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운전중에 FM 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들었다.
야상곡 몇 번 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야상곡이라는 제목을 들으니 자동적으로 제 20번이 생각났고
더불어서 ‘후쫑(傅聰)’과 ‘피닌 콜린즈(Finghin Collins)’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생각났다.
그러나 제 20번이 야상곡 전체 21곡 중에서 대표성을 가진 곡은 결코 아니다.
쇼팽의 야상곡이 들어있는 디스크를 처음 구입한 것은 20여년 쯤 전인 것 같다.
CD에 찍혀있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번호가 ‘8904’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서
89년이나 90년 쯤으로 짐작하는데
당시에 근무하던 직장 근처에 있던 음반점에서 샀다.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눈을 씻고 봐도 오프라인 음반점을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봉급날 음반점에서 음반 몇 장 사는 것이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처음 구입한 야상곡 음반은 CD 2장에 야상곡 전곡이 담겨 있었는데
연주자의 이름이 ‘후쫑(Fou Ts'ong)’으로 표기되어 있었고
CD 케이스 뒷면에는 나이께나 먹은 아시아계 남자 연주자가
피아노 옆에 앉아 있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서 화장을 한 듯 했는데 엄청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전까지 쇼팽의 야상곡은 어쩌다가 FM 에서나 들었었고
음반으로 들은 것은 후쫑이 연주한 것이 처음 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박하우스’가 연주한 베토벤의 ‘황제’를 듣고
그 당당한 품격에 완전히 매료되어
‘모름지기 피아노 곡과 피아노 연주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약간 시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쇼팽은 사춘기 소녀들이나 좋아하는 감상적인 피아노 곡들을 작곡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구입한 디스크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그런 나의 선입견은 서서히 깨져갔다.
후쫑의 야상곡은 CD 구성도 약간 특이하다.
2장의 CD는 낱개 구입이 가능하도록 각각 별도의 케이스에 담겨 있었으며
제1 집의 앞 부분에 야상곡 제19번, 20번, 21번 을 넣었다.
19번~ 21번은 전부 단조(Minor) 곡 이다.
가뜩이나 후쫑의 야상곡 연주는 정서가 지나치게 짙다 싶은데
제 1 집의 앞 머리 3 곡을 줄줄이 단조곡으로 배치 하였으니
야상곡을 후쫑의 연주를 통해서 처음 듣게 되는 사람들은
자칫 야상곡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그런 곡 배열이
초반에 연주자의 특성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이자는 음반사의 전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정하고 담백한 느낌의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후쫑의 연주를 좋아하지 않으리라.
나도 초반에는 그의 연주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완급 조절은 극단적으로 들려서 위태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으며
타건은 전반적으로 격하고 감상적으로 들렸다.
그가 모차르트도 잘 연주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야상곡을 연주한 그의 연주 스타일을 감안할 때 사실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어느 주요 일간지의 고정 칼럼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후쫑에 대한 글이 실렸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을 그냥 우리말 한자 발음식으로
'후쫑'은 ‘부총(傅聰)’이라고
또 그의 아버지는 ‘부뢰(傅雷)’ 라고 표기 했기 때문에
'후쫑' 이라는 중국 발음식 이름만 기억하던 나는 하마트면 그냥 지나칠 뻔 했었다.
후쫑의 아버지는 중국의 예술사가 였는데
초등학교때 아들(후쫑)의 재능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한 후에
집에서 Piano 와 사기(史記) 를 가르쳤다.
그는 1954 년에 폴란드로 아들을 유학 보낸 후에
100 여 통의 편지를 통하여 아들을 훈육했다고 한다.
편지를 통하여 그 아버지는
후쫑이 기대만큼 못 따라올 때 그를 학대했던 것을 고백하며
아들의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사상과 철학을 전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아버지로서의 당부를 담기도 했는데
그 편지들은 후일 유명해져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주제하에서 자주 소개가 되고 있다.
후쫑은 지식인과 문화인들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중국 내에서 점차 높아가던 시대 상황 속에서
귀국을 하면 음악을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1958 년에 영국으로 망명을 했다.
그리고 조국에 남은 그의 아버지는 8 년 후인 1966 년에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홍위병들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하여
결국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쫑의 연주의 밑 바탕에는 가눌 길 없는 망향의 한이 깔려 있으며,
100 여 년 전에 조국 폴란드를 떠난 후에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던 쇼팽의 음악이
그에게는 남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해석한다.
