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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문학관* 스크랩 자벌레구멍 외 / 위선환
동산 추천 0 조회 6 09.09.29 09:2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자벌레구멍 / 위선환

 

 

쳐다보니
떡갈나무 잎사귀에
자벌레가 붙어 있습니다
그저 그러는구나 했다가 한참 뒤에 다시 보니
자벌레는 없고
가늘게, 길다랗게, 그리고 파랗게,
딱 자벌레만한 구멍이
떡갈나무 잎사귀에 뚫려 있습니다
자벌레가 하늘 되는 방법이
그랬습니다
이번에는
내 차례라면서
자벌레가 뚫어놓은 구멍을
찬찬히 봐두라고,
비좁지만 이미 자벌레가 그랬듯이
조심해서 몸을 끼워 넣고는 재빠르게
뒤로 빠져 나가버리라고, 그것이
방법이라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매무새 / 위선환

 

 

 

하늘 쪽에서 누군가 기침을 했다. 쳐다보고, 옷깃 여미고,
두 손을 가지런히 펴서 몸 밖에 내어 놓았다
내려다보는 사람의 오래된 눈빛인 듯, 눈까풀에 돋는 검은 핏줄인 듯,
속눈썹 밑에 드리운
눈썹 털의 그림자인 듯, 더듬대며 죽음 뒤를 미리 말하는
눈자위가 먼저 어둔 사람의
어둑어둑 저무는 말씨인 듯, 떨리며 날리며 가뭇가뭇 내려오는 눈은
아직
손바닥에 내려앉는 것은 아니다 눈이 내려오는 바로 아래에
지금이, 여기가, 내가, 있다


 

 

 

 


 

 

 

 

 

 

 

떪 / 위선환 

 

 

 

구름의 그늘이 떨면서 깊어지면서...., 라고 떠는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신지 오래 되었다,

라고 들은 이래로

정수리를 덮은 구름의 그늘과 가슴께에 드리운 앵두나무 그늘과

등 뒤로 돌아간 강의 물그늘이 떨면서 깊어지고

깊어진 것들은 낱낱이 나직한 울림이 되었을 때, 나는 정수리부터

서늘해지는 때

앵두나무 가지에서 앵두가 익었다 강물은 비치고 물에 비친

참붕어의 거뭇한 등 비늘이 번뜩이고

구름과 앵두나무와 강과 그늘의 떠는 틈새기에 꼼짝없이 끼인

나는 기껏 한없이 떨고만 있었다

如是我聞, 떪이 없으면 떨면서 깊어지는 것들도 없다, 라고

주석도 붙여 주시었다, 라고 들은 이래로

떨면서 마침내 소실점까지 깊어져버린 구름과 앵두나무와 강과

그늘이 깜빡 한꺼번에 사라진 지금

문득 나의 떪도 멎었으므로

그러므로 또한 내가 없다, 그러하지 아니한가, 라고 묻는

나의 떠는 목소리만 남아서

사라지는 것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한 울림이 되었는지, 또 한 떪이 되었는지,


 

 

 

 

 

 

 

 

 

 

 

 

스미다 / 위선환



밤이었고, 당신의 창 밖에도 비가 내렸다면, 그 밤에 걸어서

들판을 건너온 새를 말해도 되겠다.
새는 이미 젖었고 비는 줄곧 내려서 빗발이 새의 몸속으로

스미던 일을, 깊은 밤에는
새를 따라온 들판이 주춤주춤 골목 어귀로 스미던 일을,
말할 차례겠다. 골목 모퉁이 가등 불빛 아래로 절름거리며

걸어오던 새에 대하여,
새 언저리에다 빛의 발을 치던 빗발과 새 안으로 스미던

불빛에 대하여,
웅크렸고 소름 돋았고 가슴뼈가 가늘게 야윈 새의 목숨에

대하여도, 또는
새 안에 고이던 빗소리며 고여서 새 밖으로 넘치던 빗물과
그때 전신을 떨며 울던 새 울음에 대하여도,
말해야겠다. 그 밤에 새가 자주 넘어지며 어떻게 걸어서

당신의 추녀 밑에 누웠는가를,
불 켜들고 내다봤을 때는
겨우 비 젖지 않은 추녀 밑 맨바닥에 새가 이미 스민 자국만,

축축하게 젖어 있던 일을,

 

 

 

 

 

 

 

 

 

 

 

