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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똥통시절 -2-
남들에게는 낭만이 있고 추억이 있으련만 나에게는 3년이란 학창시절이 무척이나 지루한 느낌이였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였을것이다 그래도 더러는 추억으로 남길만한 짧은 시간도 없었든것은 아니였다
학교 도서실에서 일하고 있을때 이따금 찾아와 상냥한 미소를 보내던 가므잡잡하고 보조개가 선명한 귀밑머리 날리는 김금희는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쯤은 그토록 깜찍하던 모습도 찾아 볼수없는 그냥 펑퍼짐한 할머니로 옛날의 그모습은 찾기 힘들것이다
금희는 우리학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오후 5시가 되면 야간고등학교 다니든 여학생이다
책을 좋아한다며 시간이있을때마다 자주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던 금희는 어느날 나에게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젓다
- 어차피 공부가 더이상 중요한건 아니잖아요 저는요 부자집 신부가 되고싶어요 -
- 죄송스럽게도 부자집 아들이 아니여서 안타까우네요 그러나 분명 신은 어느곳인가에서 보고 계실겁니다 -
그녀는 산언덕 움막속에서 겉으로는 천막을 치고 위에 흙으로 덮은 전기도 없는 어둠속에서 여러식구가 살고있었다
가난과 고통이 남모르게 얼마나 힘들기에 나에게 그런말을 했을가 가히 짐작이 간다
꿈은 이루어 진다 했던가 ? 내옆에 앉았던 지질이도 공부를 못하던 녀석이 빌딩과 상가를 가진 아버지의 후광인지 모某대학 경찰학과를 나와 제법 괜찮은 직장에 있었고 금희는 녀석의 부인이 되였다
살다보면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느라면 신은 어디선가에서 분명 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든다
지금까지도 이따금 생각이 떠오르는 금희는 예쁘고 상냥한 귀밑머리가 깜찍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에게는 많이 부족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글을 쓰기를 좋아하고 동안童顔이라는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으로해서 여러사람들로부터 호감도 받았고 특히나 많은 여학생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특혜를 까마득히 모르고 언제나 남들과 비교나 하는 열등의식에 젖은 속좁은 아이였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학창시절에 이르기까지 호주머니에서 먼지만 폴폴 쏟아내는 가난이 그렇게 나를 옹졸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 옹졸한 성격은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탁을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는 오류동에서 오후 다섯시 반에 통학 하노라면 언제나 같은위치에서 타는 깔끔하고 보일동말동 쌍까풀과 보조개를 가진 D여고 학생과 마주하게 되였다
한시간에 한번씩 오는 기차는 아예 짐차처럼 숨쉴수 없이 복잡하였고 여름에는 땀으로 범벅이 되여도 손으로 마음대로 이마의 땀을 씻을수도 없었다
어떤땐 서로가 가슴과 가슴 코와코를 맞대고 움직이지 못한채 쩔쩔 매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타지 않는 날에는 기다려 지고 어쩌다 만나면 공연히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어느날 밤늦게 마지막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우연히 그녀를 보았고 건달같은 두놈이 그녀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는 겁없이 대들어 싸우다가 얻어맞고 콧등이 터지기도 했다
- 그러기 왜 대들어요 -
그녀가 손수건으로 내 콧잔등의 코피를 씻어줄때 풍기는 산듯한 내음에 취하여 말도 못하고 그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턱이 도톰하고 복숭아빛 두뺨과 보일동말동한 볼우물이 너무나예뻣다
건달놈들에 의하여 오작교가 되여 둘이는 열차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면서 시간이 있을때는 자주 만나 공원이나 멀지않은 호수가를 찾아 데이트를 즐겼다
신수지 !
가난이 웬수라는 말이 너무나 실감이들었다 이럴땐 김금희 생각이 떠올랐다
주머니에서 먼지만 폴폴나는 백수이다 보니 데이트를 하면서도 영화구경은 물론 도너츠나 아이스크림 한번 사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사랑놀음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게 절실하기도 했다
돈이 없다보니 내스스로 열등의식에 자연히 만남이 뜸해지자 수지로부터 사랑이 식었느냐는 투정도 많이 받았고 결국은 추억으로만 남기는 여인이 되였다 왜 바보스럽게 솔직하지 못했든가 지금까지도 자책이 들때가 있다
참으로 헤여지기가 그토록 가슴아프고 힘든것인줄 몰랐다
끝내 서운했던 졸업식장에서 받지 못한 표창장 !
