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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3.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3 기뻐하며 경배하세
대표기도 김복순 권사 (다음 주 이선희 권사)
성경 말씀 마가복음 2:1~17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찬송 373 세상 모두 사랑 없어
헌금 기도 농협 3010178504011 연세소망교회
광고 에어컨 시공 (임성례 권사 방, 황막례 권사 방)
가족 방문 이균자 권사 손녀 부부, 정구섭장로 손녀 부부(미연), 전연월 권사 서울, 전주 딸,
이균자 권사 셋째 아들, 장선자 집사 딸 손자(전도사), 임배근 집사 딸 (물리치료 외래)
백춘자 권사 큰아들 부부(강원도), 김복순 권사 큰 아들 부부
찬송 1137 사랑은 언제나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여라 내 사랑이여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 양희은
1절입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절,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절,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 올새
4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론하기를
7절,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절,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절, 중풍 병자에게 네 죄를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절,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3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쫓으라 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
15절,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더라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어제 종일 여름인가 하여 반 팔 차림으로 소나무 전지를 했습니다.
담장가 하얀 목련도 목사님! 부르더니 하얗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뒤 뜰에는
노랑 산수유가 피더니 시샘하던 매화도 하얗게 피었습니다.
이제 곧 벚꽃도 수줍은 봄처녀 볼처럼 핑크빛으로 웃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도 꽃샘추위가 기성을 부리더니 봄입니다.
우리도 기지개 켜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고~살 것 다!
1절입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절,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절,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 올새
4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목사님은 초가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 때 기와를 이었습니다.
전통 가옥입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가버나움에 전통 가옥은 목사님 전통 가옥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의 누운 상을 지붕에서 달아 내렸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이해할 때는
당시 이스라엘 문화 역사, 풍습 등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냥 억지로 꾸겨 넣듯이
목사님이 하는 말씀이니 무조건 믿으세요!
성경 말씀이니 그냥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목사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이균자 권사님이 믿어 주겠습니까?
우리 임성례 권사님이 믿기나 하겠습니까?
박영숙 집사가 믿기나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난 갈릴리의 가옥은 돌로 쌓아 올린 벽과 벽 사이를
나무를 걸치고 석가래 텐트를 걸쳐 놓는 단순 구조입니다.
또한 지붕에서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지붕이 평평하고
올라다니기 쉽게 계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 지붕에 중병 병자를 들고 올라가 석가래를 걷고 중풍 병자를 달아 내린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친구들의 믿음과 중풍 병자의 의지가 어디겠습니까?
그 광경을 목격한 예수께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왜?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약 30년 전의 일입니다.
앞집 큰아들이 군에서 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구 차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때 조문 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망한 아버지께서 맨 소주를 엄청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취하지도 않고 정신이 멀 똥 멀 똥 하다며 가슴을 후벼 파며
내 지은 죄 때문에 자식이 죽었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이 아프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우리 사람 안에 먼저 영성이 회복되어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목사님도 그렇습니다.
엊그제 종일 머리가 지근거렸습니다.
왜 그러지?
이석증 후유증인가?
그럴 때 사우나에 가서 땀을 가득 빼면 좋아지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골칫덩이가 종일 지근거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제 예배 준비를 하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개운해졌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무거웠던 몸이 개운해지곤 합니다.
우리 임성례 권사님도 이균자 권사님도 전연월 권사님도 임명화 권사님도
우리 조용림 권사님도 이런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백춘자 권사님도 아플 때마다 목사님이 만져드리기만 하면
깨끗이 다 나았습니다.
할렐루야!
6절입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론 하기를
7절,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절,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절, 중풍 병자에게 네 죄를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절,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목사님은 노숙자 치매 환자들과 함께 산 지가 벌써 20년이 넘습니다.
우리 보호자께서 방문하시면 치매가 심하신데도 대화가 잘 됩니다.
그러니 치매 환자라는 것을 망각하곤 합니다.
우리 조용림 권사님도 치매 중증입니다.
그러나 대표 기도할 때 어떻습니까?
얼마나 잘하십니까?
우리 김정수 권사님도 치매 중증입니다.
그런데 뼛속까지 권사님입니다.
대표 기도하실 때 놀랍습니다.
우리 이균자 권사님도 처음에 우리 요양원 오셨을 때에
옷을 홀라당 벗어던지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즘 어떻습니까?
