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가는 단골식당의 주인장과 친해진 건 물론이고, 서로 눈인사 정도를 주고받는 다른 단골도 꽤 생겼습니다. 며칠 전, 주 1회 이상은 먹게 된-아침 일찍 여는 인근 유일 식당인 데다, 가격도 적정하고 맛도 좋으므로- 콩나물비빔밥을 먹으러 갔는데, 평소보다 늦어서인지, 홀로 오신 손님 두 분만 있었습니다.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물을 따르는데, 좀 전에 나가신 손님이 우리 밥값을 내주셨다더군요. 우리를 여러 번 보았는데, 노모 모시고 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서 그랬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이미 가신 후라 인사를 따로 드릴 순 없었습니다. 다음에 우리 왔을 때 그분 오셨으면 꼭 알려 달라고 주인장께 부탁해 두었습니다. 먹는 내내, 먹고 난 후에도 부담이 되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넉넉한 마음씨 덕분이지요.
요즘 주변에서 심심찮게 미담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명절에 힘든 경찰이 잠시 짬을 내어 허겁지겁 드신 음식 식비를 대신 내 주신 분, 휴가 나온 군인 밥값을 내 주신 분, 면면을 보면 20대 여성부터 중년 부부, 70대 어르신까지 참 다양했습니다. 세상 살아갈 맛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고, 그 감동은 오래 끌고 있습니다. 문득, 4십수년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부족한 용돈 충당을 위해 차비 아끼려 대봉동 집에서 복현동 학교까지 걸어 다니던 대학 신입생 시절, 우리 단골 술집에서는 고맙게도, 안주를 따로 시키지 않고 밑반찬으로 술을 마셔도 눈치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그 단골 식당에서 헤르만 헤세의 ‘향토’중 맘에 드는 구절을 함께 읽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손님께서 우리에게 안주도 시켜 주시고 술값도 내 주셨습니다. 술 마시며 대화하고 책 함께 읽는 모습이, 대화 내용이 너무 좋다시며... 고마운 마음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 분은 누군지도 모르니 찾을 수 없고, 우리에게 늘 안주 없이도 기꺼이 술을 주셨던 그 단골식당 주인 내외분은 연락처를 수소문해 한 번 뵐까 합니다. 주위에 이런 고마운 분들이 많지만, 정작 저는 받은 만큼 나눈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십 수 년 전부터 적은 금액이나마 몇 곳에 기부를 지속하고 있는 일, 8년 전부터 다시 봉사를 시작한 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저와 같은 봉사단체에 속한 봉사자 한 분은 누적 봉사 시간이 13,000시간을 넘겼습니다. 연예인 중에서도 기부천사가 수없이 많지만, 지난 11일 작고하신 박춘자 어르신의 기부, 봉사 정신은 참으로 고귀하였습니다. 평생 김밥장사로 모은 돈을 모두 기부하셨고, 지적장애인 11명을 집에서 돌보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봉사, 기부는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많은 돈, 많은 시간을 내는 몇 보다는 적더라도 꾸준히 봉사하고 기부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큽니다. 특히, 선량입네 거들먹거리는 위인들이 그리하였으면 참으로 행복감이 극에 달할 것 같습니다. 기대난망이겠지만... 그들은 분명 법을 들먹이겠지요.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어긴 법에 비하면 이 정도는 위법이라도 봐 줄 만 하리라 생각됩니다. 나누는 건 곳간이 풍요로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울 때 가능한 일입니다. 봉사 시간도, 기부처도 좀 더 늘려나가도록 스스로 채찍질하겠다 다짐하는 주말 저녁입니다.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함을 다시금 깨달은 소중한 날이 저물어 갑니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봄볕을 쬐러 다녔습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봄을 즐기는 여유 이후에 더 많은 반성이 따라오더군요.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385584330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모셔온 글)==========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텐데.....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세상까지도 변화 시킬 수 있었을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 한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