새의 비상 / 위선환

 


까마득하게
날아오르는 새는 날아오를 뿐
날아오른 높이를 재지 않는다
무한정 날아오르고 있는 하늘의
새의 머리가 겨우 닿는 높이에는
하늘의 덫이 깔려 있으므로
반드시
하늘 높이 나는 새는 하늘에서 죽는다지만,
새가 죽어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하늘에서 죽은 새는 하늘에 묻힌다


 

 

 

 

 

 

 

 

 

뻗침에 대하여 / 위선환



뻗친 것이라 한다
나무가 뻗쳐서 가지가, 이파리가 되고
사람이 뻗쳐서 그리움이 된다 한다
어떤 사람은 뻗쳐서 나무에, 하늘에 닿는가
어떻게
사람과 나무가 한 몸이 되어 하늘로 뻗치고
하늘이 되고
온 하늘에 뻗친 가지가 되고
하늘의 가지에다 온갖 별자리를 매다는가
어떤 그리움이 뻗쳐서
그리 많은 별빛들을 켜는가
하늘은 어떻게 길을 내주고
한 사람은 공중에서 길을 비치며
모든 별빛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는가

 

 

 

 

 

 

 

 

 이슬 / 위선환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라고 하면 막막하다
은하계 돌고있는 궁륭에서, 라고 해도 까마득하다
가깝게는 저기 있는 별자리에서, 라며 머리 위를 가리켜도  
몇 백 광년이나 멀고 마침내는 눈물겹다     
여러 날을 하늘의 꼭대기가 말갛게 젖더니 잔 물방울들이 맺혔는데       
나는 기껏, 사람의 턱 밑에다 손바닥 두 개를 펴들었으니...

 

 

 

 

 

 


 



휨 / 위선환


나무가 팔을 구부려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의 어깨를 짚어줄 때

더듬대며 걷다가 멎어선 사람이 어두워지고
나무는 길을 비치며 등불을 들고 올 때

가지는 휘인다

별빛이 새벽까지 얹혀 있거나
이슬이 방울져 매달리거나 그 사이 풋열매가
단단해졌거나 바람의 가랭이가 한낮에 걸렸거나 하늘이
살집 좋은 엉덩이를 깔며 걸터앉거나 또는
제 혼불을 입에 문 다리 긴 거미가
줄을 걸고 공중으로 걸어 내리거나
하는
가지가 휘이는 일들이
더러 없겠는가 마는

그런 일도 다른 일도 아니고

오래 전에 휘어서 이미 적막해진 한 가지가
저런,
다 삭은 제 허리께를 휘청, 휘었다 해서
자칫 꺾일 뻔했다, 나무랄 일 아니다

박새처럼
작고 발목이 가는 새가 날아와, 방금
저기 높은 가지에
내려앉은 때처럼

 

 

 

 

 

 

 

 

별로 건너다 / 위선환


                
하루는, 산마루에 올랐다가 별에 이마를 부딪쳤다.
묻지 마라. 이마에
별자국이 있다.
나비가 날개를 부수면서 성층권(成層圈)까지 날고
밤새가 지향없이 어둠 속을 나는 것은
오직 나는 것만으로
눈부신 것이니
또한, 내가 별에 닿겠다고 해서
따로 말을 만들 일 아니다.
오는 하루에는 아예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고 걸음을

크게 하여
가까운 별자리로 건너가겠다.

알겠는가?


 

 

 

 

 

 

 

적막 / 위선환

 

 

새떼가 며칠 밟더니

머리 꼭대기가 비었다

새들은 발톱으로 헤쳤다 살가죽이 파이고

더욱 깊게는 뼈가 드러났다

차게, 바람 불고

진종일 구름 그림자가 스쳐가서

살이 많이 닳았으므로

기다리기를 그만 두고

병이 깊다

두려워하며 남루(襤樓)를 벗고 뼈를 내걸어 잘 마른 저녁에

빈 소리 텅텅 울리는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천장에

깜깜한 돌멩이 한 개 부딪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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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밭 / 위선환

 

 

