남동 아시아ㆍ인도(印度)ㆍ서(西) 아시아ㆍ아프리카ㆍ지중해(地中海) 방면(方面)의 지리(地理)ㆍ사회(社會)ㆍ풍속(風俗)ㆍ물산 등(等)에 관(關)한 지리서(地理書)이다.〉
위의 「송회요(宋會要)와 제번지(諸蕃志)」등에서 말하는 신라(新羅)의 토산물(土産物)중에서도, 탁타(橐駝)는 곧 낙타(駱駝)를 말하며, 수우(水牛)는 물소를 가리킨다. 또한 사향(麝香)은 사향노루에서 나오는 약재(藥材)나 향료(香料)를 말하는 것일 게다.
이러한 동물(動物)들은 21세기 현재(現在)에도, 풍토(風土)가 전혀 맞지 않는 곳에서는 사육(飼育)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저 제법 큰 동물원(動物園)에서나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물(動物)들이 반도(半島) 동남(東南) 모퉁이 땅에서 토착(土着) 동물(動物)이었으며 특산물(特産物)이었다고 한다면…우리는 이러한 동물(動物)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있는 곳으로 신라(新羅)를 옮겨줘야 마땅한 것이다.
…「이렇게 원전(原典) 곧 역사서(歷史書)속의 기록(記錄)과 다르게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는 왜곡(歪曲)되어, 조작(造作)되기에 이른 것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은 이러한 기록(記錄)을 들이대면, 「그것은 오류(誤謬)다. 당시(當時)의 반도(半島)사정을 모르는 자(者)들이 저술(著述)했고, 따라서 이런 오류(誤謬)가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백(百)이면 백(百) 대부분(大部分) 이런 식(式)의 오류(誤謬)로 떠넘길 것은 너무도 뻔한 사실(事實)이다. “무엇이 어떻게, 오류(誤謬)다”라는 논거(論據)나, 문헌(文獻)고증(考證)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자(者)들이다.
… 반도인(半島人)들은 정말 순진(純眞)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순진(純眞)한 척 하는 것일까?
➊ 탁타(槖 + (馬+他) : 낙타(駱駝) / 중국어사전 : 駞 [tuó] “驼”와 같다. / 낙타(駱駝) : 서식장소 : 사막과 초원 / 분포지역 : 아프리카, 아라비아, 고비사막, 몽골, 알타이산맥 / 등에 큰 혹을 가지고 있는 동물로, 발가락은 2개이며, 발바닥의 척구(蹠球)가 커서 접지면적이 넓기 때문에 모래땅을 걸어 다니기에 알맞다. 또 콧구멍을 막을 수가 있고, 귀 주위의 털도 길어서 모래먼지를 막아준다. 오랜 시간 물 없이도 견딜 수 있다. 등의 혹은 물이 아닌 지방이 저장된 것이며, 영양 상태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단봉낙타
쌍봉낙타(출처 : 두산백과)
사막과 초원에서 살고, 나무의 가지나 잎을 먹는데, 가시가 있는 가지도 잘 먹는다. 며칠간 먹이 없이도 활동할 수 있으나, 이 때에는 혹이 점점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거의 없어진다. 물은 3일간 마시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고, 필요한 수분은 혹 속의 지방을 분해시켜 충당한다. 임신기간은 390∼410일이고, 수명은 30∼40년이다.
혹이 1개 있는 단봉낙타와 2개가 있는 쌍봉낙타의 2종류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단봉낙타가 90%를 차지한다. 단봉낙타는 몸길이 약 3m, 어깨높이 1.8∼2.0m로, 야생이 없고, 아프리카·아라비아반도·소아시아·이란와 인도 북서부 등지에서 사육되어 왔다. 지금은 유럽·오스트레일리아·북아메리카에도 수입되어 텍사스주(州)·애리조나주(州)·뉴멕시코주(州) 등지에서 야생화되었으며, 승용과 경주에도 이용된다.
