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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54
#.1 씬. 종가 전경.(밤)
#.2 씬. 마루.(밤)
주정, 술에 취해 들어오는, 부엌에서 나오는 삼월.
삼월 : 왜 이렇게 늦었어? 술 마셨어?
주정 : 응, 조금.
삼월 : 많이 마신 거 같구만, 뭐.
주정 : 오빠는 주무셔?
삼월 : (미소 지으며) 연습 중이셔.
#.3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인형 안고 앉아서 어르고 있는.
동동, 잠들어 있고, 주정 들어오는.
주정 : 저 들어왔어요.
만기 : (보고) 또 술 마신게냐? 한동안 뜸하더니만 왜 또 그러냐?
주정 : 그냥요, 그런 날 있잖아요, 술 좀 마시고 싶은 날.
만기 : 네가 그러고 싶지 않은 날이 언제 있었냐?
주정 : (앉으며) 연습 많이 하셨어요?
만기 : 이젠 자신이 좀 붙는 거 같다.
주정 : 오빠?
만기 : (보는)
주정 : 오빠, 인생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후회한 적 없으세요?
만기 : 뜬금없이 후회는.....
주정 : 망해버린 가문 일으켜 세우느라 한 평생을 다 허비하신 거잖아요?
만기 : 네가 보기엔 내가 평생을 허비하며 산 거 같냐?
주정 : 버신 돈으로 종택 사들이고, 문중 사람들 돌보고, 그런 거 하지 않으셨으면,
지금보다 훨씬 떵떵거리며 사실 수 있지 않았냐구요?
만기 : 떵떵거리며 살아서 뭐하게?
주정 : 뭐하긴요, 남들은 그렇게 못살아서 난린데.
만기 : 타고나길 그런 게 부럽지 않았으니 그렇게 살아온 거겠지.
주정 : 장생 하씨 종가의 종손이 아니셨으면 오빠 인생 달라졌을 거란 생각 안 드세요?
만기 :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 게냐?
주정 : 따지고 보면 오빠 인생이 뭐가 있어요. 종손으로 지손들 챙기고, 조상 제사 모시면서
한번 밖에 못사는 인생 흘려보내신 거 아니냐구요?
만기 : 난 그렇다, 주정아. 한 가문의 종손이라는 자리가 두렵고, 버거운 적이 아주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장생 하씨 종가의 종손으로 태어나 멸문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려 애쓰며 살아온 내 인생이
참 보람됐다고 생각한다.
주정 : (보다가) 주무세요. (일어서서 나가는)
만기 : (인형을 들고) 오늘은 너도 수고 많았다, 그만 자자꾸나.
#.4 씬. 주정의 방.(밤)
주정, 들어와서 괴로운 심정으로 앉는.
#.5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강석, 현규, 영자 술을 마시면서 얘기하고 있는.
강석, 졸고 있고, 영자, 하품하고 있는.
천갑 : 인생에 기회가 딱 세 번 있다고 하지 않나?
내 인생에 첫 번째 기회는 우리 이 사람(영자 손을 덥썩 잡는)
영자 : (하품하다가 놀라서 어색하게 미소 짓는)
천갑 : 애들 엄마하고 결혼 한 게 첫 번째 기회였다 그거지. 결혼 전까지는 그날 벌어 그날 먹는 게 전부였거든.
근데 결혼을 한 그 다음날부터 분위기가 요상하드라 그거야.
내가 다니던 동네 넝마꾼들이 갑자기 무슨 맘을 먹었는지 딴 동네로 옮겨가는 걸 시작으로,
그전까지는 못쓰는 양재기나 버리던 집에서도 웬일인지 돈 될만한 물건들을 마구 버려대는데.
(영자 보면서) 진짜 신기하지 않았어?
영자 :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며) 그랬지. (졸려는 죽겠는데)
천갑 : 거기다 두 번 째 기회는 어떻게 찾아왔냐? 어느 날 어느 집에서 이사를 가면서
쓰레기를 한가득 버리고 갔는데 그걸 헤집다보니, 꽤 쓸만한 항아리가 하나 나오는 거야.
그게 뭔지 아나?
현규 : 뭐였는데요?
천갑 : 그게 바로.....두두두 긴장 되지?
현규 : 네.
천갑 : (졸고 있는 강석을 보고 강석의 무릎을 탁 치며) 너 뭐하냐?
강석 : (놀라서 깨며) 네?
천갑 : 넌 아버지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잠이 오냐?
강석 : 전 다 아는 얘기잖아요?
천갑 : 그래서 재미없다 그거냐?
강석 : 수 백 번도 더 들은 얘기가 뭐 그리 재미있겠어요?
현규 : 아버님, 빨리 말씀해주세요. 저, 그게 뭐였는지 너무 궁금해요.
천갑 : 현규야.
현규 : 네?
천갑 : 너, 얘랑 자리 바꿔 앉아라.
강석 : 아버지.
천갑 : 재미도 없다면서, 어서 바꿔 앉아.
강석, 뚜한 표정으로 일어나며.
강석 : 너무 하세요, 아버지.
천갑 : 그러니까 누가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으랬냐?
현규 : (자리 바꿔 앉는데)
강석 : (현규, 묘한 눈길로 보면서 자리 바꿔 앉으면서 또 하품하는)
현규 : 아버님, 그 항아리가 뭐였어요?
강석 : 이조백자지 뭐.
천갑 : (맛 확 가는 표정으로 강석을 보는)
강석 : 왜요? 이조백자 맞잖아요?
천갑 : 참, 찬물 끼얹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6 씬. 강석의 집 식당.(밤)
단아, 치즈를 잘라서 접시에 담고 있고, 혜주, 땅콩과 오징어를 접시에 담고 있는.
영자, 하품 하면서 들어오는.
영자 : 아니, 네 아버지 왜 저러신다니?
혜주 너랑 교재 하겠다고 했지, 현규가 언제 아버지랑 교재 하겠다고 한 거냐구?
어떻게 니들 둘이 데이트 할 시간도 안주고 저렇게 현규를 붙잡아두시는 지 정말 모르겠다.
단아 : 현규 학생이 마음에 드시니까 그러신 거겠죠.
영자 : 근데 어쩌니?
단아 : 네?
영자 : 현규 때문에 강석인 완전히 찬밥 신세된 거 같으니?
#.7 씬. 강석의 집 거실.(밤)
단아, 혜주, 안주 접시 들고 식당에서 나오고, 영자 따라 나오고.
천갑, 신이 나서 얘기하고 있고, 현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거의 턱을 받친 느낌으로 듣고 있는데.
강석, 뚜한 표정으로 팔짱 끼고 앉아 있는.
영자 : 그런데 정말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얘들도 올라가서 쉬어야지.
천갑 : 올라가, 올라가. 난 현규랑 얘기하면 되니까.
영자 : 당신이 이렇게 술상 벌리고 앉아있는데, (단아 보면서) 쟤가 올라가서 쉴 애야? 현규도 피곤하다.
현규 : 아닙니다, 전 피곤하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어찌나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겠는 걸요.
강석 : (현규, 흘겨보면서) 그래서 밤새 듣겠다구?
현규 : 정말 재미있는 걸요. 아버님 그래서 그 파밭이 어떻게 된 거예요?
천갑 : 그래, 파밭까지 얘기 했었지? 그 항아리 판돈으로 파밭을 샀는데 그게 어디었냐 하면.....
강석 : 강남이잖아요.
천갑 : (입술 깨물고, 저걸 확 하는 느낌으로)
단아 : (강석, 어깨 지그시 누르면서 눈 흘기는)
강석 : 강남 맞단 말이에요.
천갑 : 너 앞으로 내 앞에서 맞춤형 아들 소리 다시 한번 하는 일 없길 바란다.
강석 : 왜요?
천갑 : 뭐 날아갈 거 같으니까.
#.8 씬. 강석의 집 2층 거실.(밤)
강석, 단아, 혜주 올라오는.
강석 : (혜주에게) 현규 걔 진짜 원단 아부형이다.
혜주 : (웃는)
단아 : 아부는 무슨 아부야, 어른 기분 맞춰드리는 게.