東江의 자갈밭에 비비새가 누워 있다
주둥이가 묻혔다 자갈돌 몇 개가 바짝 틈새기를 좁혀서

비비새의 부리를 물고 있다
꽉 다문 틈새기,의 저 힘이
비비새 아래로 강물을 흐르게 했을 것이다 비비새를

강물 위로 날게 했을 것이다
흐르는 힘과 나는 힘이 오래 스치었고 스미어서
강 밑바닥을 훤히 비치게 했고, 다음 날은 더 깊이

비비새를 비쳐서
강물 속으로 날아가는 비비새가 보였고 비비새가

씻기었고 비비비, 강물이 지저귀기 시작했고
비비새의 창자 속으로 강 울음소리 같은, 긴, 시푸른,

쓴, 죽음이 흘렀고
지저귀다 목이 쉰 강의, 더는 울지 못하는 비비새의,

혓바닥 끝에다 독을 적셔 말렸고

지금은 그 주검이 부리를 내밀어 완강하게 자갈

틈새기를 물고 있다

 

 

 

 

 

 

Jaipur

 

 

 

거미줄 / 위선환

 

 

잔 날개 떠는 날벌레나 비늘가루 묻은 나방이나
티끌들만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붙박이별 몇이 드문드문 돋는 것 하며 초록별이 자리를

못 잡고 떠도는 것 하며 살별의 꼬리가 흐르는 것 하며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이 걸렸다
몇 천 光年이 된다는 먼 거리나 눈으로는 못 쫓는 빛의

속도도 걸렸는데
함께, 검푸른 궁륭과 밤새워 우는 풀벌레소리도 걸려 있다
걸린 것들 중에는 오히려 사람이 눈멀고 깜깜해지는
한밤중이라야 보이는 것이 있다
고기가시 같이 뼈가 희고 고인 눈이 물속 같이 둥그런

한 영혼을 내가 본 것은
내가 아주 깜깜해져버린, 한참 뒤다

 

 

 

 

 

 

 

 

 

 

지평선 / 위선환

 


삽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긴 팔을 내려 덥석 내 발목을 움켜쥐더니

거꾸로 치켜들고는 털털 털었다
부러진 뼈토막들이며 해묵은 살점과 주름살들이며

울컥 되넘어오는 욕지기까지를 깡그리 내쏟았다
센 털 몇 올과 차고 작은 눈물 한 방울도 마저 털고 나서는
그나마 남은 가죽을 맨바닥에 펼쳐 깔더니 쿵! 키 높은

탑신을 들어다 눌러놓았다
그렇게 판판해지고 이렇게 깔려 있는데
뿐인가
하늘이 살몸을 포개고는 한없이 깊숙하게 눌러대는

지경이다
(탑 뿌리에 잘못 걸렸던 하늘의 가랑이를 그 사람이

시침 떼고 함께 눌러둔 것)
잔뜩 힘쓰며 깔려 죽는 노릇이지만
이건,
죽을 만큼 황홀한 장엄(莊嚴)이 아닌가
사지에서 구름이 피고 이마 맡에서 별이 뜬다

 

 

 

 

 

 

Pushkar, reading mantras on lake side

 

 

 

 

혼잣말 / 위선환 

 


나는 더디고 햇살은 빨랐으므로 몇 해째나 가을은 나 보다

먼저 저물었다

땅거미를 덮으며 어둠이 쌓이고 사람들은 돌아가 불을 켜서

내걸 무렵 나는 늦게 닿아서 두리번
거리다 깜깜해졌던,

그렇게 깜깜해진 여러 해 뒤이므로

저문 길에 잠깐 젖던 가는 빗발과 젖은 흙을 베고 눕던

지푸라기 몇 낱과 가지 끝에서 빛나던 고추색 놀빛과 들녘

끝으로 끌려가던 물소리까지, 그것들은 지금쯤 어디

모여 있겠는가

그것들 아니고 무엇이 하늘의 푸른빛을 차고 깊게 했겠는가

하늘 아래로 걸어가는 길이 참 조용하다 사람의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더디게 오래
걸어서 이제야 닿는구나 목소리를 낮추어 혼잣말하듯이,


 

 

 

 

 

 

 

 

  

 

 

해바라기 / 위선환 



해바라기 한 그루 길렀다 무릎키를 넘고 가슴께에 기대더니

하루는 훌쩍 커서 담장 밖을 굽어본다 어쩔 것인가 나는?