화물운반에 주로 이용되는 쌍봉낙타는 몸길이 2.2∼3.5m, 어깨높이 1.8∼2.1m로, 단봉낙타보다 약간 작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고비사막·몽골·알타이산맥 등지에서 옛날부터 사육되어 왔으며, 반야생 상태에 있는 것도 많다. 야생종은 투르키스탄 동부와 고비사막 중앙부에 극히 소수가 남아 있다. 낙타는 옛날부터 가축화되어 승용·역용(役用)으로 사용되는 것 외에, 젖은 음료로, 고기는 식용으로, 털은 직물용으로 이용되어 사막지대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가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타 [camel, 駱駝] (두산백과)
➋ 수우(水牛) : 물소
서식장소 : 풀이 무성한 정글을 흐르는 커다란 강 근처나 늪지
분포지역 : 인도, 네팔, 미얀마, 인도차이나, 말레이시아 등이다. ‘아시아물소’라고도 한다. 몸길이 240∼280cm, 몸높이 160∼190cm, 꼬리길이 60∼85cm, 몸무게 수컷 1200kg, 암컷 800kg이다. 몸은 잿빛이 도는 검은색이고 다리는 발끝부터 무릎까지 회색빛이 도는 흰색이다. 턱 밑에는 초승달 무늬의 흰 띠가 있다. 뿔은 무겁고 뒤로 젖혀져 있다. 발굽 부분의 관절이 잘 움직여지므로 진흙 속에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물소
풀이 무성한 정글을 흐르는 커다란 강 근처나 늪지에 서식한다. 강에서 사는 형과 늪에서 사는 형의 2종류가 있으며, 늪에서 사는 형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야생화되어 있다. 물을 좋아하며 몸통에 곤충의 피해가 많은 때는 물속으로 들어 가서 코만 내놓고 있다. 임신기간은 310일이며 한 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명은 약 18년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가축화되었으며 농경용과 사역용으로 큰 몫을 하고 있다.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는 도로에서 짐을 운반한다. 야생종은 인도·네팔·미얀마·인도차이나·말레이시아에 분포하며, 가축종은 아시아·남아메리카·유럽·북아프리카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어떤 학자는 물소를 2개의 종으로 나누어서 야생의 물소(Bubalus arnee)와 가축화된 물소(Bubalus bubalis)로 다르게 보기도 한다. 또한 가축화된 물소를 2개의 아종으로 구분하는 학자도 있는데, 늪에 사는 물소(Bubalus bubalis carabanesis)와 강에 사는 물소(Bubalus bubalis bubalis)로 나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물소 [Asiatic water buffalo]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우리나라에 물소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 광개토왕 때 연나라 왕이 선물로 보낸 것을 효시로 하여 고려 중기는 송나라에서 선물로 보내왔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농경용·우차용으로 본격적인 사육을 시도한 일도 있다. 그러나 풍토가 맞지 않아서 중종 이후에 멸종되어버렸고 현재는 사육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는 주로 뿔이 활의 재료나 띠의 장식으로 이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물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➌ 사향(麝香) : 사향노루(麝鹿)
〈한의학〉 사향노루의 사향 샘을 건조하여 얻는 향료. 어두운 갈색 가루로 향기가 매우 강하다. 강심제, 각성제 따위에 약재로 쓴다. 천연 동물성 향료로 ‘무스크’라고도 한다. 중국의 윈난성[雲南省]·쓰촨성[四川省] 시짱(티베트)자치구 등의 높은 산지에서 사는 사향노루의 사향선(腺)을 건조시켜 얻는 분비물이다. 사향은 옛날부터 생약으로서 강심·흥분·진경제(鎭痙劑)로, 또 기절하였을 때 정신이 들게 하는 약으로 내복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향 [musk, 麝香] (두산백과)
사향노루(출처 : 다음 cafe / 단구 패밀리)
○ 위의 예(例)에서 보듯이 신라(新羅)는, 「‘낙타(駱駝)와 물소(水牛), 사향(麝香)노루’ 등이 자생(自生)하고, 노닐었던 땅(地)에 있었다.」는 것이다.
