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7월 5일에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태어나서 1997년 2월 23일자 Nature 지에 소개되어 온 세상을 놀라게 하고, 그로부터 시작된 동물 복제와 인간 복제의 기원을 이룩하였던 최초의 복제 양 돌리가 그 동안 나타내 보이던 조로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안락사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돌리를 복제했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있는 로슬린 연구소는 이미 1999년에 돌리의 체내에 있는 세포들이 늙은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노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음을 발견했었다. 그러다 최근에 돌리는 늙은 양들, 특히 옥내에 수용된 양들에게는 흔한 진행성 폐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결국 도축했다고 로슬린 연구소가 2003년 2월 14일에 발표한 것이다. 돌리 복제팀장인 이언 윌머트 교수는 2002년 1월에 돌리가 관절염을 제외하고는 6마리의 새끼를 낳고도 건강한 상태이며 소염제 치료에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러던 돌리의 죽음은, 본래 돌리가 6세난 암 양의 체세포를 가지고 복제한 양이므로 정상적인 양이 사는 11년-13년 정도를 다 실지 못하고 아마 남은 7년 정도를 살지 않을까 우려하던 우리의 우려를 그대로 현실화한 것으로 보여진다(1996년 7월부터 정확히 6년 7개월을 산 것이니 말이다). 돌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체세포 복제에 사용한 DNA 자체가 나이 든 것이기 때문에 조로(早老)하는 것으로 보였고, 또 그것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모든 복제된 생물은 그 체세포를 사용한 존재의 평균 수명의 잔여 기간을 산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도 돌리의 조로 소식을 접하면서 과학자들은 조로 문제의 원인이었던 텔리미어를 어떻게 하면 짧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왔고, 그 문제를 해결한 복제소로 출현에 대한 보고도 있었기 때문이다(2000. 4. 24). 그러나 돌리의 이른 죽음의 소식은 복제 실험이 다른 수많은 문제 외에도 이런 죽음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복제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많은 문제들을 보면서 복제 인간을 형성시켜 보려는 시도를 하는 이들은 참으로 무모한 이들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96년 당시 로슬린 연구소와 함께 복제양 돌리 탄생 작업에 참여한 앨런 코울먼 박사도 "(돌리의 죽음은) 복제를 합법화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어느 때보다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복제의 장기 효과에 대한 지식으로 미뤄볼 때 인간 복제를 추진하는일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앨런 코울먼 박사의 말이나 그외의 여러 과학자들의 말을 다 생각해 보고, 여러 현상을 살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인간을 복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아니하도록 인간 생명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아마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인간의 유전자가 쥐의 유전자와 95%정도를 공유한다는 보고를 생각해 보라!), 아주 다르게 형성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존재 형성의 가능성에 대한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 그리고 가장 확실한 설명은 역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주 독특하게 지으셨다는 성경적 이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성경적 관점에서 인간 생명을 바라보아야 사람들이 인간 배아를 복제하여 그로부터 인간을 위한 여러 가지 유용한 장기 생산과 여러 이용의 길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체세포를 사용한 배아 복제도 그 초기 단계는 결국 인간 성체 복제의 초기 단계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이번 돌리의 죽음에서 바라 본 조로의 문제를 그대로 가진 작업이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배아 세포를 사용해서 장기 생산 등을 한다고 해도 그런 것이 역시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물론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동물 복제 실험을 더 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한 후에 인간 배아 복제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하고, 앞으로 보다 완벽한 기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실험을 해야 후대에 유익을 얻을 것이라고 하면서 과거의 의학적 실험의 예를 들기도 하지만, 그 일을 위해 그 중간 단계에서 존재의 의미도 갖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게 되는 수많은 인간 배아와 그런 것으로부터 기인된 문제 속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과 중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던 만주의 생체 실험실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인간에게 하지 못할 일을 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을 통해서 그래도 의학이 많이 발전했기에 그것도 부정적이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려는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아마 우리 시대의 이간 성체 복제를 시도하는 이들이나 인간 배아 복제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이들에게도 인간의 생명이 과연 어떤 성격을 지닌 것임을 잘 아는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로 이 말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비난 하고자 하는 의도를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여기고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 생명의 고귀성을 천명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좀더 조바심 치면서 하는 말일 뿐이다.
이 시대에 진정한 인간 생명 지킴 이는 인간 생명의 본래적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일 것이니 말이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명을 다 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시대에 우리 형제의 생명을 지키는 자들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또 다른 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인간적 생명이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지만, 그 생명이 하나님께 우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