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봐 오는 교.” “예.”“아이고 제사 있는가 베.” 때론 “ 서울 얼라들 오는 갑네.” 좁은 골목에서 간결한 대화가 스치듯 오간다. 내 든든한 짐꾼인 돌돌이(시장 손수레)가 골목에 등장하면, 마주치는 시선들이 그들만의 촉으로 어림짐작해 건네는 대화들이다. 이맘때쯤, 혹은 돌돌이에 실린 것들로 대충 어림잡아 한 마디씩 던지는데 용케도 맞힌다. 순간, 관심을 덕담 나누듯 하는 저들에게서 텅 빈 수수깡처럼 헛헛했던 마음이 살포시 채워진다. 짜부라진 존재감에도 폴폴 향기 난다.
제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 오래 기억하고 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친교로 다져진 이웃들이다. 마음은 쓸수록 닮은 마음이 되어 돌아옴을 알기에, 타인의 삶에도 잠깐씩 곁눈질하며 괜찮은지 마음 주는 작은 등대 같은 이들이다. 동네 뒷골목은 식당들로 즐비하다. 매일 장 보는 이들이 나누는 수다 같은 짧은 대화는 자연 시장 이야기다. 싸고 질 좋은 물건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다정한 눈빛으로 친밀감을 쌓는다. 다정한 것이 약함으로 치부되고 공격적인 말들이 강함으로 오인되는 사회지만 다정함의 힘은 세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건, 그걸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그걸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 가난해도 햇볕 한 자락 내줄 줄 아는 이들이다.
제철 먹거리와 지역의 일상이 만나는 가장 생생한 여행지인 시장이 지척에 있다. 깔끔한 골목과 돔 형식의 지붕이 잘 정돈된 동해안 최고의 죽도시장이다. 창고에서 돌돌이를 꺼내 오 분이면 닿는 그곳은, 반복되는 일상과 삶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도시의 자산이 된 곳이다. 시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품어 왔기에 삶을 채우는 공간인 동시에 푸짐한 맛과 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사랑받는다.
나는 수십 년, 이웃들의 관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오가는 그 시간을 즐긴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의 싱싱함을 고스란히 식탁에 올리는 쏠쏠한 재미는 단연 최고다. 잦은 대소사를 치러야 하는 대가족의 맏며느리인 내게는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곳이 아닐 수 없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시간으로 쌓아 올린 죽도시장의 나이테는 묵직하다. 나는 누구든지 와서 섞이고 흩어지며 만들어 내는 시장만이 갖는 그 허벅진 역동성을 좋아한다. 어판장에 제 멋대로 널브러진 온갖 생선들과 눈 맞추며 생을 가늠해 사유하는 그 시간을 즐긴다. 또한 그곳은 시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잇고 쌓아 온 오랜 시간을 오늘의 힘으로 바꿔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장사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의 성장 서사는 변모된 모습들이다. 시대에 맞춤한 장사 운영은 잊히지 않으려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다.
온기와 숨결이 살아 있는 골목마다 새로운 모습이 펼쳐져 다채롭고 누구에게나 열린 곳. 가볍게 나선 곳에서 사람 사는 풍경을 만나고, 느긋하게 장을 보는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여행처럼 느껴지는 곳. 아직도 흥정이라는 맛을 느낄 수 있고 덤이라는 정 나눔이 자연스러운 그곳에서 장바구니와 마음을 함께 채운다. 시장을 찾는 이들이 누리는 또 다른 묘미다.
인생의 기쁨은 어디에서 올까. 일상의 작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삶의 진정한 가치는 소소한 일상에서 온기로 반짝이는 작은 순간들일 것이다.
돌돌이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나물의 계절이 아니던가. 좌판이 죄다 들판인 채소전에서 연두의 유혹에 그만 너무 많이 실었나 보다. 그러나 합리적인 장보기로 알차고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시장의 힘이다. 오늘도 나는 죽도시장에서 작고 반짝이는 것들로 채워진 장보기 여행을 했다. 덤으로 이웃들의 관심 어린 눈빛과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듬뿍 싣고 왔다.
출처 : 경북일보(https://www.kyongbu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