아주 놀랍습니다. 대표기도하시면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그리고 이번에 목사님 딸 결혼하는데 축의금까지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깨달았습니다.
목사님도 우리 이균자 권사님처럼 우리 백춘자 권사님처럼 우리 김복순 권사님처럼
우리 임성례 권사님처럼 90이 넘도록 사람 구실을 해야 할 텐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돈이 땅 사면 배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우리 딸 결혼식을 마치고 임대한 버스로 내려오려고 했습니다.
그때가 밤 6시 30분 출발인데 10여 분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버스로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축하하러 오신 분들 저녁 식사하시는데 일일이 인사하는 장면도 비디오 촬영한다지요.
또, 딸 사위에게 축하 영상 인터뷰 촬영도 해야 하지요.
아무리 안 걸려도 1시간여는 소요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익산 전주에서 오신 인척께 늦은 시간에 1시간여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례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내려가시게 하고
우리는 기차로 내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기차를 타려면 택시 타고 용산역까지 가야지요.
그리고 용산역에서 익산역까지 기차로 내려가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던 용산역에서 7시 47분 기차로 1시간여 더 늦게 출발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버스로 내려오시는 분께서 불평하기를
지들만 편하게 내려가려고 한다고.
너무도 엉뚱하지 않습니까?
어디를 가던 꼭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기쁨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시비를 걸고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절,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알겠습니까?
장자가 밤나무밭을 지나가는데
큰 새 한 마리가 장자 머리 위를 스치는 듯 날아 밤나무밭에 앉았습니다.
하~ 저놈 봐라.
날개도 저렇게 큰데 높이 날지 못하고 위험스럽게도 나네.
화가 난 장자는 괘씸한 새를 잡으려고 활을 당기려는데
큰 새 곁에 매미가 구성지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꼬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꼬누고 있는 사마귀를 낚아채려는 놈을
장자가 막 활을 쏘려고 하는데 밤밭 주인이
네 이놈~ 왜 남의 밭에서 밤을 따 먹으려 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모두가 이해관계로 얽히고설켜 있지 않습니까?
14절입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쫓으라 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
15절,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더라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당시 세리는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대적관계로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일제 36년 동안 일제 식민지였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충성하는 헤롯 왕족을 통해서
유대민족에게서 600 달란트의 징세를 받았습니다.
결국, 로마사람이 유대인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에게 착취했습니다.
법을 악용한 것입니다.
21세기 벌건 대낮에 법꾸라지 윤석열도
지귀연 판사의 해괴한 논리로 석방되지 않았습니까?
당시에도 헤롯 왕족을 통한 징세제도는
같은 민족의 피를 햛아먹는 짓거리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36년 동안 이와 같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600 달란트의 징세를
헤롯 왕족이 청부받아 그 이상의 혈세를 거두어 챙기고
마치 다단계 먹이사슬과 같이 말단 하청업자 세리까지 차액을 챙기어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시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들은 인간 말종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세리 레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리 레위 (마태)를 제자로 삼고
그의 집으로 가서 함께 밥까지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눈의 가시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목사님은 요양원을 운영하다 보니 재밌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권 주임은 새벽 4시 30분부터 기저귀를 갈아 드립니다.
그리고 6시 즈음부터는
목사님이 세수를 씻겨 드리고 면도를 해 드립니다.
엊그제 아침 6시경입니다.
우리 이정석 집사님이 얼마나 치매가 심합니까?
그러나 의사소통은 정상입니다.
목사님이 면도를 해 드리고 세수를 씻겨 드리고
휠체어에 앉아계시다가 기저귀를 찼는데도 화장실을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 변기에 앉혀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권 주임이 변기에 앉아 있는 이정석 집사님께 가서
일어서서 바지 올리세요.
그것도 못하세요? 그러자
그럼 내가 요양원에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밤새도록 섬망에 시달리던 박문식 집사님께서는 (피난민)
새벽 2시경에 목사님! 목사님! 외쳐서 달려갔습니다.
목사님을 보시더니
목사님! 통일되면 평양 가서 큰 목회하세요..
요양원 목사 하기는 아깝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집사님들 치매 수준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세리 레위 (마태)도 예수께서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권사님 집사님들은 얼마나 존귀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허물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허물 많은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