강석 : 앞으로 집에 데려오는 거 좀 자제하면 안 되겠냐? 네 새언니 술시중 드는 거 힘든데.
단아 : 아니에요, 아가씨. 이 사람 괜히 그러는 거예요.
강석 : 괜히는 무슨.....
단아 : 아버님이 자기보다 현규를 더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샘나서 그러는 거예요.
혜주 : 저도 눈치는 있어요.
강석 : 뭐야? 둘이 또 나만 바보 만드는 거야?
단아 : (강석 잡아끌며) 바보 신랑님, 들어가세요, 아가씨 잘 자요.
혜주 : 네, 새언니.
#.9 씬. 강석의 방.(밤)
단아, 강석 끌고 들어오는.
강석 : 사람 옹졸하게 만들지 맙시다. 내가 현규한테 샘이나 부릴 놈으로 보입니까?
단아 : 샘이 아니면, 아버님 말씀 하시는데 찬물이나 끼얹고 있어요?
강석 : 그거야....
단아 : 무슨 약 같은 거 나 모르게 먹죠?
강석 : 무슨 약이요?
단아 : 나이 거꾸로 먹는 약 같은 거 먹잖아요?
강석 : (기가 막혀서 보는)
단아 : (강석 얼굴 감싸 쥐고 흔들면서) 어머, 어머, 우리 꼬마신랑 또 샐쭉한 거 봐.
강석 : 아예, 가지고 놀아라.
단아 : 가지고 놀다가 제 자리에만 내려놓으면 되잖아요?
강석 : 저기....
단아 : (보면)
강석 : 이왕 가지고 노는 거 침대에서 가지고 놀아주면 안 될까?
단아 : (강석 발 걸어 침대로 넘어뜨리면서) 이렇게요?
#.10 씬. 종가 전경.(아침)
#.11 씬. 욕실.(아침)
태영, 변기 앞에 앉아 구역질하고 있으면, 말순, 입 틀어막고 서서.
말순 : 그만 좀 하고 일어서, 나도 죽겠어.
태영 : 자꾸 구역질나는 걸 어떡하냐?
말순 : 자기가 극성맞게 입덧을 하니까 이젠 나도 시작했단 말이야.
태영 : (보고 일어서는) 입덧하냐? 자기?
말순 : (끄덕이다가, 변기 앞에 주저앉는)
동동, 문 열고.
동동 : 제발 그만들 좀 나오세요, 저 배 아파 죽겠어요.
태영 : 동동아, 조금만 참아라, 엄마도 입덧을 시작해서 그래.
#.12 씬. 마루.(아침)
동동, 가방 들고 뛰는데, 영인, 진아 부엌에서 밥상 들고 나오다가.
방에서 나오는 수영.
영인 : 동동아? 밥 안 먹고 학교 가?
동동 : 배 아파서 학교 가서 똥 싸야 해요.
영인 : 그럼 화장실 가야지.
동동 : 엄마랑 아빠랑 입덧하세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영인 : 밥도 안 먹고 가서 어떡해? (진아 보고) 화장실이 하난 게 문제네.
어쩌지? 이젠 동동 엄마도 입덧 시작한 모양인데. 그럼 부엌일 더 못 거들 텐데, 네가 힘들어서 어쩌니?
진아 : 이젠 부엌일이 손에 익어서 힘든 줄 모르겠어요.
수영 : (그런 진아를 보는)
#.13 씬. 수영의 방.(아침)
수영의 옷매무새 만져주는 진아.
진아 : 어떤 기분일까요?
수영 : (보는)
진아 : 입덧이라는 거?
수영 : (짠한 느낌으로 보고)
#.14 씬. 회사 전경.(낮)
#.15 씬. 수영의 사무실.(낮)
태영, 서류 들고 들어오는. 비어있는 사무실.
태영 : (서류를 책상 위에 놓다가, 입양 서류를 보는. 의아한)
수영, 들어오는.
태영 : (입양 서류 들어 보이며) 형, 이게 뭐야?
시간 경과,
수영, 태영 앉아있는.
태영 : (멍한 표정으로)
수영 : 네 형 참 부실하지?
태영 : (눈물이 글썽해서) 왜 그동안 말 안했어?
수영 :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잖냐?
태영 : 그, 그럼 전에 형수님하고 그래서 이혼 한 거야?
수영 : .....
태영 : (안타깝고) 어른들 아시면 놀라실 텐데.
수영 : 할아버님이랑 다 아신다.
태영 : (더 놀라서 보고)
수영 : 결혼 전에 말씀 드렸다.
태영 : (자기 머리 쥐어뜯으면서) 아, 나란 놈은 정말 왜 이 모양이냐?
수영 : 왜 그러냐?
태영 : 그런 것도 모르고 입덧이니 뭐니 해서 형이랑 형수 속이나 긁어댔으니.
수영 : (미소 지으며) 네 형이랑 형수 너무 쪼잔하게 본다, 너.
태영 : 형?
수영 : (보면)
태영 : 이런 방법은 어떨까?
수영 : .....
태영 : 동동이 동생 말이야. 형 앞으로.....
수영 : (굳어지면서) 너.....
태영 : 그 사람하고 의논해볼게, 그 사람도 아마 싫다고는 하지.....
동동이는 커서 안 되지만, 태어날 놈은 아예 형 자식으로 키우면....
수영 : (자르며) 너 그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모르냐?
태영 : 하지만....
수영 :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태영 : 아예 남의 집으로 양자 보내는 것도 아니고.
수영 : 그만 못 두겠니? 할아버님한테 우리 뭘 배우면서 자랐니?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어.
넌 그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일인 거 같냐?
태영 : 형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수영 : 자식까지 주고 싶은 네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그러니까 제수씨한테 절대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16 씬. 강석의 집 거실.(낮)
천갑, 영자 외출 했다가 돌아오는.
영자 : 왜 문이 열려져 있어.
소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앞에 쥬스잔 놓여져 있고.
영자 : (의아하게 보면서) 누구세요?
소년 : 저 신문 값 받으러 왔는데요.
단아, 식당에서 보자기로 싼 거 들고 나오는.
단아 : 다녀오셨어요?
영자 : 문이 왜 열려져 있니?
단아 : 아줌마가 시장 가시면서 안 닫고 가셨나 봐요.
영자 : 그런데 왜? (소년과 단아를 번갈아 보는)
단아 : 아, 네 신문 값 받으러 왔는데, 쥬스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어요.
(보자기 소년에게 주면서) 밑반찬 몇 가지 쌌는데 가져가서 먹어요.
소년 :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는)
영자 : 아니, 너 어쩌려고, 아무도 없는 집에 저런 애를 들이니?
단아 : .....
영자 : 요즘 같은 흉악한 세상에 아무나 집에 들이고 그러면 안돼 너.
단아 : 할아버님 한분만 모시고 사는 소년 가장이래요, 어머니.
영자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다.
단아 : 어머니? 저희 친정에선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문 밖에서 돌려보내는 법이 없어서.....
천갑 : 그럼 저렇게 신문 배달하는 애까지 대접을 해서 보내고 그랬냐?
단아 : 네.
천갑 : 햐. 역시 명문 종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영자 : 여보.
천갑 : 그래 복 쌓고 사는 게 별 거 아니다. 내 집에 온 사람한테 찬물 한 대접이라도 먹여 보내는 거,
그게 복 쌓고 사는 거지 별 건가.
영자 :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하지만 세상이 워낙 험하니.
천갑 : 그런 세상일 수록 이렇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냐?
그래, 아가. 네가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사는 거다.
(영자에게) 우리 가훈이 뭐냐? 확실하게 다르게 살자 아니냐? 여보야?
영자 : 왜?
천갑 : 인생에 기회가 세 번 있는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우리 며늘애 들어오면서 네 번 째 기회가 온 거 같지 않냐?
진짜 명문가 한번 만들어 볼 기회가 왔는데 놓치면 쓰겠냐?
영자 : 그런 거야?
천갑 : (단아에게) 내가 네 시어머니한테 반한 게 바로 이런 거다. 금방 혹하고 넘어오는 거 너무 귀엽지 않냐?
