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이사야 2:1-4
2023년6월18일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예루살렘, 시온, 다윗성은 같은 지명이다.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구약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가나안 정복을 언급하는 여호수아
10:1-4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하고 진멸했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이 두려워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화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크게 두려워했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주위 아모리 왕들과 동맹을 맺고 기브온을 치려고 했다(여호수아 10:1-4).
여호수아는 그 아모리 다섯 왕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멸했다.
이후 여부스인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은 정복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자주 관련을 맺으며 결국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영토로 복속당한다(김진회,
이사야서의 시온사상,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249).
그러나 후일에 솔로몬의 우상 숭배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먼저 망하고 남유다는 백여년 뒤에 바벨론에
망했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온 신학의 방향은 희망과 구원이라는
틀을 갖게 된다. 선지자들은 시온 즉 예루살렘의 영광스런 옛 모습을 강조하고 약속했다(참고 김진회, 107).
시편 137편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포로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유다) 백성은 시온(예루살렘)의 영광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그들이 그들의 수금을 걸었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그들에게 노래를 청했다. 그들을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했다.
포로가 되어 바벨론 적의 나라에서 노역을 하며 살던 그들은 그 이방 땅에서 차마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수는 없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이스라엘(유다) 포로들은 바벨론 땅에서 여호와께 기도했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고 저주한 에돔 자손을 벌해 달라고 기도했다.
또한 여자 처럼 변화무쌍한 바벨론을 저주했다.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편 137:1-9 KRV).
바벨론의 침략 행위의 죄악에 대해 그들의 어린 자식들이 바위에 던져져서 깨지고 피를 흘려 죽어가기를 원하며 저주했다.
시온과 다윗성은 지리적으로 동일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김진회, 39).
시온은 야웨의 거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시온은 야웨의 집이다. 성전이 시온에 서있다. 야웨는 시온에 임재하시고 거기에서 행하신다(John
D. W. Watts, Isaiah 1-33, Texas: Word books, 1985, 28).
그 성전 안에 야웨께서 임재하심이 시온이 최고의 중요성을 갖는 이유이다. 이러한 최고성은 이스라엘이나 유다 혹은 그들의 왕들 혹은
지도자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순전히 야웨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온이 만국을 잡아 끄는 것이다(Watts, 28).
야웨의 행동은 토라와 말씀의 내용을 통한다. 토라와 말씀의 내용은 심판과 지혜의 근거이다. 토라와 말씀은 만국이 평화를 추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Watts, 28).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들의 복이 되기 위해 부름 받았다(창12:3).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기 위해
부름받았다(출19:6).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이 우상 숭배와 불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환상 속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자신의 손 안에 장악하신다. 예루살렘 도시를 세우고 열국을 심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그가 행하실 것이다(Watts, 29).
시온 즉 예루살렘은 야웨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시온은 성전이 자리 잡은 도시이다. 시온은 전 세계 사람들이 순례를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시온은 "야곱의 하나님" 야웨께서 거기 계심으로 그 정체성을 갖는다(Watts, 29).
야웨는 예루살렘에서 세계를 다스리신다. 열국들의 통치자들은 야웨의 주권을 인정하고 시온으로 나오게 된다(Watts, 29).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이사야 2:2 KRV
"말일에"는 먼 훗날이다. 즉 종말의 시대이다.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이다.
'산'은 통치권을 가리킨다. 야웨의 산에서 다스리는 통치권이 세상 모든 통치권보다 뛰어남을 말한다(한정건, 이사야서 강해, 고려신학대학원).
"야웨의 산" 즉 시온산은 이사야에 자주 나오는 주제이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마지막 날, 종말에 예루살렘 즉 시온으로 나온다(11:9;
27:13; 김성수, 이사야 해설(th.m.), 고려신학대학원, 2017,18).
종말은 예수님 초림시 부터 재림 때까지이다. 약 이천년 간 종말이 이어지고 있다.
2-4절은 미가서 4:1-3과 유사하다. 여기 묘사된 평화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의 선포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재림 때 완성된다(참고
김성수,18).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하실것이다(히브리서 9:28 KRV).
