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골수를 다 주더라도 인색한 마음 없어야 한다.”
쌍계총림 쌍계사 승가대학장 반산 스님
왕복무제(往復無際)나 동정일원(動靜一源)이라.
함중묘이유여(含衆妙而有餘)로되
초언사이형출자(超言思而逈出者)는
기유법계여(其唯法界歟)이로다.
가고 옴이 짬이 없으나, 움직임과 고요함은 한 근원이라.
온갖 미묘함을 함유하고도 여유가 있고
말과 생각을 초월하여 멀리 벗어난 것은
오직 법계뿐이로다.
물질문명 노예된 현대인, 탐욕 내리는 연습 필요해
불법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 얻을 수 없어
배움에서 반수 이상 실천해, 열심히 공덕짓는 불자되길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릴 주제는
‘화엄경’ 법문에 들어가기 전 ‘현담’ 설법이라는 부분입니다.
현담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본편을 상영하기 전 예고편을 보여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위 게송은 중국 청량국사(淸凉國師·?~839)의 말씀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셔서 선(禪)과 교(敎)를 통달한 어른인데
그분이 화엄경 전체를 소개하면서 첫 머리에
‘오고 감이 짬이 없으니 동과 정이 한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길을 오고 갑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오고 가는지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오늘 법문의 주제는 ‘불법을 믿고 잘 수행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행복을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나름대로 ‘이것이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그 길을 갑니다.
저는 35년 전 출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출가를 꺼리고 있습니다. 왜 꺼릴까요?
그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하면 너도 나도 출가를 할 텐데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서 수도의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돈만 벌면 잘 사는 줄 알고 돈을 버는 일에만 노력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에 대해 오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무엇을 이름하여 ‘가고 온다’라고 표현한 것일까요?
저는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을 ‘왕(往)’이라고 하고,
가다 보니 잘못 간 길이라고 해서 참회하며 되돌아오는 길을 ‘복(復)’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오고가는 것이 짬이 없다’라는 말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들이 살아 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잘못 살았다 싶으면 돌아가십시오.
결과를 뻔히 짐작하면서도 계속 그 길을 가는 것은 마음속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 것은 그 근원이 하나’라고 하셨어요.
움직이려고 하면 무엇을 위해서 움직이고
또 가만히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가만히 있는 것인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원효대사께서 말씀하신 ‘발심수행장’첫 구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제불제불(夫諸佛諸佛)이 장엄적멸궁(莊嚴寂滅宮)은
어다겁해(於多劫海)에 사욕고행(捨欲苦行)이요.
중생중생(衆生衆生)이 윤회화택문(輪廻火宅門)은
어무량세(於無量世)에 탐욕불사(貪慾不捨)이라.
대저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을 장엄한 것은 수많은 겁의 바다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했기 때문이요.
중생들이 불타는 집을 윤회하는 것은
무량한 세월에 탐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우리는 잘산다고 하면서 화택문을 윤회하고 있습니다.
불이 붙은 집에 들어가서 거기서 타죽더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탐욕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속에 살건 절집에 살건 욕심을 버리고
원력으로 살 수 있으면 그것은 잘 사는 길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들은 이 적멸궁을 장엄한다고 했습니다.
통도사를 적멸도랑이라고 하지요. 누가 장엄을 합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장엄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공덕을 짓는 마음으로 적멸도량에 모이는 것이
바로 ‘제불제불이 장엄적멸궁’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청량국사께서 화엄경 서문을 ‘왕복서’로 쓰셨다면
발심수행장을 쓰신 원효 스님께서는
화엄경의 서문에서 ‘무장애법계(無障攝法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즉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라는
말씀하신 구절에도 ‘무장애’가 나옵니다. 무장애라는 것은
모든 보살들이 들어간 곳이고 삼세에 모든 부처님들이 나오신 곳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생사해탈의 도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보살들이 왜 도를 닦습니까?
일진법계(一眞法界)인 화엄경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화엄경은 하늘에서 네 번 법회를 하고 지상에서 다섯 번 법회를 합니다.
장소도 일곱 번이나 옮겨 가면서하는데 화엄경은 온통 부처님의 깨달음이 주제입니다.
적멸도량에서 설한 여섯품에서도 부처님의 성불을 얘기했습니다.
부처님의 성불하는 모습을 대위광 태자라는 분이 보고
‘저것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구나’라는 느낌을 얘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믿음이 생겨나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훌륭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일곱 번 째 ‘여래명호품’부터 제 38 ‘이세간품’까지는
발심해서 출가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설법입니다.
총 31품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어떻게 닦으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52위를 점차로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52위를 점차로 수행하는 법만 이야기해놓은 것이 아니지요.
화엄경은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이 다 들어있습니다.