단아 : (웃으면서) 네.
#.17 씬. 방송국 일각.(낮)
주정, 병도 서있는.
병도 : (주정의 표정 살피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선배. 우리만 입 다물면 아무 문제없는 거잖아?
주정 : .....(울리는 핸드폰) 여보세요? 네. 제가 하주정인데요. (듣다가 굳어지는)
#.18 씬. 커피숍.(낮)
주정, 상준 앉아있는.
상준 : 할머니한테 주시고 간 명함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주정 : ....
상준 : 우리 할머니랑 하시는 말씀 다 들었는데요.
주정 : .....
상준 : 대성 건설 하만기 회장님이 오빠분 되시죠?
주정 : .....
상준 : 여러 말 안하고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만기 회장님께서 출생의 비밀 아시는 거 원치 않으시죠?
주정 : .....
#.19 씬. 길.(낮)
주정, 걸어오는데, 암담한 심정으로.
#.20 씬. 주정의 방.(밤)
주정,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는.
#.21 씬. 마루.(밤)
화장실에서 나오는 태영, 부엌에서 나오는 진아와 말순.
말순 : (윽 하면서) 무슨 입덧이 남편 얼굴만 보면 더 심해지는지 모르겠어.
진아 : (미소 짓는데)
태영 : (말순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는)
말순 : 나 화장실 가서 토해야 해. (하면서 끌려들어가는)
#.22 씬. 태영의 방.(밤)
말순, 멍한 표정으로 태영을 바라보는.
태영 : 그러니까 형수님 앞에서 왝 왝 거리는 거 절대 하지 말란 말이야.
말순 : 어떡해, 어떡해, 우리 진아.
태영 : 진아가 뭐냐? 손위 동서한테.
말순 : 부모 형제 없이 외롭게 자랐는데, 아이까지 낳을 수 없으면.....
태영 : (울먹해서) 그러니까 무조건 형수님한테 잘해드려. 깍듯하게 모시고.
말순 : (눈물을 흘리는)
#.23 씬. 수영의 방.(밤)
진아, 입양 서류를 보고 있는, 그 앞에 앉아있는 수영.
수영 : 지금 신청해도 바로 아기를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우리가 부모로 자격이 있나 심사도 받아야 하고.
진아 : 어떤 아길까요?
수영 : .....
진아 : 우리한테 와서 우리 아기가 돼줄 그 아기요?
수영 : .....
진아 : 지금 태어나 있을까요? 아니면 지금은 어느 분의 몸 안에 있는 걸까요?
수영 : .....
시간 경과,
잠들어 있는 수영,
진아, 두 손을 모으고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영 : (자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는) 뭐해요?
진아 : (보고 미소 짓는) 기도하고 있어요.
수영 : .....
진아 : 우리 아기 오늘 밤 편안하게 해달라구요. 우리한테 올 때까지 잘 먹고 잘 자게 해달라고.
아직 태어나 있지 않으면, 엄마몸 안에서 평화롭게 지내게 해달라구요.
수영 : (진아를 감싸 안는)
#.24 씬. 회사 전경.(낮)
#.25 씬. 석호의 사무실.(낮)
일하고 있는 석호, 울리는 핸드폰.
석호 : (번호 보고) 네, 고모님?
#.26 씬. 커피숍.(낮)
석호, 주정 앉아있는.
주정 : 조카도 몰랐으면 했는데, 나 혼자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서.
석호 : 무슨 일인데요?
주정 : 조카?
석호 : (의아하게 보는)
시간 경과.
석호 : (굳어져 있는)
주정 : 미안해. 다큐 만든다고 하다가 벌어진 일이야.
석호 : .....
주정 : 그 할머니만 찾아뵙지 않았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었던 일인데. 정말 미안해, 조카.
석호 : 그 젊은이가 돈을 달라고 하는 건가요?
주정 : 응. 어떻게든 내 선에서 해결을 해보려고 했는데,
1억이라는 돈이 내가 만들 수 있는 액수가 아니라서, 정말 미안해.
석호 : 그걸 안주면, 아버님을 찾아가겠다고 하는 건가요?
주정 : (끄덕이는) 오빠, 그 사실 아시면 돌아가실 거야.
장생 하씨 종가의 종손이란 자부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인데.
만약 그 사실을 아시면, 오빠 인생 자체가 무의미한 게 되는 거잖아?
석호 : 아시게 하면 안 되죠. 절대 그건 안 됩니다.
주정 : 그런데 문제는....
석호 : (보면)
주정 : 과연 이번 한번으로 끝날 거냐 하는 거야.
이런 일로 협박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이런 일 다시 없으란 법이 없어.
석호 : (암담한)
#.27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들어오는, 영인 서류 들고 서 있다가,
영인 : 외출 했었어요?
석호 : 응.
영인 : 어디 아파요?
석호 : .....
영인 :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
석호 : (의자에 앉는)
영인 : 무슨 일이야?
석호 :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28 씬. 강석의 집 거실.(밤)
강석, 들어오는, 천갑 연속극 보고 있는.
강석 : 다녀왔습니다.
천갑 : 그래.
강석 : (식당 쪽을 보면서) 나 왔어.
천갑 : 애기 없다.
강석 : 어디 갔어요?
천갑 : 네 엄마가 저녁 모임에 데리고 나갔다.
강석 : 아주머니들이 저녁 시간에 모임을 하고 그러신대요?
천갑 : 무슨 바자횐가 하는데 갔어.
강석 : 그럼 혼자 가시던지, 왜 남의 색시는 달고 가신대요?
천갑 : 남의 색시? 야, 임마. 네 색시만 되냐, 애기 우리 며느리도 된다. 자식이 경우를 몰라요, 경우를.
강석 : 우리 아직 신혼인데, 집에 들어와서 와이프가 없으면 얼마나 허전하겠어요?
천갑 : 신혼은 너만 해봤냐? 그리고 앞으론 와이프 마중 못 받는 날 많을 거다 하고 포기를 좀 해둬라.
네 엄마 이젠 애기 데리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거에 재미 붙여서
절대 혼자 외출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강석 :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천갑 : 알았으면 뭐?
강석 : 너무 완벽한 며느리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초인종 울리는.
강석 : 왔나보네요. (얼른 인터폰 앞으로 걸어가는, 현규 얼굴 보이고) 어, 너 또 왜 왔어?
천갑 : 남자들끼리 친목 도모 좀 하자고 불렀지, 왜 오긴.
강석 : 아버지, 또.
#.29 씬. 천갑의 방.(밤)
천갑, 강석, 현규 앉아서 고스톱 치고 있는.
강석 : 정말 신혼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와이프는 어머니한테 뺏기고, 아버지 취미 생활에 어거지로 동참하고 앉아있으니.
(패 가져다 놓으면서) 어, 났네. 고 들어갈게요.
천갑 : 고 들어갔냐?
강석 : 네, 들어갔어요. 이번엔 좀 클 거 같네요.
천갑 : (현규 보면서) 대학은 개강을 삼월 달에 하지?
현규 : 네? 아, 네.
천갑 : 삼월이 날씨가 제일 좋은 거 같드라 나는. 그렇지 않나? (눈까지 꿈벅이고)
강석 : 고스톱 치시다가 웬 날씨 얘기는 하세요.
현규 : (삼자를 내놓는)
천갑 : (세장을 내리치면서) 원폭이다, 원폭. 아이고, 광났네, 났어.
강석 : (현규와 천갑을 번갈아 보는) 지금 뭐하세요? 아버지?
천갑 : 뭐하긴 고스톱 치잖냐?
강석 : 지금 아들 상대로 사기도박 하시는 거거든요.
천갑 : 내가 언제? 얘는 생사람을 잡고 그러네. 야, 야, 빨리 돈이나 내놔라. 너 고박이다, 고박.
#.30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영자, 단아, 들어오는. 혜주, 찻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는.
혜주 : 다녀오셨어요?
영자 : 응. 아가, 내일은 점심 약속 있다.
단아 : (어색하게 웃으며) 네.
천갑E : 넌 뭐가 더티하다고 자꾸 그러냐?
