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이 용
클라우드는 우리 집 반려 견犬 이름이다.
지난해 봄 아들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왔다. 구름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작고 귀여운 녀석이었다. 아내와 나는 집안에서 키우는 일에 반대를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녀석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녀석은 온갖 재롱을 부리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시절 몇 개월 함께 지낸 일이 전부다. 게다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한겨울 도랑건너 눈 쌓인 언덕 오동나무 밑에 갖다 버렸다. 아마 눈이불을 뒤집어쓰고 고이 잠들었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슬픔이 가슴에 남아 있다. 땅이라도 파고 묻어 줄 것을… 그리 하지 못한 일이 후회가 된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재산이 되는 소나 돼지에게는 정성을 들이셨지만 개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아랫집, 앞집, 뒷집 거의 모든 집에서 잔반으로 녀석들을 키웠지만 우리 집 잔반은 돼지와 소의 먹거리가 되었다.
클라우드는 맹인을 돌보고 안내하는 안내견이다.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어린 티를 벗어나 덩치가 크고 힘센 장사가 되었다. 눈치도 빠르고 행동 또한 민첩하다. 가끔은 산책을 하자고 부르면 내 앞에 와서 공손히 앉아 쇠목 줄을 하라고 목을 내놓는다. 목줄을 하고 밖으로 나가면 이때는 녀석의 세상이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가 하면 배설을 하여 영역을 표시한다. 힘이 장사라 아무도 클라우드를 이길 수가 없다. 얼마 전 아내는 녀석과 함께 나들이 갔다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나도 가끔 산책을 할 때면 힘에 부쳐 녀석에게 끌려갈 때가 있다. 이런 내 모습을 동네사람들이 물끄러미 쳐다볼 때면 영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녀석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대한다. 서로 잘 보이려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가족간의 공통된 대화도 클라우드 때문에 많아졌다.
클라우드를 만나기전에는 이런 녀석들과 지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병원가고, 더 나가 치장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 한다는 말을 듣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거리를 나서면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포대기로 싸서 아기처럼 업고 다니기도 한다. 유모차에 태워 시내를 활보하는 사람도 있다. 웬만한 사람보다 더 호강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녀석들에게 베푸는 반 정도의 정성과 비용을 부모에게 들이면 누구나 효부, 효자 소리를 들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클라우드에겐 뛰어난 감각이 있다. 자기에게 사랑과 관심을 얼마만큼 가져주느냐에 따라 서열을 정하고 행동한다. 네 식구 중 나는 마지막 서열인 것 같다. 내가 외출하거나 밖에서 들어와도 소파에 앉아 턱을 괴고 멀뚱멀뚱 바라만 본다. 그러나 큰 아이나 아내가 밖에 나갈 때는 공손히 따라가 배웅을 한다. 돌아오면 쏜살같이 뛰어나가 버선발로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앞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면서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지만 식구들이 다 나가고 나 혼자 소파에 않아 있으면 녀석도 외로운지 내 무릎에 머리를 얹어 놓고 새근새근 잠을 잔다. 심하면 크르렁 크르렁 코를 골기도 한다. 식탁에서 식사라도 하면 옆에 와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럴 때면 마음 약한 나는 먹던 것을 집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막상 녀석과 같이 지내다 보니 개를 키우고 정성을 쏟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풍요롭게 살지 모르지만 마음은 외롭고 허전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등 나의 마음을 줄 대상이 많지 않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의 버거운 문제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사랑을 받아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녀석들에게 정성을 쏟고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이리라.
클라우들를 만나기전 반려견이나 애완동물들에게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역지사지란 말을 반추해 본다. 사람들은 때때로 상대방의 처지, 입장에 처해보지 않고 우리는 내 입장 편견, 내 사고의 틀로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 하곤 한다.
또 우리는 누군가 잘못하면 0같은 자식, 0같은 놈이란 표현을 한다. 더 나가 비하 할 때는 0만도 못한 자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놈과 함께 지내다 보니 사람보다 더 신실하고 충성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나에게 많은 깨우침과 평안을 주기도 하고, 사람에게서 받지 못하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때로는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만 녀석은 변함없이 나를 이해하려한다. 때로는 사랑받기 위해 애처로운 눈망울로, 때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눈을 맞춘다.
사랑스런 그 이름 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