그때 구입한 후쫑의 야상곡은 대만의 LINFAIR 라는 회사가 발매한 것을
국내에서 라이센스로 찍어낸 것이다.
개성적인 그의 연주를 들으면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해서 나름대로 좋긴한데
사실 그 음반의 음질은 MIT(Made In Taiwan) 답다.
전반적인 소리의 경향은 지나치게 경질이며
녹음 환경이나 아니면 Recording Engineer 의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Major 음반사를 통해서 발매된 것이 있으면 추가 구입을 하고 싶은데 아직 찾지 못했다.
피닌 콜린즈(Finghin Collins)는 아일랜드 출신의 젋은 연주자이다.
이를테면 떠오르는 샛별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다.
몇 년 전 서울시향(SPO)과의 연주를 위해서 방한했을 때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고
그 얼마 후 유명한 첼리스트 ‘장한나’가 일산 ‘아람음악당’에서 리사이틀을 할 때
피아노 반주자로 온 그를 두번째로 봤다.
사실 리사이틀을 하는 첼리스트 입장에게
콜린즈는 썩 환영받는 피아니스트가 아닐 것 같다.
서울에서 들었던 그의 연주는 자기 주장이 상당히 확실한 편이였고
다소곳한 반주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피아니스트라고 생각 되었는데
그런 그를 리사이틀 파트너로 선택한 장한나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SPO와의 협연 때, 연주가 끝나고 몇 번에 걸친 커튼 콜 끝에
그가 앵콜 곡으로 관객들에게 들려준 것이 야상곡 20번 이었는데
그 곡을 Live로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건반 위에서 깨질듯한 영롱한 울림으로 청중들을 숨죽이게 만들던 그의 야상곡 연주가
지금도 생각난다.
[야상곡 제20번 – 피아노 연주]
유럽에서 유명한 소콜로프가 연주한 야상곡 제20번.
그는 유럽 무대를 고집해서 미국 무대에서 연주한 적이 없는 특이한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그를 살아있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최고의 연주자로 꼽는 팬들도 많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신들린 듯한 그의 다른 연주 영상을 소개해 보겠다.
http://www.youtube.com/watch?v=gPeZZKh-ye4
Giorgi Latsabidze 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
뒤에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을 보니 메인 프로그램에서의 연주는 아니고 앙콜곡 연주 같은데
앙콜곡 연주 치고는 연주자의 자세가 엄청 진지하고 엄숙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8R05DSs96SQ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야상곡 제20번]
유태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의 연주.
그는 한국 출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정경화와 줄리아드에서 동문수학한 연주자인데
하반신 장애가 있어서 항상 의자에 앉아서 연주한다.
세계 음악계에서 유태인들의 파워는 대단한데
흔히 유태인은 돈이 많아서 자식들에게 예능 교육을 잘 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펄만의 부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던, 경제적으로 별볼일 없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 이었다.
그들이 아들에게 음악 교육을 시킨 이유는 오직 하나.
아들이 특화된 재주에 힘입어서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을 밝게 살아 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부모의 현명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http://www.youtube.com/watch?v=KS8ri_bDj-8
일본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의 카네기 홀 연주.
단조(Minor) 특유의 우수를 아주 로맨틱하게 잘 표현한 연주로 들린다.
그녀는 천재 소녀로 각광 받다가 사라졌던 연주자인데
일각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캔들 때문이었다는 소리도 들린다.
최근에 그녀를 만나 본 사람이 전한 말에 의하면 그녀는 평범한 삶을 소망한다고 하는데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http://www.youtube.com/watch?v=oHex-NcqX6c
[첼로로 연주한 야상곡 제20번]
Nathaniel Rosen 이라는 첼리스트의 연주.
1978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쿨’에서 우승한 연주자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연주자가 관객들에게 직접 곡목을 소개하는 것을 보니 앵콜 곡 연주 같다.
피아노 반주자와 페이지 터너(악보 넘겨 주는 사람)가 동양인으로 보여서
일본이나 한국에서의 연주가 아닌가 싶은데 상세한 정보는 없다.
http://www.youtube.com/watch?v=CLnOpbnrXU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