영자 : 누구 왔니?
혜주 : (웃는)
#.31 씬. 천갑의 방.(밤)
천갑, 강석, 현규, 둘러앉아 고스톱 치고 있고.
영자, 단아, 혜주 들어오는.
강석 : 이게 더티한 게 아니면 뭐세요?
이가 아프시다고 하면, 이자 내놓고, 팔이 왜 이렇게 저리냐 그러면 팔 자 내놓고.
영자 : 또야 당신?
천갑 : 이가 아파서 아프다고 한 거고, 고스톱 오래 치다보니 팔이 저려서 팔이 저리다고 한 건데,
내 입 가지고 그런 말도 못하냐?
강석 : 타짜 영화 찍으시는 것도 아니고,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죠.
단아 : 왜 그래요?
강석 : 현규하고 편먹고 나 완전히 물먹이신다니까, 아버지가.
단아 : 당신 고스톱 실력이 딸리니까 그런 거지. 왜 핑계는 대고 그래요, 사람이 치사하게.
천갑 : 애기 네가 바른 말 한다. 어서 쳐라.
강석 : 아버지, 또 한번 저 물먹이시면 사기도박으로 바로 신고 들어갑니다.
천갑 : 아가, 네 남편 절대 머리 좋은 애 아니다.
임마, 사기도박으로 신고하면 같이 쳤던 너도 딸려 들어가는 거야. 법을 몰라요, 법을.
#.32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단아 들어오는.
강석 : 분가 합시다.
단아 : 네?
강석 : 이런 환경에서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어요.
단아 : (웃는)
강석 : 집에 와도 마누라가 기다려 주길 하나, 아버지는 고스톱 치자고 사기나 치시지 않나.
단아 : (장롱 문 열고, 가방을 꺼내는)
강석 : 지금 당장 나가려구요?
단아 : 짐 싸야죠.
강석 : 야, 화끈하다, 우리 마누라.
단아 : 옷은 몇 벌이나 챙겨줄까요? 근데 갈 데는 있어요?
강석 : 우선은 호텔에서 지내면서 집 구하면 되죠 뭐.
단아 : 오피스텔 같은 데로 해요, 혼자 살 건데 너무 큰 집 그렇잖아요?
강석 : 지금 나 혼자 나가라는 겁니까?
단아 : 그럼 내 집 놔두고 내가 왜 나가요?
강석 : 내가 나가겠다는데, 당신은 남겠다 그거야?
단아 : 종종 들려주세요.
강석 : 진짜 배신감 확 밀려온다.
단아 : 진짜 신기하다.
강석 : (보면)
단아 : 왜 본전도 못 찾는 거 뻔히 알면서 매번 이럴까.
강석 : 에이. (단아 허리 휘어 감으면서) 말 나온 김에 본전이나 찾아야지.
#.33 씬. 하옹의 방.(밤)
석호,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들어와 앉는 주정.
석호 : (보는)
주정 : 참 이상한 집안이지? 우리 중 누구도 엄밀히 따지면 장생 하씨 집안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잖아?
근데 오빠도 그렇고, 조카도 그렇고, 수영이도 그렇고 종손이란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석호 : .....
주정 : (하옹의 사진을 보면서) 저 양반은 무슨 생각으로 오빠를 내치지 않으신 걸까?
어쩌면 복수심 같은 거 아니었을까? 더럽혀진 아내에 대한 복수심 같은 거?
석호 : 고모님.
주정 : 응?
석호 : 그 젊은이한테 당장은 그 돈을 마련하기 힘드니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해주십쇼.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버님이 세상 뜨시기 전까진 해달라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요.
주정 : (하옹의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 거예요?
#.34 씬. 산파 할머니 집 마당.(낮)
상준, 전화 중.
상준 : 제가요,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당장 계약을 한다니까요.
산파 할머니, 장바구니 들고 들어오는데.
상준, 전화하느라 할머니를 못보고.
상준 : 대성건설 같은 큰 회사를 하는 집안에서 그깟 1억이 무슨 큰 돈이라고 시간을 끄십니까?
할머니 : (굳어져서 보는)
상준 : 저 오늘이라도 당장 하만기 회장님 찾아뵐 수도 있거든요.
할머니 :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상준 : (당황해서) 내일까지 계약해야 되니까 꼭 좀 만들어주십쇼.
할머니 : (상준을 때리면서) 너 뭐하는 짓이냐구?
상준 : (전화 끊으며, 짜증스럽게) 왜 그래? 할머니?
#.35 씬. 산파 할머니 방.(낮)
할머니, 맥이 풀려 앉아있고, 상준 그 앞에 앉아있는.
상준 : 그 피디라는 여자가 하만기 회장 동생이야, 동생.
그 노친네 자기 출생의 비밀 알까봐 벌벌 떠는 거 같아서 내가 비밀 지켜줄 테니 돈 좀 해달라고 했어, 왜.
할머니 : (때리면서) 그게 사람으로 할 짓이냐? 이 놈아?
남의 집안이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일인데, 그걸로 돈을 뜯어내?
상준 : 그럼 어떡해? 할머니 이 집 못 팔겠다며?
할머니 : 다 내 죄다, 내 죄야. 어쩌자구 내 입으로 그 일을....
상준 : 너무 그럴 거 없어, 할머니.
나 사업 밑천 하라고 이런 횡재수가 생긴 거다 생각해버려. (일어나서 나가는)
할머니 : 내가 어쩌자구.....
#.36 씬. 마루.(낮)
삼월, 전화 받고 있는.
삼월 : 네? 맞는데요, 네, 대성건설 하만기 회장님 댁이 맞습니다.
방에서 나오는 만기.
만기 : 누가 날 찾소?
삼월 : 네, 회장님.
만기 : (수화기를 드는) 제가 하만기 올습니다.
#.37 씬. 한정식 집 정도의 장소.(낮)
만기, 산파 할머니 앉아있는.
할머니 : 저 기억 하시겠습니까? 예전에 저희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뵌 적이 있는데....
만기 : 아, 예. 아버님 모시고 문상을 갔었죠.
할머니 : 네. 회장님께서 크게 성공하셨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만기 : 크게 성공하긴요. 조그마한 사업체를 하나 경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할머니 : (울음을 터트리며) 회장님.
만기 : 아니, 왜 이러십니까?
할머니 : 이 늙은 게 회장님께 죽을죄를 졌네요.
만기 : 왜 이러십니까?
#.38 씬. 마루.(낮)
만기, 들어오는. 석호 서있는.
석호 : 출타 하셨었다구요?
만기 : (끄덕이고) 에비야?
석호 : 네, 아버님.
만기 : 내일 이서방하고 단아를 좀 부르거라.
석호 : .....
#.39 씬. 하옹의 방.(낮)
만기, 들어와 앉는. 하옹의 사진을 바라보는.
#.40 씬. 종가 전경.(낮)
#.41 씬. 만기의 방.(낮)
만기,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말순, 진아, 주정, 강석, 단아, 앉아있는.
만기 : 오늘 이서방과 단아까지 부른 건, 너희들 역시 내 자손들이니 알아야 할 거 같아서다.
내가 오랫동안 니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일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싶어서 나 혼자만 간직했던 비밀이지만, 세상엔 비밀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떠나고 난 뒤에 너희들이 그 일을 알게 되면,
혹여라도 내가 부끄러워 비밀로 간직한 게 아닐까 오해를 할 거 같아서
오늘 너희들 모두 앞에서 말을 하려고 한다.
가족들 긴장 된 표정으로 보는.
만기 : 나는.....돌아가신 너희들 할아버지의 친자가 아니다.
모두 굳어지는.
주정 : 오빠.
만기 : 듣거라. 내 아버님은 일제 치하에 징용에 끌려가셨다가 불임의 몸으로 돌아오셨다.
내 어머님은 그 사이 왜정 순사에게 욕을 당하셨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나다.
어린 시절, 주정이 네가 만나 뵌 그 어른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연히 듣게 됐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게 됐고, 어린 마음에 집을 나갈 생각까지 했다.
그때 내 아버님이 나를 앉혀놓고 말씀하시더구나.