세상 어느곳에서도 빛을보지 못하는 상장과 표창장들이였지만 나에게 따라다니는 랜드마크였다
초등학교 일학년때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2학년에 오르기 까지 우등상과 표창장은 나의 상징이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고등학교 3학년때는 상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너정도면 괜찮은 대학교를 무난히 들아갈수있다고 자주 말해주던 담임선생 신도현씨의 희망도 접었다
어차피 대학을 이미 포기한 나에게는 이미 학업에대한 흥미는 물론 상장에 대한 기대까지도 다 접었다
골치아픈 미적분을 던저 버리고 인수분해나 아무런 도움이 않되는 전기과목은 아예 외면한게 이유였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앞서 말했드시 나는오류동에서 영등포로 다니는 기차통학생이였다
당시만해도 한시간에 한번씩 운행되든 기차는 어쩌다 잘못하여 놓치는 날에는 또다시 한시간을 기다려야했다
그러다 학교에 지각하는때는 이미 한시간이상을 헛탕치였고 마지막 기차는 22시30분에 있어 끝내 한시간의 수업은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가방을 들고 슬며시 빠저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학시간이나 전기과목이 앞뒤시간에 있어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보니 점점
취미를 잃고 시험시간이면 제대로 시험지를 제출해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가방을 들고다니는 학생일뿐이였다
사실 직장에서 시간이 없어 허둥댈때는 가방을 열어 본적이 없을때가 많았다
산골 시골에서만 살았고 어디한번 구경한적이 없는 졸업식은 나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참으로 거창하였다
마이크를 통하여 울리는 교장선생님의 인사말과 우렁차게 들리는 뺀드소리 태권도 학생의 기발한 묘기 그런가하면 여기저기서 터트리는 사진찍는 이들의모습과 더불어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은 가족들은 난생 처음보는 것이였다
즐거워야할 졸업식이 나에게는 오히려 지루하고 답답하였다 흔해터진 꽃다발 하나도 가지고 온사람이 없는 초라한 나였다 소심한 성격에서 오는 나의 처신도 처신이려니와 찾아온 가족도 없었다
정든 교정을 다시한번 훑어보고 나오려 할때 정열이가 뒤 따라나와 둘이는 손을잡고 짜장면집으로 들어갔다
3년을 붙어 다니면서도 정열이나 내나 처음으로 가는 중국집이다 그렇게 우리는 고단한 세월속에 살았다
정열이는 친구라기 보다는 어쩌면 나에게 조언자助言者였고 언제나 나를 끌어주는 견인牽引역할을 했다
이북이 고향이고 피난도중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 동생이 기구하게 살다보니 세상풍파를 겪으면서 성숙된것이 아닌가싶다
훤칠한 키에 비록 해진 옷이라도 단정하게 입고 용산역앞 헌구두방에서 주워신은 워카지만 깔끔하였고 턱이 약간 사각턱을 하고있었다 그당시 우리가 다니는 야간학생들에게는 제대로된 교복을 입지못한채 삼년간 신을수있는 워카가 유행이였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바지를 줄리어 입고 삼년을 입는것이 또한 유행이였다
- 나 공군에 지원했어 직업군인으로 ! 축하해줄거지 ? -
정열이의 불쑥내미는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나의 뒷퉁수를 때리는듯 멍했다
너나 나나 어찌다가 흙수저 하나도 변변히 챙기지 못하고 태여났을가 비록 흙수저라고 할지라도 큼지막한 것을 물고 태어났드라면 우리는 남들처럼 사각모자를 쓰고 서울시내를 활보 하련만 !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둘이는 처음으로 먹어보는 짜장면 그릇이 바닥이 닳도록 깨끗하게 핥고있었다
졸업을 하고 정열이는 정열이대로 나는 나대로 동서로 갈라지면서 몇년을 잊고 살았다
- 나 공군에 지원했어 직업군인으로 ! 축하해줄거지 ? -
이말 한마디가 정열이와 나 사이의 건너지 못할 영원한 이별의 말이 될줄을 신이나 알고 있었을가
