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일본 작가 1969년 오사카, 생으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 2016년 전업 작가로 들어선 ‘다나카 히로노부’의 책이다.
글은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읽고 싶은 글을 쓰면 자신은 물론 남도 즐겁다.’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단다.
글을 쓰면서 불필요한 서술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시중에 나도는 글쓰기를 위한 100가지 법칙이 있는데, 그 많은 법칙을 외울 기억력이 있다면 사법시험을 쳐서 변호사를 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하며 ‘그런 당신이나 먼저 문장 공부 좀 해’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엄청난 뚱뚱이가 쓴 다이어트 책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읽는 사람이 있는 글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사실 ‘에세이’다. 지금 에세이란 표현을 쓰는데 한자로는 수필이다. 즉 생각나는 대로 붓에 맡겨 쓴 글이란 뜻이다.
그러나 저자는 수필을 사상과 심상이 교차하는 곳에 생긴 문장으로 정의한다. 즉 모든 물체, 사건, 사람은 ‘사상’이다. 그 사상을 접하고 마음이 움직여서 쓰고 싶은 기분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은 사상을 보거나 듣고 그것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쓰고 싶어 한다. 사상을 중심으로 기술된 것은 ‘보도’나 ‘로포프타주’라고 부른다. 심상이 주로 기술된 글은 ‘창작’, ‘픽션’이라고 부른다. 소설이나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상과 관계가 없이 상상력만으로 구성되어도 문제가 없다. 소위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 글을 쓰려는 분야가 무엇인가’라는 정의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이 많다. 취미는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사상과 심상이 교차하는 곳에서 생겨난 것이 에세이다. 라는 정의를 놓고 사상에 가까운 것만 다루면 영화의 줄거리만 나열한 글이 되고 심상에 치중하면 감상만 쓰다 끝이 난다.
광고는 15자 이내로 말한다. ‘스팟 광고’라 불리는 가장 짧은 15초짜리다.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붙잡는 역할을 하는 글을 ‘헤드 카피’라 부른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해도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몇 명은 읽어주기도 한다. 그 글이 소문이 나면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읽어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자신이 쓴 글을 읽고 기뻐하는 사람은 우선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만족하는지 안 하는지, 재미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
글을 쓰는 행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이다. 작가는 먼저 자료조사에서 시작해야 한단다. 조사 없이 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작가로 살 수 없단다. 즉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작가로 일할 수 없단다. 일상에 넘치는 인터넷 글에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정말로 많다. 옛 선인들이 실컷 고찰해서 아주 옛날에 다 했던 이야기 같은 말들을 자신의 머리로 생각했다며 의기양양하게 결론을 내리는 글이 판을 친단다. 역사 속에 인류가 해온 것들의 축척이 거인이고, 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사물을 내다보지 않으면 진보를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처음부터 맨바닥에서 시작하면 조난한 소년과 똑같은 상황이다.
어제 하루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런 질문에 답을 보면 대부분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근처 편의점에서 빵을 사고, 회사에 가고, 밤에는 동료들과 술집에 갔다. 등의 순서에 근거해 이야기한단다. 아무도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 똥 싸고, 물을 틀고 치약 짜서 이 닦고, 입 헹구고, 잠옷을 벗고, 양말을 골라서. “라고 답을 하지는 않는단다. 즉 사람은 누군가가 물어오면 이것만은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보를 줄여서 ‘전하고 싶은 것만 골라, 전하고 싶은 순서를 밟고, 과정을 밝힌단다. 이것이 글을 쓰는 의미’란다.
책을 읽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읽기 위해 읽는다. 항간의 문장 기술 책은 실용서처럼 보이나 문장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소설이나 에세이의 쓰는 기술에는 속성코스도 없으며 그 나름대로 시간이 걸리는 것이란다. 소설가는 머릿속에 보이는 것을 쓴다고 한다. 에세이의 본 것 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뇌의 움직임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좁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무언가가 결과적으로 당신의 세상을 넓어진다.
”화폐와 언어는 같은 것이다. “즉 인류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발전시켜온 두 가지, ‘돈’과 ‘말’은 사실 그 기능이 같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단다. 이 두 가지는 다음 세 가지 기능이 있다.
1) 결재의 수단(지불 수단) 기능; 언어는 무엇과도 교환할 수 있다. 구체적 가치를 부여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교환할 수 있다. 화폐의 환전처럼 다른 계통의 언어 단위와도 번역 기능이 있다.
2) 가치척도의 기능; 사회 공통의 도구로 사용되는 이상 가치는 서로 담보된다. 언어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 말이나 글은 구매자의 희생 즉 돈에 의해 지급해가며 듣거나 읽는다
3) 가치 저장 수단의 기능; 역사의 기록이나 개인의 기록을 남길 수 있고, 솟아난 감정 사상 등을 논하기도 하면 정치에 영향을 준 연설도 가고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고 읽을 사람은 적기에 글로 돈을 벌어 먹고살기 힘들다. 하지만 이 글이 누군가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다 쓰면 가치 있는 글도 나오고 가치는 반듯이 값이 매겨진다. 남의 도움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쓴다면 결국은 값을 내고 사람들이 읽는다는 철학을 얻어낸 것이다. 저자는 ”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에 그는 직장을 나와 전업 작가가 된 것이다.
20210.01.23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다나까 히로노부 지음
인풀루엔센 간행
첫댓글 돈, 언어의 공통기능
결재수단
가치척도
가치저장
자기가 재미있고
누군가에게 도움되고
다만
글쓰기 뿐이랴...
류재훈님
감사합니다.
이제
입춘서 거둬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