너는 내 피를 물려받은 자식은 아니지만, 내 아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친자식과 다름없다구.
당신은 내 어머니를 한 여인으로, 그리고 이 집안의 종부로 위하고 아끼셨다구.
그때......어린 내가 울부짖었다. 아버지. 제 피는 더럽잖아요? 나쁜 놈의 자식이잖아요.
그런 나를 안으시면서, 니들 할아버님이 말씀 하셨지. 내가 사랑한 여인의 자식이니, 너는 내 자식이라고.
그러니 너 자신을 귀하게 여기라고. 그러시면서 족보를 펼치시고,
봐라, 여기 네 이름이 있지 않니? 이게 바로 너고, 너는 그리 귀한 사람이라구.
평생을.....그 말씀 하나에 의지해서 살아왔다. 나는 귀한 사람이다.
#.42 씬. 마루.(낮)
삼월, 입을 가리고 울며 서있는.
#.43 씬. 만기의 방.(낮)
만기 :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누군지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나는 하등 장생 하씨 종가완 무관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아버님이 너는 내 자식이라고 하신 그날부터
나는 내가 내 아버님의 자식이라는 걸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피와는 상관없이, 내 아버님이 내게 주신 그 마음 하나로 나는 그 분의 자식이었고,
너희들 역시 그 분의 자손들인 게다.
눈물을 흘리며 듣는 가족들.
만기 : 동동이가 아직 어려 다 이해하지 못할 듯 싶어 오늘은 내보냈지만
아이들이 커서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너희 아이들에게 오늘 내가 한 이 이야기를 해 주거라.
너희가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라고.
사람은 그래야 살아지는 거라구. 자신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남도 귀히 여길 줄 모르는 거라구.
#.44 씬. 하옹의 방.(낮)
석호, 생각에 잠겨 서있는. 그 위로 겹쳐지는 2회 35씬 회상.
만기 : 처음엔 죽을 끓여 먹이셨다지.
석호 : .....
만기 : 어미 잃은 어린 것 붙잡아 보려고 보리를 끓여 입에 넣으셨단다. 네 할아버님이. 쌀도 구할 수 없어서.
그러다 이러다 놓치겠구나 싶으셔서 그 어린 핏덩어리를 싸안고 동네에 나가
아무 아낙이나 붙잡고 사정을 하셨단다. 젖 한번만 물려달라고.
어찌 어찌 젖을 물려 가지고 돌아오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배를 채운 어린 게 품에서 곤히 잠이 들었는데.....
(목이 메이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으셨단다.
석호 : (눈물이 흘러내리는)
#.45 씬. 하옹의 방.(밤)
만기,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말순, 진아, 강석, 단아, 주정, 동동. 삼월, 조만 서있는.
상식을 올리는 만기. 만기가 절을 하고, 가족 모두 절을 하는 모습에서. 천천히 f.o
#.46 씬. 종가 전경.(낮)
자막 1년 후.
#.47 씬. 마루.(낮)
동동, 땀까지 흘리면서 아기 둘을 보고 있는.
보행기를 타고 있는 10개월 개월 정도의 주영. (남자 아기)
포대기에 눕혀져 있는 3,4개월 정도의 동선. (여자 아기)
동동 : (보행기에 앉아서 발버둥 치고 있는 주영. 포대기에 눕혀져 있는 동선, 정신없이 울어재끼는)
삼촌, 삼촌, 가만 좀 계세요. 동선이 발로 차면 어떡해요?
동선아, 동선아, 오빠 정말 정신없어 죽겠다. 그만 좀 울어. 할아버지? 아직 머셨어요?
#.48 씬. 부엌.(낮)
만기, 우유병에 분유를 넣고 있는.
만기 : 다 됐다, 다 됐어.
동동E : 삼촌이랑 동선이랑 배고파서 짜증내요.
만기 : 다 됐다니까. (우유병 흔들어서 손등에 조금 묻혀보는)
#.49 씬. 마루.(낮)
동동, 두 아기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만기, 우유 두 병을 들고 급하게 나오는.
만기 : 됐다, 됐어, 그만들 좀 울어라.
동동 : 어.....
만기 : (앉으면서) 왜?
동동 : 냄새나요.
만기 : (코 킁킁거리는) 어느 놈이냐?
동동 : (주영과 동선이 둘 다 냄새 맡아보는) 둘 다예요.
만기 : 그럼 기저귀부터 갈아주자.
만기, 동동 얼른 두 아기 옷을 벗기는데.
동동 : (코 막으면서) 삼촌 똥냄새가 더 독한 거 같아요.
만기 : 네 동생 똥냄새도 만만치 않다.
동동 : 근데 정말 이상하죠?
말을 하면서도 기저귀는 가는.
만기 : 뭐가?
동동 : 아이들은 어떻게 물만 먹는데 똥을 싸는 걸까요?
만기 : (보고) 그러게. 참 신기하구나.
삼월, 장바구니 들고 급하게 걸어오는.
삼월 : 아이고, 왜들 이렇게 울고들 그러시나?
동동 : 얘네들은 맨날 우는 게 일이잖아요.
만기 : (보면)
동동 : 삼촌은 우시는 게 일이잖아요.
삼월 : 회장님, 제가 할게요. (얼른 앉으며, 기저귀 꺼내는데)
동동 : 악.
삼월, 만기 보면. 주영이 동동이 얼굴에 오줌을 갈긴.
동동 : 삼촌 제가 이러지 마시라고 했죠? 기저귀 갈 때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다니까요.
#.50 씬. 강석의 집 전경.(낮)
#.51 씬. 강석의 집 거실.(낮)
단아, 배가 남산 만하게 부른 채 계단으로 내려오는. 그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강석.
천갑, 영자, 보고 있는.
천갑 : 잘 잡아줘라, 잘. 넘어진다.
영자 : (얼른 계단 아래로 다가가) 조심 조심.
단아 : (계단을 내려오다가, 배를 잡고)
강석 : 왜? 왜? 둘이 또 싸워?
단아 : (미소 지으며) 장난치는 거라니까요.
강석 : 아니, 이 자식들은 얌전하게 있지 왜 이렇게 장난이 심해?
천갑 : 좁은 엄마 배속에서 두 녀석이 있는데, 지들도 오죽 갑갑하겠냐?
강석 : 그러니까 한 놈씩만 낳자니까 왜 한꺼번에 두 놈 씩이나.
단아 : (흘겨보는)
천갑 : 임마, 쟤 혼자 만들었냐?
강석 : 다녀올게요.
천갑 : 참, 여보, 그거, 그거.
영자 : 어, (얼른 옆에 있던 선물 꾸러미 강석에게 들려주는) 애기 옷이다.
강석 : 저희가 가면서 살 텐데요.
영자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이건 우리가 보내는 거라고 꼭 말씀 드려.
단아 : 고맙습니다.
영자 : 할아버님께 축하드린다는 말씀도 꼭 드리고.
천갑 : 귀한 종손보신 거 축하드린다고 해라.
단아 : 네.
천갑 : 어서들 가봐라. 애기 왔겠다.
강석 : 다녀올게요. (단아 팔 잡아주면서 걷는데)
단아 : (배를 만지는)
강석 : (단아의 배에 대고) 이 자식들아, 그만들 싸우라니까.
천갑 : 야, 야. 애기들 놀란다.
강석, 단아 나가면.
영자 :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는데 배가 저렇게 불러서 힘들어 어쩐대.
천갑 : 그래도 논문은 끝냈으니 다행이잖냐?
영자 : 정말 짠해 죽겠어. 논문 준비하랴, 학교 나가서 강의하랴.
집안일은 좀 적당히 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천갑 : 타고나길 바지런하게 타고 난 걸 어쩌겠냐.
천갑, 영자 소파로 와서 앉는.
천갑 : 오늘부턴 사돈댁 더 벅적이겠네. 애기가 셋 아닌가?
영자 : 참 대단하시지? 종손인데 공개 입양을 하시는 거 보면.
천갑 : 그 어르신이 뭐가 달라도 다른 양반 아니시냐?
영자 : 남들 같으면 쉬쉬 하면서 진짜 낳은 것처럼 꾸미기도 할 텐데.