➊ 낙타(駱駝)는, 아라비아(Arabia)반도(半島)와 그 주변, 고비(Gobi)사막(沙漠), 몽골(Mongolia)서부(西部)와 알타이산맥(山脈)등지에 많이 자생(自生)한다고 한다.
➋ 물소(水牛)는, 인도(印度), 네팔(Nepal), 미얀마(Myanma), 인도 지나(印度支那), 말레이시아(Malaysia)등지에 분포(分包)되어 있다고 하며,
➌ 사향노루(麝香)는, 운남성(雲南省)·사천성(四川省)·티베트(西藏自治區)등지의 고원지대(高原地帶)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라(新羅)의 땅은,〈➊+➋+➌〉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을 가진 곳으로 옮겨져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2017년 12월 10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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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만주원류고'는 고작 2백여년 전(서기 1,739년)에 황제의 칙명으로 저술된 풍속 지리서이다.
어떤 이들은 만주원류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이 속에 기록된 내용들 때문일 것이다.
본시의 "滿洲(만주)" 땅의 풍속과 지리, 역사등을 기록해 놓은 것을, 21세기 현재의 만주(滿洲) 땅인 반도 북방지대와 비교하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역사서는 좋고, 나쁘고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이용하는 자(者)들이 나쁜 것이리라.
예를 들자면 반도 땅의 자연환경은, 일천년 전이나, 오백년 전의 자연환경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지형지세는 변함없고, 기후 또한 크게 변한 것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곡되고, 조작된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만들어 놓은 "조선사"를 애용하는 대한민국의 친일파 사학자들은, 이제 각성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일제의 망령에서 헤매고 있을 건가?
도대체 언제까지 남의 나라에 의지하며,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 할 건가?
여러나라와 협력하면서 공존공생하는 것과 자신의 안위를 남의 나라에 의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제의 잔재를 하나 하나 없애고, 스스로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사향노루는 한반도에서도 서식을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향노루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서 백과사전이나 동물도감등 많은 곳을 검색해 보았는데, 반도에서는 서식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사천성이나 운남성 또는 티베트의 고원지대에서 자생하고 있다는 정보만이 있었습니다. 한 번 더 검색을 해 보겠습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며, 추운날씨에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문무 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
오늘은 백설이 분분한 날입니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탐라의 설산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 갑니다.
말씀 하시는 바와 같이 조선의 특산물로 역사에 기록된 많은 산물들은 반도에서는 생산 될 수 없는 것들 입니다. 다산 선생이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면서 기록으로 남긴 여정을 살펴보면, 오늘날 운남성의 모습과 같습니다. 특히 전라도의 산천과 제주도의 관계는, 반도 땅은 전라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녁에 잠깐 나가보니 찬바람이 부는 것이 오늘 밤부터 다시 추워지는 날씨같군요.
다산 선생님이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면서 기록한 그 여정이 운남성의 모습과 같다고 하니, 다시 한 번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서에 기록된 많은 것들 중에서 특히 산천이나 기후 풍토, 지세등이 반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지요. 이에 따라 토산물 역시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 하나 정리를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드립니다.
제주도의 성곽은 육지의 성곽보다 낮아 왜적을 방비하기가 불리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또한 맞는 기록 이었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성곽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데, 성곽을 바라보며, 선조들의 기록 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라산에서 남극의 노인성을 바라보고, 한라산은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여러개의 높은 봉우리로 이루져 있으며, 한라산 정상은 6월과 8월이면 백설이 하얗게 쌓이고, 추워서 갖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음사[淫祠]를 좋아 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모든 역사의 기록은 참으로 맞는 말 이었습니다.
이제 눈이 제법 내리는 것을 보니 겨울이 깊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문무 선생님의 댁내에, 늘 건강과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좋은 자료 모셔갑니다. 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