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1번째 편지 - 음택과 운명
지난주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에 걸쳐 아버님 산소를 어머님과 합장하기 위해 이장을 하였습니다. 살아가면서 이장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저도 이번에 난생처음 이장을 경험하였습니다.
절차는 이러하였습니다. 아버님 산소에서 시신을 파내어 유골을 수습한 다음 그 유골을 작은 관에 넣어 원지동 추모 공원에 가서 화장한 다음 유골을 빻아 유골함에 넣습니다. 그 유골함을 집에서 하룻밤 모신 후 그다음 날 어머님 유골함과 함께 봉안묘에 합장하는 순서입니다.
1983년 9월 23일 아버님을 산소에 모셨습니다. 어머님은 늘 입버릇처럼 그 산소가 명당이라고 하셨습니다. 명당자리라 자손들이 번성하고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굳게 믿으셨습니다.
산소가 포천에 있어 다니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용인 쪽으로 이장할 것을 어머님께 몇 번 말씀드렸지만 명당인데 왜 옮기려 하냐고 꾸짖으셨고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나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님은 아버님 산소에 합장되기를 희망하셨습니다. 동생도 그럴 의향이 있었는데 저는 이장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쉽게 나버렸습니다. 공원묘원에서 더 이상 산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재개발하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일을 잡아 지난주 월요일 이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명당자리를 옮기게 되면 집안의 운명에 어떤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면서 이장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원묘원 소장이 "혹시 안 좋은 것을 보시게 될 수도 있으니 마음의 각오를 하십시오."라는 말을 툭 던졌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가족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산소를 한 길쯤 파들어가니 관 뚜껑이 보였습니다. 40년 전의 일이라 관채 모셨는지 탈관을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관채 모셨던 것입니다.
관뚜껑만 열면 아버님 유골과 만나게 됩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저와 제 동생을 제외한 가족들은 멀리 물러나게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저희 집안의 이장이라는 특별히 개인적인 주제이고 다소 무겁고 불편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섬뜩한 소재인데 왜 월요편지에서 다루고 있는지 의아해하실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관뚜껑을 열기 전에는 월요편지에 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관 뚜껑을 열고 나서는 만감이 교차하며 운명이 무엇인지 깊이 고뇌하게 되었기에 결례를 무릅쓰고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님 관에는 물이 한가득 차 있었습니다. 40년간 그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풍수를 모르지만 음택(묫자리) 풍수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음택은 관에 물이 차는 자리입니다. 아버님의 묘소가 바로 그런 음택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명당이라고 평생 생각하셨고 저희도 그렇게 믿었던 자리가 정반대의 흉지였습니다.
저희 집안은 지난 40년간 그런대로 잘 살아왔습니다. 음택풍수대로 아버님 묘지가 흉지라면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요? 동생 말대로 아버님을 명당에 모셨더라면 집안이 부귀영화를 더 누렸을까요? 아니면 흉지가 집안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못한 것일까요?
40년간 물에 계시던 아버님의 시신을 화장하여 납골묘에 모신 이후 저희 집안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과연 운명은 있는 것인가요?
저는 이날 일을 겪고 오래전(2015년 1월 12일)에 쓴 <요범사훈>에 대한 월요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단명하고 출세하지 못한다는 운명을 적선(積善)을 통해 극복한 16세기 중국인 원황이 쓴 책입니다. 그는 63세가 되던 해에 아들 원엄을 위해 교훈서 요범사훈을 씁니다. 요범(了凡)은 '평범함을 끝마친다'라는 의미로 원황이 자신의 호로 삼은 것입니다.
요범은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의 운명이 어떠할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운명이 순탄하여 영화로울 때는, 늘 몰락하여 적막할 때를 생각하라. 당장 눈앞의 의식주가 풍족할 때는, 늘 가난하고 구차할 때를 생각하라.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공경할 때는, 늘 두려움과 무서움을 생각하라.”
“날마다 잘못된 것을 알아차려, 매일매일 잘못을 고치도록 힘써라. 어느 하루 고칠 만한 과실이 없으면, 곧 그날은 진보가 없게 된다.”
요범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면 적선(積善), 선행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음택 흉지에 아버님을 모신 저희 집안이 이만큼 잘 지내게 된 데는 어머님의 평생 기도가 있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희는 어머님과 아버님을 모신 납골묘가 명당인지 흉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묫자리가 가진 운명을 저희들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요범처럼 적선을 할 수도 있고 어머님처럼 기도를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운명에 도전장을 내고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요범사훈의 구절 중 저를 가장 섬뜩하게 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천하에 총명하고 준수한 사람이 적지 않지만, 공덕을 높이 쌓고 수양을 깊이 닦지 못하는 까닭은, 단지 ‘인순(因循: 타성에 젖어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고 기존 관행을 답습함)’이라는 두 글자로 말미암아 한평생을 허송세월하기 때문이다.”
저도 인순에 빠져 살고 있지 않나 스스로 살펴야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7.10. 조근호 드림