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이길섭
그리움이란 어느 날 불현듯
아침 세숫대야에 비치기도 하다가
시퉁터지게도 슬며시
버스카드첵크기 위에 나타나기도 하지요.
그리움이란 외로움이 사무칠 때에는
괴화산 쑥국새 울음에 섞이기도 하고
가끔은 의연한 별빛이 되어
내가 잠든 창가를 내려다 보지요.
비밀의 화원에서 피는 그리움은
때로는 산 넘고 물 건너 사는 까닭에
삶 가운데 무지개를 펼치기도 하지만
보슬비에 마음을 젖게 하기도 하지요.
들킬쎄라 꽁꽁 싸서 숨겨두기도 하고
너무 멀어서 다가갈 수 없어도, 평생에
바람결에 안부 떠올리는 그리움 하나쯤
가슴팍에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면
푸른별 떠나는 날 마음 한 구석에
헛헛함 혹여 남아있지는 않을테지요.
미역국 앞에서 엄니를 본다/이길섭
아내가 간소한 생일상을 차렸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숟갈을 드는데
미역국 위로 해맑은 엄니 얼굴이 보인다.
전쟁 끝나고 두 해인가 지나서
새재*에서 내려와 금강을 건너
산벚꽃길 따라서 시집을 갔다,
꾀꼬리 소리 그리도 고왔을.
척박한 산골의 시집살이 삼년만에
수수꽃 날리는 새벽녘 빗소리 들으며,
엄니는 아홉달짜리 조숙아를 안아들었다.
햇빛에 그슬린 스물 두살 앳된 여인은
하늘이 애기 목숨 어찌할쎄라 마음 졸이며,
가슴 위로 밤마다 가랑비가 흘러내렸다.
그러고 또 박꽃 피고 수수꽃이 피었다.
돌상에 흰무리 올릴 쌀 됫박 없는 살림이다.
담 아래 부잣집 종손댁에 부탁해서
쌀 환 되 꾸어다 수수떡과 돌상을 차렸다.
그 자리에서 흰무리 무명천에 폭 싸 가지고
논산훈련소 시동생 면회간 시어머니,
그날은 때도 가리지 못하고 처연하게
소쩍새가 소리를 지르며 슬피 울었다.
난산 끝에 어머니가 눈물 훔치며 먹었을
미역국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눈을 감고.
잘생긴 큰 손주 좋은 자리 취직하던 해
소쩍새와 산새들이 볕 좋은 언덕 위로
자리 찾아 엄니를 모시고 갔지만
평생을 아이와 함께 살았던 미숙아망막증은
일흔 앞에 있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새재: 공주시 봉정동에 있는 고개, 어머니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카페 게시글
초록잎새
9월 9일 합평시 올립니다.
이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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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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