섬돌 밑과 마당 귀퉁이와 텃밭 고랑을 뒤져서 신고 버린

발자국들을 주어 모을 밖에는, 포개 쌓고 올라서서 발돋음을

해야 겨우, 담장 위에다 턱이라도 거는 것을

베는 날(刃)이 휙휙 나는 위험한 세월인데 있는 모가지 다

빼서 길게 내놓고 그래, 어디를 넘보는 짓이냐

고 나무라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서 한 가지 큰 일을 했다 저리 푸른 바깥 세상을

내다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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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 위선환


 

 

저기서도 구멍은 컴컴하고 검게 털이 자라는지
가맣게, 하늘 아래쪽이 뚫려 있다
그 여자네 집 뒤란에 선 살구나무가
확,
살구꽃 꽃송이들을 터뜨린 날
간 겨우내 메말랐던, 종잇장 같은 그네 몸에도
우련하게 꽃그늘이 비쳤던 게다
몸 안에 몸 숨기고 몸 밖을 내다보는 일이라
날숨 삼켜가며
창구멍 뚫듯 조심스레 손가락을 질렀겠지만
그만,
제 몸에다 동그랗게 구멍을 내고 말았다
발끝 세우고 서서 처음 넘겨다보는 참 맑게 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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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耳鳴) / 위선환 



수레바퀴가 굴러도 소란하다 하물며
오래 닳은 마차길이 그렇듯
울퉁불퉁 파이고 군데군데 구멍도 뚫렸을 공전궤도

(公轉軌道) 위를 지구가 덩이째로 구를 때
오직이나 소리가 울리겠는가
그 큰 소리도 못 듣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이 밤에는
하늘 복판으로 좔좔 냇물 흘러가는 소리 들리는 듯,
자욱하게
은하계의 별밭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들리는 듯,
귓구멍을 후벼 뚫고 다시 귀 기울여도....

 

 

 

 


 


 

 

 

석모도 / 위선환

 


마침내 서쪽에 닿아 비 내리는 서해를 본다 개펄에서 칠게의

굽은 발이 젖고 있다
빗줄기가 내 안으로 들이친다 뼈다귀를 때리며 빗방울들

잘게 튀고 몸 속 곳곳에 웅덩이가 고였다
누군가 철벅대며 등줄기를 밟고 간다
등덜미가 젖던, 춥던 한 사람을 생각한다 여기까지 걸어

 왔겠는가 또 걸은 것인가 걱정한다
척척해져서 섬이 웅크리고, 저문다 건너가지 못한 바다에는

아직 비다 

 

 

 

 

 

 

 

 

 

강진만 / 위선환

 


물비늘 하얗게 깔린 바다를 배경으로 23번 해안도로를 달리는

자전거의 바큇살이 반짝거리며 지나가고 있는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 行과 行 사이 다음 行 사이로 줄지어

늘어선 行間들이 한 칸씩 저물다가

문득 시야 밖으로 꺾인다 하늘 아래에 저 갯바닥에 갯물이

꽉 찼다

하늘그늘이 느릿느릿 내리는 것, 어슬어슬 어스름 깔리는 것,

물낯바닥에 거뭇거뭇 기미 돋는 것 본다

걷는 길이 날마다 몇 리가 남아 있곤 했다 발뒤꿈치가 헤져서

뼈가 드러나곤

발톱이 또 빠졌다 집어내고, 참 멀리까지 왔구나, 강진만이

어두워지는 때

등 뒤쪽, 돌아다보면 한참이나 먼 백련사 어림에서

삐이꺽, 무릎을 펴고 일어선 사람이 삐걱거리며 마룻장 위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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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 위선환

  

 

 지층이 뚝, 잘려나간 해남반도 끝에다 귀를 가져다 대면 

느리게 길게 날개 젓는 소리가 들린다. 공룡 여러 마리가

해안에 깔린 너른 바위 바닥에 발목이 빠지면서 물 고인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때는 새가 돌 속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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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 / 위선환

 

 


모퉁이는 쓸쓸하다. 모퉁이를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쓸쓸하고,

모퉁이를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이 쓸쓸하다.