천갑 : 크면서 입양 됐다는 거 아는 것보단 났다고 하지 않냐?
영자 : 오늘 자고 오지 말고 그냥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천갑 : 왜?
영자 : 애기들 울음소리 때문에 우리 며느리 잠 설치면 어떡해? 그럼 우리 손주들도 잠 못잘 거 아냐?
(수화기 들면서) 그냥 오라고 해야겠어.
천갑 : (영자 팔 잡으며) 애는 강하게 키워야 하는 거다.
#.52 씬. 길.(낮)
운전하는 강석, 그 옆에 단아. 울리는 핸드폰.
단아 : 네? 교수님.
#.53 씬. 남교수 사무실.(낮)
남교수 : 축하해, 하교수. 교수 회의에서 전임발령 결정 되셨다네요.
단아E : 정말이세요?
남교수 : 매일 축하할 일만 생긴다. 박사 논문 통과 되고, 전임 발령 나고.
근데 정말 쌍둥이 키우면서 강의할 수 있겠어?
#.54 씬. 길.(낮)
강석의 차.
단아 : 그래서 고민 중이예요.
남교수E : 왜? 강의 안 맡으려구? 전임 발령까지 났는데, 그건 너무 아깝잖아?
단아 : 전임 발령까지 났는데, 강의는 해야죠.
강석 : 전임 발령 났대요?
단아 : (끄덕이는)
강석 : 장하다, 우리 마누라.
단아 : 쌍둥이를 집에 두고 강의 다니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출산 휴가를 내게 하면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예요.
남교수E : 출산 휴가를 내게 해?
단아 : 네. 요즘은 남자들도 출산 휴가 많이 낸다잖아요?
강석 : (보고)
단아 : (웃고) 네, 교수님, 들어가세요. (전화 끊고)
강석 : 지금 나, 출산 휴가 내게 하겠다는 말 한겁니까?
단아 : 아빠로 뭔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난 이번 학기에 강의 쉬었으니까, 이번엔 당신이 쉬면서 애기들 보는 건 어때요?
강석 : 나, 나더러 집에서 애기 둘을 보라구요?
단아 : 왜 말까지 더듬고 그러십니까?
강석 : 그럼, 지금 안 더듬게 됐습니까?
단아 : 그렇게 무서워요?
강석 : (단아 손 잡으면서) 제발 그것만은 봐주라.
내가 일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다가 보모 두 분 모셔올 테니까 응? 응?
단아 : (배 만지면서) 얘들아. 너희 아빠 애정이 요 정도란다. 워낙 겁이 많은 걸 어쩌겠니?
엄마 닮아서 마음 넓은 너희들이 이해해야지.
강석 : 아, 좋아. 나 출산 휴가 낸다, 내. 나중에 애기 잘못 본다고 다시 회사 가라고만 해봐.
단아 : 니들 아빠, 협박하는 것도 너무 유치하지?
강석 : 자꾸 애들한테 아빠 이미지 관리 그딴 식으로 할 겁니까?
단아 : 버럭은 니들 아빠 취미야. 알지?
#.55 씬. 마루.(낮)
강석, 단아 걸어오는. 영인, 주정, 태영 청소하고 있는.
단아 : 어머니?
영인 : 어서 와.
강석 : (인사하고) 웬일이세요? 할머님이 청소를 다 하시고?
주정 : 애 둘 때문에 집안이 정신없이 돌아가니, 나까지 걸레를 들게 되는구만.
와, 단아야, 저번에 봤을 때보다 배가 엄청 더 부른 거 같다.
태영 : (강석에게) 참 너는 재주도 좋다. 한방에.
강석 : 제가 농구를 좀 잘 했거든요. 한 번에 2점 올라가잖아요?
태영 : 롱슛은 잘 못했냐? 그건 3점이잖냐?
강석 : 다음엔 시도해 보려구요.
태영 : 4점 올라가는 스포츠 없는 게 다행이다.
장독대 쪽에서 종지 들고 올라오는 삼월.
삼월 : 왔어?
강석, 단아 인사하는.
강석 : 요즘은 어떠세요? 할머니?
삼월 : (웃으며) 요즘은 많이 멀쩡해졌어. 밤에 장독대랑 광 뒤지는 거 빼면 그런 대로 쓸만해.
단아 : 우리 할머니 유머감각 완전히 회복하신 거 보니 다 나으셨나보네.
삼월 : 내 유머 감각이야, 어디 가나?
주정 : (단아 배 만지면서) 한 달 남았지?
단아 : 네.
주정 : 어쩌다 쌍둥이를 가져서 이 고생이라니? 쌍둥이는 한 대 걸러 나타나는 유전이라는데.
삼월 : 그게 꼭 뭐 법칙이 있는 건가?
얼른 일곱 낳으라고 한꺼번에 둘 낳게 해주시려는 조상님들 은덕이지.
주정 : 일, 일곱? 너 일곱 낳을 거니?
단아 : 하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보려구요.
주정 : 이서방, 애 일곱 벌어먹이려면 허리 휘겠다.
강석 : 하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보는 거죠 뭐.
단아 : 할아버님께 인사드려야죠?
강석 : 응.
주정 : 할아버지, 주무신다.
단아 : 할아버님, 낮잠 안주무시잖아요?
영인 : 애 둘 보시느라 고단하신지, 요즘은 애기들 잘 때 같이 주무셔.
#.56 씬. 만기의 방.(낮)
만기, 동동, 아기 둘 사이에 두고 잠들어 있는.
단아, 강석, 문 열어보며 웃는.
단아 : 정말 고단하신가 봐요. 잠귀 밝으신데 문 여는 것도 모르시네요.
영인, 태영 들여다보면서.
영인 : 우리 동동이 장래 희망이 뭔지 아니?
단아 : (보면)
영인 : 간호사.
단아 : 간호사요?
태영 : 삼촌이랑 동생 보면서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깨달았단다. 신생아실 간호사.
단아, 강석 웃는.
#.57 씬. 종가 앞.(낮)
수영의 차 멈추고, 수영, 진아 차에서 내리는.
진아, 품에 신생아 안고 있는.
수영 : 자식, 둔한 편인가? 오면서 한번도 안 깨네.
진아 : 엄마 품이 편해서 그런 거예요.
수영 : (아기 만지면서) 임마? 눈 좀 떠봐. 여기가 우리 집이야.
#.58 씬. 마당.(낮)
수영, 진아 아기 안고 걸어 들어오는.
진아 : 어머, 어머, 눈 떴어요.
수영 : 집에 들어오니까 눈 뜨네.
진아 : 여기가 우리 집 마당이야. 네가 커서 뛰어놀 마당. 너무 이쁘고 좋지? 어머.... 웃어요.
수영 : 정말. 이 자식, 진짜 좋은가보네.
진아 : 벌써, 엄마 말 알아듣나 봐요.
수영 : 나 닮아서 태생이 효잔가 본데요.
#.59 씬. 만기의 방.(낮)
가족들 둘러앉아있는.
만기, 수영의 아기를 안고서 들여다보는.
영인, 주영을 안고 있고, 말순이 동선을 안고 있는.
만기 : 잘 왔다.
주정 : 진짜 많이 닮았다. 코랑 눈은 수영이 닮고, 입하고 귀는 큰 손주 며느리 판박이네.
만기 : 그럼 에비, 에미 안 닮고 누구 닮았겠냐?
주정 : 애기 이름은 지으셨어요?
만기 : 돌림자를 써서, 동녘 동에 옥돌 우 자를 써서 동우라고 지었다. (수영과 진아에게) 마음에들 드냐?
수영 : 네, 할아버님.
만기 : 자, 그럼 조상님들께 인사 올리러 가야지.
#.60 씬. 사당.(낮)
만기, 아기 안고 서있고, 석호, 그 옆에.
진아, 한복 차림으로, 수영과 절을 하고 일어서는.
만기 : 이 집안의 종손입니다. 부디 건강하고 착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은덕을 베풀어주십쇼.
#.61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진아, 태영, 말순, 강석, 단아 차를 마시고 있는.
