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3:1~11)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내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를 간절하게 찾습니다.
물이 없어 메마르고
지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목말라하며
내 육체가 주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주를 성소에서 보았듯이
주의 능력과 주의 영광을 보려는 것입니다.’
(1~2절)
나에게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그 엄청난 본질적 원리,
가볍지 않고
세상에 널브러져 있는 듯한 많은 모순과
악행, 속임수 등을 고치거나 덮쳐 장악할 수 있는
진리의 파도를 희구하는 것은 분명 있다.
그 진리와 사실이 든든히 내 안에 서 있어야
다른 수백만 가지의 세상의 현상들을 대하면서도
불안하거나 번뇌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는가?
진리 안에 굳건히 서라는 하나님의 끊임 없는
요구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시편의 본문은 내 그런 마음의 결과 같아 보인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상의 행태들은
진리 없이 방황하는 가벼운 새의 깃털처럼 부유하고
목적지 없이 떠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진리를 맛보았다고 하면서도
매우 왜곡된 자들과
부분적으로 물들어 갈 길을 바로 가지 못하는 이들
선동당하고 불필요한 칼날을 휘두르는 자들을 마주할 때이다.
그렇지만 사실 가장 괴로운 것은
내 안의 교만과 죄악들이다.
그런 것들을 직면할 때이면 모든 것을 피해서
은둔하고 싶다.
나는 성숙되지 못해 거칠다.
북쪽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는 나침반이
정작 북쪽에 고정되지 못하고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해 북쪽 근방에서
계속 흔들리는 것.
그 이미지를 나는 ‘분투’의 정확한 비쥬얼이라고 생각한다.
이생에서 우리가 하나님 진리를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최상의 몸짓.
진리 근방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되지 않지만 끝까지 북쪽(진리)을 향하려는
‘몸부림’
그래서 이미 마음은 동굴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발길은 어떻게든 가기로 되어 있는 곳을 향한다.
<오늘의 명언>
‘어떤 보물보다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린다.’ -A.W.토저-
“하나님! 저들도, 저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외칩니다.
그런데 저들은 제게
너무나 엉뚱한 짓을 하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있을 어떤 순수성은 존중하지만
큰 부분은 선동과 가스라이팅일 뿐입니다.
주님, 제가 궤도를 벗어난 것입니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만이 제가 믿음과 신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