어느 날은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내가 쓸쓸하다. 아침부터 걸었고,

날 저물었고, 이내 깜깜해졌고, 긴 하루 내내 모퉁이에 부딪치고

쓸린 나의 모퉁이 쪽이 허물어지더니, 모퉁이가 드나들게 파였는데,

모퉁이만 하게 비고, 빈 모퉁이처럼 쓸쓸한데, 나는 더듬대며 아직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모퉁이 쪽 빈 옆구리가 한 움큼씩 무너지고,

무너지는 모퉁이 쪽으로 내가 자꾸 꺾이고, 어디쯤일지, 언제쯤일지,

모퉁이는 끝 간 데 없고

 

 

 

 

 

 

 

 

 Sadhus in Kathmandu, Nepal

 

 

 

 

둥지 / 위선환

 

 

산마루에 눈바람이 쌓였다는 전갈이 왔으므로

뚜벅뚜벅 걸어서 내려오곤 하던 산길이 어두워졌으므로

귀가가 늦은 나무들을 찾아서 산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은 골짜기에 모여 있었지만

등덜미를 다독이며 타일러도 아름으로 안고 달래도

집에 돌아갈 형편이 아니라 했다

저마다 둥지를 얹고 있어서

새들이 주둥이를 포개고 잠들어 있어서

둥지를 내려놓는 일은 차마

못한다 했다

떨며 가슴 죄일 나무들을 내버려두고는

한겨울의 공중에다 새들을 재워두고는 더욱

나도 골짜기를 떠날 수가 없었다

무작정 남아서 기다린다

그 사이 눈바람은 산중턱을 다 덮었고

이 밤에는 골짜기까지 내려오리라는

전갈인데……

 

 

 

 

 

 

 

 

 

 

  

 

 

목어 2 / 위선환

 


어떤 물고기는 바싹 말려서 공중에 매달아두고 때리는가.

은비늘 몇 점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너왓장 들추듯 물비늘

을 들추고 들여다본 강바닥 잔돌밭에서 나무고기 한 마리

가 튀어 올랐다 떨어졌다 한다.

저 강은 때리지 않아도 이미 퍼렇지만 지금이라도 장대를

들어서 후려치면 물줄기를 구부리며 소리치지 않겠는가.

부리 긴 새가 긴 부리를 치켜들고 하늘바닥을 쫄 때 하늘

이라 해서 울리지 않겠는가.

한때는 내가 단단하게 움켜쥔 맨주먹으로 갈빗대 사이가

깊게 파인 내 옆구리를 때렸다.

한 장인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서 허공의 이쪽과 저쪽을

잡아당겨 둥근 통(桶)에 씌우고 질긴 가죽 끈으로 죄어

큰북 한 채를 만든 뒤에 굵은 밧줄을 걸고 잡아매서 매달아

두었다면, 굳이 무겁고 기다란 북채를 휘둘러 때려도 헛수고

일 뿐, 오직 적막하거나 기대고 오래 서 있을 때 또는 울컥

눈물 고여 쳐다볼 때에 허공이 저렇게 저절로 운다.

 

 

 

 

 

 

 

 

 

**************************************************************

 

위선환 시인

 

1941년 전남 장흥 출생
1960년 용아문학상 수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1970년 이후 30년간 절필

2001년 <현대시> 9월호에 <교외에서> 외 2편

발표하며 다시 시쓰기 시작


시집

<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
< 눈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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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환 시인

 

적막과 허무의 깊이를 헤아리면서도, 이순을 훌쩍 넘긴 시인의

그것이라곤 믿기 어려우리만치 모던하고 담박한 시구 그리고

맑고 깨끗한 서정의 세계로 주목 받고 있는 위선환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새떼를 베끼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우리에게 위선환 시인의 이름은 그다지 익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1960년부터 시를 썼으나 그 후 오랫

동안 펜을 꺾고 시단을 떠나 있었던 탓이다.

1960~70년 당시 광주지역 문인들의 사랑방(김현승 시인을

필두로 이후 문순태, 송기숙, 이성부 등의 문인들이 주축이

되었다)이나 다름없던 광주 충장로의 한 빌딩에서 서정주

(시인은 위선환의 시를 읽고 “참 고운 시”란 말을 건넸다)와

김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고 또 두 시인이 본심을 맡았던

‘용아문학상’(시 「떠나가는 배」로 잘 알려진 용아 박용철

(1904~1938)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고도 문단과 가까울

수 없었던 그는 30년 가까이 공직에 머물렀었다.

그러고는 “몇 해째 (시에 대한)공복”으로 “허기와 쓰림과

욕지기”를 그 자신의 가슴에만 담고 있다가 결국 2001년

다시 시단에 나왔고,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와

『눈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를 차례로 발표하며

시인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 문학과지성사, 홈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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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9.29 21:24

    첫댓글 내일 모래가 70인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시를 쓰고...평자는 모던하고 담박한 시구라니...머리에서 띵~ 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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