진아, 말순 아기들 안고 있는.
단아 : 정말 둘 다 순하다. 울지도 않고 잘 자내요.
태영 : 난 벌써부터 걱정 돼서 못살겠다. (말순 안고 있는 아기 들여다보면서) 이 예쁜 걸 언놈한테 주냐?
강석 : 벌써부터 시집보낼 때 걱정하시는 거세요?
태영 : 넌 딸 없어서 이 심정 모를 거다.
강석 : 저 아직 모르거든요. 이 자식들이 아들인지 딸인지.
태영 : 그럼 딸 낳아놓고 말하자. 애 에비의 애끓는 심정에 대해선.
봐라. 이 이목구비하며, 이 우아한 자태.
강석 : 애기가 무슨 우아한 자태가 있어요?
태영 : 이 옆으로 살짝 틀고 자는 자태가 네 눈엔 우아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냐?
말순 : 그만 좀 해라. 다들 비웃는 분위기 못 느끼냐?
진아 : 저도 벌써부터 걱정인데.....
모두 진아를 보는데.
진아 : 우리 동우 나중에 어떻게 군대 보내죠?
말순 : 형님, 진짜 우리 신랑보다 한 술 더 뜨시네요.
모두 웃는.
#.62 씬. 마루.(밤)
태영, 말순, 강석, 단아. 수영의 방에서 나오는. 말순, 아기 안고.
태영 : 저러다 우리 형수님 오늘부터 잠 못 주무시는 거 아닌지 몰라. 동우 군대 보낼 걱정 때문에.
조만, 장기, 쇼핑 봉투 한아름 들고 들어오는.
단아 : 결혼 준비 때문에 바쁘지?
조만 : 애기 보려고 빨리 들어오려고 했는데, 살 게 한 두 가지라야 말이지.
말순 : 애기 너무 잘 생겼어. 조만씨도 결혼하자마자 얼른 애기 가져. 두 사람 닮으면 인물 좋을 거야.
장기 : 안돼요.
말순 : 뭐가?
장기 : 저 닮으면 안 되죠. 우리 애기는 무조건 우리 조만씨를 닮아야죠.
조만씨에 비하면 제 인물이 어디 인물인가요?
조만 : 왜 그래요? 정말? 이경장님 인물에 비하면 저는 새발에 피라니까요.
장기 : 아니라니까요, 왜 그래요? 조만씨. 제 인물은 조만씨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니까요.
태영 : (맛 간 표정으로) 야, 야, 들어가자. 더는 못 들어주겠다.
조만, 장기만 남겨놓고 각자의 방으로 웃으며 들어가는.
조만 : 지금 뭘 못 들어주겠다는 거죠?
장기 : 그러게요?
#.63 씬. 단아의 방.(밤)
단아, 강석 들어와 앉는.
강석 :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그럴 거 같은데.
단아 : (보는)
강석 : 아들놈들이면 모르겠지만, 만약에 딸이면 어떡하냐?
단아 : 아들 바라는 거예요?
강석 : 그게 아니구. 딸이면 분명히 당신 닮을 거구, 그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이쁜 놈일 텐데.
그런 놈을 어떤 놈이 채가는 걸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단아 : 눈 뜨고 안보면요.
강석 : 안돼, 안돼. 난 절대 시집 못 보내.
단아 : 시집 안보내면? 평생 끼고 살 거예요?
강석 :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거 같은데.
단아 : 아버님 현규한테 하시는 거 보면서 뭐 배웠어요?
강석 : 만약 현규 같은 놈이 우리 딸을 채가겠다고 나서면.....난....
단아 : 난 뭐요?
강석 :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놔야지. 감히 내 귀한 딸을 넘봐. 아,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열받네.
단아 : (배 만지면서) 철없는 니들 아빠를 부디 용서해라. 엄마가 너무 오냐, 오냐 해서 키워 저렇단다.
#.64 씬. 강석의 집 앞.(밤)
혜주의 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현규, 혜주.
혜주 : 운전기사 월급 줘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현규 : (혜주 어깨 잡고) 월급 대신 딴 걸로 받을게.
혜주 : ....
현규 : 지금 해도 되니?
혜주 : 오빠?
현규 : 응.
혜주 : (수줍게 웃으며) 이젠 안 물어도 되요.
현규 : .....
혜주 : 이젠 면역력이 생겼나 봐요.
현규 : 그런데 어쩌냐?
혜주 : (보고)
현규 : 난 습관이 되서, 안 묻고는 못하겠는데.
혜주 : (주먹으로 현규의 가슴을 때리는)
현규 : (입을 맞추는)
혜주 :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놀라는, 얼른 받고) 네? 아니에요, 집 앞이에요.
현규 오빠, 같이 왔는데.....안돼요, 아버지. 오늘은 그냥 가라고 할래요.
현규 : (미소 지으며) 아닙니다, 아버님. 들어가겠습니다.
혜주 : (전화 끊고) 오늘 또 잡히면 밤새야 한단 말이에요?
현규 : 그것도 습관이 되서, 괜찮아.
혜주 : 우리 아버지 정말 너무 하세요.
현규 : 어떡하겠냐? 내가 너무 근사한 사윗감이라 그러신 걸.
혜주 : (멍하니 보는)
현규 : 앗, 실수다. 프로포즈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혜주 : .....
현규 : (혜주 손 잡고) 나 군대 갔다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혜주 : (눈물이 글썽해서 보는)
현규 : (안으면서) 기다려주라. 너 고무신 거꾸로 신으면 나 지뢰 밟을지도 모른다.
#.65 씬. 종가 전경.(밤)
강석E : 왜, 왜 그래?
#.66 씬. 단아의 방.(밤)
강석, 일어나서 불을 켜는. 단아, 앉아서 배를 잡고 신음하고 있는.
단아 : 병원에 가야겠어요.
강석 : 알았어, (급하게 일어나는)
단아 : 아....
#.67 씬. 마루.(밤)
강석, 단아의 방에서 급하게 나오는.
강석 : (석호의 방 앞으로 가서) 어머니? 어머니?
영인E : (잠결에) 어, 어? 왜?
강석 : 어머니, 좀 나와 보셔야 겠는데요.
영인, 쉐터를 걸치며 급하게 나오는.
영인 : 왜?
강석 : 저 사람 산통이 시작 된 거 같아요.
영인 : 아직 예정일 한달이나 남았잖아?
강석 : 많이 괴로워해요.
삼월, 방에서 나오는.
삼월 : 무슨 소리야?
영인 : 산통이 시작된 거 같대요.
#.68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서 괴로워하는.
강석, 영인, 삼월 들어오는.
삼월 : 단아야?
영인 : 얼마 간격으로 아픈거야?
단아 : 계속....계속.....
삼월 : (이불 들쳐보고) 이런 양수가 터졌네.
단아 : (괴로워하고)
영인 : 얼른 옷 갈아입고 올게. 자네도 얼른 옷 갈아입게.
강석 : 네.
삼월 : 안되겠어요, 병원 가면서 나올 거 같은데.
영인 : (놀라서) 네?
#.69 씬. 마루.(밤)
석호, 수영, 태영, 강석, 안절부절하는 모습으로 서있는.
태영 : (단아의 방을 향해) 할머니? 집에서 낳아도 되는 거예요?
삼월E : 옛날엔 다 집에서 낳았어.
태영 : 그래도 요즘 누가 집에서 애를 낳아요.
삼월E : 단아야, 참지 말고 그냥 소리를 질러. 이렇게 이 악물면 이 다 상해.
태영 : 집이라서 저 자식 소리도 못 지르나보네.
#.70 씬. 부엌.(밤)
말순, 진아, 조만 물 끓이고 있는. 큰 솥 두 개 불 위에 끓고 있는.
말순 : 우린 이렇게 물만 끓이면 되는 걸까요?
진아 : 할머니가 물 끓이라고 하셨잖아요?
말순 : 아, 왜 이렇게 가슴이 뛰냐?
진아 : 나두, 동서.
#.71 씬. 단아의 방.(밤)
윗목에 쌀과 미역과 정화수를 놓은 소반이 놓여있고.
단아, 이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는.
