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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부활주일 예배
○ 고린도전서 15장 20절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적 중 하나입니다. 많은 종교들이 있고 그 종교의 창시자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부활한 사람은 없습니다. 부활은 에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며, 끝까지 하나님께 인정받으셨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3-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영원한 왕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인데 열왕기하 8장 1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들이 왕이 되어 온갖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으신 이유에 대하여 소개하고 계시는 데 그것은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벨론에게 멸망하면서 다윗의 후손은 이어졌지만 왕위는 계승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에서 항상 이스라엘의 등불이 될 자를 끄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반드시 다윗의 후손에서 탄생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사역을 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것도 잠시동안 왕노릇하다가 죽는 그런 왕이 아니라 영원토록 온 세상을 다스리실 왕, 또 하늘과 땅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를 다스리실 왕이 되셨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죽음으로써 순종하신 자신의 독생자를 자신의 우편보좌에 앉히시고 만물을 다스리실 모든 권한을 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하고 계십니다.
아들을 사랑하셔서 만물을 다 아들의 손에 주신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왕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아들만큼은 선하고 완전한 통치를 행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 역시 이 말씀을 확증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아들에게 만물을 주셔서 만물로 하여금 아들에게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 만물 위에 교회를 두셨고 교회의 머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나 만물이나 충만하게 자신의 기능을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충만을 구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은 이를 확증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뿐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교회에게 주시는,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빌립보서 3장 21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단순히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시키시는 목적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구원만의 목적이 아닌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면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어떤 부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어떤 부분은 여러분들이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성경에 기록하신 대로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한 순종이 필요했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는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 부활의 사역에 동참하셨음은 당연한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1절을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서 살리신 영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살리시는 일이 아직 또 남아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어디에 계신다고 하십니까? 예수님 안에 계셨듯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여러분들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여러분들의 부활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으시는 이유는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확실한 증거 때문입니다.
성령은 거짓말을 전혀 못하십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거짓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영이 육체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심으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로마서 1장 3-4절로 가서 조금 전에 읽었던 말씀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제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이제는 두 번째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하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으로만 나시고 성령으로 나시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은 되실지라도 온 인류의 왕이 되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육체는 육체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영을 다스릴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질서가 영이 혼을 다스리고, 혼이 육을 다스리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서 하나님이 먹지말라고 하시면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금하셨던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사람은 영이 죽었습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만 하나님을 알수 있고 하나님의 뜻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이 죽은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자 추구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알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하나님을 어렴풋하게 알도록 도와줍니다. 그 이유는 창조세계가 하나님을 향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창조물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분이라든가, 아니면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일은 성령이 임하셔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하나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28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신 이유는 자신이 하늘로부터 오셨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외에 이 세상에 탄생했던 모든 사람들은 땅에서 났습니다. 땅에서 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개가 주인이 좋아하는 어떤 것은 알고 꼬리를 치면서 주인이 좋아하는 일은 행할지라도 주인의 온 마음을 다 알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이 혼과 육을 가지고만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개와 인간이 태생부터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개가 요구하는 것, 개의 삶에 필요한 것, 개의 장점과 단점 등 많은 것을 안다할지라도 개는 인간을 알수 없는 것처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하나님은 인간을 다 아실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은 모른 채 자연만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조금 알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셨고 스스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지켜행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55절을 보면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역시 성령으로써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도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행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세우신 목회자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조금은 하나님의 뜻을 알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고 또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고 행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28절을 통해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때는 늦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는 말씀은 성령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결의 영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실까요?
사실 성령에 대한 증거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칭호가 진리의 영입니다. 그리고 보혜사, 거룩하신 영,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등 여러 칭호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부활과 연관지어서 성결의 영이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신구약을 다 합쳐서 성결이라고 하는 단어를 33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시던 나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성결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할때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깨끗하게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단어는 정결이나 청결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께 드릴 때 성결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의 역사는 많은 다른 역사들과 비교해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의해 완전히 깨끗한 상태, 그리고 완전히 헌신된 상태로 드리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드리실 만큼 완전한 순종을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아들이심을 공개적으로 세 번을 선포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성령이 마리아에게 찾아가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신하게 하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두 번째는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후 물에서 올라오실 때였고, 세 번째는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세 번은 말씀으로 선포하셨지만 부활은 행동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계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육체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확인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물과 피를 다 쏟게 함으로써 완전히 죽였습니다. 그것은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믿을수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살리신 사람들은 살과 피가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몸 속에 있는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본 어느 누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을 대적하여 빌라도를 찾아갔던 유대인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이 살아나실 것을 염두해두고 무덤을 지키게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시신을 훔쳐간 후에 예수님이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할까봐 군병들을 보내서 무덤 입구를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했던 것은 예수님을 살리신 분은 온 세상을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앞에 놓고 박해하면서 교회를 없애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쓰지만 교회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를 계속해서 살리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교회를 살리며 인도하시기 때문에 교회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없애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지금까지 이 말씀은 사실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저히 살아나실 가능성이 단 일 퍼센트도 안되는 예수님의 부활이었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고 강조하신 이유는 그 다음 열매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후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할 다음 열매들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교회의 지체로써 예수님이 살리신 거룩하고 신령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영생을 얻은 여러분들의 영원한 보장이 되어 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몸은 영원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날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소망은 죽은 자들의 소망과는 다른 영원한 산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소망을 땅에 두고 사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구절인 고린도전서 15장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예수님을 안믿는 세상 사람들도 불쌍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더 불쌍한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세상의 삶에 연연하며,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얻게될 그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의 부귀를 구하며 영화를 구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의 영광 근처에 도달해 있으면서도 눈은 세상을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 앞에 두고도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땅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 일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땅에 있는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원히 썩지 않은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역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땅에 자기 마음을 다 쏟고 있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연예인들이 누리고 있는 화려한 삶을 비춰줍니다. 몇 평자리 건물에 그 내부를 얼마나 으리으리 하게 꾸몄는지를 보여주고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자기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썩어질 것들이며 부패할 것들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얻고자 땅에 소망을 두며 사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하나님께 드린 것도 아무것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그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면서 비통해 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부귀영화가 다 끝나고 이제는 지옥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못 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때가 완전히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도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실 때 죽었던 몸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부활도 순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안에 그래도 있는 자들은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활이 있습니다. 그 부활에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가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습니까?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영원한 삶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예수님 안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은 모두 부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끝나게 되었을 때를 24절은 말씀합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는 일을 마쳤을 때 그 다음은 마지막이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 그렇게 소망을 두고 추구하던 모든 것들을 심판하시고 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을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래대로 돌려지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마귀가 파괴한 온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죄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죄로 멸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셨습니다. 그로인해 에덴동산에서 아무 죄도 없이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이 온전히 사랑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영원한 천국에서 그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을 회복하여 서로가 서로 안에서 하나가 되는 복된 나라를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목적이며, 또한 부활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있는 여러분 역시 부활의 열매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새생명은 영원한 몸을 입게 되는 생명입니다. 이 은혜와 복을 받으신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이 땅에 매이지 마시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루 하루를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면서 섬기시길 바랍니다. 또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시길 바랍니다. 또한 아직도 예수님의 집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집으로 초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임하신 그 구원의 은혜가 그들에게도 임하여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시는 그 날에 여러분들의 몸과 함께 그들의 몸도 역시 영생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음을 감사드리면서 오늘 부활절을 보내시고 앞으로의 날을 여러분들에게 임하실 부활신앙의 기쁨으로 살아가며 세상을 이기도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길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