토라의 말씀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세계 주변에 영향을 주었다. 지금 2023년 여기 대한민국에 사는 저와 여러분도 토라의 말씀의 영향으로
여기 모였다. 토라의 말씀은 결국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전의 산"즉 시온 산은 교회를 비유한다. 교회는 땅위에서 핍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산 꼭대기에 높아지듯
승리한다(박윤선, 이사야서 상, 영음사, 1991, 4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다고 했다(시편
125:1 KRV
).
"모든 산들의 꼭대기에 야웨의 집의 산이 든든히 서리라"
시온은 작은 산이다. 해발 약 760 미터 높이라 한다. '산'은 야웨의 통치를 의미하니 만군의 야웨의 통치가 온 세상 위에 미치게 된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 당하고 시온 성전이 파괴되었다. 이스라엘(유다) 의 우상 숭배와 불의의 죄악으로 하나님은 시온이 몰락하는
수치를 감수하셨다.
바벨론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시온 산이 세계 모든 산들 위에 높아지리라는 약속은 회복과 기대의 소망을
주었다(Calvin, Isaiah vol.1,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53, 92,93).
시온에서 토라가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야웨의 말씀이 나온다(2:3). 이것은 동의어 반복이다. 시온과 예루살렘이 같다. 토라와 야웨의 말씀이
같다.
예수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신 후 부활하시고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셨다(행 1:3).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4-5).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마음을 합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웠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 성령이 시온에 즉 예루살렘에
임했다.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제자들의 그리스도 증인 사역은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행 1:8).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행 2:5).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애굽, 구레네 인근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 지중해 연안과 중동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을 목격했다(행 2:9-11). 그들이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들었다(행 2:11).
하나님의 큰 일은 나사렛 예수의 권능과 기사와 표적과 고난과 대속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었다(행 2:22).
복음 선포와 전도는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즉 시온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설교하니
회개하고 나사렛 예수를 믿어 세례 받은 신도 수가 삼천명이 더한 곳이 시온 즉 예루살렘이었다(행 2:41). 신약 교회는 예루살렘 즉 시온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사야 2:3 KRV
유다가 버림받고 성전은 파괴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중단되고 구약 교회의 질서는 깨지고 칼과 폭력이 득세하는 바벨론 제국의 폭정 앞에서
포로로 살아가는 유다 백성은 좌절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 즉 시온에서 말씀이 나오고 구원의 가르침이 시작된다는 예언은 경건한
남은 자들에게 힘과 소망이 되었다(Calvin, Isaiah vol.1, 97).
죄악은 사람들을 나누고 갈라지고 흩어지게 한다. 인류가 교만해져서 바벨탑을 쌓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범죄하니 하나님이 사람들의 말을 혼잡케
하시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셨다(창 11:1-9). 이사야는 종말 즉 신약 시대에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에서 나는 계시를 향해 물 흐르듯
시온으로 모여 들 것을 예언했다(박윤선, 이사야 상, 서울: 영음사, 1991, 41). 이사야는 구원의 말씀과 복음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 택함받은 자들의 것임을 말했다.
세계 사람들이 자원하여 복음으로 시온 즉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 시온 즉 예루살렘에 토라 즉 야웨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이사야 2:3). 구원의 복음이 시온에서 시작되었다. 신약 교회가 시온에서 출발했다.
시온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온 세상을 적시게 되었다(에스겔 47:1). 오순절 성령 세례가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지작되었다. 하나님의
통치, 다스림이 시온 성, 즉 다윗 성에서 다윗 왕을 통하여 시작되었다. 다윗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시온에서 통치를 시작하셨다. 구원의 가르침은 시온에서 시작되었다.
사도들과 교사들이 시온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여 온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Calvin, Isaiah vol.1,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53, 96).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KRV
하나님은 열방의 모든 나라들과 사람들을 다스리시고 재판하신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과 가르침은 통치의 기준이고 근거이다.
다윗 왕국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예수가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셨다.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다(디모데전서 3:16 KRV).
사람들은 힘이나 돈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말씀과 성령과 기도로 변화를 얻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을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6:8 KRV).
칼과 창이 농기구가 되고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아니하고 평화를 누리는 것은 인간의 이상이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 속에 평화가 이루어진다. 온전한 평화는 그리스도 재림 이후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 모인 우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말씀과 성령과 기도 속에, 우리의 삶속에 평화를 누리고 평강을 이웃에게 전하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