언젠가 오랫만에 지금으로 말하면 구로구 개봉동 덕고개로 올라가는 녀석의 집에가서 소식이나 들을려고 가다가 지숙엄마를 만났다 제25공군 첩보대 상사의 부인인 지숙엄마는 누이동생하며 절친하게 지내든 사이였다
비행기 사고로 추락하여 짧은 생애를 마치였다는 지숙엄마의 말을 듣는순간 그냥 주저앉아버렸다
- 뭐 운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어 - 지숙엄마가 등을 어루만지며 하는 말을 듣는둥 마는둥 언덕아래로 달렸다
어쩌면 나에게는 더할수 없는 슬픔에 녀석과 같이 다니던 기차길 언덕 위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쏟았다
지금도 녀석이 살았드라면 아마도 나의 인생에 조금의 변화를 주지 않았을가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태산같이 믿고 좋아하던 친구였다
나는 보충병 제1기생이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불이나서 좁은 온동네는 산이고 들이고 온통 불바다가 되였고 동네 사람들은 불을 끄려고 뛰어다녔지만 남은것은 온통 잿더미 뿐이였다
다행히 꿈이였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깨고나니 정신이 몽롱한채 힘이 쏙 빠저 있었다
- 웬놈의 꿈이 이리 험악스러울가 - 그래도 꿈이였기에 다행이 아닐가
가재도구가 하나도 남은게 없이 뻘건 화마에 잿더미로 남은 기억에 소름이 끼친다
가난한 살림에 무엇이 있을가마는 하다못해 부뚜막의 도마하나라도 재산은 재산이다
어느날 보충병 1기생에 편입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
겨우 이통보를 받으려고 그험악한꿈을 계시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군입대 수요가 팽창하면서 멀정한 놈들을 보충병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붙여 병신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 먹기는 곶감이라고 우선은 군인을 가지 않는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우선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6.25때 큰형님이 군복무중 이여서 우리 온가족은 쑥대밭속으로 숨어살다시피하는 고생스러운것을 어머니께서는 추우나 더우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하루같이 매일새벽에 일어나시어 찬물에 목욕재계하시고 정한수를 떠다가 장독대에 올려놓으시고 손이 발이되도록 지극정성으로 빌으셨기에 큰형님은 사지死地에서 무사히 살아 남으셨고 두째형님도 군복무중이여서 막내가 군에가지 않으니 그토록 좋아 하실수가 없다 그러나 보충병이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불리한 대우를 받는예가 나 아닌 다른이들에게도 있었던것 같다
보충병이라는 해괴한 이름이 나를 병신으로 만든것은 다름아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취업할곳이 없는데다가 그래도 힘을 써줄만한 사람조차 없으니 삶의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사원모집란을 이잡듯 뒤지어 이력서를 보내지만 보충병이란 이름으로 해서 돌아오는 대답은 불합격이거나 무소식이였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 임용 고시에도 좋은점수를 받았음에도 군미필로 해서 역시 나를부르지 않았다
도대체 그당시 세상은 왜그리 나를 궁지로 몰다 못해 외면하는지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갈곳이 없는 나에게는 당장 급한것은 의식주衣食住였다 먹고 잘곳을 찾아야했다
K전자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주겠다는 달콤한 말에 서슴없이 문을 두드리었다
생각보다도 너무나도 열악한 조건이지만 그것이 나에겐 최선이였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내공업을 방불케하는 스레트로 엉성하게 하늘을 가린 열악한 일터는 남자 여나문이 있고 시골에서 모집한것같은 순진하게 생긴 여자들 삼십여명이 토닥토닥 스피카를 만드는 곳이였다
