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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17일 금요일
[(백)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사도들은 매질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의회에서 물러 나왔지만,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라고 날마다 선포한다(제1독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을 보고, 군중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든다(복음).
제1독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물러 나왔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34-42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나누어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이 기적은 곧바로 성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 복음서 6장이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장이라는 사실, 그리고 성찬례 때마다 우리가 듣는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라는 말씀을 함께 묵상할 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우리 삶 안에 구체적으로 현존하시며 당신 자신을 내주시는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것, 값진 것,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고 소박하며 부족해 보이는 것을 풍요롭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나누셨습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라는 계산에 매여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6,9) 하고 낙담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계산을 넘어서는 가치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즐기며, 소박하고 사소한 것들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상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적이며, 참된 행복입니다. 아이의 적은 양식이 나눔과 사랑 안에서 모든 이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었듯이, 우리도 ‘내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누어야 할 양식은 눈에 보이는 빵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의 사랑, 용서, 배려, 위로라는 영적 양식도 나누어야 합니다. 이 사랑을 나눌 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인간은 부정적이지만, 주님은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행하신 빵의 기적을 통해 우리는 아주 ‘살짝’ 하늘나라의 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간 세상과 하늘나라 사이에 엄중하게 차단되었던 가림막을 살짝 열어보니, 하늘나라의 광경은 그간 우리가 상상해왔던 곳 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이었습니다. 빵의 기적을 통해 드러난 하늘나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풍요로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아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 6, 11-13)
하늘나라, 그곳은 어떤 곳으로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없이 자비하신 주님께서 중심을 잡고 계시고, 그 둘레로 성모님과 사도들, 성인성녀들이 앉아 계시고,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가난한 백성들이 모여있는 곳, 더 이상 죽음과도 같은 갈증이 없는 곳, 더 이상 쓰라린 배고픔이 없는 곳, 더 이상 슬픔도 눈물도, 높낮이도 차별대우도 존재하지 않는 곳, 모든 이가 원없이 먹고 마시는 풍요로운 곳.
이 시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상 천국의 모습도 꿈꾸어봅니다. 국회의원이든, 국회 청소 노동자든, 같은 식탁에 앉는 곳,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누구는 특실을 쓰고, 누구는 6인실을 쓰지 않고, 모든 이가 특별대우를 받는 곳, 바로 천국입니다. 재벌이라고 특혜를 받지 않고, 가난하다고 홀대받지 않은 곳, 바로 천국입니다.
제자들의 볼멘 소리와, 그에 반해 넉넉하고 풍요로운 주님 음성이 크게 대조됩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절=)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 8-9)
보십시오. 인간은 계산하고 잔머리를 굴리지만, 예수님은 아버지를 신뢰하며 기도하십니다. 인간은 부정적이지만, 주님은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절망하지만, 주님은 늘 희망하십니다. 인간은 언제나 제한적이지만, 주님은 무한하십니다. 주님은 한 마디로 ‘무한리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의 기적은, 2천년전의 한 기적사화로 공부하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되풀이되고 실현되어야 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과제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킬린에서 하루 머물렀습니다. 킬린 성 정하상 본당의 사목회장님이 숙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호텔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고 하니, 성과 방 번호를 넣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의 성과 방 번호를 입력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선 인터넷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의 이름으로 예약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사목회장님이 예약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번에는 사목회장님의 성과 방 번호를 입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인터넷 연결이 되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미리 하는 걸 좋아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한 성격에 서두르다가 이렇게 종종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사칙연산은 조금만 생각하면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정식과 함수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문법은 원리만 알면 풀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문과 번역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말리엘의 말은 논리적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 선포가 사람의 뜻이라면 곧 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 선포가 하느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막아서도 안 되고, 우리가 막는다면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박해하던 사람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따랐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저도 하느님의 뜻보다는 저의 욕심과 저의 이기심으로 판단한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을 전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측은한 마음이 드셨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안드레아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오천 명이 먹고도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저는 표징의 시작은 ‘측은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군중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저는 표징의 마침은 ‘감사의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성’입니다. 