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2장에 보면 갓 출발한 기독교는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기존 종교 집단이 예수의 제자들을 미워했을 뿐 아니라 국가적인 박해도 일어났다. 12장은 “그때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한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2절에서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고 말한다. 또 헤롯은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했다(3절).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5절). 그리고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 주었다. 야고보는 처형당했지만 베드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왜 하나님께서 누구는 보호하고 고쳐 주시고 도와주시는데 다른 사람은 안 도와주시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은 없다. 적어도 인간적으로 드는 의문을 완벽하게 해소해 줄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나이트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페이션스 카터라는 여성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이후 자신이 쓴 시에서 카터는 “살아남아 다행이라 생각할 때마다 드는 무거운 죄책감이 제방을 무너뜨리고 몰려오는 바다처럼 나를 짓누른다.”라고 말했다. 페이션스 카터는 50명의 생명을 앗아 간 끔찍한 참사의 현장에서 죽을 수 있었다. 운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와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음주 운전자 때문에 사고가 생겨 한 아이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나머지 가족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를 두고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암 환자가 둘이 있는데 그중 한 명만 죽음을 맞이했다. 같은 병이지만 결과는 달랐다.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명쾌하게 풀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란 어렵지 않다. 철학자들은 야고보의 팔자가 더 고약했고 차라리 하나님을 버렸다면 더 오래 살았을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