‘범행품’을 보면 처음 발심했을 때 바로 깨달음을 얻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입니다.
그런데 근기가 적은 사람은 3아승지겁을 돌아서 겨우 성불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바른 길로 마음을 먹으면 그 길로 계속 가야 합니다.
출가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육조 혜능 스님이 80세의 노모가 있는데 ‘금강경’ 듣고 바로 출가하셨지요.
노모에게 불효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그 불효자가 나중에는 큰 효도를 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아셔야 합니다.
어쨌든 화엄경의 마지막 39품에 가면 ‘입법계품’이라고
선재동자가 53분의 선지식을 만나서 성불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53 선지식은 우리가 잘 아는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이
순서에 ‘등각’과 ‘묘각’을 합치고 문수보살이 앞뒤로 나오는 것을 포함해
53을 맞춰서 선재동자가 성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 화엄경은 39품인데 오늘날에는 ‘보현행원품’을 포함해서 총 40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엄경의 주제는 부처님의 깨달음이든, 중생의 깨달음이든 어쨌든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의 보현행원품에서는
“불가사의의 해탈경계에 들어가서 보현보살이 보살행을 닦는다”라고 합니다.
‘십정품(十定品)’에 보면 “보현보살은 부처입니까, 보살입니까?”라고 누가 묻습니다.
어제까지 도반이었던 보현보살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며 물으니
부처님께서 대답하기를, “보현보살은 바로 너의 옆자리에 있느니라”라고 하십니다.
불가사의의 해탈경계에 들어간 보현보살을 중생이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최근 어떤 드라마를 보니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버러지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해인사 백련암의 성철 스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부처’라고 하셨지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는 소리입니까, 성철 스님의 말씀이 맞는 소리입니까?
술집에서 술파는 이도 감옥에서 쇠고랑 찬 사람도 결국 부처가 될 것이니까
모두 부처의 모습이라는 말이지요. 만약 일생 동안 돈을 모으고 모아서는
이제는 베풀고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보니 죽는 날이 코앞이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죽는 순간 생각이 아직 남아있을 때는 나쁜 짓을 한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럴 때 ‘다음 생이 있다면 내생에는 나쁜짓 안해야지’ 하고
반성하면서 발원하고 갈 줄 알면 훌륭한 죽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금생에 간 길을 돌아서 내생에 돌아옵니다.
그러니깐 왕복이 짬이 없고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왕복을 잘해야 합니다.
잘못 간 길을 되돌아서 잘 가면 누구나 좋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다음은 화엄경 중에서 법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송을 소개해보겠습니다.
혹시어두혹시안(或施於頭或施眼) 혹시어수혹시족(或施於手或施足)
피육골수급여물(皮肉骨髓及餘物) 일체개사심무린(一切皆捨心無吝).
머리도 보시하고 눈도 빼 주며 손이나 발이나 살과 가죽도 뼈도 주고
골수나 다른 것까지 모두 다 보시해도 인색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
올해 동안거에는 제가 주지를 맡고 있는 양산 원각사에서 재가안거를 시작했습니다.
재가안거는 동안거 기간 동안 불자님들이 간경이든지 108배든지
주제를 한 가지씩 정해서 매주 한 번씩 모여 함께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각사는 화엄경 ‘십회향품’을 독송하기로 했습니다.
“머리도 보시하고 눈도 빼주며 손이나 발이거나 살과 가죽도 뼈도 주고
골수나 다른 것까지 모두 다 보시하면서도 인색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십회향품 가운데 6회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머리를 어떻게 빼줍니까. 눈은 또 어떻게 빼줍니까.
하지만 옛날에는 정말 눈을 빼 준 이도 있고, 목숨을 바쳐 순교한 이도 있었습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도 그런 분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많았습니다.
화엄산림 기간 동안 훌륭한 스님들을 통해 공부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열 가지를 배웠으면 적어도 다섯 가지는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이만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이 법문은 지난 12월22일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원산 스님) 설법전에서 봉행된
‘화엄산림 대법회’에서 쌍계총림 쌍계사 승가대학장 반산 스님이
‘화엄경 현담‘을 주제로 설법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반산 스님은 1980년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의 상좌인 명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을 마친 뒤 종범, 덕민, 무비, 월운 스님 등
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강백의 가르침으로 대승 경전을 두루 공부했다.
특히 ‘화엄경 청량소’ 제1권 세주묘엄품, 제7, 8, 9권을 번역한 화엄학자다.
2006년 BBS불교방송 금강경 강의, 2013년 BTN 불교TV 법화경 강의를 진행했다.
현재 쌍계총림 쌍계사 승가대학장이며 양산 원각사 주지,
조계종양산불교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2015년 1월 7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