감사의 기도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방 번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다른 것을 입력하려고 합니다. 돈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효율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경로를 독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은 경로를 독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은 자신들을 통해서만 전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경로의 독점은 정치에서도 드러납니다. 많은 독재국가들은 경로의 독점을 통해서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 결과 자유를 억압하고, 저항하는 사람을 탄압합니다. 공동체에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이유는 경로를 독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경로를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는 경로의 독점이 아닙니다. 나눔과 섬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빵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종이 아니라 벗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과 폭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나눔과 사랑으로는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 땅을 녹이고, 파란 새싹이 돋아나게 하는 것은 따뜻한 봄 햇살이면 충분합니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벗이여, 자리 잡게 하게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요한 6,10)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그대의 눈길에
자리 잡게 하게나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울부짖는 사람들이
그대의 귀길에
자리 잡게 하게나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쓰러진 사람들이
그대의 손길에
자리 잡게 하게나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버려진 사람들이
그대의 발길에
자리 잡게 하게나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외로운 사람들이
그대의 품길에
자리 잡게 하게나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사람이고픈 사람들이
그대의 삶길에
자리 잡게 하게나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Kateri Tekakwitha)
신분 : 과부
활동지역 : 캐나다(Canada)
활동연도 : 1656-1680년
같은이름 : 가타리나, 까따리나, 까떼리, 데카퀴타, 데카크위사, 카데리, 카타리나, 캐서린
캐나다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들에게 체포된 알곤퀸(Algonquian)의 딸인 성녀 카테리 테카크위타는 현재의 뉴욕(New York) 오리스빌(Auriesville) 근처의 모호크(Mohawk)에서 태어나 모호크족의 인디언 추장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1676년에 예수회 선교사인 쟈크 드 랑버빌(Jacques de Lamberville) 신부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나, 그녀의 신앙을 반대하는 부족과 친척들의 질시와 학대를 이기지 못하여 고향을 떠났다. 밀림 지대를 거쳐 200마일의 거리를 헤맨 끝에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과 가까운 어느 그리스도교 인디언 마을에 당도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1677년 성탄절에 첫영성체를 하였고, 1679년에는 동정서원을 발하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한 후 선행과 사랑의 실천에 몰두하였다.
그녀는 캐나다의 코프나와가(Caughnawaga)에서 선종하였는데, 그녀의 성덕이 뛰어나 만인의 공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녀는 ‘모호크의 백합’으로 불리며, 1980년 6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아메리카 본토인 가운데 최초로 시복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가 기적을 확인하는 시성성의 교령을 승인한 후 그녀에 대한 시성 절차가 진행되어, 2012년 10월 2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카타리나 테카크위타(Catharina Tekakwitha)로도 불리는 그녀의 축일은 캐나다에서는 본래대로 4월 17일에 기념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부활 대축일과 겹치는 불편 때문에 7월 14일로 이동하여 기념하고 있다.
성 란데리코 (Landericus)
활동년도 ; +8세기
신분 : 주교
지역 : 메스(Metz)
같은 이름 : 란데리꼬, 란데리꾸스, 란데리쿠스, 란드리, 랑드리
성 란데리쿠스(또는 란데리코)는 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우스(Vincentius Madelgarius, 9월 20일)와 성녀 발데트루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네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메스의 주교가 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은퇴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의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성인 성녀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아니체토 (Anicetus)
활동년도 : +166년경
신분 : 교황,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아니체또, 아니체뚜스, 아니체투스, 아니케토, 아니케투스
시리아의 에메사(Emessa) 출신인 성 아니케투스(또는 아니체토)는 교황 비오 1세(Pius I)의 뒤를 이어 155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마르키온주의(Marcionism)와 영지주의(Gnosticism)를 적극적으로 배격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의 재위 기간에 부활절 날짜를 두고 동방과 서방 교회의 논쟁이 벌어졌다. 사도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제자인 스미르나(Smyrna)의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가 로마(Roma)에 있는 그를 방문하여 부활 축일 날짜에 관해 논의하였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서로의 관행을 존중하기로 했으나, 이후 '부활 축일 논쟁'은 더욱 가열되어 다음 세기까지 열띤 논쟁을 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