영인, 단아의 팔을 잡고 있고, 삼월, 단아의 아래쪽에 앉아서.
삼월 : 단아야? 조금만 조금만 힘을 더 줘.
단아 : (힘을 주면서 괴로워하는)
영인 : 참지 말고 소리를 지르라니까. 나 주영이 낳을 땐 병원이 떠내려가는 줄 알았어.
그거 창피한 거 아니니까 소리 질러. 그래야 힘이 덜 들어.
#.72 씬. 마루.(밤)
석호, 수영, 태영, 강석 서있는. 말순, 진아, 부엌에서 나오는.
진아 : 할머니? 물은 다 끓였는데요, 또 뭐할까요?
삼월E : 내 방 장 서랍에 있는 가위 좀 꺼내서 끓는 물에 푹푹 좀 삶아.
진아 : 네. (삼월의 방 쪽으로 움직이는)
강석 :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르는)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석호 : 할머님이 알아서 하실 거네. 나도 그렇고, 얘들도 집에서 낳았으니까.
태영 : 야, 너 들어가 봐라.
강석 : 들어가도 돼요?
태영 : 우리 동선이 낳을 때, 나 머리칼 다 쥐어 뜯겼잖냐?
말순 : (흘겨보는)
태영 : 다 너 때문이야, 이 자식아. 다 너 때문이야.
말순 : (태영 꼬집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강석 : 할머니? 저 들어갈까요?
삼월E : 아니, 단아가 머리를 흔드는구만.
태영 : 신랑 머리칼 쥐어뜯으면 좀 힘이 나는데....
#.73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삼월, 영인 땀을 흘리며.
영인 : 보여요?
삼월 : 응. 다 됐어, 다 됐다, 단아야.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자, 단아야.
영인 : 한 놈이 아니잖아요? 두 놈이 나와야 하는데....
#.74 씬. 만기의 방.(밤)
석호, 들어오는, 만기, 초조한 기색으로 앉아있고. 동동 잠들어 있는.
석호 : 초산이라 쉽게 낳지는 못할 겁니다.
만기 : 조상님들께서 보살펴 주시면, 쉬이 낳을 수도 있을게다.
친정에 와서 아이를 낳는 것도 조상님들 뜻일 테니 말이다.
#.75 씬. 종가 전경.(새벽)
아이 울음소리 울려 퍼지는.
#.76 씬. 단아의 방.(새벽)
단아, 땀이 흥건한 채 누워있고.
강보에 쌓인 아기, 삼월과 영인이 안고 있는.
강석 : (단아의 손을 잡고 앉아있는) 고생 했어요.
단아 : .....
영인 : 축하해, 이서방, 아들 둘 한번에 얻고 참 복도 많아.
강석 : (단아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다음엔 딸 둘에 도전해 봅시다.
단아 : (미소 짓는)
삼월 : 니들 부모 저 욕심 많은 것 봐라.
#.77 씬. 강석의 집 거실.(새벽)
영자, 전화 받고 있는. 천갑 옆에 서있고.
영자 : 어머, 어머. 어떻게 집에서 애를 낳았어? 애기들은?
천갑 : 새애기는 새애기는 괜찮대?
영자 : 새애기는 괜찮대, 애들도 엄마도 다 건강하대.
천갑 : 참, 아들이냐? 딸이냐?
영자 : 아들이야? 딸이야? 아들 두 놈이래.
#.78 씬. 종가 앞.(아침)
석호, 나와서 금줄을 거는.
#.79 씬. 단아의 방.(낮)
단아, 강석, 앉아있고, 천갑, 영자, 아기들을 안고 있는.
천갑 :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못생겼나.
영자 : 그러게, 너무 너무 못생겼다.
강석 : 아니, 제 아들놈들이 어디가 못생겼다고 그러세요?
단아 : (강석 팔 잡으며) 가만있어요, 그렇게 하셔야 하는 거예요.
강석 : 우리 애들을 못생겼다고 하시잖아요.
영자 : 참, 니들 아빠가 뭘 모른다.
단아 : 삼신할머니가 시샘 할까봐, 그렇게들 하는 풍습이 있어요.
강석 : 그런 거예요? 난 또.
천갑 : 아이고, 못난 놈들. 아이고, 못나도 너무 못난 놈들.
영자 : 메주덩어리가 따로 없네, 따로 없어.
#.80 씬. 강석의 집 전경.(낮)
#.81 씬. 강석의 방.(낮)
애기 침대 두 개, 단아, 몸을 돌리고 앉아서 아기에게 젖먹이고 있는.
강석, 아기 안고 앉아서 달래고 있는.
강석 : 야, 임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형이 먹고 나야 네 차례가 될 아냐?
단아 : 그렇게 앉아있지 말고 서서 좀 달래 봐요.
강석 : (일어나서 아이를 달래지만, 참으로 엉성한 자세다)
단아 : 잘 좀 해요, 더 울잖아요?
강석 : 잘하려고 하는 건데.
단아 : 일부러 그러는 거죠? 출산휴가 내라고 할까봐?
강석 : 아니라니까. 내라면 낸다니까 그런다.
단아 : (안고 있던 아기 다독이며) 됐다, 이제 동생 먹자.
(강석에게 아기 내밀면서) 잠들었으니까 깨우면 알죠.
강석 : (조심조심해서 아기 바꾸는데, 강석이 안자마자 울기 시작하는 아기) 이 자식들 정말 왜들 이러는 거야?
영자, 들어오는.
영자 : 너 또 애기 울리니? (얼른 받아 안는. 아기를 어르는)
강석 : 목청 트이라고 일부러 그런 거예요.
영자 : 니들 에비 핑계 대는 거봐라.
#.82 씬. 야외 장소.(낮)
단아, 벤치에 앉아 있는, 그 앞에 쌍둥이 유모차 있고.
강석 : (음료수 두 캔을 들고 걸어오는)
단아, 두 아기를 다독이면서 미소 짓고 있는.
강석E : (걸음을 멈추고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미친 짐승으로 밖에 살 수 없었던 저를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준 저 여자.....
그래서 오늘, 저토록 평화로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저 여자.....
저 여자가 제게 오던 날 기원한 것처럼 저도 이 순간 기원합니다.
다시 태어나서도 저 여자를 찾아낼 수 있기를.....
수 없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언제나 저 여자이기를....
#.83 씬. 종가 마당.(낮)
만기, 평상에 앉아 화초를 손질하고 있는.
삼월 그 옆에 찻잔을 놓아주는.
만기 : 좀 앉구려.
삼월 : (앉는)
만기 : 우리 인연도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같은 해에 태어난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이란 게 말이요.
한 사람과는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사람과는 벗의 인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 했으니....
부부의 인연을 맺고 떠난 사람한테도 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벗인 댁네에게도 늘 그랬소.
삼월 : .....
만기 :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소. 자기가 떠난 자리를 댁네가 대신 했으면 좋겠다구.
삼월 : 회장님....
만기 : 그런데 그게 안 됩디다. 댁네는 나한테 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안사람보다도 더 의지가 되는 누이여서....
삼월 : (눈물을 흘리는)
만기 : 그게 우리의 인연이 아닌가 싶소. 그렇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구려.
나한테는 떠난 그 사람과 댁네는 한 사람이었다는 거. (하늘을 올려다보는)
1회 첫 씬으로 연결.
들판 옆 큰 나무 옆에 선 한복 차림의 남자. 그 옆에 서있는 5,6살 정도의 남자 아이.
남자E : 만기야?
아이E : 네. 아버지?
남자E : 저 멀리 보이는 저 집이 이 에비가 태어난 집이란다.
아이E : 네.
남자E : 저 집에서 네 할아버지도 태어나셨고, 그 우에 할아버지도 그 우 우에 할아버지도 저 집에서 태어나셨다.
아이E : 네.
남자E : 미안하구나, 만기야. 네 태도 저 집에서 나와야 했는데..... 에비가 못나 그리해주지 못했구나.
그래도 잊지는 말거라. 네 할아버지들이 어디서 태어나셨는지.....어떻게 살다 가셨는지....
-끝-
첫댓글 멋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