당시만 해도 농어촌에 스피커설치가 한창때인지라 그래도 밤낮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여기저기서 납품을 받아 겨우 조립하는상품이다보니 눈코없이 바빠도 여전히 앞이 보이지도 않는 낮은 급료였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평하는사람 없고 혹 누구든지 불평하면 그나마 쫏겨나야 한다는 불안감에 끌려다니는 망아지처럼 자신을 돌볼줄 모르고 죽어라고 일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 땅을사서 부럭으로 집을짖고 조금씩 조금씩 비록작은 회사일망정 모양을 갖추어 나갔다
어느날 전무와 같이 목재소에 나가 쓸만한 목재를 구하여 간판을 만들어 달았다
물론 간판은 내가 직접 글씨를 쓰고 목각을하여 니스로 반질반질 하도록 칠하여 달았다
새로운 집을 지었으니 주인의 문패가 필요했던 것이다
똥통중학교시절 교장선생의 차트와 가리방은 신필神筆이였고 훈장님의 글씨가 어우러진 나만의 명작품이였다
K전자공업사
전무는 물론 사장까지 와서 현판식은 호화스럽게 진행되고 그날은 시험실의 전축을 마당한가운데 끌어다 놓고 샹하이 트위스트나 부베의 여인을 틀어놓고 전무의 춤에따라 처음으로 자신을 잊은채 즐거운날이였다
- 채군 간판이 멋있어 드디어 우리의 얼굴이 -
전무는 나의등을 두드리며 좋아하였고 사장도 덩다라 얼굴이 붉으레해서 나의 등을 껴안았다
모두다 처음으로 싫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는 날이였다
비록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회사생활은 그런대로 즐거웠다
너나없이 열악한 가정환경속에서 자란 탓인지 마음씨가 착하고 소처럼 순진하게 눈만 껌벅거렸다
K전자회사에서는 비록 짧은 시간이였지만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겨놓았다
순진한 시골처녀의 또릿또릿한 눈동자는 티없이 깨끗했고 철없이 순진했다
어쩌다 옷을 스치면 얼굴을 붉히며 빤히 처다보고 말한마디라도 건네면 어리둥절하며 말을 더듬었으며 무엇 하나라도 챙겨주면 자기에게 관심이라도 있는것처럼 얼굴을 금새 붉히고 어쩔줄 몰라했다
어쩌면 이세상에서 가장 때가 묻지않은 땅을뚫고 갓나온 어린 새싹과도 같이 참신한 아가씨들이였다
장희순 !
어느날 고향친구 영구가 찾아왔다 그래도 서울생활 선배인 내가 갈곳없는 녀석을 K전자로 끌어들이었다
녀석은 장희순이를 보는순간 가슴이 뛰었노라고 막걸리 한잔 앞에 놓고 서슴없이 실토하였다
희순이는 얼굴이 동그랗고 두갈래로 머리를 땋아내린 언제나 수줍어하는 경상도 밀양아가씨였다
얼마가 지나자 어떻게 꼬셨는지 둘이는 단짝이 되여 서로 떨어지면 못살것같은 사이로 되였다
좋아한다고 인연이 되는것은 아닌게 세상이치인가 직장생활을 오래견디지 못한 녀석은 어느날 나를 떠나갔다
도저히 적성에 맞지않고 힘이든다는게 이유였다
- 야 희순이 고거 말야 예뻐죽겠어 깜찍하지 ? - 그토록 좋아하던 희순이도 더이상 인연이 아니였다
좋아한다고 해서 또는 곁에 있다고 해서 인연이 되는것은 아니다 저멀리 어딘가에 있는게 인연인지 모른다
장희순이 보다 훨씬 더 예쁜애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여자기숙사를 지나는데 누군가가 끙끙 앓고 있었다
여자사감 금순이를 불러 기숙사에 가보니 김현숙이가 배가 아프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딩굴고 있었다
앞뒤 가릴 여지없이 현숙이를 등에 들처엎고 병원으로 뛰였다
- 채군 참으로 훌륭해 고마워 -
전무님은 놀라서 큰길까지 뛰어나와 나의 어깨를 와락 껴안았다
참으로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수근거리였지만 정작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현숙이는 회사에서도 가장 어리고도 가장 예쁜 아가씨였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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